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돈을 벌기 위해서 직업을 갖고 일을 한다. 이 사실은 자못 분명한 것 같다. 돈을 바라지 않고 하는 일은 '자원봉사'나 '재능기부'라고 부르지 직업이라고 하지 않는다. 보수가 지급되지 않는 전업주부의 가사노동도 현물의 화폐가 오가지 않을 뿐, 법적인 문제가 생기면 그 가치를 돈으로 환산해 계산한다.
많은 이들이 더 많은 보수를 주는 직업을 흔히 더 '좋은 일'이라고 부른다. 여기에 역설이 있다. 인생 선배들은 돈 때문에 일하지 말라고 한다. 큰돈을 번 사람일수록 "나는 돈 벌려고 열심히 일한 것이 아니라, 열심히 일을 하다보니가 큰돈이 생겼다"고 말한다. 자수성가한 분들의 인터뷰를 보면 모두 같은 취지의 말을 한다. 왜 그럴까? 그냥 겸손일까? 아니면 가식일까? 돈을 벌기 위해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을 가장 경멸했다는 스티브 잡스는 스탠퍼드 대학 졸업축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일을 찾으십시오."
돈을 벌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사랑하는 일을 찾는다는 것, 말은 좋다. 하지만 어떻게 하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우선 스스로에게 진솔하게 묻자. "나는 지금 내가 하는 일을 사랑하는가?"
일본 도쿄 대학 강상중 교수의 <고민하는 힘>이라는 책을 읽다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과연 사랑하는지를 판별할 수 있는 간단한 방법을 떠올려보았다.
"한 30억원 정도의 로또에 당첨이 된다고 해도,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계속할 것인가?"를 스스로에게 물어보면 되는 것이다. 야! 그런 큰돈이 있는데 이런 일을 뭐하러 해?"라고 답한다면 돈 때문에 일하는 것이고, "아니야, 그래도 이 일은 계속할 것 같아. 지금처럼 아등바등하진 않더라도 즐기면서, 그냥 재미로라도....."라고 답한다면 당신은 그 일을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로또에 당첨되더라도 지금 하는 일을 계속하는 사람은 대단한 행운아다. 실제로 그런 비율은 대단히 적을 것이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은 로또만 된다면, 좀 쉬거나 놀면서 다른 일을 찾아보겠다고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로또에 당첨되고 나서 오히려 불행해지는 사람이 많다는데, 그 이유 중 하나가 일을 그만두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일에는 돈벌이 이상의 의미가 분명하게 존재한다.
문제는 우리가 로또에 당첨될 확률도 매우 낮고, 진정 사랑하는 일을 찾아 변신을 모색하기도 쉽지 않다는 점이다. 진정 사랑하는 일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몰라서 못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일을 찾기가 쉽지 않고, 찾는다고 해도 그 일을 실행하는 것이 간단하지 않다는 현실이 문제다. 예를 들어 '의사가 되고 싶다. 의사만 될 수 있다면 정말 내 일을 사랑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국가시험에 합격하지 않으면 아예 의사가 될 수 없다. 마음먹었다고 거저 되는 쉬운 일이 아니다.
일본의 100세 최고령 게이샤 고킨 씨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천직은 무슨. 달리 먹고살 게 없으니가 한 거지. 인생은 이상해. 싫다고 싫다고 울면 더 그 일을 하게 돼. 난 100살까지."
어떻게 할 것인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사랑할 수 없다면? 그 어떤 재미도 찾을 수 없다면?
그렇다면 일이냐 아니냐를 떠나서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일은 뭘까? 그대는 궁금하지 않은가?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일!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성장하는 것이다.
이 구절을 읽고 실망하는 당신의 표정이 눈에 선하다. 성장? 그게 뭐, 재밌다고? 역시 천생 '선생님'다운 틀에 박힌 모범답안이군, 할 것 같다.
하지만 이 평범한 답 속에 비밀이 있다.
사람은 자기가 조금씩 성장하는 것을 느낄 때 희열을 느낀다. 중독성 강한 게임을 예로 들어보자. 게임회사에 다니는 이가 말하기를, 게임을 설계할 때 가장 중요한 요소는 레벨이든, 계급이든, 아이템이든, 어딘가에 게이머가 '성장'하는 설정을 부여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야 게이머들이 더 깊이 게임에 빠져들 수 있다고 한다.
운동 가운데서는 골프, 당구, 마라톤이 한번 빠지면 헤어나기 힘든데, 이들의 공통점은 성장의 요소가 강하다는 것이다. 이 운동들은 자기 레벨이 정해진다는 점에서 다른 운동과 확연히 다르다. '오늘 드디어 싱글을 기록했다' '200을 놓고 이겼다' '마의 네 시간의 벽을 깼다'는 식으로 실력 향상을 객관적인 지표로서 보여주기 때문에, 한번 맛을 들이면 헤어나기 힘들다. 배우고 자라는 일은 경쟁에서 이기는 일보다 재미있다.
동화나 애니메이션에도 성장의 요소가 있어야 한다. <포켓몬스터>가 아이들의 폭발적인 사랑을 받은 것은 '진화'라는 개념을 선보였기 때문이다. 성장하고 변화하면서 재미를 느끼는 아이들의 본능을 정확히 꿰뚫어본 것이다.
