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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선수들의 꿈이 좌절되고 1월 이적 시장의 문이 닫히기 직전, K-리그 최고 선수로 불리는 김두현이 잉글랜드 챔피언십 리그 웨스트 브롬위치(이하 웨스트 브롬)과 입단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김두현에게 큰 기대를 건 사람은 많지 않았다. K-리그에서야 자타공인 최고의 미드필더로 각광받던 그였지만 대표팀에서 이렇다할만한 활약을 보여주지 못한데다 웨스트 브롬 입단 계약도 고작 6개월 임대 조건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해외 무대 경험이 없는 선수에게 6개월 임대 계약을 통한 진출은 여러모로 모험적이다. 함께 뛰는 선수들의 체격 조건이나 플레이 스타일 같은 경기장 안의 환경 변화는 물론이고 문화와 언어 문제 같은 경기장 바깥의 차이까지 극복해야 하는 외국인 선수에게 6개월은 너무도 짧은 기간이다. 사방에서 잘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들이 쏟아지고, 좌우가 바뀐 운전석과 차도 탓에 길을 건너거나 운전대를 잡는 것조차 쉽지 않은 ‘초짜’ 외국인 선수의 신세는 그래서 더 험난하다.
그나마 훈련장이나 경기장에서는 별 말이 필요 없고 자신이 가장 ‘잘하는’ 축구를 마음껏 보여줄 수 있으니 한결 나을 것이다. 하지만 훈련이 끝나고 숙소로 돌아오면 더욱 더 힘든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 영국 특유의 음침한 날씨와 날카로운 바람이 어우러지면 종종 꽤나 우울한 기운을 불러내기 일쑤여서 인터넷을 제외하면 막상한 소일 거리가 없어 공허함을 느끼곤 하는 것이 비 영어권 외국인 선수들의 초기 적응 증후군이다.
유럽 적응, 6개월은 짧다
문제는 이건 겨우 시작이라는 사실이다. 6개월 임대라지만, 1월 말부터 팀에 합류한 김두현에게 주어진 시간은 고작 100일 남짓이다. 이 짧은 시간 동안 자신의 존재감을 입증시키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더군다나 김두현이 몸담은 웨스트 브롬은 챔피언십 리그 최상위권에서 다음 시즌 프리미어 리그 승격을 노리는 팀 아닌가. 프리미어 리그 직행을 위해 필요한 순위인 2위권 수성을 위해 전 경기가 전쟁터인 웨스트 브롬에는 김두현이 뛸 수 있는 포지션에 벌써 여러 명의 선수가 주전 경합을 벌이고 있는 상태다. 게다가 이들 대부분은 유럽 1부 리그에서 풍부한 경험을 쌓은 수준급 미드필더들. 덕분에 웨스트 브롬의 다음 시즌 프리미어 리그 승격 가능성은 매우 높지만, 그 대신 남은 시즌 동안 김두현에게 많은 기회가 주어질 가능성은 적다. 남은 시즌 동안 자신의 ‘가치’를 입증하지 못할 경우 영국 무대에 살아남기 어려운 김두현에게 6개월 임대는 그래서 더욱 치명적이다. 1분, 1초 줄어들 때마다 관객의 심장을 옥죄게 하는 영화속 시한 폭탄처럼, 김두현에게 남은 앞으로 두 달 여의 시간은 그의 커리어에 있어 하루 하루가 보물이나 다름 없다. K-리그 최고 선수가 잉글랜드 2부 리그에서도 자리를 잡지 못했다는 비판을 꼬리표처럼 달고 뛰는 건 분명 달갑지 않은 일일 테니.
