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와 명풍경]삼악산 흥국사
의암호의 여름은 투명한 수채화요… 산중의 꽃들은 모두 청정법신이네
가속과 변혁의 시대다.
인성과 창의력을 요구하며 정신없이 내달리고 있다.
숨 가쁜 세상 일 잠시 잊고, 쉬고 싶다. 쉼은 휴식이며 사색에 잠기는 시간인 동시에
그 자체가 충전이다. 쉬고 또 쉬면 쇠로 된 나무에도 꽃이 핀다고 했다.
여기서의 ‘쉼’은 의식의 작용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 상태다.
몸과 마음이 지쳤을 때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냥 쉬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나를 ‘내려놓는다’는 뜻을 잘 생각해야 한다.
우리가 배우고 획득한 상대적 지식들은 종종 어떤 생각들을 쉼 없이 만들어 낸다.
생각하여 헤아리는 사량과 서로 견주어 살펴보는 계교도 필요하고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의식하든 그렇지 않든 그러한 사량분별思量分別로 우리는 지치기 쉽고,
답보 상태에 빠질 개연성이 크다.
흥국사 절 마당에 가득 핀 청정법신의 꽃들로 눈이 부시다.
일찍 찾아온 더위로 휴가를 앞당기고 싶다.
하지만 지금은 산천초목 모두 어렵다. 가뭄이 극심하기 때문이다.
농작물은 타죽고, 저수지는 거북등처럼 갈라졌다. 물을 놓고 갈등이 커지고 있다.
어쩌면 자연과 물을 잘못 사용한 혹독한 대가인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우리의 마음이 마를 수는 없다. 하늘이 비를 내려 대지를 흠뻑 적시는 것처럼
쉼을 통해 우리가 우리를 적셔야 하지 않겠는가.
제일가경의 협곡 속 등선폭포와 여름의 나무들
협곡으로 들어서 등선폭포 가는 미지의 세계에 아침햇살 내린다.
등선폭포 매표소를 지난다. 작은 출입문을 들어선다.
거대한 바위 협곡은 속세와는 전혀 다른 이상향을 연상케 한다.
한두 사람 지나갈 정도의 좁은 길이다.
큰비가 쏟아지면 길은 그대로 무서운 물길로 변할 지형이다.
양 옆으로 깎아 세운 거대한 바위벽 사이로 걸음을 옮긴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모험을 하는 기분이다.
항아리 속 같은 공간에 머무르던 어둠은 뒷모습을 들키고, 버들치는 발소리에 깨어
아침을 맞는다. 등선폭포는 제1폭에서 제2폭으로 이어진다.
제2폭포에서 바라보는 협곡의 풍경이 매우 독특하고 이색적이다.
적은 수량에도 불구하고 폭포를 감상할 수 있다.
엉겅퀴 붉은 꽃 성성한 가시에도 햇살과 벌들은 찔리지 않는다.
매점 앞 거목의 가래나무 아래서 걸음을 쉰다.
오래된 매점은 아직 문을 열지 않았다.
평생 베풀고 살아온 가래나무는 곧 저 매점 문 열리면 자기는 문 닫는다고
청량한 바람과 금빛 아침햇살을 무료 판매 중이다.
바로 앞에 모양이 특이한 쪽동백나뭇잎이 눈에 들어온다. 잎이 돌돌 말려 있다.
아마도 ‘거위벌레’류가 나뭇잎에 알을 낳고 잎을 말아놓은 것일 게다.
공생은 아름답고, 모성은 눈물겹다.
매점을 지나면 승학폭포다.
폭포는 다시 백련폭포와 옥녀담, 비룡폭포, 주렴폭포로 이어진다.
옥녀담 바위벽에 연자줏빛 꽃 한 송이 보인다. 범의귓과 여러해살이 풀 노루오줌 꽃이다.
폭포 아래 앉으면 마음의 파랑은 잠잠해지고 모든 소리들이 지워진다.
꽃들은 냄새와 향기를 다 갖고 있다. 향기와 냄새 모두 꽃들의 언어다.
향기는 소통을 목적으로 하는 선행적 열림의 몸짓이며,
냄새는 자신을 해하지 말고 지키게 해달라는 메시지다. 우리가 쓰는 말들이
이러한 꽃들의 언어를 병행한다면 세상은 훨씬 더 평화롭고 아름다워질 것이다.
