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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주전골, 외옹치마을,수타사를 다녀와서!
주전골은 승려를 가장한 도둑 무리가 위조 엽전을 만들던 곳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지만, 용소폭포 입구에 있는 시루떡바위가 마치 엽전을 쌓아놓은
것처럼 보여 붙여졌다고도 한다. 오색약수에서 용소폭포까지 3.2킬로미터에 이
르는 탐방로는 계곡을 따라 완만하게 이어져 있고, 남녀노소 편하게 걸을 수 있는
데크 길이다. 주전골 트레킹은 탐방지원센터에서 약수교 건너 오색약수를 먼저
맛볼 일이다. 철분이 함유되어 있어 쌉싸래한 맛이 독특하다. 오색약수는 1500
년경 성국사의 승려가 발견한 약수로, 지난 2006년 집중호우 때 유실되었다가
다행스럽게도 다시 약수가 솟아나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2011년 홍천 삼봉약수,
인제 개인약수와 함께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오색약수를 지나면 본격적으로 주전골 탐방로가 시작된다. 계곡을 따라 3.5
킬로미터 구간에 데크가 이어져 있고, 주전골의 자연과 생태, 주전골의 명소
등을 소개하는 22개의 안내 표지판이 곳곳에 남아 있다. 걷기 시작한 지 20분이
채 안 돼 성국사에 이른다. 성국사는 오색약수라는 이름을 짓게 한 오색석사다.
다섯 가지 빛깔의 꽃이 피어나는 나무는 없지만, 신라 시대의 삼층석탑과 돌사자,
돌계단이 되어버린 옛 석물 등 옛 사찰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탐방로는 바닥이 들여다보일 정도로 물이 맑은 계곡과 울울한 숲길을 오가며
이어진다. 계곡 좌우로 기암절벽이 우뚝 솟아 병풍처럼 이어져 있는데, 마치
계곡이 오랜 세월 동안 거친 암반을 깎아내며 물이 흘러내린 듯 계곡 암반과
기암절벽이 이어진 모습이 독특하다. 거대한 암석이 차례차례 포개지며 그 사이
로 물줄기를 쏟아내는 풍경도 압권이다. 계곡 사이로 우뚝 솟은 독주암, 넓은
소를 이루는 선녀탕 등 주전골의 비경이 차례로 이어진다.
흘림골로 가는 삼거리에 이르면 용소폭포는 지척이다. 용소폭포는 주전골 탐방로
의 대미를 장식한다. 하얀 계곡물이 붉은빛을 띠는 부드러운 암반 사이로 미끄러
지듯 떨어진다. 주전골 트레킹은 용소폭포에서 다시 되돌아가야 한다. 오는 내내
뒤돌아보지 않았다면 오색약수로 가는 길에 또 다른 선경을 만난다.
출처:(대한민국구석구석 여행이야기, 한국관광공사)
용소폭포 [龍沼瀑布]
설악산국립공원 남설악 지구의 주전골(주전계곡)에 있는 폭포로 높이는 약 10m이고,
소(沼)의 깊이는 약 7m이다. 옛날 이 소에서 살던 천년 묶은 암수 이무기 2마리가 용이
되어 승천하려 하다가 수놈만 승천하고 암놈은 미처 준비가 안 되어 이곳에서 굳어져
바위와 폭포가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약수터탐방지원센터에서 금강문~용소폭포를 거쳐
용소폭포탐방지원센터에 이르는 3.2㎞ 거리의 주전골 코스는 오르내림이 거의 없이 평탄
하며, 산행 시간은 약 1시간 20분이 소요된다. 한편, 인제군 용대리 방면의 구곡담계곡
관음폭포 아래에도 같은 이름의 폭포가 있다.
출처:(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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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국사(城國寺)
오색약수터를 지나면 만나게 되는 작은 사찰 성국사는 신라 말 가지산 문의
개조 도의가 창건했다. 성주산 문의 개조인 무염이 이 절에서 출가했다고
전해질 뿐 절의 역사는 알려진 바 없다. 절 뒤뜰에 다섯 가지 색깔의 꽃이
피는 나무가 있어 이름을 오색석사라 짓고 인근 지명도 오색리로 바꿨다. 절
아래 계곡 암반에서 나오는 오색약수도 이 절의 승려가 발견했다고 한다.
