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할 수 없으면 이기자
삼상17:32-37
하나님께서 당신을 위하여 축복의 새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은 지난해에 유튜브로 들으신 분들도 계시리라 생각됩니다. 그럼에도 오늘 제가 전하는 것은 이런 마음으로 목회하고, 이렇게 살고 싶어요 하는 저의 마음이 담긴 설교라 꼭 함께 나누고 싶었습니다.
아는 노래도 라이브로 들으면 감동이 다르듯이, 오늘 강단을 통해 들으면 하나님께서 다른 은혜를 주실 줄 믿습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미국의 심장 전문의 로버트 엘리엇(Robert S. Eliet)의 <스트레스에서 건강으로 -마음의 짐을 덜고 건강한 삶을 사는 법>에서 나온 명언입니다. 매사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삶의 고통을 줄이고, 적극적으로 살라는 인생 처방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인생에는 문제, 위기, 걱정이 늘 존재하는데, 피할 수 없는 상황을 피하려고 하면 더 괴로우니, 피하기보다, 인생의 과정으로 받아들이고, 포용하면서, 힘든 일을 발전을 위한 시련으로 받아들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좋은 말이니, 이 말은 이 말대로 기억하셔도 좋습니다.
그러나 인생이 그리 단순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피할 수 없다는 말을 몇 가지로 분석하고 나름대로 묵상해 보았습니다. 그 결과 우리가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는 신앙인으로서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몇 가지 인사이트를 오늘 함께 나눠보고자 합니다.
첫째, 피할 수 있는 것은 피하자.
사무엘상 17장은 블레셋과 골리앗이 쳐들어와 전쟁이 일어났던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에는 전쟁이나 재난처럼 우리가 피할 수도 없고, 어찌할 수 없는 문제들이 있습니다. 코로나를 겪었습니다. 피할 수 없었습니다. 코로나는 지나갔지만. 그 영향들이 삶의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그것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모든 문제가 그런 것은 아닙니다.
행5:1-5.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의 아내 삽비라와 더불어 소유를 팔아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
얼마만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 베드로가 이르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마음대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엎드러져 혼이 떠나니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하더라”
아나니와와 삽비라 부부는 땅을 팔아 헌신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갑자기 아까운 마음이 들어서, 일부는 숨기고 베드로 사도 앞에서 거짓을 말합니다.
결국은 성령을 속인 죄로 죽음을 당하게 됩니다. 이들이 겪은 물질에 대한 갈등과 죽음이라는 인생의 큰문제는 어디로부터 시작된 것일까요?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는 이 부분에 대하여 일일이 설명하지 않았지만, 기막힌 방법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5장이 시작되기 직전 4:36-37입니다.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 사람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라 하니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그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
바나바는 재산을 팔아 헌신하였습니다. 그는 존경받았고, 훗날 바울의 동역자로 초대교회에서 큰사역을 감당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인정받는 모습을 보았던 아나니와와 삽비라의 마음에“질투”나“공명심”등의 나쁜 마음이 파고들었던 것입니다. 나쁜 마음에 점령당한 그들은 깊은 기도나 생각 없이 즉흥적 판단을 내렸던 것이 문제의 핵심입니다.
결국 그들의 문제는 외부에서 온 것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가 만들어낸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질투할 수 있고, 순간적 감정이 흔들릴 수 있는 것은 평범한 인간들의 모습니다. 그러나 잠시라도 기도하고, 묵상했다면, 질투의 마음의 아니라, 신앙의 마음, 헌신의 마음으로 재산을 바쳤다면 그들은 오히려 성경에서 존경받는 인물로 남았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피할 것은 피해야 합니다.
감정이나, 입술을 다스리지 못하고 질투와 시기를 그리고 식탐을 다스리지 못해서 일어나는 위기는 누가 만든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든 것입니다.
스스로가 만들지 않으면 문제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피할 것을 피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성경에는 2,197명의 인물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인생이 겪는 문제들에 대하여 어떤 반응과 생각을 했고 그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윗처럼 피할 수 없는 문제 앞에서 어떤 행동을 했는지 보여주고 사건도 많습니다. 때로는 사람의 생각으로 선택할 수 없지만 믿음의 선택으로 인생이 바뀌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말씀들이 우리의 심령 골수를 쪼개고, 파고들어 말씀이 삶을 이끌어가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또한 피할 것은 피하기 위해서는 성령의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오직 성령충만을 받으라”(엡5:18)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5:22-23)
성령충만하시고 충만함 속에서 그 영적인 에너지가 성령의 9가지 열매로 맺히는 인생이 된다면 피할 것은 피할 수 있는 인생이 될 것입니다.
둘째, 피할 수 없을 때에 져도되는 것과 지면 안되는 것
우리 삶에는 많은 갈등, 싸움 그리고 전쟁 같은 일들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피할 수 없고, 이미 일어난 일이라면, 잘 살펴보셔야 합니다. 잘 살펴보시면 그냥 져도 될 일이 있고, 절대 져서는 안되는 일들이 있습니다.
