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양대부흥운동 이끈 길선주 목사는 누구인가?
새벽기도회 처음 시작하고 계시록 1만독한 '영계의 거성'
평양대부흥운동을 이끈 길선주 목사는 평양장로회신학교 1회 출신으로 한국인 최초 7인 목사 중 한 사람으로 <말세학>을 저술한 목사다. 1869년 평북 안주 출생으로 일곱 살부터 한학을 배우기 시작했으며, 열 한 살 때 신선행과 결혼 슬하에 3남 1녀를 두었다.
17~18세 무렵 평양 근처 용악산에 입산 무교 계통인 관성교에 심취해 그 교의 주문을 1만독 이상을 하고, 도인을 만나 그가 써준 차력주문을 7일 동안 외우기도 했다. 21세부터는 선도수련에 입문해 29세까지 몰두했다. 그러나 영적 만족을 얻지 못했다.
길선주는 친구 김종섭이 마포삼열 선교사와 교분을 가지면서 기독교 서적 등을 전달받고 기독교 진리에 호기심을 갖게 된다. 그리고 <천로역정>과 언더우드 선교사가 <그리스도 신문>에 쓴 기사를 읽고 감명을 받고 예수를 믿기로 작정한다. 그 이후 길선주는 깊은 기도와 명상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된다.
길선주는 개심하던 해에 영수직을 받았고, 33세에 장대현교회 장로에 선출되었다. 1902년 마포삼열 선교사는그에게 평양장대현교회와 황해도 각 교회의 조사 임무를 부과했다. 1903년에는 마포삼열 선교사가 설립한 평양장로회신학교에 입학했다.
1906년 길선주는 한국 교회에 처음으로 새벽기도회를 시작했다. 장대현교회에서 친구 박세록 장로와 함께 규칙적으로 새벽기도회를 시작했다. 소문을 들은 교인들이 몰려와 매일 300~500명씩 모이게 됐다. 길선주는 당회의 허락을 받아 정식으로 가을부터 새벽기도회를 시작했다.
평양대부흥운동의 시발점이 된 1907년 장대현교회 사경회는 평안남도 남자사경회로 장로교 400여 교회 연합으로 모이는 집회였다.2,000여명이 모였다. 2일부터 시작된 사경회는 마지막날인 15일 밤에 끝났다. 박용규의 <평양대부흥운동사>에 의하면 1월 6일 주일저녁집회가 끝날 무렵 처음으로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헌트의 증언에 의하면 힘있는 6인의 남자가 극심한 심령의 고통 가운데 자신들의 죄를 통회하고 용서를 구하는 성령의 임재가 이어졌고, 참석자들의 통성기도는 30분간 멈췄다. 길선주는 "만복의 근원 하나님 온 백성 찬송 드리고"를 부르며 모인 이들에게 함께 찬송을 부를 것을 요청하며 "성령이 오셨네 성령이 오셨네"를 반복해서 불렀다. 그 이후 참석자들의 공개적인 죄고백이 이어졌다.
그러나 길선주가 어떤 죄를 고백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고 있다. 모 교수는 길 선주 목사의 회개 내용은 "형제들을 질시한 것과 방위량 선교사를 미워한 것"이라고 하나, 박용규 교수는 Blair 선교사의 증언을 인용하여, 방위량 선교사를 미워하여 공개적으로 참회한 사람은 "김 장로"라고 기록하고 있다.
어떤 이는 길선주의 친구가 죽으면서 재산을 대신 맡아달라고 했는데, 그 재산 중 (미화로 몇 백불을) 일부를 떼어 먹었다고 고백하면서 "나는 아간입니다"라고 고백했다고 하는데 그것도 정확하지는 않은 하나의 설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길선주가 평양대부흥운동의 불씨 역할을 했고, 이후 평양대부흥운동을 전국으로 확산하는 데 기여한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길선주는 장대현교회 사경회 6개월 후 1907년 제1회 졸업생으로 졸업했다. 그리고 그해 설립된 독노회에서 안수를 받고 장대현교회에서 목회를 시작으로 20년을 시무했다. 그후 사회주의 계열의 청년교인들의 배척으로 장대현교회를 사임하고 이항리교회를 창립하여 목회하면서 전국 교회를 다니면서 부흥사경회를 인도했다.