이 절은 오랫동안 폐사로 방치되다가 근래에 인법당을 세우고 성국사라 이름
하여 명맥을 잇고 있는데 계절에 따라 녹음, 단풍, 설경 등 멋진 자연경관이
펼쳐져 설악산을 찾는 많은 이들의 발길을 머물게 한다. 고급스러운 건축물과
넓은 주차장, 쉼터가 잘 조성돼 있어 관광지로 안성맞춤이다. 상설 시설 이외
에도 어린이를 위한 공간도 많고 체험학습실 등을 운영하고 있어 여러 방문객
들의 문화 활동에 기여하고 있다. (출처: 강원도청)
출처:(대한민국 구석구석, 한국관광공사)
양양 오색리 오색약수(襄陽五色里五色樂水)
강원도 양양군 서면 오색리에 있는 약수터.
천연기념물 제529호. 양양 서쪽 20㎞, 한계령 동남쪽 5㎞ 지점에 위치하며,
설악산 대청봉에서 서남쪽으로 8㎞ 지점에 있다. 약수마을에서 개울을 따라
200m 정도 가다 보면 대구집교라는 다리 밑 너럭바위 위의 암반에서 약수
가 솟아 오른다. 하루 채수량은 1,500ℓ이며 수량과 수온은 항상 일정하다.
수질은 산성과 탄산수로 철분이 특히 많아 위장병·빈혈증·신경통·신경쇠약·
기생충 구제에 특효가 있다.
1500년경성국사(城國寺)의 승려가 반석에서 용출하는 천맥을 발견하여 약수로
판명되었고, 오색약수라는 이름은 당시 성국사 후원에
특이한 오색화가 있어 명명한 것이라 한다.
약수터는 설악산의 아름다운 계곡 중 하나인 주전골의 입구가 되고 설악산 등반의
주요 입구가 된다. 또한, 주변에 오색온천이 있어 약수·온천, 아름다운 계곡 등이
어우러져 남설악 관광의 주요 지점이 된다. 교통도 한계령을 넘어 양양으로 가는
도로연변에 있어 연중 관광객이 찾아든다. 그러나 2006년 집중호우로 인해 약수터
가 모두 사라져서 안타까움을 샀지만 다시 약수가 샘솟는 곳을 찾았다. 2002년부터
이곳에서 오색약수 온천축제가 진행되고 있다. 2011년 천연기념물 제529호로
지정되었다. 오색약수터는 현남 IC에서 양양방면으로 오다가 양양삼거리에서
인제·원통방향으로 2분 정도 가면 있다.
『강원문물』(강원문물편찬실, 1973)
양양군(www.yangyang.go.kr)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 한국학중앙연구원)
물치항(물치마을)
설악산 진입구에 위치하여 가을 단풍철 설악산 여행이나 여름 피서에 나선
많은 관광객들이 물치항을 찾는다. 아름다운 바다 풍경을 조망하여 동해
연안 청정해역에서 갓 잡아올린 싱싱한 활어를 저가로 맛볼 수 있는 곳이
바로 물치리. 물치항 주변에는 민박 및 각종 숙박시설이 잘 갖춰져, 침실
에서 일출을 감상할 수 있어 연인과 가족단위의 관광객이 많이 찾고 있다.
출처:(대한민국 구석구석, 한국관광공사
외옹치마을은 한 쌍의 장승과 짐대가 서 있는데 위치는 속초로 가는 해안가의 마을
입구에 세워져 있다. 원래 장승과 짐대는 현재 위치보다 더 가까이 마을 쪽에 서 있
었는데 1984년의 수해로 인해 새로 집터가 형성되고
신작로가 나면서 위치가 바뀌게 되었다.
재질과 형태 : 지하대장군 바로 옆에 짐대가 세워져 있는데 오릿대라고도 부르며
흔히 볼 수 있는 오리 모양을 하고 있으며 높이는 약 3m로 장승과 마찬가지로 소나무
로 만들어져 있다.
기능 : 솟대는 크게 새의 모양과 솟대의 세워진 위치에 따라 기능을 달리하는데 외옹치
마을 솟대는 오리 모양으로 새의 부리는 해안과 반대방향인 마을을 향하고 있는데 이는
주민들은 새의 부리가 향하는 곳은 바다와 반대방향으로 새가 부리로 쪼아서 마을을
지켜준다고 한다. 이처럼 마을지킴이로써의 역할, 무사태평과 풍농, 질병, 재액의 방지
등 장승과 솟대에 함유된 주기능을 지니고 있으며 마을 입구에 세워두어 액막이형
솟대로서 밖의 나쁜 액과 마을 안의 좋은 기운이 만나는
경계에서 액을 막아주는 기능을 한다.
