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유지족(吾唯知足)
오유지족(吾唯知足)은 네 글자에 모두 들어간 입 구(口) 자를 가운데 쓰고
나머지 네 글자를 상우좌하(上右左下)에 써서 네 글자가 모여 한 글자를 이루고 있다.
일명 오우지족 전(錢) 이라 칭하기도 한다.
글자를 이룬 형상이 네 글짜에 옛 날의 엽전 같이 꿸 수 있는 형태의 모습과 같아 부르는 것이기도 하다.
글자에 풀이 해보면 오유지족(吾唯知足) 나오(吾), 오직 유(唯), 알지(知), 족할족(足)
‘나 스스로 오직 만족함을 안다.’ 라는 뜻이다.
쓸데없는 욕심(欲心)을 버리고 현재(現在) 가진 것에 만족(滿足)하라는 뜻이다.
吾唯知足(오유지족)이란 말은 석가모니(釋迦牟尼)의 마지막 가르침을 담은 유교경(遺敎經)에는
나오는 구절(句節)에서 유래(由來)한다.
‘부지족자 수부이빈 지족지인 수빈이부(不知足者 雖富而貧 知足知人 雖貧而富) ‘족(足)함을 모르는 사람은
부유(富裕)해도 가난하고 족함을 아는 사람은 가난해도 부유하다.’뜻이다.
명심보감(明心寶鑑) 안분편(安分篇)에 “知足者는 貧賤亦樂(지족자 역락)이요,”
“不知足者는 富貴亦憂(부지족자 부귀역우)니라.”말이 있다.
만족(滿足)할 줄 아는 사람은 가난하거나 천(賤)하더라도 또한 즐겁게 살고,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은 부유(富裕)하거나 귀(貴)하더라도 역시(亦是) 근심스럽다.
사회(社會)를 이루는 구성원(構成員)들은 각자(各自) 자신의 처지와 위치(位置)가 있다.
물론(勿論) 보다 나은 미래(未來)를 설계(設計)하면서 부단(不斷)한 노력(努力)으로
성장(成長)하고 발전(發展)해 나가는 모습은 아름답게 보일 것이다.
하지만 허황(虛荒)한 과욕(過慾)과 욕망(欲望)에서 기인(起因)한
비정상적(非正常的)인 수단(手段)과 방법(方法)에 따른
부정(不正)과 불의(不義)는 고금(古今)을 막론(莫論)하고 가장경계(警戒)해야 할 대상(對象)이다.
그렇기에 동양(東洋)의 여타(餘他) 모든 철학(哲學) 사상(思想)에서
항상(恒常) 무욕(無慾)이 중심(中心) 가치(價値)로 규정(規定)되어 왔던 것이다.
공자(孔子)는 논어(論語)에서 자신의 본분(本分)과 책임(責任)이 뒤따르는
진정(眞正)한 인간(人間)다운 행동(行動)을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 제시(提示) 하였다.
즉 임금은 임금 다운 정치를 해야 하고 , 신하(臣下)는 신하 답게 행동 해야 하고 ,
아비는 아비 답게 처신(處身) 해야 하고 ,
자식(子息)은 자식 다워야 한다는 '정명(正名)' 논리(論理) 이면서
어찌 보면 모든 백성이 지켜야 할 기본적인 도리를 말 한 것이다.
결국(結局) 전체(全體) 사회와 국가(國家)의 질서(秩序) 체계(體系)를 가늠하는 가치(價値) 척도(尺度)가 된 것에서
개개인(個個人)의 가치관(價値觀)과 바른 삶의 영위(營爲)가 사회전반(全般)에 미치는 영향(影響)이
막대(莫大) 하다는 것으로 귀결(歸結) 지을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오유지족에 관한 이야기를 여러 가지 전하나 두가지 이야기를 들어 보기로 한다.
오유지족(吾唯知足)의 일화(逸話)
첫번째(番째) 는 옛날에 한 심부름꾼이 상인(商人)과 길을 걷고 있었다.
