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부름을 받을 때는 신이시여
아무리 강력한 화염 속에서도
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힘을 저에게 주소서
너무 늦기 전에 어린아이를 감싸안을 수 있게 하시고
공포에 떠는 노인을 구하게 하소서
저에게는 언제나 안전을 기할 수 있게 하시어
가냘픈 외침까지도 들을 수 있게 하시고
신속하고 효과적인 화재를 진압하게 하소서
저희 업무를 충실히 수행케 하시고
제가 최선을 다할 수 있게 하시어
저희 모든 이웃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지키게 하여 주소서
그리고
신의 뜻에 따라 저의 목숨을 잃게 되면
신의 은총으로 저의 아내와 가족을 돌보아 주소서
시원한 물가에 나를 눕혀 주오.
내 아픈 몸이 쉬도록 눕혀 주오.
내 형제에게 이 말을 전해 주오.
화재는 완전히 진압되었다고.
신이시여, 출동이 걸렸을 때,
사이렌이 울리고, 소방차가 출동할 때,
연기는 진하고 공기는 희박할 때,
고귀한 생명의 생사를 알 수 없을 때,
내가 준비되게 하소서.
신이여! 열심히 훈련했고,
잘 배웠지만 나는 단지 인간사슬의 한 분입니다.
지옥 같은 불 속으로 전진할지라도 신이여,
나는 여전히 두렵고, 비가 오기를 기도 합니다.
내 형제가 추락하거든 내가 곁에 있게 하소서.
화염이 원하는 것을 내가 갖게 하시고,
그에게 목소리를 주시어, 신이시여!
내가 듣게 하소서.
그리고,
내가 그의 내민 손을 잡게 하소서.
신이시여! 내 차례가 되었을 때를 준비하게 하시고,
불평하지 않고 강하게 하소서.
내가 들어가서, 어린 아이를 구하게 하소서.
나를 일찍 거두어 가시더라도 헛되지는 않게 하소서.
- 자작나무(정상화)님의 사진과 소방관의 기도라는 시입니다..
목숨을 걸고 많은 이들의 목숨을 구하신 소방관 여러분에게 감사드립니다..
대구 지하철 방화범 용의자 김대한씨는 재작년 뇌졸중으로 신체마비증세가 올때까지 택시운전을 하였다고 합니다. 방송은 김씨가 신병을 비관하여 불특정다수인과 동반자살을 시도했다고합니다. 그가 '동반자살'을 택한 곳은 도시중에서 가장 밀폐된 공간이고 수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지하철. 당시 전철에는 여성과 노인분들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동반자살을 시도했건만 김대한씨는 죽지 않고 살았습니다. 대신 꽃다운 여학생들과 손녀의 통학을 돕던 할머니를 포함! 한 100여명의 무고한 시민들이 죽었습니다.
과연 누구를 원망해야 할까요?
사람들은 이런 질문에 무슨 소리를 하느냐고 화를 낼지 모릅니다. '정신나간 미친x이 가장 책임이 크지' 라고 말입니다. 혹자는 언론보도내용을 듣고 사고대책에 미흡한 정부를 꾸짖기도 할테고, 지하철역내의 미흡한 비상대책시스템을 탓하기도 할 겁니다.
죽지 않을 수도 있는 많은 인명이 이러 저러한 '실수'로 세상을 달리함에 어찌 안타깝고 분한 마음이 없겠습니까. 하지만 우리 냉정하게 따져 봅시다. 과연 대구참사의 가장 큰 원인은 무얼까요
저는 김대한씨같은 '소외된 삶'을 양산해 내는 '비정하고 이기적인 한국 사회'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분명 김대한씨는 2년전만 하더라도 택시운전하면서 아들 딸 대학까지 공부시키고 건실하게 살아간 사회인이였을 겁니다. 그런 그가 중풍으로 손과 발을 자유자재로 쓰지 못하게 되었겠죠.
여러분, 단지 손과 발을 자유롭게 쓰지 못한다고 해서 방화를 저질러서 많은 시민과 '동반자살'을 꾀했을 까요? 아니라고 봅니다. 그는 틀림없이 중풍으로 쓰러진 이후 많은 소외감을 축척했을 겁니다. 어쩌면 그는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가족으로부터 소외감을 경험했을 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차갑고, 권위적인 우리 의료현실에 분노를 느꼈을지도 모릅니다. 또한, 자신을 단지 많고 많은 그저 그런 퇴물 50대 중풍환자로 '냉정하게' 대하는 사회에 서러움을 느꼈을 수도 있습니다. 아무도 그의 50여년에 걸친 인생의 곡절과 아픔에 공감해 주지 않고 인정을 보여주지 않았는지도 모릅니다. 그런 그에게 텔레비젼에서 백화점에서 지하철에서 보이는 사람들의 행복이 자신의 소외감을 더욱 자극시켰는지도 또한 모릅니다. 그리고 그는 '너죽고 나죽자'라는 결심을 했는지도 모릅니다.
