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 목 : 교회교육
교 수 : 이 원 일
이 름 : 손 혁 락
제출일자:2009. 6.19.(금)
맥추감사절을 통한 예배, 교육, 친교, 봉사, 선교에 대해...
예배
어려운 상황에 처한 청교도들에게 은혜를 베푸셨던 하나님은 우리의 삶 속에서도 역사하시며 언제나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신다. 추수 감사절 예배를 통해 한해 동안의 삶을 돌아보면서 하나님께서는 나의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은혜를 베푸셨는지 깨닫고 그것에 대해 감사하는 시간을 갖도록 한다. 특히 가정에서 예배를 드릴 때에는 어린이에게 우리가 먹는 음식, 특히 밥이 우리가 먹는 음식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자세히 설명해 주어 그 속에 담긴 농부의 정성과 하나님의 돌보심을 깨닫도록 한다. 또한 일상 생활에서 하나님께 감사할 이유와 방법들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어 어려서부터 하나님께 감사하는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제목:맥추감사절의 감사.
본문 신16:9-12
6개월 동안도 하나님의 은혜로 평강 가운데 거하게 하시고 무더운 계절에 들어서도 영적으로 무장하는 달이 되게 하시고 오늘 맥추감사절에 몸과 마음을 바쳐 감사하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맥추감사절이라 할 때 이것은 구약의 3대절기인 '유월절(뮤교절)', '맥추절(칠칠절)', '초막절'에 속합니다. 신명기 16:16절에서는 "너의 중 모든 남자는 일 년 삼차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의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께 보이되 공수로 여호와께 보이지 말고"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에는 절기가 4월에 부활절, 7월에 맥추감사절, 11월에 추수감사절, 12월에 성탄절로 지키고 있습니다. 우리는 맥추감사절의 의의를 알아야 합니다.
一. 맥추절의 의의를 알자. (신명기 16:9-10절, 12절)
맥추절은 무교절(유월절)이 지난 다음 일곱 번째 주일 다음날을 하나님께 지키는 것입니다. 신명기 16:9-10절에서는 "칠 주를 계수할지니 곡식에 낫을 대는 첫날부터 칠 주를 계수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칠칠절을 지키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맥추절의 의의는 이스라엘 백성이 430년 동안 애굽에 종살이를 하면서 마지막에 먹을 것도 못먹고 입을 것도 못입고 아들나면 죽고, 이와같은 죽음에 공포에 싸여있었는데 하나님의 역사로 양의 피로 문설주에 발라 하나님의 기적으로 그들을 출애굽하게 하셨고, 광야로 와서 요단강을 건너서 가나안으로 왔는데, 이 맥추절은 애굽에서 종되었던 것을 생각하고 구속하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신명기 16:12절에서는 "너는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고 이 규례를 지켜 행할지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택한 백성을 하나님의 은혜로 살리시고 구속하신 것을 생각하여 감사하는 절기, 그것이 바로 맥추절입니다.
오늘 우리는 기쁘고 감사한 일이 많습니다. 8.15기념일을 앞두고 남북한의 이산가족이 만난다는 사실에 기쁘고 가슴 부풉니다. 그러나 애굽 땅에서 구속하여 주셔서 살아난 것을 생각할 때 더욱 감사한 것처럼, 우리가 죄악된 세상에서 구속되어 택정하시고 나를 구원하시고 천국가는 축복을 허락하신 것을 감사하는 것으로 맥추절을 보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오게 된 것을 감사합시다. 우리 찬송합시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늘 찬송하게 하소서. 아버지 아버지 나를 구하신 아버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영광 받아 주옵소서" 맥추절의 의의는 참으로 귀합니다.
二. 맥추절은 첫 열매로 감사하자. (신명기 16:9-10절, 출애굽기 23:16절)
맥추절은 첫 열매로 감사하는 것입니다. 신명기 16:9-10절에서는 "칠 주를 계수할지니 곡식에 낫을 대는 첫날부터 칠 주를 계수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칠칠절을 지키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출애굽하여 광야에서 40년 지내는 동안 만나와 메추라기와 생수를 먹고, 가나안에 들어가서는 자기 손으로 농사해서 첫 열매를 거두는 것이 맥추절입니다. 우리 나라 곡식의 첫 열매는 보리이고 과일의 첫 열매는 살구이듯이 가나안 땅에서 첫 소출인 보리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출애굽기 23:16절에는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종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성경에서는 맥추절은 곡식중에 첫 소산을 자기 힘대로, 믿음대로 자원함으로 하나님께 드리라고 하였습니다.
三. 맥추절의 영적인 뜻을 알자 (사도행전 2:1절)
맥추절의 영적인 뜻은 세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오순절이요, 성령강림주일이요, 교회의 시작임을 말합니다.
맥추절의 영적 뜻의 첫째가 오순절인 것은 유월절 이후에 주일을 일곱 번 지난 후 즉, 7x7=49일 다음날(50일)이기에 오순(50)절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둘째로 이 오순절이 사도행전2:1절에서 말씀하듯이 성령이 오신 날이기에 성령강림주일로 따릅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 성령강림주일은 바로 교회의 시작입니다. 성령오시고 나서 교회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성령이 오심에 의해서 전도도 하고 기도도 하고 교회로 모이게 된 것입니다.
오늘 맥추절은 막혀있던 전도와 기도, 중심으로 하는 감사도 다시금 시작되는 오순절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애굽같은 세상에서 구원해주셔서 가나안의 축복을 허락하신 것을 기억하면서 오순절 성령 충만하여 전도하고 전심으로 주께 헌신하는 성도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사랑의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를 택하시고 부르셔서 구원해주신 것 감사드리며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옵소서! 자원함으로 힘대로 하는 감사되게 하옵소서!
교육
특별 헌금에는 어른들 뿐 아니라 어린이들도 참여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할 수 있게 한다. 이때 특별헌금을 위한 헌금 봉투를 미리 준비하되, 어린이 헌금 봉투는 어린이들이 색종이와 풀을 이용해 직접 만들어 준비할 수도 있다. 감사 헌물 드리기는 주일 예배 때 모든 성도들이 직접 감사의 예물을 드리는 것으로 맥추 감사 주일에 하나님께 드릴 곡식과 과일을 준비해 오도록 그 전주에 미리 광고한다. 맥추 감사 주일에 각자 정성껏 준비해 온 곡식과 과일을 강단에 준비된 커다란 바구니 앞으로 가지고 나와 하나님께 직접 드린다는 마음으로 올려 놓는다. 이를 통해 과실을 결실케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추수하는 농부의 고마움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갖는다. 모아진 곡식과 과일은 예배가 끝난뒤 전 교인이 친교의 시간에 함께 먹는다. 감사 헌물로 드려진 이러한 음식은 불우 이웃을 돕는데 사용할 수도 있다.
봉사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해 주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 삶의 세심한 부분까지도 늘 기억하시어 큰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 그분의 사랑을 기억하면서, 우리도 불우한 이웃을 찾아 주님의 사랑을 베풀기 위해 먼저 우리 주위에 불우한 사람은 없는지 미리 살펴본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 작은 정성이나마 우리가 할 수 있는 물질적인 도움을 베풀어 줄 뿐 아니라, 혹 불신자인 이웃이라면 주님에 대해서도 알려주는 영적인 도움을 베풀도록 한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평소에도 그들에게 관심을 갖고 돕는 자세임을 기억하자.
교제
추수 감사절 오후 프로그램으로 감사의 밤 행사를 갖는다. 이때 청교도들이 그들의 이웃인 인디언들을 초대해 함께 추수한 곡식을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던 것처럼 전 교인은 물론 이웃과 친구, 잘나오지 않는 성도들을 초청해 준비한 떡과 음식 등을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갖도록 한다. 또한 감사를 주제로 한 촌극, 시낭송, 찬양 등을 통해 진정한 감사의 의미를 생각하는 시간이 되도록 한다.