• 특징 : 외옹치 사람들은 성황제가 치뤄지는 시기에 맞춰 장승을 새로 깎아 세우며, 장승 앞에서 대에 신내림을 받는 골맥이굿을 지내며 장승제를 치룬다. 성황제가 열린다해도 장승
이 그때까지 잘 보존돼 있으면 새로 깎지 않지만, 최근 들어서는 성황제를 치룰 때마다
마을 장정들이 장승을 새로 세운다. 또한 외옹치마을은 솟대마을로 지정되어 도로
주변의 가로등을 현대적인 갈매기 형의 솟대로 구성했음을 볼 수 있고 장승과 짐대가
서 있는 주변에도 현대적인 솟대가 어우러져 전통과 현대의 조형물이 도로 주변의
미관을 아름답게 하고 있다.
개괄
대포동은 활어횟집으로 명성을 얻고 있는 곳으로 외옹치는 대포동 5통에 속한다.
이곳 성황신은 ‘암성황’이라고 하는데 제사는 매년 음력 3월 3일과 9월 9일 자시
무렵에 지내고 있다. 성황당 안에는 위패와 화상이 있으며 제물은 가을 제사 때
소머리를 올려놓는다. 마을에서 성황제를 지내는 동안 제관 2명이 따로 내려와 마을
입구에 있는 장승에게 간다. 장승을 이 마을에서는 ‘골맥이성황신’이라고 하는데
간단하게 제물을 차리고 술잔을 올리고 재배한다. 다음에 “새 옷 입힌다”며 장승에
문종이와 실을 폐백으로 매달고 절한다. 장승에 걸어놓은 이전의 폐백은
불에 태우고 고사는 천하대장군부터 지낸다.
제의내용
대포동은 활어횟집으로 명성을 얻고 있는 곳으로 외옹치는 대포동 5통에 속한다.
이곳 성황신은 ‘암성황’이라고 하는데 제사는 매년 음력 3월 3일과 9월 9일 자시
무렵에 지내고 있다. 성황당 안에는 위패와 화상이 있으며 제물은 가을 제사 때
소머리를 올려놓는다. 마을에서 성황제를 지내는 동안 제관 2명이 따로 내려와 마을
입구에 있는 장승에게 간다. 장승을 이 마을에서는 ‘골맥이성황신’이라고 하는데 간
단하게 제물을 차리고 술잔을 올리고 재배한다. 다음에 “새 옷 입힌다”며 장승에 문종
이와 실을 폐백으로 매달고 절한다. 장승에 걸어놓은 이전의 폐백은 불에 태우고 고
는 천하대장군부터 지낸다. 이 마을의 장승과 짐대가 서 있는 곳은 조양동 해안가로
진입하여 바닷가 외옹치 마을 입구다. 본래 장승과 짐대는 현재보다 마을 쪽에 가까이
있었는데 1984년 수해 때 주택이 들어섬에 따라 신작로 길이 꺾여져 마을로 들어오
곳으로 옮겼다고 한다. 길 양쪽에 있는 한 쌍의 장승이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데 오른
쪽 밭 가운데에 천하대장군이라고 글씨를 써놓은 숫장승과 짐대, 그 왼쪽에 지하
대장군과 짐대가 있다. 두 장승은 소나무에 붉은 칠을 했으며 높이는 120㎝정도다.
천하대장군은 머리에 상투형태를 했으며, 검은 색으로 눈을 그리고, 코는 양각으로
파냈다. 이에 반해 지하대장군은 상투는 없고 얼굴 형상을 그렸다. 장승의 하단부에
는 실과 한지를 묶어 놓았으며, 짐대는 3~4m 높이에 갈매기 모양의 새를 올려놓
았다. 주민들은 새의 부리가 향하는 곳은 바다와 반대방향으로 새가 부리로 쪼아서
마을을 지켜준다고 한다. 장승과 짐대는 3년마다 새로 깎아 세운다. 외옹치 밧독재
마을의 장승제는 영동지방 마을제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것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주민들은 재수가 없거나 고기가 잘 잡히지 않으면 장승에 가서 개인적으로
치성을 올린다. 장승에 비해 짐대는 동해안 강릉시 옥계
낙풍, 금진, 월호평동, 송정동에 남아 있다.