2007년쯤 일로 기억됩니다.
당시 제가 목회하던 지역에 한해에 300명의 유학생들이 오고 가던 시절입니다. 그때에 다른 교회 교인이며 유학생 가정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주일 저녁에 이사짐을 옮겨달라는 부탁을 받게 되었습니다. 목사가 가장 힘든 주일 저녁에, 다른 교회 교인으로부터 그런 부탁을 받게되자, 참 의아했습니다. 그분이 다니던 교회는 제가 섬기던 교회보다 훨씬 컸고, 당연히 그 교회에서 도움을 받을만한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제가 섬기던 교회의 교인들도 다 거절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저도 고민을 하다가 이유가 뭐든간에 목사에게 도움을 요청했는데, 제가 거절한다면“앞으로 목회자를 바라보는 마음이 어떨까?”싶어서 도와주게 되었습니다.
막상 가보니, 책 박스 8개가 있었는데, 유학맘과 어린 자녀들만 있어서 결국은 제가 다 날라야 할 상황이었습니다.
그것을 본 저는 순간 짜증이 확 나더군요.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책 박스가 얼마나 무겁습니까? 순간 그냥 갈까도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꾹 참고 2층에서 제 차로 옮기고, 다른 집에 가서는 거실까지 옮기느라고 허리가 부러지는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는 정말로 물 한모금 얻어먹지도 못하고 돌아왔습니다.
누군가를 돕는 일은 분명 기쁜 일이어야 하는데, 집으로 돌아오는데 참 속상하더군요.
그런 일을 다시 겪고 싶지는 않습니다. 제가 목사로 권위를 부리는 것도 아니고, 목회하면서 성도를 위해서, 한 영혼을 위해서 더한 것도 했었고, 늘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며 목회했고 살았지만, 당시와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기를 바랬습니다. 그러나 같은 상황이 일어나면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또 그렇게 할 것 같습니다.
마5:41-45을 함께 읽겠습니다.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아멘
바보 같아서 지는 것이 아니라, 사랑해서 지는 것입니다. 모자라서 지는 것이 아니라, 지는 것이 이기는 것임을 알기 때문에 지는 것입니다. 피할 수도 없고, 때로는 억울하기도 하지만, 십자가를 지셨던 예수님의 마음을 생각하면서 져 줄 수 있는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피할 수도 없고, 질수도 없는 싸움이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블레셋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블레셋 족속에서는 골리앗이라는 거인 장군이 나와서 외치는데, 이런 말을 합니다.
“그가 나와 싸워서 나를 죽이면 우리가 너희의 종이 되겠고 만일 내가 이겨 그를 죽이면 너희가 우리의 종이 되어 우리를 섬길 것이니라.”
이 말은 정말로 무서운 의미가 있습니다. 골리앗은 이스라엘을 “종”삼겠다고 했습니다. 종이 된다는 말은 철저하게 주인에게 소속되어 생명도 재산도 심지어는 신앙도 주인의 것이 되어버린다는 것입니다.
즉 “종이 된다”는 말 속에 하나님에 대한 신앙마저도 무너뜨리겠다는 것입니다.
즉 블레셋과 이스라엘의 전쟁은 영적인 싸움입니다. 우리가 피할 수도 없고, 피해서도 안되는 싸움이 있는데 바로 영적인 싸움입니다. 공중의 권세 잡은 자가 주는 것은 죽음뿐입니다. 이것은 피할 수도 없고 반드시 이겨야 합니다.
셋째, 피할 수 없는 싸움에서 이기려면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 9:27)
우리의 인생은 죽음으로 끝이 아닙니다. 천국의 영생도 있고 지옥의 영생도 있습니다.
어느 쪽을 원하십니까?
또한 삶 속에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하고 고백해야 합니다. 삼상 17:33-37에는 다윗과 골리앗과 싸우기 전에 고백하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중에 다윗은 고백입니다.
“사울이 다윗에게 블레셋인과 싸울 수 없으니 너는 소년이요 그는 용사이니라 다윗이 종이 아버지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 떼에서 새끼를 물어가면 따라가서 치고 새끼를 건져내었고 해하고자 하면.. 그것을 쳐죽였나이다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짐승같이 되리이다. 다윗이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은즉 나를 블레셋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사울이 다윗에게 가라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기를 원하노라“(33-37)
다윗은 어느날 갑자기 용사가 된 것이 아닙니다. 다윗은 날마다의 삶 속에 하나님을 알았고, 인정했습니다. 양떼를 지키며 사자와 싸웠고,“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다”는 고백을 했습니다. 그가 살아온 날마다의 삶 속에 만났던 하나님을 전쟁 한가운데서 기억한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속에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날마다 경험하시고 고백하면 반드시 이겨야 할 싸움에서 이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