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러분, 안녕하신가요?
기쁜 소식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뮤지컬 <레 미제라블> 티켓팅에 성공했다는 것!
서울의 신한 블루스케어에서 하는 공연인데, 12월 10일에 가게 되었어요.
그래서 읽었습니다. 원작 《레 미제라블》을요.
도서명: 레 미자라블
저자: 빅토르 위고
* 이 도서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재활통신망 넓은마을 도서관에 데이지 형태로 제작되어 있습니다.
* 소개글 서평
소설 《레 미자라블》은 우리나라에서는 <장 발장>이란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나도 처음 이 작품을 <어린이용 장 발장> 책으로 접했다.
때문에 《레 미제라블》과 <장 발장>이 서로 다른 이야기인 줄 알았던 때도 있었다.
덧붙이자면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 미제라블》을 원작으로 하는 동명의 뮤지컬은 뮤지컬계에서 꽤나 사랑받는 스테디셀러라는 모양이다.
그럼 이제부터 줄거리 및 캐릭터에 대해 적겠다.
자고로 원작을 알고 가야 공연 파악이 수월한 법이니까.
🌌 🌟 🌌
불쌍한 자들의 삶과 투쟁 - 《레 미제라블》
🧎♂️ 장 발장: 불우한 이들의 대표자, 우리가 선해질 수 있다는 증거
“아아, 나는 미제라블(불쌍한 사람)이다!”
사실상 이 소설의 주요 인물인 ‘장 발장’은 매우 가난했다. 그는 식구들을 건사하기 위해 빵 한 덩이를 훔친다. 그 과정에서 유리창 한 장도 깼다.
법원은 그에게 5년 형을 내렸다. 빵 한 덩이 훔치고 유리창 한 장 깬 값으로는 차고 넘치는 형량이긴 했다. 요즘 같았으면 벌금이나 합의로 끝날 법하니 말이다. 👨⚖️
그러나 장 발장이 형기가 거의 끝나가는 시점마다 탈옥을 시도하면서 결국 19년까지 옥살이를 해야만 했다.
장 발장의 불우함은 기나긴 감옥 생활로 끝나지 않는다. 출소 후에 그는 어떻게든 살고자 했다. 일을 하고 여관에서 쉬려고도 했다.
하지만 그가 ‘죄수’였다는 이유로 여관은 숙박을 거부했다. 짐을 나르는 일을 했어도 정당한 일당을 주지 않았다.
결국 장 발장은 다시금 양심을 저버리는 일에 손을 대기로 한다. 호의로 하룻밤 잠자리를 허락해준 주교의 집에서, 그리고 어떤 굴뚝 청소부 소년에게서.
🔎 과연 그를 불쌍하게 만든 것은 무엇일까? 장 발장 자신일까? 아니면 사회의 체제와 그로 인해 초래된 가난일까.
⛪️ 디뉴의 주교: 실천하는 성직자, 어두운 길에서 대신 대가를 치르는 인물
“잊지 마시오. 결코 잊어서는 안 되오. 당신은 정직한 사람이 되기 위해 이 은식기를 쓰겠다고 내게 약속한 일을.” 🕯️
장 발장에게 호의를 보인 인물로 말할 것 같으면, ‘프랑수아 비앵브뉘 밀리에르’라는 제법 긴 이름의 소유자이다. 그가 바로 《레 미제라블》의 선인, 디뉴의 주교이다. 원작 소설의 첫 시작을 여는 게 주인공 장 발장이 아닌, 이 디뉴의 주교일 만큼 꽤 영향력 있는 캐릭터이다.
장 발장은 도둑질로 그 긴 형벌을 받았으면서도, 어쩔 수 없이 또 도둑질을 선택한다. 하지만 결국 거동 수상자로 경찰에게 잡혀 다시 주교의 집으로 끌려오게 된다.
밀리에르 주교는 도둑질 당한 것을 알면서도 장 발장을 반갑게 마지한다. 잃은 물건을 되찾을 수 있기 때문에?