선교
⑴ 선교에 관한 하나님의 명령들
① 가라, 제자를 삼으라, 지키게( 마28:18-20)
② 전파하라 (막16:150
③ 와서 도우라, 건져주라 (행16:9. 잠24:11)
⑵ 선교의 동기
① 하나님의 사랑 (요 3:16)
②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고후 5:14-15
③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 롬 3:9
⑶ 선교의 능력
① 하나님의 말씀( 벧전 1:23, 히 4:12)
② 성령(행 1:8)
③ 기도(행13:1-40)
⑷ 기도선교운동
① 기도선교운동의 필요성
오늘날 세계인구는 50억을 상회했고 그 증가율은 매일 30만명으로 년 1억 정도가 증가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급격한 인구증가에 비해 그리스도인의 증가는 매우 저조하다는 것이다. 현 50억의 인구 중 약 50%에 달하는 25억의 인구가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고, 구원의 복음을 전혀 듣지 못한 채 죽어가고 있다.
◈ 1985년 통계: 지구상의 나라: 223개, 22.200종족, 5,770개의 언어 통용 이들 중 7534%에 해당하는 16,750종족이 Unreached People 혹 Hidden People 이다.
현재 주의 복음을 위하여 해외에 파송된 선교사는 약 12만명 가량되는데 이 분들에 의해 세계 도처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고 있고, 이 분들 은 이름 없이 빛도없이 죽음을 각오하고 영적전쟁을 치루고 있는 것이다. 우리도 그들과 같이 선교현장에 직접가서 일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기도는 해야하지 않겠는가
② 성경에 나오는 기도선교의 사(롬 15:30, 고후 1:114:2-3, 살후 3:1-2 , 몬 1:2, 히 13:18-19
⑸ 선교를 위한 구체적인 기도들
① 선교활동을 위한기도
◈ 추수할 일군들을 보내달라고(마 9:36-38)
◈ 추수할 곳에 선교의 문이 열리기 위하여(골 4:3)
◈ 추수할 곳에 있는 일군들을 위하여
◈ 추수할 열매들을 위하여(요 4:35, 시 126:6)
② 파송선교사들을 위한 기도
◈ 선교사의 영적 무장을 위하여.
◈ 선교사의 육체적, 정신적 건강을 위하여
◈ 선교사의 가정을 위하여
◈ 선교사의 사역을 위하여
◈ 선교사의 현지적응을 위하여(문화적, 정치적, 동역자와의 관계)
◈ 사탄의 공격으로부터 보호를 위하여
◈ 선교활동에 필요한 재정을 위하여
교재요약정리: 해석학적 상상력과 기독교 교육과정
히브리인 시대는 기원전 586년 예루살렘이 파괴되기 전까지 히브리인의 역사를 지칭한다. 이 시기는 공적인 의미에서의 학교란 없었던 기간이었기 때문에 교육은 삶 가운데서 일어났다. 교육의 장은 주로 가정이었으며 교사는 부모와 예언자, 제사장, 현인, 시인들이었다. 이 중에서 제사장과 예언자 등은 성인의 교사였으며 성인교육이라고 할 수 있는 많은 부분을 교육하였다. 그러나 부모 중에서 어머니는 족장들과 하나님의 행위에 대해 주로 이야기를 함으로써 자녀들에 대한 교육을 담당하였고, 아버지는 율법교육을 하였는데 상업에 대한 교육을 병행하였다.
히브리 시대의 교육목적은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한 것인데, 이를 위하여 선정된 교육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상징을 통한 교육, 즉 에봇, 우림, 둠밈 등을 사용하여 교육하였다. 둘째, 꿈 등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려고 하였다. 셋째, 히브리인들은 문학, 즉 잠언, 전도서, 시 등의 문학을 만들어서 교육하였다. 넷째, 희생제사를 통한 간접적인 교수기능, 즉 의례(의식)들을 통한 교육이 있었다. 특히 가정 종교의례는 ①호기심을 자극하는 행동에 의해서 어린이의 학습을 자극했으며, 종교적인 개념들은 먼저 추상적이지 않은 구체적인 것으로 어린이에게 제시되었다. 또 보이는 행동을 통하여 어린이의 호기심을 자극하여 어린이로 하여금 무엇?(what), 왜?(why)라는 핵심적인 질문이 나오게 하였다. ②부모로 하여금 정적인 교수자료에 의해서가 아닌 새로운 통찰을 갖도록 자극하는 전체적인 환경 안에서 가정의례를 사용하였다. 즉 의복의 경우에 상징적인 탈릿(tallit), 지짓(zizit) 등이 있엇고, 그 밖에 테플린(tefillin), 메주자(mezuzah), 할례, 성년식(Bar mizwah) 등이 있었으며, 절기는 안식일, 유월절, 장막절, 부림절 등이 있었다.
또한 히브리인 가정교육의 교수-학습에는 세 가지의 특징이 있었다.
첫째, 가족활동에 어린이들이 참여함으로 학습이 이루어지도록 하였는데, 이는 비공식적인 참여에 의해서 학습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으로 주로 직업교육을 통해서 행해졌다. 둘째, 자녀들의 행동을 통제함으로써 학습이 이루어지게 하였다. 셋째, 구전에 의한 학습이다. 시편 78편은 긴 역사적 사건을 짧은 이야기로 응축한 대표적인 경우이다. 사건에 대한 기억을 한 세대가 다른 세대에게 말함으로써 전하게 되었다. 위의 두 번째와 세 번째의 방법은 기억과 반복에 의한 방법이 강조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상의 바벨론 포로 이전의 히브리인들의 교육과정에 대하여 파멜라 미첼은 민족경험으로서의 교육과정의 시기로 구분하고 있다.
경건주의운동은 개신교의 교권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일어난 운동이며, 대표적인 인물로는 코메니우스, 프랑케, 웨슬리 등이 있다. 이들의 사상적인 공통점은 인간의 감각을 통한 학습을 강조한 데 있다.
코메니우스에게 있어서 자연과 마음의 세계에 있는 모든 사태는 하나님으로부터의 메시지로 여겼는데, 특히 그는 베이컨과 데카르트에게서 영향을 받기도 하였다. 특히 베이컨에 의하여 영향을 받은 ‘감각실재주의’는 플라톤의 관념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일어난 운동이었다. 코메니우스와 베이컨은 학습의 방법으로 감각경험을 중요하게 여겼는데, 이 감각경험은 초대교부들로부터 종교개혁자들에게 이르기까지 마음을 오염시키는 요소로 여겨져서 불신을 받아 왔다.
코메니우스의 교육내용은 성서적인 인간관을 토대로 하여 인간의 영, 육, 혼을 위하여 경건의 지식, 덕의 지식, 지성의 교육 등을 포함하고 있다. ‘지성의 교육’을 위해서 코메니우스는 사물들을 연구하는 지식의 분야를 24항목으로 분류하였고, 다양한 지식을 다시 자연과학과 정신과학으로 구분하였다. ‘덕의 교육’을 위해 코메니우스는 덕은 가르칠 수 있고 어릴 때 가르쳐야 한다는 덕의 조기교육을 강조했으며, 어릴 때부터 갖추어야 할 덕목을 신중성, 절제, 인내, 정의 등으로 보았다. ‘경건의 지식’의 경우는 성서에 근원을 두고 있는 교육을 말하며, 경건 교육의 교사는 성령이지만 성령은 가정에서 부모를 통하여 자녀들에게 경건한 마음을 갖도록 지도하여야 한다고 보았다.