만일 김대한씨가 이런 마음을 먹었다면 제 생각에 이번 참사는 김씨만의 책임은 아니라고 봅니다. 많은 부분, 인간의 아픔을 함께 하지 못하는 비정한 한국사회의 책임 아닐까요.극한 소외감은 극단적 분노를 낳고 비이성적인 행동을 낳습니다.
이런 소외감은 비단 김대한씨만의 것이 아닙니다. 저임금과 구타, 성폭력에 시달리는 필리핀 노동자에게도,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주부에게도, 직장에서 '왕따'를 당하는 회사원에게도 그리고 국제사회에 고립되어 '풀뿌리 죽'으로 연명하는 북한의 우리 동포에게도 소외감은 존재합니다.
인류를 위협하는 최대의 적은 후세인의 '대량살상무기'나 빈 라덴의 '알 카에다'가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가 만들어낸 '소외된 인간' 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대구참사에 희생되신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 하니리포터 이서열 기자 -
“어젠, 내가 사랑하는 엄마와 아빠가 새까맣게 그을린 채 돌아가셨습니다. 올해 52살과 45살을 맞으신 아빠와 엄마. 평소 늘 일만 하시다 그 가깝다는 제주도여행 한번 못가보시고 어제 출근길에 두분 다 운명을 달리하셨습니다. 이건 누구의 죄일까. 방화범도, 지하철관계자도, 전부 죄가 없다고 한다면.... 하긴, 형편이 어려워 자가용이 없는 저희 어머님과 아버님이 죄겠죠.”
“어제 오전 열차 속에 갇히신 어머님께서 연락이 왔더군요. "민아, 지하철을 탔는데 사고가 났구나" "그럼 문 열고 나가면 되잖아?" "정전때문에 컴컴해서 아무 것도 보이질 않아. 아빠와 청년들이 창문을 깰려고 하는데 곧 구조되겠지. 걱정하지 말고 밥 먹고 씻고 학원 가거라." 그 사이 아버님의 목소리가 들리더군요. ‘여보 힘들겠어’라는 힘겨운 목소리가. 이게 저의 어머님과 아버님의 마지막 음성이었습니다. 엄마는 생사를 다투는 그 긴급한 상황에서도 제 걱정을 하셨습니다”
- 희생자 유가족의 글 중에서 -
근본적인 대책마련은 하지 않고 정부나 언론이나 추잡스럽긴 마찬가지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잘사는 나라? 선진국?? 건강하게 살아도 무서운 세상..결국은 보통사람..서민인 우리가 짊어져 나가야할텐데..
답답습니다. 진정 살고싶은곳 그런곳이 우리가 꿈꾸는 선진국이 아닐까요..
참 어렵네여..제일 큰 힘은 우리에게 있는데..아침이지만..슬픈현실을 보며 눈물만 흘린다고 모두 해결되는건 아니기에..아래글은 kbs 라디오 게시판에서 퍼온 글입니다..생각해보셔여~~
국가는 누군가 대신 해 줄 희생양을 찾고, 모든 책임을 피한다면 결국 죄를 뒤집어 쓰는 것은 우리와 같은 보통 사람들 일 것입니다.
누가 그런 상황에서 냉정하게 행동하고 판단을 할 수 있다고 자신할 수 있는 지 궁금합니다. 그것은 개인의 이성과 가치관 정도와 용기의 차이 일뿐, 기관사로서 책무를 다하지 못한 책임은 면하기 어려우나, 사고후의 국가와 언론의 태도는 삼풍백화점붕괴 때와 크게 달라진 점이 없습니다.
1080 기관사의 마스터 키 때문에 사고가 모든 책임이 있는 것처럼 방송 3사와 신문들의 방송과 기사는 언론에서조차 우리 사회의 본질을 파악하는데에도 더 큰 문제가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 주는 것 같습니다.
결과론적인 이야기는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씁쓸한 것은 정부의 책임회피성 언론플레이가 아닌가 생각 될 정도 입니다.
