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는 의무감 때문에 새벽부터 일어나 산행기를 쓰고 있지만
우리 언니 오빠들은 오늘 아침 무사히 기상하셨는지 궁금하다.
이런 얘기를 하는 이유는 어제밤 교문리에서의 광란파티에
녹초가 된 우리집 오빠가 도대체 일어날 생각을 않고 있기 때문
이다. 다른 집도 사정은 마찬가지일 것으로 짐작된다. 어제
김고문님이 개인사정으로 불참하셨기 망정이지 참석하셨더라면
아마도 참석자 전원에 징계처분이 떨어졌거나 산악회 해체 선언을
하셨을지도 모르겠다. 하기야 김고문이 계셨으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테지만.
집행부가 사전답사까지 하면서 완벽한 문화산행 준비를 한데다
회비도 특별할인 해준다고 광고한 덕분인지 최남식, 안희중,
조문제 동문이 오셨다. 그러나 젬마부부가 독일 딸네 집에 가는
바람에 예상만큼 세일 효과도 없이 회비만 너무 많이 깎아줬다고
현총무가 회비를 걷으면서 툴툴거린다. 짠돌이 현총무가 웬일로
회비를 다 깎아주나 궁금했는데 알고보니 회비 할인은 임대장의
아이디어였다. 현총무한테 얘기해봤자 안 된다고 할 게 뻔해
임대장이 임의로 산행안내에 올려버렸다는 것이다.(잘했군, 잘했군.)
자세한 산행안내는 이미 카페에 올렸으니 김회장 말씀이나 듣자.
“우리 고문변호사가 어제 초저녁부터 꿈자리가 시끄러웠다고
걱정을 하고 김고문님도 전화를 하셔서 안전에 유의하라고 당부
하셨으니 모두들 특별히 조심해주세요. 그런데 오늘 아침 지하철
에서 공짜표 받아가는 아빠 뒤에 따라가면서 역무원한테 저도
하나 주세요 했더니 몇 년생이냐 묻습디다. 42년생인데 주민증
보여드려요 하니까 다음에 보여주세요 하면서 표를 줬어요.” 말
떨어지기 무섭게 사방에서 “오늘 밥 사라” 고함이 터져나온다.
“나는 못 사고 혹시 나를 매일 보는 사람이 밥 살지 모르겠습니다.”
밥 살 사람 생겨 신이 난 넘버 2, “김고문 대신 오늘은 내가 후미
에서 회장님 보좌한다”고 큰소리친다.(2대장은 ‘number 2’로
불리는 걸 좋아한다). 역시 최측근은 다르다 소리에 최측근이라
하지 말고 앞으로는 ‘핵심측근’이라고 불러달라고 한술 더 뜬다.
그런데 산행 내내 회장은 씩씩하게 앞서 가버리고 정작 보좌
하겠다던 넘버 2와 또 다른 자청 보좌관 임한석동문이 줄곧 헉헉
거리면서 후미에 처져 임대장으로부터 “P고 놈들 다 형편없다”는
모욕을 감수해야 했다. 포도주를 한 박스나 들고 온 조문제 동문은
술 많이 먹는다고 어부인한테 혼날까봐 박스 위에 옷을 덮어
옷보따리라고 속여 들고 오셨다니 그 정성에 오로지 감읍할 따름
이다. 최남식동문은 어제 몽벨 숍에 가서 레키 스틱, 오리털 내피,
짚신형 아이젠, 탈레반 벙거지 등 전문산악인을 위한 등산장비
일습을 마련했다고 자랑한다. 장비도 갖춘 김에 이제 백두대간
에도 동참하라고 모두들 꼬신다.
10시 20분, 자연휴양림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어느 직장인지
엄청난 숫자의 단체 산행팀이 와서 장터같이 시끄럽다. 역시
우리는 대간 체질이야. 빨리 눈이 녹아 대간으로 돌아가고 싶다.
수리바위, 남이바위 거쳐 1시, 정상에 오른다. 로프를 이용해야
하는 암릉구간에서 인파로 인한 정체가 심해 예상보다 시간이
더 걸렸다. 화창한 봄 날씨에 코스도 재미있고 능선 오른쪽이
계속 낭떠러지여서 아직도 곳곳에 흰눈이 쌓인 경관이 시원하기
그지없다. 정상 근처에서 점심을 먹고 1시 30분 다시 출발, 솔향기
싱그러운 잣나무 숲을 거쳐 3시 휴양림으로 하산, 4시간 40분의
산행을 마친다.
날이 춥지 않아 탈레반 벙거지를 못써봐 아쉽지만 스틱과 아이젠은
아주 유용하게 썼다고 흡족해하는 최남식 동문이 버스에서 1시간
이나 기다렸다는 바오로를 보자 “바오로와 나란히 산행해보는 게
소원”이라고 쫑코를 준다. 잠시 몽골문화촌에 들려 민속공연도 보고
유목민 텐트인 겔도 구경한다. 남양주시가 몽고 수도 울란바토르와
자매결연해 만든 민속촌인데 어차피 지공들은 모두 공짜니 손해볼
것 없다. 유물관에서 징기스칸 초상을 발견한 김택열동문(징기스칸)이
할아버지 만났다고 반가워한다.