경찰들은 물었다. 그의 가방에서 나온 은촛대가 주교가 준 선물이 맞느냐고.
그는 장 발장에게 왜 은식기는 놓아두고 갔느냐고, 촛대와 함께 이것도 당신에게 주지 않았느냐는 대답으로 장 발장의 혐의를 걷어낸다. 아니, 사실상 그의 죄를 용서한다.
장 발장은 얼떨떨한 기분으로 거리를 방황한다. 그는 자신에게 베풀어진 호의가 현실이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습관적으로 또 강도 짓을 저지르고 만다. 그것도 지나가는 어린 굴뚝 청소부 소년에게서, 자신의 가방에 은식기와 은촛대가 있음에도, 소년이 가진 반짝이는 은화를 빼앗고 만 것이다.
장 발장은 그런 스스로의 모습에 환멸을 느끼고, 주교가 그에게 보여준 선의가 얼마나 값진 것인지를 깨닫는다. 이것은 장 발장이 앞으로 걸어나갈 그의 인생의 주요 분기점이 되었다.
디뉴의 밀리에르 주교의 호의와 선의가 없었다면 장 발장은 끝내 불우하고 불쌍한 자로 남았을지 모른다. 👼
👩👧 팡틴: 모성의 화신, 딸을 위해 자신을 내어준 캐릭터
“우리 코제트는 곧 오게 될까요?”
소설 《레 미제라블》은 장 발장 외에 다른 인물들의 이야기도 풀어놓는다. 그중 하나가 ‘팡틴’이다.
그녀는 어린 딸을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남편은 없다. 그러다 우연히 만난 여관 부부에게 딸을 맡기기로 결심한다. 그녀의 눈에 그 부부가 참 인정 많게 보인 것.
아이를 데리고 취직을 하는 건, 그 시대 사회상으로는 무리가 되었던 모양이다. 아이는 있지만 남편 없는 여자라면 더욱 문제가 되는 것 같다.
🔎 이 부분은 요즘 현실과는 영 동떨어진 대목인데, 어쩌겠는가. 《레 미제라블》은 고전이다. 그러니, 우리가 그러려니 이해하고 넘어가야지.
팡틴은 고향에서 공장에 취직한다. 마침 그녀의 고향은 훌륭한 시장 마들렌 씨 덕분에 매우 발전되어 있었다. 상업이 육성되어 일자리가 생기고, 치안이 안정되었으며, 가난이 한꺼풀 벗겨져 나가는 분위기였다. 팡틴은 매달 여관 부부에게 딸의 양육비와 편지를 보내며, 아이와 함께할 미래를 꿈꾼다.
하지만 그녀의 사정이 알려지면서 팡틴의 행실에 문제가 있을 거라는 소문이 공장에 퍼지게 되었다. 그러자 공장의 여공만을 감독하는 담당자는 그녀를 해고해 버린다. 그러면서 마들렌 시장 지시라고 말하는 바람에 팡틴은 그에게 분노를 품게 된다.
한편 그녀의 생활은 점점 좋지 않아졌다. 여관 부부가 딸의 양육비 명목으로 계속 거액의 돈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겨울철 딸에게 입힐 털 치마가 필요하다고, 딸이 전염병에 걸려 약값이 필요하다고.
팡틴은 아름다운 머리채를 팔아 털 치마를 마련해 보냈다. 그리고 돌팔이 치과 의사에게 멀쩡한 앞니 두 개를 내어주고 약값을 보냈다. 종국에는 자신마저 팔아 어떻게든 돈을 마련하기로 한다. 요컨대 매춘부가 된 것.
그런 어느 날, 시비에 휘말려 경찰에게 연행되고, 팡틴은 감옥에 갈 처지에 놓이게 된다. 그때 그녀를 구한 인물이 마들렌 시장, 바로 장 발장이었다.
