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정치권에서 집값 잡는 데 특효약이던
총부채상환비율(DTI) 등 주택 대출규제를 완화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이미 지난 23일 주택 미분양 대책을 통해 DTI 규제가 일부 완화됐으나 지방선거를 앞두고 주택건설업계와 금융권이 추가 규제 완화를 강하게 요구하고 있고 정부와 여당 일각에서도 규제완화론이 흘러나오고 있다.
하지만 대출규제가 완화될 경우 진정세를 보이고 있는 부동산 가격이 다시 오름세로 돌아설 우려가 있는 데다 가계부채 문제를 더 악화시키는 등 후유증이 우려된다.
25일 정부 고위관계자는 "23일 주택 미분양 대책이 DTI에 조그만 구멍을 뚫어주는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라며 "관련부처 간에 변화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된다면 다른 대책이 나올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또 "금융규제에 대해 정부의 상황인식이 지금까지 바뀐 것은 없다"며 "다만 상황인식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간 확고부동하던 부동산 규제방침이 서서히 바뀔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앞서 정부는 지난 23일 미분양 아파트 해소대책을 통해 비강남권 주택을 살 때 주택금융신용보증기금의 보증을 통해 DTI 한도를 초과해 대출할 수 있도록 물꼬를 터줬다. 당초 논의과정에선 생애 최초 주택구입자에 대해 DTI 규제를 전면 완화해 주는 방안 등이 포함됐으나 금융당국의 강력반발로 막판에 빠진 것으로 전해졌다. 금융당국 고위관계자는 "(주택대출 규제를 대폭 완화하자는 논의가) 4·23 대책 마련 당시 나온 것은 사실"이라며 "하지만 큰 틀을 건드려서는 실익이 없다는 판단에서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방선거를 앞두고 미분양 주택문제가 경기침체의 원인이 되는 것을 지켜볼 수 없는 정부·여당 일각에서도 규제완화에 대한 주장이 일부 나오고 있다. 다만 지금 금융규제를 완화할 경우에 감표요인도 적지 않다는 점에서 본격적인 공론화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한나라당 김성식 의원은 "DTI를 일률적으로 도입한 것에 대해서는 조금 숨통을 틔워주되, 그 윗부분에 대해서는
대손충당금을 쌓는 등 위험에 대한 가중치를 둘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다만 "다만 금리를 올리지 않은 상태에서 DTI를 풀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금융위기 이후 저금리와 유동성 지원 등으로 부동산 가격이 들썩거리자 금리인상 대신 부동산 관련 금융규제 카드를 꺼내 들었다. 지난해 7월에는 은행권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을 60%에서 50%로 낮췄고, 9월에는 은행권 DTI를 수도권 비투기지역까지 확대했다. 그래도 부동산 가격이 잡히지 않자 10월에는 저축은행 등 비은행권에 대해서도 LTV를 강화하고 DTI 규제를 수도권 전역으로 확대했다. 금융당국의 규제강화로
주택담보대출 증가세가 크게 둔화됐다.
주택담보대출 증가액은 지난해 2·4분기 9조1000억원, 3·4분기 8조1000억원, 4·4분기 8조6000억원 등이 증가, 월평균 2조~3조원이 증가했다. 하지만 올 들어 2월까지는 전년 말 대비 2조1000억원 증가하는 데 그쳐 증가세가 반토막 났다.
그러나 담보대출이 줄어들면서 집값 상승세가 꺾이고 자산거품 우려가 줄어들자 그동안 숨죽이던 건설업계와 금융권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대출규제 강화로 분양수요가 줄어들었고, 손쉽게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담보대출 취급액이 줄어들면서 은행영업이 어려워졌다는 이유에서다.
대한건설협회 등은 서울 강남3구(40%)와 서울(50%), 인천·경기(60%) 지역의 DTI 규제를 10~20%포인트 완화하고 LTV 규제도 투기지역(강남3구) 이외 지역에 대해 현행 50%에서 60% 수준으로 상향조정해 줄 것을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다.
정부와 여당이 지방선거를 앞두고 업계의 요구를 받아들여 대출규제를 해제할 경우 적잖은 후유증을 낳을 것이라는 우려가 적지 않다.
하준경 한양대 교수는 "DTI 규제를 추가로 완화할 경우 가계부채 문제가 더 심각해질 것"이라며 "진정기미를 보이고 있는 부동산 시장에 다시 거품이 낄 수도 있다"고 말했다.
< 박병률·정유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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