숲 사이로 비쳐드는 햇살이 맑고 투명하다.
바쁘게 쫓긴 날들, 언제 이런 길을 걸어보았는가.
나는 어디서 가장 아름다운 나 자신을 만날 수 있을까.
이러한 길들이 아니면 나는 언제나 내게서 부재중이다.
꽃을 보아도 그냥 무덤덤한 꽃이고, 나무를 보아도 그저 무관심한 나무일뿐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길에서 만나는 꽃과 나무들은
근원이 다르지 않은 존재임을 자각하게 된다.
아침이 오기까지 등불 들고 초롱꽃 산그늘 아래 누굴 기다리고 있나.
가만히 있어도 생각하게 하는 숲, 사색에 빠지게 하는 숲이 좋다.
숲에 빠지는 그 순간부터 일상과 무관심 속에 매몰된 나를 발굴해내는 시간이다.
오, 저기 빛나는 눈부심이 무얼까. 초롱꽃이다. 그 모양이 등롱燈籠을 닮은 꽃이다.
꽃을 보면 고운 색을 들인 한지와 같다. 색깔이 황백색이다.
꽃들은 둥글거나 모나게 피어도 그 빛들은 모가 나지 않는다.
티끌 없는 꽃들이 저린 고요 속에 피는 흥국사
시시각각 몰려오는 구름은 첩첩한 산의 바다를 다도해로 만든다.
삼악산성지三岳山城地에 도착한다.
강원도문화재자료 제50호다. 안내문이 비교적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태봉의 궁예나 삼한시대 맥국의
옛 대궐 터로 추측되는 내성과 외성의 흔적이라는 내용들이다.
그 외성의 중심부에 절이 하나 있다.
흥국사다. 등선봉 갈림길에서 오른쪽 길을 통해 절 마당에 올라선다.
환하고 밝다. 맑고 투명하다. 또렷하고 시원하다. 곱고 선하다. 향기롭고 청정하다.
상쾌하고 또랑또랑하다. 아무리 보아도 드맑고 새맑다.
애기똥풀 개망초, 엉겅퀴와 작약, 청단풍 홍단풍, 느티나무 소나무 등 티 하나 없다.
대웅전 앞의 불두화는 어떤가.
이리 구불 저리 구불 허공 짚고 하늘 잡아 몸 틀어 올린 세계는 어떤 경지인가.
저렇게 큰 불두화도 보기 드문 것이지만 지난한 시간을 응축시켜
등신불로 화한 이미지는 처음 보는 것이다.
빛과 색이 가득한 옥빛 소에 파문을 일으키는 저 동심원 어디서 왔나.
뜰과 마당이 법당이요 거기에 핀 온갖 꽃들이 모두 청정법신이다.
법당 문을 열고 들어가 앉는다. 온몸에 서늘한 감촉이 전해진다.
오래된 돌탑의 고요가 이런 것일까. 내 안 깊은 곳에서 꽃들이 핀다. 바람이 분다.
바람을 따라 흔들리는 꽃이 된다.
절 마당을 나서며 사찰 관련 설명문을 읽어본다.
“궁예가 왕건과 싸운 곳으로 ‘와데기’라는 곳에서 기와를 구워 궁궐을 짓고
나라의 재건을 위해 흥국사興國寺를 세웠다”고 한다.
정상까지는 1km 남짓 남았다.
작은 초원 벤치에서 잠시 다리쉼을 한다.
거목의 가래나무가 펼친 초록지붕 아래 사는 작은 풀꽃들이 함치르르하다.
이어 ‘333계단’을 오른다. 굳이 그 수를 세볼 필요는 없다.
이 길에도 큰 가래나무가 보인다.
주로 중부 이북 지방에 잘 자라는 우리의 토종나무다.
느티나무와 함께 속 깊은 그늘을 만들어 주는 데는 이만한 나무도 드물다.
큰 초원에 닿아 바라보는 길의 풍경이 선연하다.
정상인 용화봉(해발 654m)에 선다.
호반의 도시 아름다운 춘천의 매력이 한눈에 보인다.
상중도, 하중도, 붕어섬 등 마치 다도해의 일부를 옮겨 온 것만 같다.
정상에서의 조망도 일품이지만 일부가 나무에 가려 그 면목이 다 드러나지 않는다.