👮♂️ 자베르: 정의와 신념을 위하다 권위적 정의에 메몰된 인물
“그들에게 없는 것은 힘뿐이오. 등으로 마차를 떠받치려면 무시무시한 힘을 가진 사람이라야 합니다. 마들렌 씨, 나는 당신이 원하는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을 꼭 한 사람밖에 모릅니다.”
장 발장은 신부에게 받은 은촛대와 은식기를 미천으로 파드칼레 지방의 몽트뢰유쉬르메르 시에서 장식용 구슬을 연결하는 혁신적인 방법을 개발해 구슬 산업을 크게 일으켜 큰 성공을 거둔다. 그리고 불우한 이들을 돕고 병원을 세우는 등 선행을 실천한다. 어느새 그는 한 지역에서 사랑과 존경을 받는 시장의 자리에까지 이르러 있었다. 물론 그의 가명이 어째서 프랑스 과자 이름 ‘마들렌’인가는 좀 의문이긴 하지만.
그러나 마들렌 시장의 정체를 의심하는 인물이 있으니, 그가 바로 집요한 추적자 경찰 ‘자베르’였다.
그는 마들렌 시장 아래서 경찰로 일하면서, 시장의 정체를 의심하는 인물이다. 노인이 마차에 깔리는 사건에서 마들렌 시장의 괴력을 목격한 뒤부터 자베르의 촉은 민감하게 일어섰다. 🐾
🔎 그가 따르는 ‘정의’는 사법적인 정의, 권위의 옳음이다. 자베르는 결코 죄를 지은 자가 선해질 수 있음을 믿지 않는다.
그러다 그는 팡틴을 감옥에 보내는 문제로 마들렌 시장과 갈등을 겪는다. 그리고 자베르의 심경에 어떤 계기로 인해 충동적으로 그가 가진 의심을 확신하며 마들렌 시장을 장 발장이라고 고발하게 된다.
그런데 자베르에게 그가 고발한 마들렌 시장이 아닌, 장 발장이 잡혔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 코제트: 기나긴 겨울을 보내고 봄을 맞이한 종달새 소녀
“정말 제 것인가요? 이 여왕님이? 이 인형에게 카트린이란 이름을 붙여주겠어요.” 🕊️
마들렌 시장, 장 발장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하나는 침묵으로 자신의 과거를 묻고, 계속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존경받는 시장으로 남는 것. 다른 하나는 법정에 출두해 샹마티외라는 사내가 장 발장이 아니라는 진실을 밝히는 것.
결국 장 발장은 자베르의 의혹이 맞았음을 밝힌다. 하지만 그에게는 책임질 아이가 있었다. 가련한 여인, 팡틴의 부탁이 있었다. 그렇기에 장 발장은 감옥의 노역 활동 중 전함전열함에서 수병을 구출한 다음 익사를 가장해 탈출하고, 테나르디에 부부에 의해 여관의 하녀로 부림당하던 코제트를 데리고 도망을 선택한다.
자신의 것이라고는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소녀는 8년 만에 든든한 ‘아버지’를 갖게 되었다.
그러나 장 발장을 뒤쫓는 자베르로 인해 은연중 불안한 그림자가 감돈다. 결국 장 발장은 죽음을 위장하며 무덤에 묻히는 일을 통해 자베르의 추적을 따돌린다. 그리고 작고 어린 코제트를 사랑으로 길러낸다. 코제트는 혹독한 겨울을 보내고 봄을 만난 종달새처럼 사랑스러운 아가씨로 피어났다.
🤵♂️ 마리우스: 왕정과 공화정 사이에서 부친을, 사랑과 혁명 사이에서 연인을 선택한 청년
“겸손하고 용감한 분이었습니다. 공화제와 프랑스에 눈부신 공헌을 하고, 인간이 만든 위대한 역사 중에서도 가장 위대한 분이었습니다. 4분의 1세기를 야영에서 생활하고, 낮에는 퍼붓는 포탄 속에서, 밤에는 눈과 진창과 비 속에서 싸웠습니다. 적의 군기를 두 번이나 탈취하고 20번이나 부상을 입었습니다. 그리고 망각과 고독 속에서 죽어간 것입니다. 결점이란 단 한 가지, 조국과 저라는 두 배신자를 지나치게 사랑했다는 것뿐이었습니다.”