모국어 학교의 교육과정은 모국어의 읽기, 쓰기, 문법 등과 더불어 실제적인 수학, 기하학, 음악, 교리문답, 성경 이야기와 구절, 실천윤리, 역사, 지리, 천문학, 기계기술, 경제원리, 정치 등이 포함되었다. 라틴 학교의 교육과정에서는 네 가지의 언어를 배우게 되는데, 그것은 라틴어, 헬라어, 히브리어, 모국어이다. 이 외의 과목으로는 변증법, 수사학, 수학, 기하학, 음악, 천문학, 물리과학, 지리학, 역사, 윤리학, 신학 등의 과목을 배우게 된다. 이러한 과목들은 교육과정의 순차성의 원리에 따라 다음과 같이 구분하고 있는데, 1학년의 경우 언어는 모든 학문의 기초라는 인식 아래 문법을 배우게 했으며, 2학년은 자연철학, 3학년은 수학, 4학년은 윤리, 5학년은 변증학, 6학년은 수사학 등을 배우게 했다.
대학교의 교육과정은 포괄성을 지니고 있었는데, 지금까지 배운 내용들을 더 깊이 연구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재능 있는 학생들에게는 백과사전적 지식을 갖도록 격려했고, 나머지 학생들은 신학, 법학, 의학 등의 특별한 분야를 전공하도록 격려했고, 나머지 학생들은 신학, 법학, 의학 등의 특별한 분야를 전공하도록 격려되었으며, 교육방법은 강의, 토론 등이 포함되었다. 코메니우스는 여성교육에도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이는 특히 그의 여성관은 “여성들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았으며, 하나님의 은총과 하나님의 나라를 나누고 있다. 여성들은 동등한 마음의 명철함과 지적인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데서 잘 알 수 있다.
독일 경건주의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스페너에게 영향을 받은 독일 경건주의자인 프랑케는 소그룹에 의한 교수-학습과 과학적인 실험의 가치를 인정했으며, 어린이 기독교교육에 관심을 가졌다. 그리고 원죄의 교리를 따라 어린이에 대한 엄격한 교육을 강조하고 있다. 프랑케는 지식보다는 건전한 기독교적인 행동을 양육하고 훈련하는 데 초점을 둔 매우 실제적인 교육이기를 원했으며, 그의 교육과정은 각 학생들을 위한 영적인 경험으로서의 교육과정이었다. 교육은 기독교인다운 삶을 통하여 훈련되었으며, 교육과정은 이러한 훈련이 제공하는 경험을 의미했다. 즉 단순한 내용이 아니라 선한 생활, 악의 회피, 일일성서연구와 같은 훈련을 주장했다. 뿐만 아니라 찬송, 그리고 그들의 삶에 진리를 적용할 수 있는 교리문답, 자신의 용어로 배우기를 원하는 기도 등의 내용이 강조되었고, 육체적인 체벌은 거의 가하지 않았다. 그리고 가정은 어린이 교육의 통합적인 면을 가지고 있다고 보았으며, 결손가정인 경우 학교가 그 기능을 대신하도록 하였다. 이러한 프랑케의 영향은 진젠도르프에게로 이어졌다. 진젠도르프는 어린이의 개별적인 특성을 강조했으며, 아동기 발달에 있어서 ‘놀이’의 가치를 인정하면서, 어린이의 자유를 강조했다. 특히 진젠도르프는 교육에 있어서의 공동체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다. 경건주의에 깊이 영향을 받은 신학자인 동시에 철학자인 슐라이에르마허는 ‘고전문학’을 강조했으며, 내적인간(inner person)의 발달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교육과 윤리는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19세기의 교육학자인 프뢰벨은 그의 종교적인 신앙이 교육에 대한 그의 입장에 영향을 끼쳤다. 그는 무엇보다 하나님과의 관계성이라는 입장에서 교육의 목적을 정하였다. 그리고 어린이에 대한 이해는 루소와 페스탈로치 그리고 헤르바르트의 경우처럼 인간은 근본적으로 선하다고 보았다. 따라서 어린이의 조기교육이 중요시되었고, 교사의 임무는 어린이의 본래적인 선이 잘 드러나도록 양육하는 것이었다. 프뢰벨은 어린이의 발달에서 중요한 것은 ‘놀이’라고 보았다. 놀이와 언어는 어린이들이 살아가는 요소를 구성하고 있다. ……놀이는 어린이 발달에서 가장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놀이는 가장 순수하며, 가장 영적인 인간의 활동이다. 그리고 프뢰벨은 암기에 대한 교육보다는 어린이의 창조성과 지각을 중요하게 여겼다. 이를 위해서 가정과 학교의 유대관계를 강조하고 있으며, 특히 이것은 종교교육에 있어서 더욱 필요한 것으로 강조하면서, “만약 어린이가 그의 부모와 함께 삶과 영혼의 통일성 속에서 성장한다면 이러한 통일성은 아동기 동안 더욱 지속적이며 강화될 것이다.”라고 언급하고 있다. 프뢰벨 교육사상의 핵심어를 해리스는 ‘내적 연결’(inner connection)이라고 이해하고 있는데, 이는 학습자의 마음과 학습자가 학습할 대상 또는 객체 사이에는 내적인 연결이 있어야 하며, 이러한 ‘내적인 연결’이 학습할 내용을 결정할 것임을 말하는 것이다.
낭만주의 시대의 교육과정의 특징은 이전의 교육과정은 논리적으로 조직되어야 함이 강조되었으나, 루소와 프뢰벨 등에 의하여 교육과정의 조직은 심리적인 원리에 따라 조직되어야 함이 강조되기 시작한 데서 찾아 볼 수 있다. 낭만주의 시대의 교육사상가들은 어린이의 ‘자아실현’을 교육목적으로 하는 이 시대의 인간 이해에 따라 교육과정은 학습자의 밖에 있는 것이라고 하기보다는 학습자의 내부에서 시작된다고 이해하고 있다.
초등학교를 유대인들은 ‘책의 집’(Beth hassepher)이라고 불렀는데, 이 학교의 목적은 쓰여진 성경인 토라를 가르치기 위해서였다. 책의 집은 회당 옆에 교육적인 목적으로 방을 만들어 사용했다. 책의 집에서 토라를 가르치기 위해서 먼저 선행된 교육은 히브리어를 읽는 것과 쓰는 것이었다. 읽기와 쓰기가 습득되면 그 다음으로는 토라 중에서 5경을 가르쳤으며, 5경 중에서도 특별히 레위기를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그 다음으로 쉐마, 십계명, 할례 등을 가르쳤다. 교수는 주로 기억력에 강하게 의존했으며 정확하게 배우도록 강요되었다. 중등학교는 ‘연구의 집’(Beth Hammidrash, Beth Talmud)으로 칭해졌으며, 교육목적은 ‘미쉬나’(Mishnah, Oral Torah)를 연구하는 것이었다. 이는 구전되는 ‘전통’에 해당한다. 이 외에도 수학, 천문학, 지리학, 생물학 등이 학습되었다. 아카데미는 학자들의 연구원과 같은 역할을 하는 곳으로 활용되었으며, 오늘날 초등, 중등교원을 양성하기 위한 대학교육기관처럼 랍비들을 양성하는 교육기관이었다. 이처럼 포로기 이후의 유대인의 교육과정은 더 이상 민족경험으로서의 교육과정이 아닌 ‘조직된 지식 또는 내용’으로서의 교육과정 시기였다.
초대교회 시대의 시기는 주후 125년까지로 추정하고 있는데, 이대의 교수는 설교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다. 초대교회의 복음을 전하는 주된 수단은 설교였으며 그 내용은 ‘케리그마’, 즉 복음이었다. 설교는 예배시간 동안에 증거되었으며, 선포의 수단임과 동시에 수업의 수단이었다. 초대교회 설교는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선포인 ‘복음’이며, 둘째, ‘증언’의 부분으로서 여기에는 히브리어 성경으로부터 언약의 성취로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증언이 있으며, 다음으로는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에 대한 개인적인 증언이 있었다. 셋째, ‘권면’의 내용이다. 즉 회개하라는 것과 믿으라는 권면의 내용이다.