길선주는 요한계시록을 1만독을 하면서 '영계의 거성'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그의 부흥회의 주제는 종말과 재림신앙 등 주로 '천년왕국' 을 주제로 설교하면서 고난 받는 이 땅의 백성들에게 천국의 소망을 심어주었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한편, 다른 한편에서는 현세적인 삶을 도피하게 만들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길선주 목사는 <독립선언서> 에 33인의 한 사람으로 서명했다는 이유로 옥고를 치루기도 했다.
평양장대현교회 전도사로 길선주 목사를 섬겼고, 목사 안수 후 1937년 중국 선교사로 파송을 받았던 방지일 영등포교회 원로목사는 "길선주 목사님은 부흥회가 체험으로 끝나지 않도록 꼭 말씀 중심의 사경회를 했다"며 평양대부흥운동이 성경 중심의 부흥운동이었음을 강조했다.
길선주 목사에 대한 내용은 아들 길진경 씨가 쓴 <영계 길선주>라는 이름으로 종로서적에서 1980년 출판됐다. 박용규 교수의 <평양대부흥운동>(두란노, 2000)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통성기도는 영국 웨일스 부흥운동에서 시작된 기도방식>
"평양대부흥운동 특징 중 하나는 통성기도이다. 그 이전까지는 통성기도는 낯선 기도방식이었다."
박용규 교수에 의하면 이 기도방식은 1906년 가을 한국을 방문한 하워드 애그뉴 존스톤 박사가 1906년 웨일스 부흥운동 소식을 전하면서 "웨일스의 부흥회에서는 공적 기도를 인도하는 인도자만 기도하지 않고, 각 사람이 다른 사람을 의식하지 않은 채 큰 소리로 통성기도를 하였다"고 전해 주면서 장대현교회 사경회에서 적용됐다. 그러나 통성기도는 이제 한국식 기도스타일로 자리를 잡았다. (2007. 1. 15. 뉴스파워 / 김철영 기자)
한국 교회의 진주, 길선주
길선주 [吉善宙, 1869~1935.11]
장로교회 목사·교육가.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자는 윤열(潤悅), 호는 영계(靈溪)이다.
평안남도 안주에서 태어나 선도(仙道)를 공부하며 한의학(漢醫學)을 연구하던 그는 1897년 기독교 교인이 되어 세례를 받는다.
그 해 안창호 등과 함께 독립협회(獨立協會)의 평양지부를 조직해 활발하게 활동한다.
1907년 한국 최초의 기독교신학교인 평양 장로회신학교(長老會神學校)를 졸업하고, 한국인 최초의 목사의 한 사람으로서 평양 장대현교회(章臺峴敎會)에서 목회(牧會)를 하면서 신앙활동으로 구국운동을 전개했다.
또한 남녀구별의 불평등을 교회 안에서 타파하기 위해 남녀 좌석 사이에 설치되어 있는 포장을 철거하고 아악(雅樂)을 교회음악에 도입하기도 했다.
신선(神仙)이 되고 싶던 청년, 기독교에 입문하다
평안남도 순안(順安)군에 있는 안국사(安國寺)의 승방(僧房) 한 강을 빌려 백날기도를 드리기를 여러 해, 옥추보경(玉樞寶經)을 읽고 정좌심공(正坐心工)의 훈련을 하고 선약(신선이 되는 약)을 먹는 등 ‘도’를 깨닫기 위해 허다한 공을 들였으나 공을 들이면 들일수록 선도에 대한 공허함은 커져만 갔다.
유교, 불교, 선도에서 세상의 이치(진리)를 구하려 했지만 오히려 더 답답하기만 하던 청년 길선주에게 드디어 빛이 비추기 시작한다.
한 번 듣고 본 일은 잊지 않는 놀라운 기억력을 가진 그는 무엇이든지 그 근본 이치를 캐어 알지 않고는 포기하지 않는 정열을 가진 인물이었다.
게다가 유교와 불교와 선도에서 구하다가 얻지 못한 구속의 도를 깨달은 기쁨에 성경을 밤낮 읽고 그리스도교 서적을 구하여 읽고 연구하는 열정을 잃지 않았다.