국가가 우리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전반적인 사회시스템에 대해 어떤 문제가 있는지 다년간에 걸쳐 고민하고 문제를 고칠려고 했다면 이런 사고는 삼풍백화점 하나로 그쳤을 겁니다.
마른 벼짚으로 전동차 열두량을 만들어도 그것보다는 잘 타지 않을 겁니다.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생각하지 않는 안전수칙과 기준, 건설현장에서의 하청의 하청을 주는 관행과 까다로운 공사기간에 따른 비용의 문제 그리고 수주관행 등..우리가 만드는 모든 인공물들은 부실을 나을 수 밖에 없는 구조이고 또 다른 보통 사람들의 희생을 요구할 것입니다.
제가 아는 한 그렇습니다. 사람만 실어 나르면 된다는 생각, 수출용 전동차와 내수용 전동차가 따로 있는 그런 국가의 이념이 있는 정부를 우리는 믿으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바뀌지 않는 한 독재시대나 민주화시대나 국민의 희생은 뒤따를 것입니다.
그것은 법과 원칙을 바로 세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도자라는 분들도 정치가 들도 예외를 찾습니다. 정치적 고려와 판단 문제는 헌법소원의 대상이 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소송에서 판결을 할 수 없는 문제라 법원은 책임을 회피합니다.
그런 사회구조는 한번에 바뀌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런 부실한 사회에서 살고 있습니다.
돈과 권력 그리고 유명세만이 모든 것의 예외가 될 수 있는..
하지만, 그래도 그런 비겁한 소수의 사람들보다 아직도 어둡고 힘든 곳에 묵묵하게 다수의 보통사람들이 서로를 격려하고 아끼며 우리 사회를 지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희망이 있는 것입니다.
- eit eyes님이 남겨주신글입니다.-
이번 사건은 57살의 김아무개 씨가 유력한 용의자라고 알려져 있지만 김 씨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의아해 하며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고 한다. 평소 말수도 적고 큰소리로 말하거나 싸운 적도 없는 그런 사람이 이런 엄청난 일을 저질렀다는 것은 참으로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한 도시에 복구자금이 천억원 정도 들어가게 하고 생명을 100명 이상 처참하게 앗아간 죗값은 치러야 할 것이다. 하지만 용의자 김씨가 왜 그런 일을 저질렀는지 한 번쯤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지금 가장 심각한 문제 가운데 하나가 빈부격차다. 누구는 뼈 빠지게 일해서 도시 가계 최저임금밖에 못 벌고 누구는 백화점에서 하루에 쇼핑을 수천만원씩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한다. 텔레비전 드라마에서도 대부분 항상 행복하고 즐겁고 잘사는 집 얘기만 나오는 걸 보기도 한다. 그런 것을 보고 들었을 때 평생 운전기사로 힘들게 살아왔던 김 씨는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꼈을 것이다.
이런 참사가 일어나면 ‘정신병자’니, “자기나 죽지 남은 왜 데리고 죽느냐”, “‘묻지마 범죄’가 무섭다” 따위의 얘기를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몇 가지 짚어봐야 할 것이 있다. 우선 우리나라에 사회적 불평등이나 빈부격차 등이 없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만일 우리 사회가 이런 사람들에게 좀더 배려를 하는 사회였다면, 김 씨에게 좀더 나은 복지시설과 많은 혜택을 주었다면 어땠을까? 2년 동안 아무것도 못하고 병고에 시달리며 답답하게 누워있던 김 씨에게는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2년 동안 병마에 시달리며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부인이 대신 청소부일을 하면서 생계를 꾸려 왔던 것이 미안하고 분한 김 씨는 마지막 방법이 죽음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죽음은 더 극단적으로 ‘나 혼자 죽는 게 억울하다는 식’의 분노로 표출되었을 것이다. 물론 지금 나는 김 씨 잘못이 없다고 하는 것도 아니다.
세상에 분노가 있다고 해서 모두 그런 식으로 일을 저지르지는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막무가내로 김 씨를 욕하고 그에게 최고형을 내리라는 따위로 무책임하게 말을 내뱉을 수 있는지 나 자신부터 돌아본다.
물론 나는 아직 청소년이고 부모 덕에 편히 살고 있으므로 막연한 분노나 억울함은 없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분명 이런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회 약자들에게 좀더 나은 혜택과 기회, 복지를 제공해 준다면 이런 참사나, 모방범죄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이런 게 이루어지는 사회가 좋은 사회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