신약 성경이 쓰여지기 전의 초대교회 시대의 교수의 내용에는 다섯 종류가 있었다. 첫째, 히브리어 성경에 대한 기독교적 해석이었다. 둘째, 유대교의 구전과 구별되는 전통에 대한 것으로, 전통의 내용은 ‘주의만찬’과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 등에 관한 것이었다. 셋째, 신앙고백에 대한 것이었다. 신앙고백에 대한 기본적인 내용은 수난 이야기에 그 뿌리를 드고 있었다. 넷째, 삶에 관한 내용으로, 특히 예수님의 담화에 관한 것이었다. 다섯째, ‘두 길’(two ways)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두 길은 도덕적인 삶을 다루고 있는 내용이었다. 초대교회 시대의 세례를 받은 사람을 가리켜 ‘카테쿠멘스’(catechumems)라 칭하였으며, 세례교육의 내용은 ‘카테키시스’(catechesis)였다. 특히 세례교육은 유대인과 이방인으로 구분하여 시행되었는데, 유대인의 경우 구약성경에서의 메시아적인 내용, 수난과 부활, 예수의 담화 등의 내용이 가르쳐졌고, 이방인들의 경우에는 도덕교육, 고난과 부활, 예수의 담화, 이브리어 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하는 내용의 교육이 있었다.
중세시대의 교육사상에 영향을 끼친 첫 번째 사상으로 수도원운동을 들 수 있다. 수도원 형성의 기원은 1세기까지 소급할 수 있는데, 사해 북서변의 쿰란 공동체에서 발견된 서고와 공동체의 터는 필로(Philo)와 요세푸스(Josephus), 플리니(Pliny) 등이 1세기에 기록하여 놓은 에세네스와 다소 관계가 있는 것으로, 이 쿰란 공동체 내에서는 예루살렘의 형식적인 유대교에 항거하여 ‘반수도원 생활’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방랑적이고 금욕적인 키니크스(Cynics)파의 생활도 기독교 수도원제도의 형성과 발전에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보다 엄밀하게 그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기원 후 4세기경 이집트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는 이집트의 지형과 기후는 독자적 생활이든 공동체 생활이든 수도사에게 적합했기 때문이다. 이집트의 나일 강변에서의 수도원운동은 수도사 안토니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베네딕트 수도원의 특징은 다음의 세 가지로 나타낼 수 있는데 첫째, 일정한 수도원에 정주하였고, 둘째, 화려하고 성대한 예전을 거행하였는데, 베네딕트는 그 어떤 것도 예전보다 더 중히 여기지 말 것을 권고하고 있다. 셋째, 가정제도를 도입한 것인데, 이는 수도원장을 ‘아빠스’(Abbot, Abbas), 즉 아버지라고 칭하는 것과 이 ‘아빠스’의 직책이 종신직이라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베네딕트 수도원 다음으로는 성 프란시스코회와 성 도미니코회 등이 있다. 이 수도회들의 기본 정신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 우리는 세상을 섬기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프란시스코회가 복음을 실천하고자 하는 선교적인 공동체였다면, 도미니코회는 교육에 주력한 점에 그 특징이다.
중세시대의 교육사상에 영향을 끼친 두 번째 사상은 상징주의를 들 수 있는데, 상징주의의 첫 번째 형태는 예배에 있었다. 예배에서는 말을 통한 교육보다 오히려 상징을 통한 교육이 보편적이었다. 상징적인 종교교육의 두 번째 형태는 드라마였다. 이는 주로 10세기에서 16세기까지 많이 사용되었는데, 이는 예배와 교육을 동시에 포함하는 새로운 방법이었다. 셋째, 표현의 주된 방법이며 교수의 수단인 것은 건축이었다. 교회건축은 돌 뒤에 쓰여진 교회의 이야기였다. 이러한 제도들은 평신도들에 대한 교육제도로서, 평신도들을 위한 교육과정은 지식의 조직이라기보다는 시각적 이미지를 주로 사용하는 ‘종합적인 경험’이었다. 그러나 샤를레망 대제의 ‘모든 평민도 기독교의 기본 교리를 배워야 한다’는 생각에 따라 8~9세기의 교육과정은 또다시 지식 또는 내용으로서의 교육과정을 의미하는 시기를 맞이하였다. 교리를 읽고 쓰는 것이 교육과정의 중심부분이 되었다. 이 외에 7세기에서 10세기까지의 가정교육의 내용은 주기도문, 사도신경, 신앙고백 등이 있었고, 성직자를 위한 교육으로는 사도신경, 십계명, 두 계명, 일곱 가지의 미덕, 일곱 가지의 성례전 등이 가르쳐졌다.
중세시대 교육사상에 영향을 끼친 세 번째의 사상은 스콜라주의이다. 스콜라주의에서의 교육과정에는 논리가 강조되었다. 스콜라주의의 영향 아래에서 많은 학교제도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으며 그 가운데는 대학교가 포함된다. 12세기에 대학의 발전이 있었으며, 문법, 논리 등에 대한 관심의 집중에 비해 문학에 대한 관심은 감소되는, 즉 문학에 대해서는 비우호적인 시기였다. 중세시대의 대학교육에서의 기본적인 교과목은 일곱 가지의 교양과목(seven liberal arts)으로, 이를 두 부류로 구분하면 트리비움과 쿼트리비움인데, 드리비움은 문법, 수사학, 변증학 등이며, 트리비움을 선수과목으로 하는 쿼트리비움은 기하학, 수학, 천문학, 음악 등이다. 이러한 학습의 기초로서 라틴어에 대한 강조가 있었다. 그리고 주된 교수방법은 강의와 토론의 방법 등을 사용하였다.
고대교회의 교육은 예배와 연관되어 있었다. 세례를 받기 이전의 사람들을 위한 예배는 ‘미사 카테쿠메노룸’, 즉 학습자들을 위한 예배라는 의미의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그리고 다른 한 종류는 성도들을 위한 예배인 ‘미사 피델리움’이 있었다. 교육은 예배시간에 행해졌던 관계로 예배적인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예배시간에 설교의 주요한 목적은 입교자들을 교육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러한 예배에서의 교육적인 요소는 중세기가 시작되면서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다. 주후 450년 까지는 이러한 교육적인 요소가 다분히 있었다.
성인들이 개종을 하거나 회심을 할 때 성인들을 위한 교육으로 카테구메나테가 있었다. 고대교회의 성인교육의 목적은 도덕적인 생활, 입교자들을 기독교의 전통에 익숙해지도록 하는 것, 헌신적인 신앙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교육방법은 모든 사람들에게 동일한 방법을 사용했다.
고대교회 시대의 교육에 대한 관심은 니사의 그레고리에게서 나타나고 있는데 그레고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은 지적이며 이성적인 속성을 지니고 있는 존재로 이해했다. 그레고리에게 있어서 교육은 하나님 형상의 성숙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었다. 그리고 지성과 반대되는 것으로는 감각을 들고 있는데, 이는 세상이 지각되어지는 방법이다. 이 둘에 대한 필요성을 말하고 있으면서도 그는 감각보다는 지성에 대해 더 큰 강조를 두고 있다. 제롬은 세속적인 학습에 대하여 불신적인 태도를 갖고 있었는데, 그는 시인의 노래들, 세속적인 지혜, 수사학적인 언어 등에 대한 극도의 불신감을 나타내고 있다.