그의 열심이 청년 길선주를 지도자의 위치에 오르게 하는 발판이 되어 그가 교회의 장로(長老)가 되었을 때에는 전국 교회에서 특출한 지도적 인물로 등장할 수 있었다.
하늘에서 나는 소리
1893년 평양에 기독교가 들어오자 청년 길선주는 이 낯설고 새로운 서양의 도에 흥미를 갖기 시작했다. 길선주는 같이 선도를 하다 먼저 예수를 믿은 김종섭의 전도로 회개하고 백일기도를 하며 형제를 맺은 김찬성을 전도하게 된다.
기독교에 대한 이야기와 김종섭이 권하는 기독교 서적들을 읽은 길선주는 특히 ‘천로역정(天路歷程)’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는 책을 읽는 과정에서 기독교에 대한 오해가 사라지고 급격히 발전하는 기독교에 대해 알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던 중 1896년 가을, '예수가 참 구주인가‘에 대해 응답을 받기 위해 기도하던 그는 하늘로부터 '길선주야, 길선주야, 길선주야'라고 부르는 소리를 듣고 회개를 하게 된다.
장로교의 첫 목사가 되어...
장로가 된 그는 전도하는 일과 부흥회를 인도하는 일에 더욱 열심을 가지고 각 지방을 돌아다녔다. 그의 설교는 모든 사람들을 감동시켰고 그의 부르짖음은 사람들을 하나님 앞으로 이끌었다.
그러던 중 그는 평양 장로회신학교에 들어가 체계적인 교육을 받은 후, 제1회 졸업생이 되어 장로교회에서 첫 번째로 목사가 된다.
어린시절부터 도(道,진리)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세속에 물들지 않았던 그가 기독교인이 된 후에는 더욱 청렴결백하며 엄격하고 경건한 생활을 고수해왔다.
목사가 된 그는 평양의 장대현교회에서 목회를 시작하게 된다. 그가 목회를 할 당시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화가 되어 한국교회가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된다. 그리고 이런 나라의 상황은 목사 길선주를 구국운동에 힘쓰게 만들었다.
한국교회의 아버지
길선주 목사는 한국 최초의 7인 목사 중 한 사람으로 한 때 불교와 선도를 공부한 도사였다. 그러나 예수를 믿은 후, 1901년(33세)에 장대현교회의 장로로 일하며 1902년에는 조사(전도사)가 되어 목회에 전념했다. 그의 해박한 성경지식과 유창한 설교, 기도와 성령 충만한 그의 목회사역은 장대현교회의 급속한 부흥을 가져왔다.
1907년 평양 장로회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가 된 후, 40여 년 동안 380여만 명에게 복음을 전하며 3천여 명에게 세례를 베풀고 8백여 명을 목사, 전도사, 장로로 세웠으며, 60여 개의 교회를 세웠다.
▲ 길선주 목사 친필 병풍.
민족의 독립과 교육을 위해
민족의 독립을 위해 앞장섰던 그는 1910년 한일합방을 겪은 후 이른바 ‘105인사건’으로 수난을 당하게 되고, 3·1운동 때에는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기독교를 대표해 독립선언서에 서명하고 2년간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옥중에서도 성경 읽기와 기도를 멈추지 않았던 길선주 목사는 출옥 후, 전국을 누비며 부흥회를 인도하며 하나님 복음 전하는 일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또한 교육사업에도 참여해 숭실학교와 숭덕학교 등을 세우기도 했다.
평양대부흥운동
- 그 중심에는 길선주 목사가 있었다
1907년 한국교회는 회개와 참회의 기도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개인의 내면적 죄를 고백한 것에서 시작해 사회 도덕적으로 이웃에게 피해를 입힌 행위에 대한 깊은 뉘우침과 용서를 비는 실천적인 회개운동으로 진행되었다.
성령의 불길이 한국 교회의 목회자와 성도들 사이에서 뜨겁게 일어난 것이다. 이것이 바로 평양대부흥운동이다.
이 대부흥운동의 중심에는 바로 길선주 목사가 있었다. 1905년 길선주 목사는 친구 박치록(朴致錄)장로와 함께 세계교회사상 최초로 새벽기도회를 시작했다.
그의 이런 열정은 평양 대부흥운동의 직접적인 동기가 되어 1907년 1월 6일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대부흥운동의 불길이 일어났다.