소설의 시점은 어느 순간 한 청년에게 옮겨진다. 그의 이름은 마리우스 퐁메르시로, 그는 파리의 한 부르주아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마리우스를 양육한 것은 골수 왕당파인 외할아버지 질노르망이었다.
그에게 부모가 없는 건 아니었다. 그의 부친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휘하에서 나폴레옹 전쟁 당시 엄청난 공적을 세워 워털루 전투에서 남작 작위까지 받을 정도의 영웅이었다. 하지만 나폴레옹의 몰락으로 그 또한 정치적 경제적 기반을 잃는다. 그 때문에 부득이 마리우스를 외할아버지 질노르망에게 맡길 수밖에 없었다. 재산 상속 문제도 있어 아들의 미래를 생각해 내린 결정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정치 노선과 사상 다르다고 가족을 서로 찢어놓냐 싶지만, 우리나라도 사상 이념 다르다고 남과 북으로 갈라진 입장이라 참 이 점은 씁쓸하다.
여하튼 어릴 적부터 외할아버지 손에서 왕당파 사람들만 보고 자란 마리우스는 그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는 하나도 듣지 못한다. 그렇기에 갑자기 날아온 부친의 죽음이 임박했다는 소식이 혼란스럽기만 하다. 더구나 위급한 소식을 듣고 부친을 찾아갔으나, 그는 이미 고인이 되어 있었다. 그렇게 마리우스의 삶에서 아버지가 잊히나 싶었지만, 성당에서 만난 마뵈프 노인과의 대화로 부친의 절절한 사랑과 그의 일생에 관해 알게 된다. 그리고 법학생으로 변호사를 지망하던 청년 마리우스는 아버지의 남작 작위까지 세습하여 자기 명함에 넣을 정도로 나폴레옹파가 되어 버린다. 이로 인해 외할아버지와는 의절당해 쫓겨나고, 가난과 불우함 속으로 내몰리며 공화정을 지지하는 서클 ‘아베쎄의 벗들’의 멤버들과 인연을 맺는다. 마리우스가 죽은 부친과 같은 이념을 가지게 된 건 그 사상이 매력적이어서일까. 아니면 부친이 그리웠기 때문일까?
그러던 어느 날, 뤽상부르 공원에서 장 발장과 산책 중인 코제트를 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코제트에게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지만, 어느새 그녀는 아름다운 여인으로 피어나 마리우스의 마음을 빼앗았다.
👼💖👼 이 대목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코제트와 마리우스 사이에 일절 대화나 접촉이 없었다는 점이다. 둘은 서로의 이름도 모른 채 그저 눈빛으로만 몇 개월간 사랑을 키워간다. 아니, 아이 컨택도 이 정도면 거의 판타지 초능력 아닌가?
한편 장 발장은 코제트와 산책할 때면 항상 나타나는 마리우스의 정체를 의심하고 종국에는 이사를 떠나기에 이른다. 마리우스와 코제트는 이렇다 할 작별 인사도 못하고 헤어지게 되는데, 마리우스 옆집에 살고 있던 종드레트라는 자의 집에 장 발장과 코제트가 적선을 하기 위해 방문하며 마리우스는 희미한 만남의 끈을 잡는다.
사실 종드레트의 정체는 과거 코제트를 학대하고, 장 발장에게 돈을 요구한 여관 경영자 테나르디에였다.