교육의 내용으로는 성인 개종자들을 교육하기 위하여 키푸리안에 의하여 쓰여진 것으로 “유대인들에 반대하는 세 권의 증언집” 등이 있었다. 어거스틴은 인간의 특징요소는 이성이라고 보았으며, 세상과의 대화를 주장하는 가운데서도 이성의 사용을 경시하지 않았고 진리는 감각에 의존하는 위험 없이 이해되어야 함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제스처의 사용고ㅘ 학습을 촉직하기 위한 이미지들의 사용을 권장하기도 했으며, 알고 싶어하는 것을 그 사람의 눈앞에 제시하는 사람을 교사라고 보았다. 그리고 어거스틴의 “입교자 교육에 대하여” 등은 교육의 내용과 교육방법을 함께 주의해서 교육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또 고대교회 시기에는 교육기관으로서 “교리문답학교”가 있었는데, 여기서는 기하학, 천문학, 철학, 윤리학 등을 다루었다. 그대교회의 학파에는 알렉산드리아 학파와 안디옥 학파가 있으며, 안디옥 학파의 경우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 근거하였으며, 따라서 귀납법적이고 경험을 중시하며 역사적인 그리스도에서 출발하는 신학이었다. 성경해석에 있어서는 비유적인 관점보다는 역사적인 관점으로부터 성경을 해석하였다.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경우는 플라톤의 철학에 근거하고 있다. 알렉산드리아의 교육은 헬라어를 강조하는 교육이며, 연구과목들은 수학, 천문학, 지리학, 생물학, 직물학, 문학비평, 수사학 등이다. 알렉산드리아의 수사학교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학교였다. 유대인 철학자인 필로는 비유를 통하여 플라톤 철학으로 구약을 해석하였다. 판테우스는 알렉산드리아 교회학교장으로 있으면서 교육과정의 범위를 넓혀 알렉산드리아 학교를 종교적인 학습과 세속적인 학습을 병행해서 공부하는 학교가 되게 하였다. 그리고 모든 연령층의 남녀에게 교육의 기회를 부여했으며, 학생들은 그리스-로마 고전들, 철학자, 학문적인 과목들을 배웠다. 판테우스의 뒤를 이은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는 교육과정에 특히 수사학 등을 덧붙였다. 그리고 인류의 목적은 하나님과의 잃어버린 통일성을 되찾는 것이며,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은 이성적인 속성 안에서 나타난다고 말하고 있다. 또 다른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지도자인 오리겐은 기독교교육에서 그리스-로마 학습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오리겐은 기독교의 연구를 위해서 헬라 철학의 중요성과 성경을 설명하기 위하여 기하학과 천문학을 강조했다. 오리겐은 지성을 최고의 것으로 여겼으며, 오리겐에게 있어서의 이성적이며 논리적 사고의 사용인 ‘이해’의 목적은 단순히 사색적인 지식일 뿐만 아니라, 올바른 교리와 도덕성으로 이끄는 이성적인 신앙이었다. 오리겐은 철학을 넘어 기하학, 천문학, 물리학도 교육과정의 부분으로 포함시키고 있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와 오리겐 등은 그들의 제자 가운데 여학생들을 두고 있을 정도로 여성교육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부모가 주로 교육을 감당하도록 권면하고 있다. 교육내용은 대개 철자법에 관한 것이며, 정확한 발음 훈련을 시켰는데, 이 발음훈련을 위해서는 성경에 나오는 사람들의 이름 등을 발음하게 함으로써 교육을 시켰다. 그 다음으로 성경 중에서 아가서를 가르쳤다. 그러나 묵시적인 책들은 교육하기 않았다. 이 외에 여성으로 하여금 일상생활을 위한 교육을 받게 하기도 했다.
16세기의 종교개혁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는 14,15,세기의 르네상스를 들 수 있는데, 르네상스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의 관심을 하나님보다 인간에게로 향하게 했으며, 인간의 신체에 대한 상상력을 일깨웠고, 신비주의(mysticism), 유명론(nominalism), 인문주의(humanism) 등은 개인에게 강조를 두었다. 이 밖에 순수예술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었으며, 자국어를 통한 성경번역 등이 일어나게 되었고, 성경의 자국어 번역으로 인하여 평신도들의 성경에 대한 지식이 증대되었다.
종교개혁자로서의 루터는 다음의 몇 가지 점에서 종교교육에 영향을 끼쳤다. 첫째, 면죄부 판매 등에 대한 성직 오용에 반대하면서 교육에 영향을 끼쳤다. 둘째, 성경을 번역하는 일과 해석하는 일을 통하여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무엇보다 루터는 성경은 기독교인들의 삶에 있어서 최고의 권위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이해하였으며, 결코 교황이 최고의 권위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여기지 않았다. 셋째, 기독교학교를 세우는 일과 교사에 대한 더 높은 특권을 부여한 일, 넷째, 대-소 교리문답의 출판을 통하여, 다섯째, 개신교 찬송가를 시작함을 통하여 교육에 영향을 끼쳤다.
이 중에서 교리문답은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여겨진다. 교리문답은 초대교회 시대에 성인들이 세례교육을 받을 때 사용되었던 것으로 여겨지지만, 루터에게서부터 교리문답의 역사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루터의 교리문답서는 기독교인들의 무지를 없애기 위하여 계획된 조직적인 교과서와 같은 기능을 했다. 교재는 순차성이 고려된 내용과 교사를 위한 교수방법 등을 포함하고 있으며, 학생들은 주어진 성경구절들을 암기하며 정해진 질문과 대답의 반응이 있어야 하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루터는 교육기관으로 가정을 중요하게 여겼으며, 남녀 어린이를 위한 보편적인 교육을 시작하였다. 이는 귀족이나 성직자 중심의 교육만이 아니라, 평민을 위한 교육도 강조한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회중 찬양과 교수와 설교도 라틴어로 하기보다는 모국어를 사용했다. 물론 루터는 학교교육에서 성경의 올바른 이해를 위해 고전어인 헬라어와 히브리어도 강조했으며, 그의 교육방법은 구두언어(oral language)로 가르치는 방법, 무역을 가르치기 위한 실습 등의 다양한 학습활동을 포함하고 있다.
칼뱅에게 있어서 학교는 일차적으로 배움을 위한 기관이라고 하기보다는 그리스도의 나라(regnum christi)의 실현을 위한 수단이었다. 따라서 학교는 소수의 특권자들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 루터의 경우처럼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존재하여야 한다고 서술되고 있다. 칼뱅은 학교를 세 단계로 구분하는데, 첫째 단계는 기초교육이며, 둘째 단계는 기독교 인문주의 학교이고, 셋째 단계는 아카데미였다. 여기서는 물리학, 수학을 포함한 일곱 가지의 교양과목과 히브리어와 헬라어 등을 가르쳤다. 성경에 대한 최고 권위의 주장은 루터에게서와 마찬가지로 칼뱅의 중요한 교리이다.
반종교개혁을 주도한 예수회의 교육과정은 종교, 고전들, 언어 등이 계속해서 졸업할 때까지 주어졌다. 그리고 이러한 교육과정에 대한 교육방법은 대화, 토론, 발포, 그리고 보고 등의 방법을 사용하였다. 예수회의 학부는 언어학부, 철학과 과학 등의 과목이 추가되는 예술할부, 스콜라 신학과 성경문학, 그리고 교부와 교회법 등이 가르쳐지는 신학부가 있었다. 르네상스에 의한 종교개혁의 시대에 교육과정은 지식과 경험의 체계성이 강조되며 교수방법이 포함되는 계획으로서의 교육과정 시기라고 볼 수 있다.
