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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거룩하고 복된 주의 날에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드리는 사랑하는 모든 성도님께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함께 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말씀의 제목은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맙시다.”입니다.
올해는 은혜와 진리로 충만한 교회와 가정이 되길 소망합니다. 새해 첫 한 주를 어떻게 지냈습니까. 결심한 것들을 잘 실천하고 계십니까. 작심삼일이 아니라 작심 한 달은 가야 하는데... 그래도 새해에 결심하는 것을 보면 모두 영적인 사람인 것을 알게 됩니다. 올해는 성경 몇 독을 하리라, 성경 일독 쓰리라, 올해는 새벽기도에 도전하리라, 전도를 몇 명 하리라 등등. 얼마나 소망이 있고 영적인 계획을 세우는지 모릅니다. 우리 중에 누가 올해는 절대 성경 안 읽으리라 결심하신 분이 있습니까? 올 해는 전도 한 명도 안 하리라고 계획을 세운 분이 있습니까. 올해는 다른 사람을 시험 들게 하리라고 계획 세운 분이 있습니까? 올해는 거짓말을 많이 하리라는 계획을 세운 분이 있습니까! 모두 거룩한 계획을 세우고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것만 봐도 얼마나 다행이고 영적인 분들인지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계획한 대로 꼭 해보시길 바랍니다.
저도 올해 우리교회가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려면 저부터 먼저 충만해야겠다고 생각해서 성경을 매달 일독씩 하고 새벽기도로 일독하여 13독 계획을 세우고 다시 말씀과 기도에 힘써야겠다고 결심합니다. 어제 마태복음을 읽는데 1장에 임마누엘이 나오는데 마지막 28장 20절도 임마누엘로 끝나는 것을 알았습니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나님의 약속은 변함이 없습니다. 우리와 늘 함께 하는 하나님이심을 믿고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열심히 하다가 넘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왜 넘어졌냐고, 일어나라고 다그치지 마시고 다시 일으켜 주면 됩니다. 가다가 힘들면 좀 쉬어갈 수 있습니다. 독도도 쉬어 가는데... 쉬었다가 다시 일어나면 됩니다. 어떻게 거북이도 아닌데 한 번도 쉬지 않고 기어갈 수 있겠습니까. 하긴 네 발로 기어가니까 안 쉬고 가는 것이지, 만일 거북이가 두 발로 뛰어갔다면 자기도 안 쉬고 견디겠습니까. 전도서 9장 11절입니다. “내가 다시 해 아래에서 보니 빠른 경주자들이라고 선착하는 것이 아니며 용사들이라고 전쟁에 승리하는 것이 아니며 지혜자들이라고 음식물을 얻는 것도 아니며 명철자들이라고 재물을 얻는 것도 아니며 지식인들이라고 은총을 입는 것이 아니니 이는 시기와 기회는 그들 모두에게 임함이니라” 빨리 뛴다고 일 등하는 것 아니고 똑똑하다고 재물 얻는 것 아니랍니다.
그러므로 괜히 비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남을 의식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어떤 집사님이 새벽기도를 열심히 나오는데 안 나온 사람 때문에 계속 불평을 합니다. 집사가 되어가지고, 권사인데도 새벽기도를 안 나온다고 투덜대는 것입니다. 보다 못한 목사님이 그 집사님한테 집사님도 새벽기도 안 나왔으면 좋겠다고 했답니다. 안 나온 사람들 때문에 시험 들고 불평할 것 같으면 차라리 같이 안 나오면 불평이라도 안 하실 것 아니냐고 했답니다. 내가 성경 많이 읽는다고, 전도 많이 한다고 못하는 사람을 허물 잡으면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염려가 되면 그냥 기도해주면 됩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롬 14장 3절에서 말씀합니다.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않는 자는 먹는 자를 비판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이 그를 받으셨음이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서 광야생활을 하는 동안에 제일 많이 범한 죄가 무엇일까요? 본문 앞에 1절에 보시면 “여호와께서 들으시기에 백성이 악한 말로 원망하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진노하사 여호와의 불을 그들 중에 붙여서 진영 끝을 사르게 하시매”라고 합니다. 바로 원망, 불평하는 죄였습니다. 원망의 원인은 무엇입니까? 물론 직접적인 원인은 광야생활이 너무 힘들어서 일 것입니다. 그러나 근본적인 이유는 그들이 기억해야 할 것을 잊어버리고, 망각한 것 때문입니다. 사실 망각이 때로는 우리에게 유익을 줍니다. 만일 우리가 과거에 겪었던 고통들을 망각하지 않고 계속 기억하고 있다면 얼마나 살기 힘들겠습니까? 잊을 것을 잊는 것은 참 다행한 일입니다. 그래서 세월이 약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결코 망각해서는 안 되는 것을 망각하면 문제가 생깁니다. 신기하게도 우리는 오래 기억해야 할 것은 잊어버리고, 정작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잊어버리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것을 반대로만 해도 인생이 달라질 것입니다.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도 결코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사실들을 망각함으로써 하나님을 원망하는 죄를 범합니다. 먼저, 이스라엘 백성들은 과거에 입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망각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400년 동안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강제노역에 시달리며 자유를 빼앗긴 채 하루하루 비참하게 살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모세가 태어난 시절에는 왕의 말 한마디로 자신이 낳은 남자아이들을 나일강에 던져 죽여야 했던 처참한 생활이었습니다. 그러한 참혹한 생활에서 누가 그들을 구원해 주었습니까? 누가 그들에게 자유를 허락해주었습니까? 하나님께서 열 가지 재앙을 통해 바로를 굴복시키시고 애굽을 탈출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홍해 앞에서 절박한 상황을 만났을 때, 하나님은 바다를 가르시고 건너게 하셨습니다. 광야에서 그들이 굶주림의 위기에 처했을 때 만나를 주시고, 때를 따라 쉴 수 있는 장소로 인도해주셨습니다. 