전망대에 펼쳐진 절품의 호반 풍경과 삼악산장
산과 강과 사람과 나무가 만나면 아무 일을 하지 않아도 의미가 된다.
전망대로 이동한다. 화악산-용화산-오봉산-사명산-가리산이 연이어 있다.
왼쪽으로는 먼산 주름이 아득히 출렁이고,
가운데로는 우뚝한 산악들이 겹쳐져 있으며,
오른쪽으로는 수려한 산천이 구불구불 펼쳐져 있다.
붕어섬은 물속의 꼬리까지 훤히 들여다보이고,
마침 물레길 축제가 열리고 있는 붕어섬을 도는 통나무 카누들이 물살을 가르는
청염한 최고의 명풍경이다.
호반을 질주하며 물살을 가르는 경쾌한 풍경은 보기만 해도 시원하다.
아름다운 풍광은 사람의 눈에 들어올 때 경景이 되고 정情이 되어
대상은 사라지고 자연 그 자체가 되어 내가 그 속에 남게 된다.
빛과 색과 공기의 움직임에 따라 우리의 인식 세계는 새로운 자연으로 다시 만들어진다.
이제 산을 내려갈 차례다. 암릉은 왜골스럽지는 않지만 날카롭고,
비탈길은 경사가 가팔라 진동걸음을 버려야 한다.
바위 절벽의 소나무들 하나같이 모두 명품송이다.
뒤로 자빠져도 의연하고, 앞으로 거꾸러져도 담담하고,
가진 것 없어도 궁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상원사를 지나 삼악산장에 들른다. 강물에 산이 비치고 있다.
미려하다. 강물에 비치는 산, 그러나 산은 강물 속에 있지 않다.
산은 ‘강물’이라는 주관의 거울에 비치고 있을 뿐이다.
여기서 강물과 산은 주관과 객관의 관계로 하나이며 둘이고, 둘이며 하나이다.
서로 대척되거나 대립하지 않는다. 산을 만나면 산이고, 강을 만나면 강이다.
대상 속으로 스며들어 자신을 던져 더 큰 자신이 된다.
그것은 이분법적 편협함이 아니다.
합일이나 일체 그런 것은 오히려 편견에 가까운 분별이다.
산도 강물도 나도 없는 일여一如한 근원적 세계에서 천지 만물이 다를 리 없다.
내가 산이고 강물이고 꽃이고 나무인 또 하나의 명풍경이다.
모든 것이 강물이 되어 오늘 하루 또 아름답게 흘러간다.
이 모든 것을 차 한 잔 값으로 다 살 수 있다. 큰 호사다.
그래서일까? 잔즐거리는 호수의 미소가 마주한 이의 입가에 번진다.
나뭇잎들이 난출난출 손을 흔든다. 마음은 이미 물꽃을 피우는 호반이다.
이 여름 마음에 수채화 한 폭 얻으러 여기 한 번 와보시라.
풍경은 사랑과 같이 흘러가는 것들이 남긴 기억의 산물이다.
영원을 꿈꾸는. 그래서 우리의 존재가 여전히 빛나리라.
흥국사 직지심경
개망초, 엉겅퀴 저 꽃들 보이시는가
드맑고 새맑아 눈 감고도
벌들은 제 밥 찾고, 나비는 춤추며 온다
내력을 숨긴 깨진 돌탑은
야생화 기르며 꽃말 듣고 산다
혹여 누가 여기서 가면을 쓰랴
삼엄한 고요가 면면을 비추는 거울이다
내 얼굴 네 얼굴 하늘이 보고 풀도 나무도 본다
꽉 닫혔던 문짝 쾅, 열리는 순간
무더기무더기 불두화 꽃구름 인다
지난 가을 대웅전 쪽문 문고리 붙잡고
뒤늦게 뜰에 씨를 나은 작약 꽃소식이 희다
무심한 산, 바람 일어 나무들 술렁이는데
스님도 염불도 없는 꽃들의 야단법석
보라, 단청 빛 풀꽃들의 동자승 미소가
바람을 타고 일파만파 세상 향해
산 아래 물결로 쉬쉬 미끄러진다
지금 그대도 보고 계신가, 듣고 계신가
출처:월간산.
글·사진 이종성 시인
2017.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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