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 대한 상념과 멋쩍은 청산도 여행
목메여 기다리다 지칠 때 쯤에
숨막히 듯 봄이 온다
끝모를 그리움이 사무처 터질 듯 가슴이 부풀고
알 수 없는 서글픔이 목구멍으로 자꾸 치밀어 올라
미친 듯 헤매이는 봄
봄볕 가득한 담벼락에 쪼그리고 앉아
꽃다지 쓰다듬으며 삭지 않는 서러움으로
봄바람에 취해 목메여 속울음 울며
흐릿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뒷동산 진홍빛
진달래 꽃 천지
봄에 대한 나의 상념를 정리한 단상이다.
지난주 차를 폐차해 버렸다. 폐차고철비로 45만원을 받았는데 10여년전 간 기억조차 없는 서울 서초구에 주차 위반이 하나 있단다. 단 한번도 돈을 내라는 통지를 받지 않았는데 말이다. 41만원을 손에 쥐고, 자동으로 해지되는 자동차 보험료 22만원을 환급받게 되니 목숨을 몇일 연명되는 환자마냥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마음은 부자들보다 더 부자가 된 기분이었다.
뭔가 있으면 조금도 참지 못하는 조급한 성격이니만큼 몇푼을 손에 쥐었으니 닥치는 대로 술먹고 놀고 하니 금새 또 거지가 되었다. 이제 내게 남은 수단은 바퀴가 터지기 직전인 자전거와 부실하기만 두다리뿐이다. 며칠전 자전거를 타고 모처에 가서 한잔하고, 두잔하고 하다가 너무 늦고, 취해 자전거를 술집옆에 묶어 놓고 몇일만에 가보니 자전거가 스스로 바퀴를 굴려 어디론가 가버렸다. 그 자전거는 중국산으로 10년이나 되었고, 페달과 브레이크도 두 번씩이나 바꾸었고, 바퀴가 거의 달아 약간만 미끄러워도 넘어지기 일쑤였는데, 이 고물을 누가 가져갔단 말인가? 속으로 ‘그 자전거 타다 넘어져 코나 깨져라.’라고 생각하다가 마음을 고쳐먹어 ‘고물로 팔아 엿이나 쳐 먹으라’고 했다.
남은 두다리로 부지런히 걷고 까끔씩 뛴다. 집 근처에 있는 오봉산 꼭대기에 꿀발라 놓은 떡이 있는 것도 아니고, 풍광이 썩 좋은 편도 아닌데 매일 오후가 되면 뭐에 씌인 사람처럼 산을 오른다. 왼쪽 등산로에서 시작해서 오른쪽으로 끝내기도 하고, 오른쪽 등산로에서 시작해서 왼쪽으로 끝내기도 한다. 어느 때는 중간에서 올라 산을 돌아오기도 하고, 다른 날은 소래포구 바닷가 산책로를 거쳐 오기도 한다. 빠른 코스는 30분, 긴 코스는 2시간 30분이 걸린다.
그냥 걷는 것이 아니라 매일 산의 변화를 바라본다. 아니 계절의 변화를 관찰하고 있다. 양지바른 곳에는 제비꽃이 벌써 피고, 진달래 꽃몽울이 여자애들 가슴부풀때처럼 부풀어 올랐다. 공원에 심은 산수유 가지에 꽃망울이 터지기 시작했고 명자나무도 꽃망울이 잡히고 있다.
1960년대 풍미했던 가수 박재란은 시인 김동환의 시에 곡을 붙여 ‘산넘어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해마나 봄바람이 남으로 오네.’라고 노래했었다. 남쪽으로부터 봄바람이 온다는 것인지 봄바람이 남쪽에 온다는 것인지 어투가 불분명하지만 어찌되었건 남쪽으로부터 봄이 시작되고 있음을 노래한다. 인천에서 가장 남쪽은 소래포구이다. 그러면 인천의 봄은 내가 살고 있는 소래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도심의 봄은 남쪽에서 오지 않는다. 역설적이게도 도시에 봄은 시궁창으로부터 오고 양지바른 아파트 담벼락에서, 도로 조경석옆에 심은 작은 나무로부터 시작된다.