제당의 형태
• 위치 : 외옹치 포구로 들어오는 도로 입구 좌측에 야트막한 산 속칭 봉끝 정상에
자리하고 있는데 돌계단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숲 안에 성황당이 위치해 있다.
성황당은 단 칸의 기와집으로 지붕은 팔작지붕이고 당집 둘레에 시멘트담을 둘렀다.
• 좌정된 신격 : 성황당 내부에는 城隍神圖와 수부圖가 전면벽에 걸려있다. 이 그림
사이를 판자로 칸을 지었고 좌우측벽에 성황님과 수부의 옷이라고 생각되는 흰실과
한지를 걸어 놓았다. 제물을 진설할 수 있는 제단은 폭 50cm 정도로 좌우벽까지
연결되어 있고 그 위에 城隍大神之位라는 위패가 놓여 있었다. 당집은 人共 때 불타
없어졌다가 30~40년 전에 현 당집과 神圖를 복원했다고 한다. • 특징 : 대포동 외옹
치 성황신은 ‘암성황’ 이여서 제물은 특히 말머리(성황제에 쓰이는 수소머리를 특히
말머리라고 함) 와 우량을 꼭 쓰며 수부신은 백마를 거느리고 성황님의 使者역할을
하는데 수부신의 제물도 성황님에게 쓰던 것을 옮겨 쓴다. 또한 당집 근처에는 수령을
알 수 없는 큰 소나무 숲을 이루고 있는데 마을 사람들은 성황당에는 평상시 출입을 삼
가고, 뱃고사를 지낼 때나 마을제사를 지낼 때 출입하며 마을을 지키는 신이 있는 성역
으로 성황당을 의식하고 있다. • 제의 소멸과 변천 : 현재도 매년 음력 3월 3일날과
9월 9일 2회에 걸쳐 제를 올리고는 있으나 여느 다른 마을과 마찬가지로 전승이 약화
되는 추세이며 3년에 한번 씩 음력 9월 9일날 오후 1시부터 성황굿을 연행하고 있다.
솟대
• 명칭 : 강원 지역에서는 솟대를 ‘짐대’, ‘오릿대’라고 부른다.
• 위치 : 외옹치마을은 한 쌍의 장승과 짐대가 서 있는데 위치는 속초로 가는 해안가
의 마을 입구에 세워져 있다. 원래 장승과 짐대는 현재 위치보다 더 가까이 마을 쪽에
서 있었는데 1984년의 수해로 인해 새로 집터가 형성되고 신작로가 나면서 위치가
바뀌게 되었다. 재질과 형태 : 지하대장군 바로 옆에 짐대가 세워져 있는데 오릿대라
고도 부르며 흔히 볼 수 있는 오리 모양을 하고 있으며 높이는 약 3m로 장승과 마찬
가지로 소나무로 만들어져 있다.
기능 : 솟대는 크게 새의 모양과 솟대의 세워진 위치에 따라 기능을 달리하는데 외옹치
마을 솟대는 오리 모양으로 새의 부리는 해안과 반대방향인 마을을 향하고 있는데 이
는 주민들은 새의 부리가 향하는 곳은 바다와 반대방향으로 새가 부리로 쪼아서 마을을
지켜준다고 한다. 이처럼 마을지킴이로써의 역할, 무사태평과 풍농, 질병, 재액의
방지 등 장승과 솟대에 함유된 주기능을 지니고 있으며 마을 입구에 세워두어 액막이형
솟대로서 밖의 나쁜 액과 마을 안의 좋은 기운이 만나는
경계에서 액을 막아주는 기능을 한다.
• 특징 : 외옹치 사람들은 성황제가 치뤄지는 시기에 맞춰 장승을 새로 깎아 세우며,
장승 앞에서 대에 신내림을 받는 골맥이굿을 지내며 장승제를 치룬다. 성황제가 열
린다해도 장승이 그때까지 잘 보존돼 있으면 새로 깎지 않지만, 최근 들어서는 성황제
를 치룰 때마다 마을 장정들이 장승을 새로 세운다. 또한 외옹치마을은 솟대마을로
지정되어 도로 주변의 가로등을 현대적인 갈매기 형의 솟대로 구성했음을 볼 수 있고
장승과 짐대가 서 있는 주변에도 현대적인 솟대가 어우러져 전통과 현대의 조형물이
도로 주변의 미관을 아름답게 하고 있다.