새벽기도 인도를 하던 그는 갑자기 일어나 자기의 죄를 큰 소리로 자백하기 시작했다.
“나는 아간과 같은 자입니다. 나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축복을 주실 수가 없습니다. 약 1년 전에 친구가 임종시에 나를 자기 집으로 불러서 말하기를 ‘길 장로, 나는 이제 세상을 떠나니 내 집 살림을 돌보아주시오’라고 부탁했습니다.
나는 잘 돌보아드릴 터이니 염려하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 재산을 관리하며 미화 100달러 상당을 훔쳤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일을 방해한 것입니다. 내일 아침에는 그 돈을 미망인에게 돌려드리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보고 듣는 앞에서 자기의 사적인 죄를 고백하며 참회의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통해 사람들은 각자 큰 소리로 울며 회개하기 시작했다.
저녁 7시에 시작한 예배는 다음날 새벽 2시까지 이어졌다.
“기도가 계속되자 무겁고 슬픔마음이 청중들을 사로잡았다. 한쪽 구석에서 어떤 사람이 울기 시작하였고 이어 모든 청중들이 울기 시작하였다.
한 사람 한 사람 일어나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는 털썩 주저앉아 흐느껴 울다가 마루 위에 뒹굴며 고뇌에 찬 모습으로 마루바닥을 두 주먹으로 두들겼다.
우리집 요리사도 죄를 고백하고는 회중 가운데 주저앉아 나를 향해 이렇게 외쳤다. ‘말씀해 주세요. 저 같은 사람도 소망이 있나요? 저도 용서받을 수 있나요?’ 그러고는 마루바닥에 뒹굴면서 흐느껴 울었다. 고뇌에 찬 비명이었다.
죄를 고백한 후에 이따금씩 모든 청중들이 한 목소리로 통성기도를 했는데 수백 명의 청중이 함께 모여 드린 이 통성기도의 감회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었다.
김 장로라는 분이 나를 바라보며 이렇게 외쳤다. ‘나를 용서해 줄수 있습니까? 나를 위해 기도해 주실수 있습니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기도를 시작했는데 아바지 아바지 외에는 더 이상 무슨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마치 교회당 지붕이 벗겨져 나가는 것 같았다.
나는 김 장로 곁에 몸을 던지고 흐느껴 울면서 이 전에 결코 한번도 기도해보지 못하는 사람처럼 기도했다.” (윌리엄 블레어, 「한국의 오순절」)
“길선주 장로의 ‘마음의 문을 열고 성령을 영접하라’는 열띤 설교가 시작되었다. 성령으로 충만한 그의 설교는 흐르는 시냇물 같이 회중의 가슴을 촉촉이 적셨다.
설교가 끝나고 길 장로의 기도가 시작되자 감동을 받은 회중은 자기들도 모르게 ‘아이고 아이고’ 소리를 지르며 통회 자복했다. 장내는 금새 울음바다가 되었다. 회중들은 온 몸이 불덩어리처럼 달아오르고 많은 병자가 고침을 받았다.
회중은 은혜의 도가니에 묻혀 교회당을 떠나지 않았다. 죄인 잡으러 왔던 순표가 회개하고, 기독교를 비판하려 왔던 중이 개종하고, 신부가 은혜 받고 감격하여 염주를 길 장로에게 기념으로 주기도 했다.”(최현, 「빛을 남긴 믿음의 위인」p.182).
‘말세신앙’ 강조
-계시록만 1만 번
길선주 목사는 현실사회보다는 말세신앙을 강조했다.
이는 그의 특이한 이력과 그가 삶을 바라보는 눈이 남들과 달랐기 때문이었다. 기독교를 받아들이기 전부터 현실에 대한 회의와 삶의 허무에 빠졌던 그는 열일곱 살 무렵에 이유 없이 괴한에게 습격당해 죽음 직전까지 가는 고통을 당하고, 청일전쟁이라는 어이없는 무력의 분탕질에 의해 여기 저기 쫓겨 다니는 등의 암울한 현실이 말세신앙에 천착하게 만들었다고 고백한다.
그런 그가 택한 것이 선도였지만 늘 무엇인가 채워지지 않는 갈증에 허덕이던 그가 영생으로 이어지는 구원의 복음인 기독교를 만나게 됐다.