주일학교의 역사를 여섯 단계로 구분하면 첫째, 1780년에서 1830년까지의 기간으로, 주일학교가 자선기관으로 불려졌으며 어린이들의 종교적, 도덕적, 공적인 교육에 관심을 가진 시기였다. 둘째, 1830년에서 1860년의 기간으로, 교회의 어린이를 위한 ‘교파적인 종교교육’에 관심을 가진 시기이며, ‘교회의 훈련소’로 여겨지던 시기였다. 셋째, 1860년에서 1900년까지의 시기로서, 교회의 훈련소로서의 주일학교의 역할이 더욱 견고해진 시기였으며, 영적 대각성운동의 영향을 많이 받은 시기였다. 넷째, 진보주의 종교교육가들의 주도 아래 종교교육협회가 시작되었던 1903년에서 경제공황의 1929년까지이며, 이 시기에는 하나님의 내재성, 성장, 인간 본성의 선함, 역사적인 예수 그리고 존 듀이의 철학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또한 이 시기는 심리학과 교육과의 관계가 밀접한 연결이 있던 시기이기도 하다. 다섯 째, 경제공황의 시작에서 신정통주의의 시기까지이며, 이 시기에는 교과목과 지식에 강조를 두었다. 여섯째, 1960년대의 중반에서 현재까지의 시기이다. 이 시기는 새로운 기독교 교육의 정체성을 탐구하는 시기로서, 기독교교육의 접근방법의 다양성이 나타나고 있는 시기이다.
여섯 가지의 시기구분에서, 첫 번째의 시기에 해당하는 주일학교에서의 교육과정은 기본적인 지식과 경험의 종합이었는데, 레이크스의 주일학교 교육과정의 일차적인 목적은 3R(읽기, 쓰기, 셈하기)에 관한 것이었다. 이러한 3R의 기본에 근거하여 다음의 내용들이 포함되었는데, 태도, 위생학, 쓰기, 기본적인 기독교 계명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초기의 주일학교 교육과정은 지식으로서의 교육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레이크스에 의해서 시작된 어린이를 위한 주일학교는 20세기가 되기 전에 이미 모든 연령을 위한 종교학교로 변화될 정도로 많은 호응을 받게 되고, 영국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주일학교는 1825년경부터 교육과정은 수업을 위한 계획으로 나타나기 시작하였고, 이는 성경의 공과체제로 나타났다. 미국 주일학교연합은 성경을 일년에 4분기로 나누어서 공부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각 분기 말마다 시험을 치르는 것으로 하여 일 년에 49과를 배울 수 있도록 구성한 “통일공과체제”를 시작했다. 1827년에 통일공과는 5년을 주기로 한 과정을 마칠 수 있게 제작되었다. 1870년대의 교육과정은 선택된 내용, 순차성 강조, 각 주제에 대한 시간의 길이, 평가수단, 교수전략 등을 포함하는 성경수업을 위한 계획을 의미하게 되었다. 이러한 통일공과의 조직원리의 중심은 성경내용이며, 순차성의 경우는 7년을 주기로 하다가 6년을 주기로 구성되었다.
통일공과에 대한 반응으로 1908년에는 “개별계단공과”가 나오게 되었는데, 이는 일반학교의 경우처럼 매년 다른 공과가 제공되는 형태였으며, 통일공과에 비해서 교사교육이 많이 필요하게 되었다. 공과의 세 번째 형태는 1922년에 3년 주기의 “그룹계단공과”의 형태로 나왔는데, 이는 각 학년별 공과의 차별성뿐만 아니라, 방법과 접근에 있어서도 차이가 있어야 함을 강조한 것이며, 1945년에는 “순환계단공과”로 불려지기도 하였다. 계단공과에 대한 이론적 기초를 제공한 코우(George A. Coe)는 교육과정은 자료 중심적인 교육과정에서 학습자 중심 교육과정으로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언급하고 있다. 이는 학습자들의 다양한 경험을 조사하는 일과 그러한 경험들에 대한 해답을 주기 위하여 성경으로 나아가는 일 등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학습자 중심의 교육과정에 대한 관심은 경제공황과 신정통주의의 출현으로 그 축이 변화하게 되었다. 경제공황과 신정통주의 이외에 다양한 사상에 영향을 받은 20세기 이후의 교육과정에 대해서는 제 3절에서 언급하도록 할 것이다.
상상력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기독교 교육학자로는 제임스 파울러, 토마스 그룸, 엘리자베스 무어, 제임스 로더, 마리아 해리스, 샤론 팍스, 크레이그 다익스트라, 그리고 호레이스 부쉬넬 등이 있다.
이들을 세이무어와 밀러가 기독교교육학을 다섯 유형으로 분류한 종교수업, 신앙공동체, 발달심리학적접근, 해방신학적 접근, 해석학적 접근 등에 따라서 구분해 보면 다음과 같다.
호레이스 부쉬넬은 대각성운동 시대의 칼뱅주의에 반대하면서 원래의 칼뱅주의에 근거한 종교교육을 말하였다. 종교개혁 이후 박해를 받던 개신교도들은 미국으로 이주하기 시작했는데, 신대륙에 칼뱅주의를 도입시켰던 주요한 이민의 조류는 첫째, 뉴잉글랜드에 정착했던 청교도의 무리들, 둘째, 네델란드 개혁교회 교인들, 셋째, 프랑스 위그노 교도들, 넷째, 독일 개신교도들, 다섯째, 스코틀랜드계 아일랜드 이주민들 등이다. 이처럼 광범위한 이민과 성장의 결과로, 1776년의 미국 전체인구 3백만 가운데 2/3 정도는 적어도 명목상으로 칼뱅주의자였으며,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과 도르트 신조를 신봉하고 있었으며, 당시의 개혁교회들의 특징은 형식주의와 생동감의 상실이었다. 이러한 영적인 분위기에 대해서 위기의식을 느끼며 대각성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다. 대각성운동이 일어난 곳은 1726년 뉴저지의 라리탄 계곡의 네델란드 개혁교회의 집단에서였다.
프레링후이젠에 의해서 시작된 대각성운동은 뉴잉글랜드에서는 조나단 에드워즈에 의해서 전개되어 나갔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칼뱅주의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무엇보다 하나님의 주권과 예정론을 강조했다. 그리고 에드워즈는 대각성운동이 인간의 노력이나 기교에 의해서가 아닌 “성령의 역사이며, 건전한 교회의 증명”이라고 말했다. 에드워즈는 이처럼 인간의 노력을 스스로 행사하는 것에 대해서 칼뱅주의 예정론의 입장에서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에드워즈는 그의 설교에서는 감정적인 측면을 강조하곤 했다. 이러한 그의 대부분의 정의적인 설교는 이미지를 사용하는 것이었다. 에드워즈에게서의 자연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어주는 ‘이미지’이다. 따라서 에드워즈는 단수의 이미지라고 하기보다는 복수의 ‘이미지들’이 자연 가운데 존재함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에드워즈가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이미지는 ‘빛’에 대한 이미지였다. 이미지들에 대한 강조를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무엇을 하든지, 우리는 신적인 것들(divine things)을 볼 수 있으며, 이러한 것들은 성경에서도 나타나 있다. 왜냐하면 이러한 것들과 성경 사이에는 놀라운 일치가 있다.”는 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가정의 유기적인 연합을 부쉬넬은 다음과 같이 좀더 자세하게 언급하기를 첫째, 인간은 누구나 유기적인 관계에서 분리되어 온전한 개인으로 존재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그런 유기적 연합이 가정만큼 두드러진 곳은 없다고 본다. 둘째, 한 세대는 다른 세대의 자연적인 자손이라는 사실에서 가정의 유기적 연합을 발견한다. 자손과 선조의 닮음의 경우에서 이를 알 수 있다. 셋째, 관련의 법칙 아래에서 성격을 지배하고 있는 힘이 어떤 계획된 의도가 없이도 발휘된다. 이는 양육의 중요성을 말하는 것으로, 어린이는 그가 보는 모든 것으로부터 오는 인상을 향하여 열려있다. 그러므로 어린이의 성격은 양육의 원칙에 의해서 많은 영향을 받는다. 넷째, 가정의 ‘공동정신’(common spirit)에 의해서 자녀들의 인격은 형성되어진다. 다섯째, 가정의 ‘유기적인 일’(organic working)이라고 일컬어지는 것을 통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공통적인 가족 일을 통해서 자녀들의 인격에 영향을 주려고 고의적으로 노력하지 않아도 피차 간의 이러한 일을 통해서 영향을 주고 받게 되는 것이다.
