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산책하면서
집에서 그림만 그리고 있는 작은아들에게 산책하러 가자고 하니 선뜻 따라나선다. 일주일에 몇 번은 운동 삼아서 같이 산책한다. 초록으로 변한 싱그러운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다. 막 돋아나는 잎에서 전해오는 생명의 신비로움과 가슴 벅찬 희열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 아직은 내가 느끼는 감정을 느낄 수 없지만, 20대에서 느낄 수 있는 소중한 감정을 전해주고 싶었다.
엄마보다는 친구로 비슷한 길을 걷고 있는 아들과 이야기 나누며 데이트한다. 처음에는 묵묵히 내가 알려주는 꽃 이름과 나무 이야기를 듣기만 하더니 이제는 먼저 물어온다. 무엇보다 변한 것은 이제는 내가 일방적으로 알려주다가 한 번씩 툭 하니 물어보면 웬만한 들꽃은 이름을 다 안다. 그때마다 내 안의 작은 옹달샘에 사랑이 고인다.
오솔길을 걸으며 애기똥풀도 만나고 대나무가 노래하는 것도 들으면서 초록 물이 옷에 젖어 드는 산길을 아들과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며 걸었다. 산비둘기가 길 한가운데서 우리를 빤히 쳐다보고 있다.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으니 우리도 반가웠다. 가까이 다가가 마주 보고 앉아서 비둘기와 눈을 맞추며 고맙다고 웃어주었다. 우리는 다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종종거리며 산속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무척이나 사랑스러웠다.
땅에서 놀던 청설모가 우리를 보고 놀라 쪼르르 나무를 타고 도망을 간다. 오랜만에 만난 청설모다. 이 가지에서 저 가지로 재주를 마음껏 부린다. 신기해서 가던 걸음을 멈추고 구경꾼이 되어주었다. 나뭇가지를 타고 오르다 흘깃 우리를 보더니 나뭇잎을 맛있게 사각사각 먹는다. 청설모가 새로 갓 돋아난 연한 잎을 얼마나 맛있게 먹는지 나도 새잎을 하나 따서 씹어보니 쌉싸름하다. 우리가 계속 지켜보고 있으니 청설모가 불안한지 이리저리 오르내리면서 경계심을 풀지 않는다. 스트레스를 주는 것 같아서 사람들에게 잡히지 말고 건강하게 새끼도 낳고 즐겁게 지내고 있으라고 인사를 했다.
청설모가 유해 동물로 지정이 되었다. 잣이나 호두 농가에 피해를 준다고 한 해 수천 마리씩 죽어간다는 뉴스를 보았다. 농가를 생각하면 걱정이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삼림생태계에 중요한 기능을 한다고 한다. 청설모가 즐겨 먹는 나무들의 경우 그 씨앗을 멀리 퍼뜨려주어 나무와 공생관계를 맺고 살아간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자고 그냥 지금을 즐기며 정성껏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자고 나를 안아준다.
아들 둘이 어려서 별명이 파브르였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동물이나 곤충은 거의 키워본 것 같다. 지금은 판다 마우스를 기르고 있는데 생명의 소중함과 사랑을 키워가는 법을 알게 해준다.
청설모를 뒤로하고 돌아오는 길에 햄버거 가게를 들렀다. 데이트 코스 중에 하나다. 함께 가주니 고마운 마음에 좋아하는 햄버거를 사준다. 아들이 결혼해서 아들과 산책할 때 오늘을 기억하며 행복했으면 좋겠다. 추억을 만들어 주는 것이 나에게는 더없는 행복이고 재산이다. 나 또한 아들과 만든 추억이 얼마나 소중한 재산인지 모른다. 봄빛으로 물든 4월 어느 하루를 뚜벅뚜벅 걷고 있다. 엄마와 아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