구월동, 수산동, 도림동 언덕에서 서쪽으로 실개천이 흐른다. 많은 부분이 주택가로 변한 구월동에서 나온 하수물이, 4월말이 되면 배꽃이 흐드러지게 핀 배밭옆 동산에서 발원한 물과, 쓸대없이 섞여 아름다운 실개천이 아닌, 시궁창물로 변해 승기천으로 흘러들거나 관로를 통해 하수종말장으로 직행한다. 주택에서 나온 하수물이 흐르는 도심의 하천은 겨울에도 얼지 않고 따뜻한 기운을 내뿜어 하천가의 풀뿌리에 생명을 불어 넣는다. 그래서 이 시궁창에서 3월이 시작하기 전에 솔거지(소루쟁이)가 침을 묻힌 듯 끈적끈적한 것을 달고 흙을 들어 올린다. 수질이 조금 나은 곳엔 미나리도 금새 새파랗게 올라와 수면을 녹색으로 물들인다. 아파트 담벼락에는 언제 와서 씨가 붙었는지 노란 꽃다지와 하얀 냉이꽃이 하늘거린다. 도로옆 조경석에는 회양목에 꽃같지 않은 티끌만한 노란 꽃이 핀다. 그러나 이 조그마한 꽃이 향기를 뿜어 겨우내 벌통에서 웅크렸던 벌을 불러 들인다. 도심의 버려진 조각난 나대지에도 봄은 여지 없이 찾아온다. 여전히 황량한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여기저기 희끄무레한 것, 파란 것이 삐쭉거리며 올라오고 있다. 어느 시인이 황무지를 낭만적으로 노래하기도 했지만 황무지야말로 생명이 꿈틀거리는 땅인 것이다.
이번 트레킹을 청산도로 가자고 제안했던 것은 3월의 봄을 제대로 느끼고 싶어서였다. 중부지방의 3월은 여전히 춥고 날씨가 심술을 부려 쉽게 봄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러나 남쪽은 매화는 이미 피었을 것이고 개나리나, 진달래도 벌써 피었를는지 모를 일이고 계절이 이르면 벚꽃도 피었을 수도 있다. 이런 희망이 남쪽보다도 더 끝에 있는 청산도로 나를 유혹했다.
청산도는 서편제에 대한 영상이 잔상으로 오래 남았었다. 돌담 사이로 김명곤이 이복자매를 데리고 소리하며 춤추는 장면이나 구불구불 에스자 형식으로 된 신작로를 쓸쓸히 내려오던 롱컷이 그렇게 인상적일 수 없었다. 그 촬영장소가 청산도였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그리고 몇해전 청산도와 어느 섬이 슬로시티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 내가 가진 청산도에 대한 정보가 다였다. 몇해전 보길도를 무박으로 산행을 갔다왔는데 빠듯한 일정이었지만 섬여행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3월의 청산도가 나를 손짓했다.
슬로시티로 선정된 곳을 퀵버스로 패스트하게 갔다오는 역설을 감행해도 되는지 모르겠다. 슬로시티는 현대인의 삶에 대한 역행이고 우리는 역행의 섬에 또 역행하는 짓을 하러 간다. 역행에 역행은 순행이다. 따라서 우리는 현대인이며 현대적 삶을 산다.
첫댓글 아주아주 긴~ 청산도 여행기 기대하고 있습니다 ^^
언제나 고민인 슬로한 삶에 역행인 패스트하게 다녀가는 것이었는데
그것을 지적하는 글을 보게 되어 반갑네요.
역행에 역행은 순행이며 우리는 현대인이며 현대적 삶을 산다는 말이 남습니다.
그러나 역행의 역행이 그예 같은 순행만이 아님을 기대하며 꿈꾸며 살기에
우리는 또 매달 떠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는 이상화 작품 ?
순환씨 오랜만이야요... 전화해서 한 번 만나요.
왜 김동환의 작품으로 생각했는지 모르겠네요. 이상화의 작품이 맞고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나이탓인가? 문제는 김동환은 철저한 친일파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서 재판을 받았고 이상화도 빼앗긴들에도 봄은 오는가와 같이 저항적이지 않았지요. 누군지 알아야 전화하지요.
박창영이요
왜 갑자기 조회 수가 많아지지요. 워낙 소심한지라 많아지면 겁나요. 사실 시작은 워낙 시간이 많다 보니 제 삶도 돌아보고 정신을 차리고자 여행기를 빌려 쓰고 있었는데 혹 잘못가고 있는 것이 아닌지 조심스럽네요. 글에 책임이 따르는데 재미를 위해 과장도 하고 조금 비틀기도 하는데 그렇게 해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되지요
글을 쓰면서 자기를 정화시키는 것이 최고죠.
아마 지금이 청산도 시즌이 시작되는지라 검색에서 치고 들어오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참하기는 뭣 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