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사실 vs 허구
이 책은 작년에 <뿌리깊은나무>로 히트한 이정명의 신작소설이다.
<뿌리깊은나무>와 마찬가지로 팩션의 형식을 띠고 있다.
시대적 배경은 조선말 정조시대이고,
주인공은 신윤복이다.
예전에 읽은 <역사스페셜>에서 보면
신윤복이 그린 그림은 많은 전해지고 있지만,
신윤복에 대한 역사적인 기록은 거의 없다고 들었다.
지은이는 그런 신윤복을 그의 그림을 통해 복원하려고 노력한 듯하다.
그래서 17세기 네덜란드의 화가 베르메르의 그림을 통해 이야기를 만든
트레이시 슈발리에의 <진주 귀고리 소녀>와 견주기도 한다.
하지만, 명심해야 할 것을
이 소설을 사실로 받아들이면 안된다는 점이다.
이 책을 처음 알게 된 것은 <TV 책을 말한다>를 통해서였는데,
당시 출연했던 패널들도 책은 재미있지만,
이 소설을 사실로 여기면 안된다는 주의를 하고 있다.
이 책에서도 책을 시작하기 전에 알려두기를 통해 소설임을 명기하고 있다.
신윤복은 화원 신한평의 아들로,
도화서에서 속된 그림을 그려 쫓겨났다는 짧은 기록만이 전해질 뿐이다.
그 대신 신윤복은 그림으로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전해지고 있다.
소설가 이정명이 상상하는 천재화가의 삶, 그것이 바로 이 소설이다.
1. 김홍도 vs 신윤복
학창시절 미술책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한국화가는
아마 김홍도와 신윤복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들은 일반 백성들의 삶을 그렸지만,
그림의 방식은 너무나 달랐다.
그렇다보니, 김홍도와 신윤복이 동일시대를 살았다는 사실이 실감이 가질 않았다.
이 소설에서는 신윤복이 주요 주인공이지만,
그보다 10여년 앞선 김홍도도 큰 비중으로 등장한다.
그것도 도화서에서 신윤복을 가르친 스승으로 나온다.
물론 역사적 기록에 김홍도가 신윤복의 스승이었다는 것은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이 명제에 어떤 이는 반대로 김홍도가 신윤복의 스승이 아니었다는 것도 없다고 한다.
가능성은 낮지만 개연성은 충분하다는 이야기이다.
실제로 인터넷 검색을 해보았더니,
김홍도와 신윤복의 태어난 해는 다음과 같이 13년 차이가 난다.
분명 그들은 생전에 서로를 알고 있지 않았을까?
소설에서처럼 서로 친한 사이였을지도 모른다.
2. 첫만남
김홍도는 도화서 생도청의 교수로서,
화원이 되려는 생도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깨어있는 생각을 가지고,
특출난 그림 솜씨를 가지고 있는 생도를 알게 되니 그가 바로 신윤복이다.
신윤복은 3대째 도화서 화원이자 수석화원으로
임금의 초상화인 어진화사를 그린 궁정화원이기도 한 신한평의 둘째아들이다.
신한평에게는 영복이라는 장자도 있었지만,
그림 실력은 출중한 윤복을 더욱 아끼게 된다.
영복도 자신의 그림 실력이 동생에 미치지 못함을 알고,
동생이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어느날 도화서에서 연중행사로 있는 외유사생을 하였다.
이는 생도들에게 자유로운 형식에 자유로운 주제로 그리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오랜 도화서의 양식과 주제, 소재를 벗어나게 되면 비난을 받게 된다.
그만큼 도화서는 관습과 형식을 중시하는 보수주의 집단체였다.
그런데, 이 외유사생에서 여인을 한가운데 배치한 그림이 있었다.
익명으로 치루어지는 외유사생에서 이 여인화는 화원들을 화나게 하였다.
당시까지만 해도 그림에 여인을 그리는 것은 저속한 춘화에서나 볼수 있었기 때문이다.
원로화원들은 김홍도로 하여금 이 그림을 그린 생도를 찾아내라고 하였다.
김홍도는 그 그림에서 천재의 능력을 보았고, 누구 그렸는지 단박에 알아차릴 수도 있었다.
그는 그 그림속에서 신윤복을 본 것이다.
김홍도는 생도들에게 몇가지 테스트를 한 후 그 그림을 그린 이는 신윤복임을 확신했다.
그리고 그 사실을 발표하기 전날 신윤복이 그를 찾아왔다.
신윤복은 형식과 규제가 심한 도화서에서는 자신의 그림을 그릴 수 없다면서,
도화서에서 쫓겨나기 위해 일부러 그런 그림을 그렸다고 자백한다.
다음날, 화원회의에서 여인을 그림의 그림을 그린 자를 김홍도가 발표했는데,
윤복이 아닌 그의 형 영복의 이름이 호명되었다.