나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김두현의 ‘킥’과 ‘시야’가 챔피언십 무대에서는 너끈히 통하리라는 기대야 물론 하고 있었지만 그네들의 거대한 몸집과 터프한 몸싸움에 대한 부담을 외면하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6개월 임대 조건으로 영국에 진출하는 김두현을 바라보는 심정이 편치만은 않았다. 지난 1월 영국을 방문했을 때 구한 ‘웨스트 브롬’ 유니폼에 마킹하는 것을 몇 달 간 미뤄두기로 한 것도 그래서다. (김두현이 잔류한다면 그의 번호와 이름을 새길테지만, 그렇지 않다면 애초 계획대로 나의 오랜 ‘훼이보릿’ - 인수위식 발음! - 인 필립스의 이름을 새기기로 마음 먹고 옷장 속에 고이 모셔놓았다.)
하지만, 우려와 달리 긍정적인 징후가 느껴진다. 김두현의 잉글랜드 무대 적응 속도가 생각보다 빠른 것처럼 보인다. 선발 데뷔전도 앞당겨질 전망이다.
긍정적인 징후들
물론 김두현은 아직까지는 이렇다 할만한 활약을 보여주진 못하고 있다. 입단 이후 한 달이 넘도록 1군 경기에 네 번 출전한 것이 전부인데다 그나마 전부 후반 중반이나 막판에 투입되어 진가를 발휘할 기회가 없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현재 팀 내 미드필드에 워낙 좋은 선수들이 많아 김두현이 비집고 들어설 자리가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현재 선두권을 다투는 1군 팀의 성적은 감독이 기존 선수 구성에 큰 변화를 주기 어렵게 하고 있다. 안그래도 두터운 선수층을 갖춘 웨스트 브롬은 2군 경기에서조차 두 경기 연속 6골을 득점하며 대승을 거둘 정도로 막강한 공격력을 자랑하는 팀. 김두현은 이처럼 불리한 상황 속에서 점점 자신의 영역을 만들어 나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선발 데뷔 임박?
2군 경기에서의 활약과 훈련에서 받은 호평도 인상적이지만 주변 정황도 반갑다. 빠르면 이번 주말 선발 데뷔전을 치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두터운 미드필드 진에서 포르투갈 출신의 테이세이라가 부상으로 이탈한 데 이어 크리스 브런트와 제임스 모리슨 역시 부상으로 주말 경기 출전이 어려운 상황이다. 약체를 상대로 홈에서 열리는 경기에 선발로 나선다는 것은 많은 기회를 내포하고 있다. 참고로 올 시즌 웨스트 브롬은 홈 경기에서 11승 6무 2패를 기록 중이다. 24개팀 중 22위로 처져 리그1(3부 리그) 강등이 유력한 레스터 시티는 최근 리그 9경기에서 2승 1무 6패로 부진하다. 게다가 주전 수비형 미드필더인 주장 스티븐 클레멘스(잉글랜드의 전설적인 골키퍼 레이 클레멘스의 아들)와 베테랑 수비수 제이미 클래팸마저 부상으로 출전이 어렵다. 김두현이 선발로 나선다면 충분히 첫 공격 포인트를 노려볼만한 상대로 꼽힌다. 하지만, 레스터 시티는 김두현에게 양날의 검이기도 하다. 승패와 무관하게 기본적으로 실점이 적은 팀인데다 최근 4경기에서는 2골 밖에 내주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경고와 퇴장이 많은 ‘거친’ 팀이라는 점 역시 김두현에게는 부담스러울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거칠다해도 챔피언십 리그는 챔피언십 리그다. 김두현에게는 2부 리그 하위팀에게 방해받지 않을 무기가 있다. 김두현의 가장 큰 장점은 예리한 킥이다. 양발에서 뿜어져 나오는 그의 정확하고 빠른 킥은 슛과 패스에 걸쳐 놀라운 위력을 발휘한다. 성남이나 대표팀에서와는 달리 한 발짝 뒤로 처져서 전후좌우를 크게 흔들어주는 ‘웨스트 브롬’ 김두현의 날카로운 킥은 챔피언십 리그에서 그의 가치를 높여줄 분명한 무기다. 물론, 그 킥을 더욱 빛나게 하는 것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그의 작지만 빛나는 두 눈이다. 22명 가운데 혼자서만‘와이드 스크린’을 보고 있는 것처럼 경기장을 폭넓게 파악하는 김두현의 시야는 영국에서도 큰 위력을 발휘할 것이다.