참고자료
문화콘텐츠닷컴 원문보
수타사 [壽陀寺]
강원도 홍천군 동면 공작산(孔雀山)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제33대 성덕왕 당시 창건된 사찰
내용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月精寺)의 말사이다. 708년(성덕왕 7)에
창건되어 우적산(牛跡山) 일월사(日月寺)라 하였으며 영서지방의 명찰로 손꼽혀
오다가 1568년(선조 2)에 현위치로 이건(移建)하면서 수타사(水墮寺)라 하였다.
그 뒤 임진왜란의 병화로 완전히 불타버린 뒤 1636년(인조 14)에 공잠(工岑)이
중건하였고, 1644년에 학준(學俊)이 당우(堂宇)를 확장하였다. 1647년에는 계철
(戒哲)과 승가(僧伽)가 승당(僧堂)을 새로 건립하였고, 1650년(효종 1)에는 도전
(道佺)이 정문(正門)을 세웠으며, 1658년에는 승해(勝海)와 정명(正明)이 흥회루
(興懷樓)를 세웠다. 1670년(현종 11)에는 정지(正持)와 정상(正尙)과 천읍(天揖)
이 대종(大鐘)을 주조하여 봉안하였고, 1674년에는 여담(汝湛) 등이 사천왕상을
조성하였다. 그 뒤에도 여민(汝敏)·지해(智海)·지행(智行)·성민(性敏)·찬징(贊澄)·
선찰(善察)·성념(省念)·찬원(贊源)·상흘(尙吃) 등이 1683년(숙종 9)까지 계속하여
청련당(靑蓮堂)·향적전(香積殿)·백련당(白蓮堂)·송월당(送月堂) 등의 당우들을 차례
로 중건하여 옛모습을 재현하였다. 현재의 이름으로 바꾼 것은 1811년(순조 11)이다.
그 뒤에도 1861년(철종 12)에 윤치(潤治)가 중수하였고, 1878년(고종 15)에는
동선당(東禪堂)을 중건하고 칠성각(七星閣)을 신축하였다. 1976년 심우산방을 중수
하였고, 1977년에는 삼성각을 지었으며, 1992년에는 관음전을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적광전(大寂光殿)을 중심으로 흥회루와 봉황문(鳳凰門,
또는 天王門)이 앞에 있으며, 좌측에 심우산방(尋牛山房, 또는 東別堂)이 있고 좌측에
는 요사채가 배열되어 있다. 또한, 뒷편에는 삼성각(三聖閣)과 성황당이 있는데, 성황당
이 있는 것은 특이하다. 이 중 대적광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에 팔작지붕의 다포집으로
1497년 공잠이 이건, 중창한 것이며,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7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밖에도 보물 제745호로 지정된 『월인석보(月印釋譜)』 제17권과 제18권이 보존
되어 있고, 기단부와 옥개석만이 남아 있는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11호로 지정된 고려
말기의 3층석탑이 있다. 또한, 이 절을 거쳐간 고승 중 청송당(靑松堂)·기허당(騎虛堂)
·서곡(瑞谷)·유화당(遊華堂)·중봉당(中峯堂)·홍파(洪波)·홍우당(紅藕堂) 등의 부도가
있으며, 사리탑비(舍利塔碑)는 서곡의 것만 남아 있다총 2,999평의 대지에 171평의
건물을 갖춘 이 절은 풍수로 볼 때 공작포란지지(孔雀抱卵之地)라는 명당이며, 주위는
동용공작(東聳孔雀)·서치우적(西牛迹)·남횡비룡(南橫飛龍)·북류용담(北流龍潭)으로
표현되는 포근한 골짜기에 있다.
『건봉사본말사적(乾鳳寺本末寺蹟)』
『한국사찰전서』(권상로 편, 동국대학교 출판부, 1979)
『전통사찰총서』 1(사찰문화연구원, 1992)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대포항 속초항 김용님 노래
2020-10-28 작성자 청해명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