자, 이제 동의하는가? 인간의 기쁨 중에 가장 큰 즐거움은 성장하는 것이다.
성장하는 것이 오락이나 취미에서조차 가장 큰 기쁨의 원천이라면, 일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니, 더 본질적일 것이다. 일하면서 성장하고 있다고 느낄 때, 우리는 그 일이 재미있고 또 사랑할 만한 것이라고 여긴다.
예컨데 편의점에서 하루 종일 바코드를 찍으며 다리가 퉁퉁 붓도록 아르바이트하는 일은 전혀 재미있지도 않고, 큰돈이 되는 일도 아니다. 편의점 알바를 평생직업으로 생각할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 시간을 때우며 일당을 번다. 하지만 조금만 달리 생각하면 편의점 알바에서도 시급보다 훨씬 소중한 것을 얻을 수 있다. 소비자의 매장 내 행동을 학습하고, 매장 입지에 관한 노하우를 터득하며, 본사의 납품을 받으면서 재고관리의 기법을 깨달을 수 있다면, 그래서 매일매일 '나는 배우고 성장하고 있다'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면, 우리는 비로소 그 일을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성장 과정은 언젠가 펼쳐나갈 자기 사업을 큰 성공으로 이끌 수 있는 밑바탕이 될 것이다.
세계 최고의 투자가로 불리는 워런 버핏은 여덟 살 때 동네 쓰레기통에서 병뚜껑을 모으며 음료의 수요를 짐작했다고 한다. 중요한 것은 자기 관심사에 대한 집중과 사소한 일들에서도 경험을 쌓으며 배우겠다는 열정이다.
자신의 일이 시시해 보이는 것은 자꾸 다른 직업과 자신의 직업을 비교하기 때문이다. 경영기법에 벤치마킹이라는 용어가 있다. 강물의 깊이를 재기 위해 세워둔 막대를 '벤치마크'라고 하는데, 특정 분야에서 뛰어난 상대를 정해 자신과 비교하고 모자란 점을 찾아 배우는 것을 말한다. 기업을 경영할 때뿐만 아니라 인생을 설계할 때에도 벤치마킹은 필요하다.
하지만 일을 시작하는 이에게 중요한 것은 벤치마킹보다는 '퓨처마킹'이 아닐까 생각한다. 톰 피터스라는 학자가 "2010년을 살지만 2020년의 사람들을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이를 퓨처마킹이라고 불렀다. 미래사회를 내다보고 그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퓨처마킹을 조금 다른 의미로 사용하고 싶다. 즉, 자신의 일을 현재 다른 사람의 일과 비교하지 말고, '미래의 자기상'을 세우고 그 모습을 위해 차근차근 배우고 성장해나가라는 것이다. 타인을 벤치마킹하려 하지 말고 자신의 미래를 퓨처마킹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 자꾸 남이 하는 일만 선망하는가? 오스카 와일드의 표현을 빌리면, "당신 자신이 되어라. 다른 사람의 자리는 모두 찼다."
물론 돈은 세상 속에서 내 일의 쓸모를 보여주는 증거가 되어주기도 한다.
일본의 만화가 사이바라 리에코는 " '돈이 되지 않더라도 나만 만족하면 괜찮아!'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의 재능을 현실에 잘 착지시킬 수 없다. 그런 생각이야말로 뜬구름 같은 덧없는 꿈으로 끝나고 만다. 그러나 '내 재능으로 어떻게 돈을 벌 것인가'를 진심으로 생각한다면 정말 하고 싶은 일이 현실로 다가온다"고 말했다.
돈을 벌고 자기 자신과 가족의 삶을 책임지다보면 일에 대한 절실함이 생기고 더 잘해야겠다는 자극을 받는다.
하지만 돈을 얼마나 '많이' 버느냐에 생각이 갇히면 우리는 일의 수인(囚人)이 된다. 정말 중요한 것은 수입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일에 대한 사랑이고 성장의 재미다.
그렇게 자신의 '퓨처'에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갔을 때, 돈은 자연히 따라온다. 그래서 수많은 성공담이 돈을 목표로 했을 때가 아니라 자기 성장을 목표로 했을 때 이루어졌다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
일은 나의 정체성이며 본질이다. 영어식 표현으로 하자면 "우리는 우리가 하는 일 자체 (We are what we work on)" 인 것이다. 그런 나의 존재 가치를 고작 돈으로 환산한다면, 그러한 행위야말로 모욕적이지 않은가?
스티브 잡스의 말처럼 자기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일을 찾아라. 하지만 찾기가 쉽지 않거나 그 일을 당장 시작하기 힘들다면, 자기가 사랑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꾸준히 성장하라.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 하고 있는 일이 아무리 하찮게 여겨진다고 하더라도, 지금 여기서 하는 일에서부터 끊임없이 배울 것을 찾아 배워나가야 한다. 그것이 로또에 당첨되더라도 지금 하는 일을 계속 사랑할 수 있는 원동력이다.
첫댓글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쓰신 란도샘 김난도 교수님의 또 다른 책<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의
일부 내용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많은 생각을 하는 좋은 글이라 올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