이상의 다섯 가지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은 부쉬넬의 핵심주장이 된다. 즉 “어린이는 기독교인으로 성장해야 한다. 그 밖에 다른 어떤 존재로 여겨져서는 안 된다.” 부쉬넬의 이러한 어린이 이해는 자연적으로 부모의 교육적인 책임을 강조하고 있으며, 이러한 책임은 영적인 성장뿐만 아니라 육적인 성장, 그리고 주입적인 교육이 아니라 대화를 중요하게 여기는 데서 나타나야 함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부쉬넬의 신학적인 성향에 대하여 가랜드 노트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첫째, 부쉬넬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회심을 포함하여 그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하여 자연적인 과정들(natural process)을 사용하실 수 있고 또 사용하셨음을 말한다. 동시에 부쉬넬은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역사를 부인하지 않고 있다. 둘째, 자유주의자들은 인간의 선함과 진보에 대하여 낙관주의적인 입장을 갖고 있지만, 부쉬넬은 가족의 권위를 말하면서, 부모의 권위는 하나님으로부터 위임받은 것이며, 부모는 권위로 다스릴 필요가 있음을 말하고 있다. 셋째, 자유주의자들은 성서를 신적인 계시라고 하기보다는 인간의 종교적인 경험의 한 기록처럼 여긴다. 그러나 부쉬넬은 그의 저술에서 성경의 권위를 존중하고 있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는 성경을 많은 책 가운데 하나의 자료가 아니라, 기독교적 양육을 위한 최고의 권위적인 것으로 사용하고 있다. 넷째, 윤리적인 진리는 하나님에게서 그 기원을 갖고 있기보다는 인간의 경험에서 발견하는 것이라는 자유주의 사상과 예수의 신성을 배제하고 예수님의 인성을 강조하는 자유주의 경향 모두에 대하여 부쉬넬은 반대하고 있다. 이상의 가랜드 노트의 부쉬넬 이해에 근거하여 볼 때, 부쉬넬을 자유주의적인 노선에서 이해하려는 것은 부쉬넬의 올바른 이해라고 할 수 없다.
낭만주의사상을 뉴잉글랜드 신학에 도입한 호레이스 부쉬넬은 과학적인 이성보다는 시적인 감수성을 제안하고 있으며 상징(symbol)을 중요하게 여긴 결과로 상상력을 중요하게 여겼다.
부쉬넬은 콜리지의 「반성에 대한 도움들」(Aids to Reflection)에서 다음의 내용들을 자신의 사상으로 정리하였다.
① 언어는 인간의 사상과 종교적 신앙의 핵심이다.
②언어의 가장 높은 형태는 상징적인 것이다.
③구속의 기독교리는 문자적 문장(literal statements)이라고 하기보다는 은유적 또는 상징적인 표현이다.
④상징적인 의식은 상상력의 행위이다.
⑤기독교는 이론이나 사색(speculation)이라고 하기보다는 삶이다.
⑥자연은 원인과 결과의 기계적인 체제이지만, 영적인 또는 초자연적인 것은 의지의 영역이며, 이는 기계적인 영역 안에서 설명될 수 없다.
⑦자연과 초자연은 유기적인 체제를 구성하고 있으며, 자연, 인간, 하나님에 대한 반성은 유기적인 관련을 유지하는 사고의 한 형태이다.
제임스 로더의 상상력 이해를 신학적인 상황 아래서의 상상력 이해라고 이해하고 있는 다익스트라는 상상력과 계시와의 관계를 말하고 있다. 다익스트라는 “계시는 상상력의 변형(transformation)의 경험이며, 우리의 인격 또는 봄에 대하여서 그리고 삶의 근본적인 방법은 상상력의 변형이 일어날 때 변화하게 된다.”고 보았다. 다익스트라는 상상력을 인간 자아의 가장 근본적인 차원이라고 보았으며, 도덕적인 변화와 성장은 상상력에 의한 계시로 말미암아 가능함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상상력에 의한 계시로 말미암는 인격의 변화를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이야기’와 함께 시작하는 것임을 말하고 있다.
상징을 심리학적으로 이해한 대표적인 학자로는 프로이트와 융을 들 수 있다. 프로이트의 “꿈속에서의 상징은 거의 모두 성적인 대상이나 관계를 표현하는 데에 이용되고 있다는 사실이다.”는 말과 같이 프로이트에게 있어서의 상징이라는 개념은 꿈의 한 제한된 경우일 뿐인 것으로 취급되고 있다. 프로이트에게 있어서의 상징들이란 억압된 것들의 단순한 위장에 불과한 것들이었다.
프로이트는 모든 상상은 행복한 사람이 아닌 불만족의 사람에게만 있는 것이라고 보았지만, 융에게 있어서 이미지들은 안내된 상상들이 인간의 의식 넘어 있는 양상(모습)들로부터 나오는 동안 만들어진다. 그리고 이미지들은 융이 ‘그림자’(shadow)라고 부르는 것을 나타낼 수 있는 것이며, 이미지는 인간이 의식적인 차원에서 깨닫지 못하는 감정들과 경험들이기도 하다. 즉 안내된 이미지들은 묻혀 있는 갈등들을 이미지들이 직면하고 있는, 그리고 희망적인 해결을 위해서 표면으로 나타나게 하는 한 방법으로 보고 있다.
꿈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 프로이트는 꿈을 내적인 갈등의 표현 수단으로 또는 잠재적인 소망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는 반면에, 융에게 있어서의 꿈은 정상적이며 무의식의 창조적인 표현으로 이해되고 있다.
심리학적 접근에서의 상상력을 말하고 있는 기독교 교육학자로는 발달심리학의 제임스 파울러와 샤론 팍스 등이 있다. 신앙의 발달단계 이론을 밝힌 제임스 파울러는 신앙(Faith)을 상상력으로서의 신앙(Faith as Imagination)으로 이해하고 있다. 이는 제임스 마이클 리가 신앙은 종교의 한 측면-다른 측면들은 소망, 사랑 등-임을 말하고 있음과 신앙은 종교의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은 되지 못함을 말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파울러는 종교보다 더 깊은 차원으로 신앙을 이해하고 있다. 파울러에게서의 신앙은 지적 또는 정의적 또는 의지적인 어느 한 측면만의 신앙이 아닌 전인적인 것이었으며, 이는 상상력의 전인적인 이해와 일치하는 점에서 신앙과 상상력을 유비적인 관계로 이해하고 있다.
파울러에게 있어서의 신앙은 무엇보다 우리의 ‘삶을 살아가는 힘의 장들’에 일관성을 부여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이러한 신앙의 이해는 상상력의 ‘종합하는 힘’(Einbildungskraft)과 유사한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파울러는 신앙 이해와 상상력 이해를 유사하게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파울러는 상상력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신앙은 이미지를 형성하는 기능을 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한다는 점에서 신앙과 상상력을 유사하게 보고 있다.
신앙 또는 상상력에 의해서 형성되는 이미지에 대하여 파울러는 다음의 여섯 가지를 말하고 있다.
①개념보다 더 깊고 우선적인 것이 이미지이다.
②이미지는 정보와 감정을 통합하는 역할을 한다.
③이미지는 우리의 삶에서 일어나는 어떤 상태와 그것에 대한 smRLa들에 대하여 모호하게 느껴진 내적표상의 의미를 가진다.
④이미지는 인간의 ‘앎’
의 기본이 된다.