테나르디에는 장 발장을 첫눈에 알아보고 적선 사기를 넘어 그를 습격해 돈을 빼앗을 계획을 세운다. 이 계획을 엿들은 마리우스는 경찰에게 신고하는데,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하필 자베르에게 사건 접수를 한다. 적선을 하기 위해 다시 한번 테나르디에의 집에 방문한 장 발장, 그를 노리는 강도 테나르디에, 신고자 마리우스, 추격자 자베르까지 긴박감 넘치는 밤을 연출하고, 결국 테나르디에 가족은 교도소와 수도원 등으로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
💖 에포닌: 불우하지만 사랑 앞에 헌신적인 여인
“내가 죽거든 이마에 키스해 주겠다고 약속해 주세요. 죽어서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다사다난했던 사건의 밤 이후, 자베르는 궂이 도망칠 이유가 없는데 도주한 피해자에게 의심쩍음을 느낀다. 소란 통해 겨우 위기를 모면한 장 발장은 코제트와 함께 프랑스를 떠나 영국으로 터전을 옮길 결심을 한다. 마리우스는 코제트와 이어질 길이 요원해지자 절망한다.
마침 혁명이 일어나고 거리 곳곳에 바리게이트가 세워진다. 공화정 지지 서클 ‘아베세의 벗들’ 또한 혁명에 참가한다. 마리우스는 가브로슈와 쿠르페락을 구해주며 즉흥적으로 그 무리에 합류하게 된다.
그러나 포성이 오가는 틈에 마리우스는 위기에 빠지게 되는데, 그때 그를 구한 것이 바로 테나르디에의 딸 에포닌이었다. 그녀는 마리우스를 연모하지만, 그가 코제트를 사랑하고 있음을 알았다. 그래서 마리우스를 위해 장 발장과 코제트가 이사한 집의 주소를 마리우스에게 알려주는 것을 선택한다. 또 혁명의 날, 그 대신 총을 맞는 것으로 삶을 마무리한다.
🔎 에포닌은 사랑을 표현하기에 자신의 처지가 여의치 않다고, 그녀 스스로 초라하기에 사랑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한 것 같다. 실제로 그녀의 모습은 궁핍했고, 처한 환경은 빈곤했다. 변호사인 마리우스와 어울리기에 배움도 깊지 못했고, 심지어 가족마저 콩가루나 다름이 없었다. 그렇기에 사랑을 할 여건이 안 된다고
생각했으리라.
사랑에는 조건이나 자격이 필요 없다고 하지만, 어떤 경우 사랑하는 것 자체가 사치로 느껴지는 일도 분명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처지는 곤궁했을지언정, 사랑 앞에 당당한 그녀, 에포닌이었다. 비록 마리우스와 함께하지는 못했으나, 그를 위해 몸을 던졌으니 마리우스의 기억 속에 깊게 남지 않았을까.
가난은 많은 것을 제약하고, 사랑에도 제약을 두게 만들지만, 그럼에도 사랑을 막지는 못한다. 사랑함으로써 가난한 마음이, 초라한 스스로가 타인을 위해 기꺼이 내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 그것이 에포닌이란 캐릭터가 상징하는 의미가 아닐는지.
🌌 🌟 🌌
《레 미제라블》 - 노예로 살아서는 안 될, 세상의 색을 바꿔야 하는 우리들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 미제라블》은 장 발장의 이야기가 아니다. 모든 불쌍한 자들의 이야기이다. 소설 곳곳에서 사회의 가난과 그로 인한 인정과 상냥함의 상실을 엿볼 수 있다. 한마디로 도덕성의 상실이다. 이 부분은 어쩐지 예전에 독서한 적 있는 황순원 <카인의 후예>를 떠오르게 한다. 과연 그들이 이타적이고 선한 마음,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마음을 잃는 건 가난 때문일까. 가난하기에 사람은 강팍하게 변하는 걸까. 그럴 수밖에 없는 건가.
그러나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 미자라블》은 그저 가난하기에 불쌍한 사람을, 불쌍해진 자들만을 그리지는 않는다. 만약 그랬다면 이 작품이 오랫동안 읽히는 고전이 되지 않았을 거고, 영화와 뮤지컬, 만화 등으로 재창조되지도 않았을 테니까.