영복도 윤복이 그린 것임을 한번에 알고서,
윤복이를 지키기 위해서
자신이 그 그림을 그렸다고 김홍도에게 찾아가 거짓자백을 하였던 것이다.
영복은 생도청에서 쫓겨나 단청을 그리는 부서로 배치받는다.
처음에 영복은 다시는 그림을 그리지 못한다는 사실에 크게 상심했지만,
윤복을 위해 색을 만들수 있다는 기쁨에 안료 만드는 일에 열중하게 된다.
그리고 새로운 색을 많이 만들어 윤복에게 준다.
3. 특명
어느날 김홍도는 임금의 호출을 받는다.
당시 임금은 정조.
즉위한 지 일년 남짓 되는 젊은 임금이 김홍도를 호출한다.
정조는 김홍도에게 십년전 도화서 살인사건의 재수사를 부탁한다.
십년전 도화서의 수석화원이었던 강수항의 죽음.
그리고 수종화원 서징의 피살사건.
당시 강수항의 죽음은 자연사로 알려졌고,
서징은 의문의 죽음을 당했고, 범인은 잡히지 않은채 잊혀진 사건이다.
서징의 친구였던 김홍도 역시 당시 사건을 기억하려고 하지만,
죽음의 현장에 있었던 것도 아니라 특별히 단서가 될 만한 기억이 떠오르지 않았다.
임금이 왜 그 죽음에 대한 재조사를 명한 것일까?
김홍도는 감히 임금에게 이유는 묻지 않고, 지시를 받은만큼 임무를 다하기로 한다.
김홍도는 먼저 신한평을 찾아가 당시 사건의 대한 질문을 했지만, 큰 단서를 잡지 못하고,
서징이 살았던 집에 찾아갔다.
그곳은 오래전부터 폐허가 되어 있었고, 지나던 이웃 아낙을 만나 이야기 듣기를
서징이 죽기 전 낯선 사람들이 방문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홍도는 강수항의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강수항의 아들은 이미 십년도 지난 아버지의 죽음이 자연사라 생각하고 있고,
그렇게 믿고 싶었다.
아버지가 피살당한 것보다 자연사로 돌아가신 것이 가문의 위상에 좋을 것이라 생각했는지
그 집에 있는 모든 하인들이 입을 다물게 시켰다.
이러헤 홍도가 조사하여 알아낸 사실이라고는
서징이 강수항의 죽음에 의문을 품고 용의자를 추적중에 피살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서징이 죽은 당시 얼굴이 없는 초상화 하나만 남고
모든 인물화가 사라졌다는 점이다.
이것이 과연 단서가 될 수 있을까?
4. 화원시험
생도청 생도들은 시험을 통해 화원이 된다.
윤복도 생도이기 때문에 시험은 보지만 그는 화원이 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가 바라는 것은 자유로이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그 시험에서 그는 다시한번 도화서 격식에 벗어난 그림을 그렸다.
그 그림은 <단오풍정>이란 그림이다.
신윤복 <단오풍정>
원로화원들은 극심한 비난을 하며 그의 스승 홍도를 호출한다.
스승은 윤복이 그린 그림을 보자마자 자신을 넘어선 그림실력에 놀란다.
그리고 홍도는 윤복의 그림을 변호하며 그의 그림을 극찬한다.
며칠째 논쟁중이던 이 심사는 임금에게까지 전해졌고,
임금은 윤복을 화원으로 뽑는다.
...
그리고 어느날 정조는 홍도와 윤복을 한꺼번에 호출한다.
그리고 다음같은 명을 내린다.
'도성 안팎 백성들의 있는 그대로를 그려오라'
홍도와 윤복은 이에 같은 주제를 가지고 각자의 그림을 그려왔다.
주막, 빨래터, 우물가 등 백성들이 살고 있는 모습을 직접 그렸다.
그리고 그것은 그림으로만 끝난 것이 아니다.
그림을 통해 사회의 문제점이 고발되기도 하였다.
이로 인해 도화서 화원들은 홍도와 윤복을 더욱 싫어하게 되었다.
...
한편, 정조는 두 천재의 그림을 보는게 무척 즐거웠다.
홍도와 윤복의 방식이 천지차이다 보니,
우열을 가리기는 힘들었고, 각자의 장점이 있었다.
소설 속의 정조는 김홍도의 <우물가>와 신윤복의 <정변야화>를 보고 평가하는데,
홍도와 윤복의 그림을 잘 정리한 것같아 발췌한다.
"단원의 그림은 따뜻한 햇살이 퍼지는 환한 대낮이며,
혜원의 그림은 보름달이 교교한 한밤이로다.