장점과 단점 사이
가장 걱정스러운 것은 역시 체격과 힘이다. 서양 선수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왜소한 김두현의 하드웨어는 챔피언십 리그처럼 거친 리그에서 곧추 서는 데에 장애가 될 수 있다. BBC 인터뷰에서 모브레이 감독이 던진 말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김두현을 영입하기 전에 김두현과 일했던 감독들에게 의견을 물었더니 ‘챔피언십 리그는 김두현의 경기 스타일을 감안하면 너무 치열하다’고 하더라.”
챔피언십 리그의 거친 면모는 벨기에 리그에서 최고의 공격수로 군림하던 설기현이 울버햄튼(당시 챔피언십 리그) 입단 이후 측면 미드필더로 보직을 변경한 사례에서 볼 수 있듯 만만찮은 세기를 자랑한다. 팀 스타일에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중원에서는 더 하다. 작은 체구의 중앙 미드필더들이 영국 진출 뒤 중앙에서 측면 미드필더로 보직을 변경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에버튼의 아르테타, 포츠머스의 크란차르는 신체 접촉의 횟수를 줄이고 수비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감독들이 측면으로 자리를 옮긴 대표적인 케이스다.)
이런 점에서 김두현에게 좋은 참고가 되는 것은 박지성의 사례다. 중앙 미드필더로 자리잡나 싶던 박지성은 히딩크 감독 휘하에서 측면 공격수로 보직을 바꿨고 이후 대성공을 거뒀다. 물론 김두현이 굳이 보직을 변경할 필요야 없을 지 모르지만, 한번쯤 곱씹어볼 만한 변신이다. 또,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듯 네덜란드 PSV 아인트호번 시절의 박지성은 경기 도중 자주 넘어졌다. 상대 수비수들의 견제를 이겨내기 위한 나름의 노하우였다고도 할 수 있겠는데, 프리미어 리그로 옮기면서 쓰러지는 횟수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 무게 중심을 낮게 하고 상체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면서 자기 플레이를 펼칠 수 있는 자리를 확보해 나간 덕이 크다. 대표팀에서도 박지성과 많은 부분 겹쳐지던 김두현의 역할을 감안하면 참고할만한 변화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점에서 역시 6개월은 짧다. 박지성이 진화를 거듭하는 데에는 최소 5년이 넘는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김두현은 이제 갓 온실에서 벗어나 새로운 무대로 뛰어들었다. 더군다나 그에게 현재 주어진 기회는 극히 짧다.
어쩌면 우리는 앞으로 ‘예쁘게’ 공을 차는 김두현을 더 이상 보지 못하게 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아한’ 미드필더보다 ‘우악스런’ 미드필더가 필요하다면 과감한 변신이 필요하다. 물론, 지금의 스타일을 고수하면서도 성공시대를 달릴 수 있다면 가장 좋은 일이겠지만 세상 일이 어디 그리 만만한가.‘거칠고 거친 서부(wild wild west)’에서 살아남기 위한 김두현의 여정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앞으로 100일, 김두현의 건투를 빈다.
* 사진 제공 : 스포탈코리아
첫댓글 참 서형욱씨가 글을 잘쓴단 말이에요 언제나 객관적으로 보려 노력하구 말입니다. 다만, 가끔 너무 전방위로 까대서 특정 팀 팬들이 좋아하는 사람이 없어 보임 ㅋㅋ
서형욱씨 옛날보다 많이 나아졌죠. ㅋㅋ
두현이 택배~~~ㄱㄱ
알론소나 로사 같은 우와한 미드필더로 성공하길.. ㅋ
진화.........김두현에게 가장필요한것......자신은 월드클래스급이라는 자신ㄷ감을가져야하는것
하체단련좀 하면 좋을듯, 가끔 무릅이 안좋을때가 있는데...무릅과 허벅지 안쪽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