옛날에는 몰랐는데, 지금 읽은 《레 미자라블》은 변화를,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 그것에 사회적인 신분이나 계급, 빈부는 상관이 없다고. 누구든 변할 수 있고, 그것에는 가난함이든 부유함이든, 그런 건 하등 상관이 없다고. 🌺
실제 소설의 인물들은 시시각각 변하고 있다. 주인공 장 발장을 포함해서, 모성의 아이콘 팡틴, 불우한 소녀 코제트, 몽상가이되 열정적인 청년 마리우스, 외견은 가난하지만 사랑은 아니었던 에포닌, 그리고 정의를 고뇌하는 추적자 자베르까지.
소설의 끝무렵, 혁명의 날에 마리우스는 에포닌의 죽음에 죄책감을 느끼고, 그녀와 친분이 있는 것으로 보이는 소년 가브로슈를 살리고자 편지 심부름을 보낸다. 코제트를 향한 작별 인사를 담은 서신이었다. 마리우스가 무슨 거창한 대의나 사상적 신념으로 혁명에 참여한 건 아니지만, 죽고 사는 상황 속에서, 자신 아닌 타인을 살리고자 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한 대목이 아닐까.
한편 마리우스의 편지는 장 발장의 손에 들어가고, 그는 마리우스를 구하기 위해 바리게이트로 향한다. 그리고 바리케이트에 짚요를 덮어서 포격을 견디게 한 공으로 잠복하다 잡힌 자베르를 처분할 권리를 얻지만, 장 발장은 질긴 인연 혹은 악연인 자베르에게 자유를 선언하며 풀어준다. 장 발장은 소설 속에서 가장 극적으로 변화하는 인물이다. 초반에 은촛대 등을 가지고 있음에도 굴뚝 청소부 소년의 은화를 탐냈던 인물 맞나 싶게 우직하고 신의 있게, 책임을 다하는 캐릭터가 된다. 선하기 위해, 혹은 선해지기 위해 노력하는 그 모습은 꼭 고행하는 구도자 같기도 하다. 디뉴의 주교가 있었고, 그의 용서가 이끈 길이리라.
자베르는 그 일, 그러니까 혁명의 날에 자신에게 관용을 보인 장 발장에게 놀란다. 아니, 충격을 받는다. 장 발장, 곧 범죄자가 선인이 될 수 있다는 것에. 그를 계기로 정의에 대한 신념과 가치관이 흔들리게 되는데, 그것은 상황이 어렵게 되자 부상당한 마리우스를 데리고 하수구를 통해 탈출하는 장 발장을 돕는 행동으로 이어진다. 자베르는 그동안 자신이 가난한 자들을 비롯한 범죄자들에게 새로운 삶과 갱생의 기회를 주지 않은 채 너무 가혹하게만 대했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느끼고, 장 발장을 연행하는 대신 도와줌으로써 법의 엄중함을 믿어왔던 스스로가 법을 어긴 것에 괴리감을 느낀다. 한평생을 정의롭게 살았다고 자부하던 그는 일련의 행동에서 온 모순과 그로 인한 허무함을 견디지 못하고 센 강에 몸을 던지게 된다. 그는 법이 심판만이 있지 않다는 것, 법에는 분명 관용이 있다는 것을 몰랐기에 어딘가 잘못되어 버린 게 아닐까.
장 발장이 선해진 뒤 계속 선한 길을 선택하는 것과 달리, 마리우스와 코제트, 에포닌, 팡틴 등은 때때로 선과 악을 오가는 변화를 보인다. 팡틴은 사회 밑바닥까지 추락해 때로 코제트를 버거워하고, 마리우스는 장 발장의 고백을 통해 알게 된 그의 과거만을 보며 그를 멀리한다. 코제트는 마리우스와의 사랑에 빠져 그녀를 키워준 양부와 거리를 두는 선택을 한다. 에포닌은 부친의 사기를 알면서도 거짓이 담긴 구걸 편지를 배달한다.
🌷 그렇지만 팡틴은 끝까지 딸 코제트를 사랑했고 포기하지 않았다.