다시 남양주시로 나와 게르마늄 광천수를 사용한다는 스파에서
목욕하고 2층 해물부페에서 쫑파티. 갈치, 도루묵, 꽁치, 오징어,
새우, 조개에 온갖 생고기와 양념고기를 먹고 싶은 만큼 가져다
자기 테이블에서 구워 먹는다. 단돈 9,900원에 이렇게 푸짐하게
고기와 해물을 먹을 수 있다니! 게다가 아무리 더 먹어도 현총무
눈치볼 일 없으니 더 좋다. 조동문의 포도주 맛도 일품이다.
김회장은 어느새 다음에 쓴다고 와인 3병을 꼬불친다.
그런데 오늘이 우리 고문 변호사님의 69회 생신이란다. Happy
Birthday to you~~ 합창 끝에 결국 변호사님이 저녁을 쏘기로
하고 모두 박수! 누군가 “오늘 저녁 기념으로 득남하세요.” 하자
김회장 왈, “득남은 생일날만 하나?” 남학생들이 이 의미심장한
발언을 해석하느라 열심히 뇌를 굴린다. 서방님 생일이라고 흥이
나셨는지 김회장이 폭탄선언을 한다. “오늘은 빨리 먹어라, 빨리
집에 가자 하는 사람한테 벌금을 물릴 테니 출발 걱정 말고 마음껏
즐기세요.” 그 소리를 들은 넘버 2가 그동안 마신 술이 다 깨는 듯
놀란 표정을 짓는다. 우째 이런 일이 다 있나 믿기지 않는 모양이다.
배가 터지게 먹고 마시고 일어나려는데 이번에는 임대장이 폭탄
선언을 한다. “서울이 지척이다, 바로 옆 노래방을 예약했다, 오랜
만에 1시간만 몸 좀 풀고 가자.” 이런 분이 문화관광부 장관을 해야
되는데, MB는 그렇게 안목이 없나. 15명이 들어가는 큰 방에서
드디어 토요일 밤 광란의 파티가 시작된다. 이 아저씨들 공부는
안하고 노래만 했나. 97점 이상이나 87점 이하는 모두 1만원씩
기여금을 내기로 했는데 모두 97점 이상이다. 테이블 위에 금세
수북이 쌓이는 돈을 보고 현총무가 싱글벙글.
서로 노래한다고 마이크 쟁탈전이 붙는데 임한석동문이 안 보인다.
잠시 후 나타난 임동문, 언제 어디서 분장을 했는지 완벽한 각설이로
변장하고 나타나 각설이 타령과 함께 춤을 춘다. 역시 놀아본 사람이
다르다. 베개가 없어 장기인 꼽추춤을 못 춘 게 한이란다. 다음에도
기회가 있습니다. 김회장의 노래와 춤 솜씨는 또 어떻고. 언제
저렇게 노래와 춤을 추고 놀았는지 장변호사님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누군가 내일 아침 가정법원 앞에 줄서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걱정
한다. 1시간이 눈깜짝할 새 지나고 아직 몸 못 풀었다고 아우성을
치는 바람에 임대장이 특별 서비스로 10분을 더 준다. 이제 전원이
무대로 나와 뒤엉켜 노래하고 춤을 춘다. 교문리의 토요일밤을
접수한 17산악회!
9시, 근교 산행 했다고 절대로 집에 일찍 가는 법이 없는 우리
산우들. 버스 안에서 인사말씀 한 장변호사님. 변호사치고 저렇게
말 못하는 사람 처음 봤다는 버르장머리 없는 후배들 예쁘게
봐주세요. 이제 열한 번밖에 안남은 백두대간 산행에 앞으로 꼭
참석하시겠다는 조문제 동문님, 매번 포도주도 꼭 갖고 오겠다는
말씀에 포도주 갖고 와도 회비는 받는다는 짠돌이 현총무의 발언
잊어버려 주세요. 연회비 좀 내달라는 김회장 말씀에 그럼 나는
이게 마지막 산행이라던 최남식 동문, 거금 투자한 장비 본전
뽑으려면 앞으로도 열심히 나오셔야죠? 사진회 전총무 안희중
선비님, 앞으로도 저희 증명사진 좀 책임져 주세요. 그리고 마지막
으로 김고문님, 우리 한번 놀았는데 너무 야단치지 마시고 한번만
용서해주세요.....
그런데, 이거 산행기 맞아?
참가자(15명): 구명회, 김숭자(장원찬), 김영길(유수자), 김택열,
박정수(노순옥), 안희중, 임종수(김경자), 임한석, 조문제, 최남식,
현해수. (노순옥 기록)
첫댓글 하하! 저희집도 늦잠을 잤습니다. 그래서 친구들과 약속한 일요산행에도 빠졌고요. 어려운 눈길 산행을 무사히 마친 회원여러분께 감사드리고, 생신축하연을 저희들과 함께 해주시고 저녁까지 사주신 장변호사님 내외께 거듭 감사드립니다. 와인을 가지고 오셔서 쫑파티를 빛내주신 조문제회장께도 감사드립니다. 즐거운 하루였습니다.
아직 우리 김종남 고문님을 잘 모르시는 말씀이군요. 문화적인 더 문화적인 분을 감히... 벌써 잊으셨어요? 종합문화의 영화며, 캬바레건 까지...
이러다가 2차 때문에 산행 멤버 늘어나겠네여 하여간 신나는 모습 보니 따라서 겁네요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