심리학적 접근에서의 샤론 팍스와 파울러, 특히 파울러는 상상력을 종합하는 힘으로 이해하고 있으며, 신앙의 발달단계 이론에서 신앙발달은 결국 종합을 향한 신앙의 발달과정임을 언급하고 있다. 파울러는 신앙의 발달단계를 직관적-투영적 신앙의 단계, 신화적-문자적 신앙의 단계, 종합적-인습적인 신앙의 단계, 개인적-성찰적인 신앙의 단계, 결합적인 신앙의 단계, 보편화된 신앙의 단계로 구분하고 있는데, 이러한 신앙의 발달단계에서 결합적인 신앙이란, 그 이전의 개인적-성찰적인 신앙의 특징인 ‘either-or’에서 ‘both-and’로 나아가는 특징을 말하고 있다. 결합적인 신앙의 단계에서는 ‘변증법적인 앎’(dialectical knowing)보다는 ‘대화적인 앎’(dialogical knowing)의 인식론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다. 대화적인 앎에서는 아는 자와 알려지는 자(것)에 대한 관계는 ‘I-Thou'의 관계이며, 관계성에 있어서 상호보완성과 상호성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세계에 대한 이해에서는 다중적인 구조이해를 지니고 있다.
성인 교육론자인 말콤 노올즈는 지금까지의 학습이론은 어린이를 강압적인 조건 아래에서 가르친 경험으로부터 나온 것임을 말하면서, 이를 페다고지(pedagogy)라고 명하고 있다. 또 페다고지의 문제점 중에 하나는 지식의 전수에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안으로 안드라고지를 말하고 있다. 안드라고지는 성인학습자들의 특성에 관한 네 가지의 가정을 전제로 하고 있다.
①성인의 자아개념(self-concept)은 의존적인 인격으로부터 자기 지시적인 인격으로 변화된다.
②성인은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으며, 이 경험은 외적인 경험이 아닌 그의 내적인 경험이다.
③성인학습자들은 사회적인 역할의 발달과업을 지향하고 있다.
④성인학습자들은 배운 지식의 적용에 있어서의 지연보다는 즉각적인 적용을 원하고 있으며, 이러한 경향에 따라 과목중심보다는 문제중심의 학습으로의 변화가 요구된다.
말콤 노울즈의 안드라고지는 굳이 연령적인 의미에서의 성인을 위한 교육원리라고 하기보다는 페다고지로 호칭되는 전수직의 교육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다. 따라서 말콤 노울즈의 안드라고지는 모든 연령을 위한 교육원리로도 이해할 수 있다.
말콤 노울즈의 안드라고지의 이론에 근거한 맥켄지(Leon McKenzie)는 “성인 종교교육의 경우에 보편적인 관념은 권위에 의한 신학적인 지식이 종교교육을 구성하고, 그리고 종교교육의 목적은 앞선 패러다임에 따른 성인들의 형성(formation)이다. 이러한 강조가 때때로 타당한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형성(교육)은 교육의 하나의 목적에 불과하다. 비판적인사고, 정직한 의심의 표현, 그리고 당황하게 하는 질문제기 등을 위한 여지가 있어야 한다. 너무 많은 부분에서 교수는 권위적으로 말하는 것으로 알려져 잇고, 학습은 들음 그리고 수용과 동일한 것으로 되어있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맥켄지의 비판은 성인 학습자들은 교사와의 차이점 그리고 학습자들 간의 차이점에 대해서 말할 수 있도록 격려되어야 함과 교회와 세속이라는 이분법의 타파, ‘생 경험(lived experience) 강조 그리고 결과내용과 과정내용의 종합 등의 성인 종교교육으로 나타나고 있다.
차이점의 격려을 위하여 루엘 하우(Reuel howe)는 독백적인 교수보다는 대화적인 교수의 필요성을 다음과 같이 강조하고 있다. “교회는 신앙을 단어의 사용으로만 너무 많이 표현된 것에 비해서 관계성의 언어로는 너무 적게 사용하였다. 그 결과 사람들이 그들 자신의 경험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받지 못하였거나 또는 이러한 경험의 의미는 설교 또는 공식적인 교수 안에 사용된 단어들의 의미와의 관계성을 갖게 되는 데 도움을 받지 못하였다.
이러한 안드라고지에 의한 성인교육론은 가브리엘 모란의 성인기 이해와 유사성을 지니고 있다. 가브리엘 모란은 성인기 이해에 대한 4가지 유형을 말하고 있는데, 첫째, 외설적인(pornographic) 이해이다. 이는 예술적이며 도덕적인 민감성의 저개발을 말하며, 성인기의 지배적인 관념에 대한 반대적인 이미지이다. 둘째, 연대기적/생물학적인 면에서의 이해이다. 어린이가 성인이 되는 연령에 대해서는 어떤 변동 또는 차이가 있지만, 연령적인 구분은 성인의 의미를 명확히 한다. 셋째, 합리적, 객관적, 생산적인 개인으로서의 성인 이해이다. 둘째의 이해 유형이 달력에 의존하는 성인 이해라고 한다면, 셋째 유형의 이해는 심리적이며 사회적인 의미에서의 성인 이해이다. 합리성과 성인기를 거의 동의어로 사용하는 유형이다.
넷째, 대립의 통합, 성숙성, 전체성 등으로 성인기를 이해하는 유형이다. 이 유형에서 성인기에는 즐거움과 고통이라는 이분법적인 분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넷째 유형에서의 양극단의 통합은 ①합리성과 비합리성의 통합인데, 이는 부모가 어린이와 놀이를 할 때에 잘 나타나는 통합이다. ②의존과 독립의 종합이다. 이러한 종합을 나타내는 용어로는 ‘상호의존적’ 또는 ‘상호성’이 있다. 상호의존성과 상호성은 인간 간의 관계만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에도 적용된다. 이 유형에서의 성인 자신은 자기 자신을 많은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의 자신을 발견한다. ③삶과 죽음의 통합이다. 성인기의 넷째의 이해는 죽음을 삶의 모든 활동 속에 통합하는 것이다. 성인기 이해에 있어서의 넷째 유형은 인간 그룹들 사이의 교환에 의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음을 가브리엘 모란은 강조하고 있다. 성인기 이해에 있어서 셋째 유형이 남성적인 대명사와 함께 규칙성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넷째 유형의 성인기 이해는 다원성에 대한 관심이 없이는 서술될 수 없기 때문에, 넷째 유형의 이상적인 모습은 통일성과 차별성을 함께 지니고 있는 남녀노소의 연합에 있다.
무엇보다 제임스 파울러에게 있어서 성인기 이해의 독특성은 성인교육과 담화와의 연관성을 말하고 있는 데 있다. 파울러는 그의 신앙단계 이론이 그 자체로 모든 사람의 순례 안에서의 일종의 모든 사람들의 신앙 이야기인 담화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것은 기초가 되는 신앙을 알고 평가하고, 그리고 참여하는 작업의 전개와 발전에 초점을 맞추면서 형식적인 언어로 표현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단계와 단계들 사이의 전환에 대한 설명에서 이야기 형식, 즉 투쟁과 초월의 이야기요, 고통과 혼란 및 의미상실의 이야기이고, 때론 힘든 재구성의 이야기로 되어있다. 파울러는 초월적인 가치의 중심을 상징화하는 방법들로서 이야기들, 의식들, 상징들 등을 포함하고 있으며, 기독교 고전의 담화적 구조를 하나님, 창조, 타락, 자유와 언약, 성육신, 교회, 하나님의 나라의 일곱 가지로 구분하고 있다. 이러한 담화적인 구조는 랜돌프 밀러의 창조, 언약, 그리스도, 교회, 종말 등으로 구속의 드라마를 이해한 것의 확장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파울러의 경우는 밀러가 말하는 구속의 드라마의 확장인 담화구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우리의 삶의 이야기’의 중요성을 말한다.파울러의 성인기와 담화의 관련성 이해는 폴 리쾨르의 시간과 담화의 상관관계 이해와 유사한 점을 지니고 있다. 즉 리쾨르는 시간과 담화의 관계에 대하여 ”시간은 담화적 양식을 통하여 언급되어질 수 있는 한에서 인간적인 것이 되며, 담화는 시간적인 존재의 조건이 충족될 때 완전한 의미를 갖는다.“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