마리우스는 그의 식구 중에 범죄자가 있다고 말하며 진실을 들려주는 대가로 금전을 요구하는 인물 테나르디에를 통해 혁명의 날에 하수구에서 시체로 보이는 사람을 들쳐업고 빠져나가고 있었음을, 요컨대 장 발장이 마리우스의 생명을 구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게다가 장 발장은 마들렌으로, 몽트뢰유 시에서 존경받던 시장이기도 했다. 마리우스는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장 발장에게 용서를 구했다.
코제트 역시 스스로의 행동에 부끄러움을 통감하고, 장 발장을 찾아간다.
에포닌은 연모하는 이를 위한 마음으로 모든 것을 내어주었다.
소설 《레 미제라블》에서 초지일관인 캐릭터는 테나르디에가 유일한 것 같다. 어쩜, 전쟁터에서 죽은 군인들의 몸을 뒤적이며 귀중품 슬쩍하다가 마리우스의 부친에게 사기 치는 초반 모습부터 시작해 이렇게 최후에 최후까지 일관성 있게 찌질한 강도신지. ☹️
좌우간 이런 대목을 보면서 《레 미제라블》의 의미는 ‘변화’가 틀림없다는 생각이 더욱 굳어졌다.
🎶 “세상의 색은 바뀌고 있어 / 매일 매일 / 빨강 분노한 사람들의 피 / 검정 지난날의 어둠 / 빨강 동트기 직전의 세상 / 검정 반드시 끝나게 될 밤” - 뮤지컬 <레 미제라블> ‘적과 흑’ 중에서
인간은 빈부격차를 떠나 선해질 수도, 몰인정해질 수도 있다. 뮤지컬 <레 미제라블>의 노래 가사처럼 검정이라 해서 다 같은 검정이 아니고, 빨강이라 해서 무조건 분노의 색은 아니다. 색은 바뀔 수 있다. 아니, 색상은 같지만 우리가 그 색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의미는 변한다. 우리는 변할 수 있다.
남은 건 어떻게, 어느 쪽으로 변화하는가 하는 선택뿐이다.
🎶 “민중들의 노래가 들리는가 / 분노한 사람들이 부르는 노랫소리가 / 다시는 노예가 되지 않겠다는 /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 - 뮤지컬 <레 미제라블> ‘민중의 노랫소리 들리는가?’ 중에서
뮤지컬 <레 미제라블>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며 접한 노래 가사 가운데 가장 선동적인 느낌이 든 노래였다. 그러나 원작 소설 《레 미제라블》을 읽고 나서는 이 가사를 보면서 혁명의 불씨보다 내적 성장의 불씨를 느꼈다.
노예가 되지 않겠다. 노예로 살지 않겠다. 이 가사는 비단 자본주의나 권력 같은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지 않을까.
대신 삶에서의 옳은 길과 바른 길, 사람으로서, 사람답게 살겠다는, 그래야 한다는 의지 표명이 아닐까 생각한다. 부와 명예 등을 좇기보다, 그런 것에 노예가 되어 사는 것보다, 더 값진 삶을 살겠노라는, 내적 혁명의 외침 같은 것.
12월 10일, D-DAY, 뮤지컬 보러 가는 날.
시각장애인이기에 공연의 흐름을 놓치지 않고 따라가기 위해 원작 《레 미제라블》을 독서했다. 하지만 어릴 적 읽었을 때와는 또 다른 생각거리를 접한 것 같아, 비록 어마무식하게 두꺼운 책이라 읽기 버거웠지만, 읽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과연 <레 미제라블> 뮤지컬은 원작의 다채로움을 얼마나 담고 있을까?
첫댓글 뮤지컬 관람의 이해도가 깊이있게 다가올 기대는 나 뿐만 아니겠지?
긴 글. 감사합니다.
긴 글 정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써놓고 보니 이거 내가 봐도 좀 길다 싶었는데 ㅎㅎ
아버님, 당신의 눈은 안녕하십니까?
덕분에 뮤지컬의 신세계를 접했습니다.
다음에 좋은 기회가 있으면 부탁 드려도 괜찮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