단원은 일체의 배경을 삭제하여 인물들에 주목하는 반면,
혜원은 흐드러진 꽃가지와 아스라한 암벽과 창백한 달빛으로 등장인물들의 마음속을 표현했다.
혜원은 화려한 색감과 섬세한 묘사를 위주로 했으마
단원은 질박한 색감과 과감한 구도를 썼다.
너희는 해와 달처럼 한 하늘에 떠 있는 두 빛이니,
해는 해대로 밝고 따스하며
달은 달대로 교교하고 아름다운 것과 같다."
김홍도 <우물가>
신윤복 <정변야화>
5. 도화서 퇴출
일년에 한번씩 임금의 용안을 그리는 직책인 어진화사가 있었다.
이는 보통 도화서의 수석화원이 도맡게 되고,
그를 도와주는 여러화원이 함께 하게 된다.
어진화사를 한 화원은 명예와 권력을 함께하여 많은 화원들이 그 자리를 탐내고 있다.
그런데, 임금은 직접 자신의 어진을 그릴 사람을 선정한다.
예상대로 홍도와 윤복이다.
그리고 홍도와 윤복은 공동작업으로 7일에 걸쳐 임금의 초상을 그렸다.
그 그림을 공개하는 날, 많은 화원들은 그들을 비난할 것을 작심하였다.
정조시대에는 왕의 권한이 많이 약해져서
신하들이 자신들의 붕당을 믿고 큰소리치던 시절이었다.
임금의 어진이 공개되는 날도 마찬가지였다.
왕은 홍도와 윤복을 옹호하고, 화원들은 그들의 그림을 맹비난하였다.
더우기 그 전까지의 어진과 달리 이번 어진은 왕이 웃는 모습을 그렸기 때문이다.
홍도와 윤복이 다른 화원들에게 밉보이고 있었는데,
거기에 격식까지 깨버린 그림을 그렸으니 그들의 비난은 하늘을 찔렀다.
이에 윤복은 어진을 찢어버렸다.
정조는 끝까지 홍도와 윤복을 벌하지 말 것을 요청했지만, 윤복은 결국 도화서를 쫓겨나고 말았다.
...
얼마뒤 정조는 은밀히 홍도와 윤복을 호출하였다.
이번에는 홍도와 윤복에게 10년 전 사건의 전모를 이야기해 주었다.
정조의 아버지 장헌세자(사도세자)는 정조가 11살때 뒤주에 갇혀 죽었다.
아버지가 죽은 후에도 정조는 아버지를 그리워했다.
하지만, 점점 기억이 가물가물 아버지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을 때가 많았다.
이에 정조는 도화서의 강수항에게 아버지의 초상화를 그려달라고 했던 것이다.
강수항은 그래서 장헌세자의 초상화를 그리게 되었고,
강수항이 장헌세자의 그림을 완성한 날 죽고 만 것이다.
그리고 그 그림도 사라졌다.
정조는 그림을 통해 아버지를 다시 뵐 수 있던 기회를 날려 버린 것이다.
하지만 정조는 자신의 반대파인 노론 벽파의 힘이 너무 거세기 때문에
그 수사에 대해 조사를 할 수 없었다.
세손인 시절 뿐만 아니라 왕위에 올라서도 항상 그를 노리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정조는 십년이 지난 이제서야 그것도 은밀하게 재수사를 하게 된 것이다.
정조는 홍도와 윤복에게 살인자와 사라진 장헌세자의 그림을 찾을 것을 부탁한다.
6. 윤복의 사랑
그림 밖에 모르는 윤복에게도 사랑하는 이가 있었다.
선배 따라 나선 기생집에서 가야금 연주하는 금기 정향이었다.
정향도 윤복에게 한눈에 반했다.
그들은 마음을 주고 받으며 교감하였다.
하지만, 정향은 묶인 몸.
정향은 대행수 김조년의 예기로 팔려가게 된다.
김조년은 자수성가한 상인이자 큰 부자이다.
그는 뇌물로 고위 관리와 친하게 지내고,
그는 돈으로 양반도 샀다.
그는 돈으로 막대한 권력을 행사하는 그런 이였다.
그런 그가 돈만큼 애정에 쏟는 것이 있으니, 바로 그림과 음악이었다.
그는 그림을 보는 감식안이 뛰어났으며, 귀한 그림과 음악을 위해서라면 돈을 아끼지 않았다.
김조년은 정향의 가야금 연주 뿐만 아니라 그녀 자체도 좋아하였다.
김조년은 정향의 몸은 품을 수 있지만, 마음은 품을 수 없을 수 알게 된다.
책제목 : 바람의 화원 1
지은이 : 이정명
펴낸곳 : 밀리언하우스
펴낸날 : 2007년 8월 17일
독서기간: 2007.9.8 - 2007.9.10
페이지: 266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