점심때가 되자 그들은 강가에 앉아 밥을 먹으려 했다.
그때 느닷없이 까마귀떼가 시끄럽게 울어대기 시작(始作)했다.
상인은 까마귀 소리가 흉조(凶兆)라며 몹시 언짢아하는데, 심부름꾼은 도리어 씩 웃는 것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목적지(目的地)에 도착(到着)한 상인은 심부름꾼에게 삯을 주며 물었다.
"아까 까마귀들이 울어댈 때 웃는 이유(理由)가 무엇인가?"“
까마귀들이 저를 유혹(誘惑)하며 말하기를, 저 상인의 짐 속에 값진 보물(寶物)이 많으니
그를 죽이고 보물을 가지면 자기(自己)들은 시체(屍體)를 먹겠다고 했습니다.
아니, 그럴 수가?
그런데 자네는 어떤 이유로 까마귀들의 말을 듣지 않았는가?
나는 전생(前生)에 탐욕심(貪欲心)을 버리지 못해
그 과보(果報)로 현생(現生)에 가난한 심부름꾼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또 탐욕심으로 강도질(强盜질)을 한다면 그 과보를 어찌 감당(堪當)한단 말입니까?
차라리 가난하게 살지언정 무도(無道)한 부귀(富貴)를 누릴 수는 없습니다.
"심부름꾼은 조용히 웃으며 길을 떠났다."
그는 오유지족의 참된 의미(意味)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오유지족이란 남과 비교(比較)하지 않고 오직 자신(自身)에 대(對)해 만족(滿足)하라는 가르침이 담긴 말이다.
두 번째로
1519년 서른 네살 김정국(金正國:1485~1541)은 기묘사화 (己卯士禍)로 선비 들이 죽어나갈 때,
동부승지(同副承旨)의 자리에서 쫓겨나 시골집으로 낙향(落鄕)을 해
고향(故鄕)에 정자를 짓고 스스로 팔여거사(八餘居士)라 불렀다.
팔여(八餘)란
여덟 가지가 넉넉하다는 뜻인데, 녹봉(祿俸)도 끊긴 그가 “팔여”라고 한 뜻을 몰라
친(親)한 친구(親舊)가 새 호(號)의 뜻을 묻자, 은퇴(隱退)한 젊은정객(政客)은 웃으며 말했다.
"토란국과 보리밥을 넉넉하게 먹고, 따뜻한 온돌(溫突)에서 잠을 넉넉하게 자고,
맑은 샘물을 넉넉하게 마시고, 서가(書架)에 가득한 책(冊)을 넉넉하게 보고,
봄꽃과 가을 달빛을 넉넉하게 감상(鑑賞)하고,
새와 솔바람 소리를 넉넉하게 듣고,
눈 속에 핀 매화(梅花)와 서리 맞은 국화(菊花) 향기(香氣)를 넉넉하게 맡는다네.
한 가지 더, 이 일곱 가지를 넉넉하게 즐길 수 있기에 ‘팔여’라 했네.
"김정국의 말을 듣고 친구는 팔부족(八不足)으로 화답(和答)했습니다.
“세상에는 자네와 반대(反對)로 사는 사람도 있더군.
진수성찬을 배불리 먹어도 부족하고,
휘황(輝煌)한 난간(欄干)에 비단(緋緞) 병풍(屛風)을 치고 잠을 자면서도 부족하고,
이름난 술을 실컷 마시고도 부족하다.
울긋불긋한 그림을 실컷 보고도 부족하고,
아리따운 기생(妓生)과 실컷 놀고도 부족하고,
희귀(稀貴)한 향(香)을 맡고도 부족하다 여기지.
한 가지 더, 이 일곱 가지 부족한 게 있다고 부족함을 걱정 하였다고 전 한다
[출처] 오유지족(吾唯知足)|작성자 화풍
첫댓글 너무길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