2년여 동안 옥살이를 하던 길선주 목사는 서대문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 하나님께 매달리며 계시록을 1만 번 이상을 읽게 된다.
말세론을 옥중에서 체계적으로 정리하며 앞으로 일어 날 재난 속에 인류가 받을 환난을 내다보면서 민족 장래를 위해 복음이 하루속히 이 땅에 충만해 지고 교회가 소성받아야한다는 신념을 다지게 된다.
그 때 심취한 계시록의 영향으로 ‘심판의 때’와 ‘하나님 나라’에 대한 확신을 더욱 공고히 할 수 있었던 그는 역사의 주체는 오직 하나님이며 인간 고통으로부터의 궁극적인 해방은 현실에 집착하지 않고 영원의 세계를 갈구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육계를 떠나는 마지막 모습
북간도를 포함하여 전국을 두루 돌아다니며 부흥사(復興師)로 성경을 가르치면서 많은 교회를 설립했던 길선주 목사는 1936년 10월 26일 평안남도 강서군(江西郡) 고창교회(高昌敎會)에서 부흥회를 인도하던 중 새벽기도회 때 강단에서 거꾸러진 채 회복하지 못하고 영계(靈溪)로 떠나게 된다.
한국 교회의 영성을 위해 앞장섰던 영계(靈溪)의 거장이자 신앙부흥의 선구자, 평양대부흥운동의 불씨를 당겼던 길선주 목사.
그의 모습을 되돌아보며 지금 이 기독교 세계가 거룩성을 다시 회복해야할 때는 아닌지 생각해보았으면 한다.
길선주 목사의 예화
#1 교회의 구성요소
교회가 주의 몸이면 믿음으로 뼈, 사랑으로 근육, 주의 피로 혈관, 복음으로 살, 소망으로 가죽, 성령으로 영혼을 삼아 구성되어야 할 것이다.
#2 물은 담는 그릇에 따라
색깔이 달라진다. 깨끗한 물이라도 검은 그릇에 담으면 그 물빛이 검고, 붉은 그릇에 담으면 붉게 보인다.
주님의 말씀은 깨끗한 물과 같으나 도의 빛이 깨끗지 않게 보이는 것은 그 도가 맑지 아니한 것이 아니요 그 도를 받는 마음이 깨끗지 아니한 탓이다. (마5:8, 딤전3:9)
#3 날 선 검과 어린아이
어린아이에게는 날 선 검과 천리용마(千里龍馬: 잘 달리는 말)가 쓸데없고 죽마(竹馬)와 목도(木刀)를 손에 쥐어주는 것은 그 지혜가 아직 자라지 못한 까닭이다.
이처럼 믿는 마음이 자라지 못하고서는 성령의 큰 능력을 결코 받지 못한다.(벧전2:5)
#4 세상과 교회(설교 요약)
1) 세상
가. 장구하지 못한 세상(요일2:15~17)
나. 위험한 세상(딤후3:1, 마10:16)
다. 사특한 세상(행2:40)
라. 비극의 세상(약5:1, 요11:33-35)
마. 죄악의 세상(롬1:21-31, 5:12)
바. 더러운 세상(롬1:24)
2) 교회
가. 교회는 세상을 떠날 것(요17:15, 출12:34-43)
나. 교회는 세상과 싸울 것(엡6:10-17, 딤전1:18,
딤후4:7)
다. 교회는 세상을 이길 것(요일5:4-5, 딤후2:1-6)
라. 교회는 세상을 구원할 것(막16:14-18)
마. 교회는 세상에 평화의 낙원을 건설할 것
(고후5:18-19, 마5:9)
#5 죄의 근원
1) 믿음으로 행하지 아니하는 죄(롬14:23)
2) 불법이 죄다(요일3:4)
3)불의가 죄다(요일5:17)
4)선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는 죄(약4:17)
#6 사랑하지 아니하는 죄
1) 가족을 사랑하지 아니하는 죄(딤전5:8)
2) 교우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죄(마25:41-45)
3)동족을 사랑하지 아니하는 죄(눅10:30-37
(참조:길선주목사 예화 모음/기독교문사) (2005. 11. 16. 올댓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