400년 동안 계속된 노예생활에서 이처럼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는다면, 홍해를 건너게 한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했었더라면 잠깐의 불편함 때문에 그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원망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원의 은혜가 아닌 애굽에 있을 때 먹었던 생선과 오이, 참외, 부추, 파, 마늘들을 기억하기 시작했습니다. 5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오이와 참외와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사실 노예에게 먹을 것이 주어졌다면 얼마나 많이, 그리고 얼마나 좋은 상태로 전해졌겠습니까? 노예에게 품삯이 있습니까? 아침부터 저녁까지 죽도록 일하고도 요즘으로 말하면 최저수당도 없는 게 노예입니다. 그나마 일을 시켜야 하니까, 죽지 않을 정도로 먹을 것을 겨우 지급했을 것입니다. 게으름피운다고 재료도 주지 않고 일의 분량은 이전처럼 맞추게 했던 기록을 보면 알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지금 광야에서 조금 힘들다고 그 때 먹었던 보잘 것 없는 노예의 양식을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노예 때 먹은 양식이 좋으면 얼마나 좋았다고, 그토록 비참한 노예생활로부터 이끌어내어 자유를 주시고, 약속의 땅으로 가게 하시는 하나님의 이 큰 은혜를 망각한단 말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과 함께 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는 감격스럽게 생각하지 않고, 자신들에게 배급된 그 보잘 것 없던 음식에만 집착하고 있습니다. 구원의 은혜를 잊어버리니까 불평하고 원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주님이 우리 위해 십자가에 달려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죄에서 구원해주신 그 은혜를 우리가 먼저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그 구원의 은혜를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과거에 우리는 죄인이었고 죄로 말미암아 죽었던 자였는데 주님이 살려주셨습니다. 새 생명을 주셨습니다. 죄인이었던 나를 용서하시고 구원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신 그 큰 은혜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무엇보다 십자가의 은혜를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현재의 축복을 잊어버렸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범하는 실수중 하나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너무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받아 누리는 축복에 익숙해지면 종종 이런 일이 발생합니다. 내가 병들었을 때, 가정이 힘들 때, 사업장과 직장이 어려울 때, 이것만 해결해 달라고 매달립니다. ‘하나님, 이 문제만 해결해 주시면 정말 하나님만 바라보고 살겠습니다.’ ‘하나님, 이것만 해결해 주시면 정말 하나님께 충성하며 감사하며 살겠습니다.’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런 문제가 해결되었어도 우리는 주님께 여전히 또 다른 문제를 가지고 나와서 또 그렇게 기도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주님 이 문제만 더 해결해 주시면 됩니다.’ 그리고 그 문제로 인해 여전히 불평합니다만 주님이 아직 해결해주지 않은 것이 혹 있더라도 그동안 해결해주신 것이 더 많음을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현재의 감사를 잊은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주 작은 것에도 감격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사소한 것으로 불평하며 살아갑니다. 그것이 본문의 만나 사건입니다. 하나님은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야말로 일용할 양식을 주셨습니다. 매일 아침마다 그들이 먹을 분량의 만나를 내려 주셨습니다. 백성들은 배고픔의 위기에서 처음 만나를 맛보았을 때 감격했습니다. 출애굽기 16장 31절에 보면,"꿀 섞은 과자"라고 말하며 그야말로 꿀맛으로 여기고 감사하며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만나를 먹고, 또 먹으니까, 본문 8절에서 그 맛을 ‘기름 섞은 과자 맛’ 정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꿀맛이 기름에 튀긴 맛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끝나지 않고 나중에는 ‘박한 식물’이라고 합니다(민21:5절). ‘하나님, 언제까지 이것만 주실 것입니까? 새로운 메뉴를 주십시오.’라고 원망합니다. 같은 만나인데 맛이 변한 것이 아니라 입이 변한 것입니다. 만나를 받는 태도가 변한 것입니다. 감사할 줄 모릅니다.
애들도 오만 원짜리 용돈 주다가 만 원짜리 주니까 안 받으려고 합니다. 그동안 받은 것은 생각하지 않고 한 번 안 준 것만 섭섭하게 생각합니다. 그동안 사 준 것은 감사하지 않고 한 번 안 사준 것에 불평합니다. 우리는 현재 누리고 있는 것에 감사하길 바랍니다. 그것이 큰 누림은 아니더라도 작은 것 하나부터 소중하게 여기고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지금 누리는 모든 것은 지금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은혜를 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미래로 이끄시는 하나님의 인도를, 약속을 망각하였습니다. 그들이 불평하고 원망하는 그 순간도 사실 가나안 땅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약속의 땅, 가나안 복지를 향해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그 과정의 한복판에 서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원망함으로 하나님의 인도를 더 이상 기대하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지도 않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꿈과 소망, 비전을 잊어버린 채 지내고 있습니다.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백 년 전 영국은 기독교인들을 무지막지하게 박해했습니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감옥에 갇히고, 순교했습니다. 이 핍박의 시기에도 믿음의 순결함을 지키며 살던 성도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을 일컬어 청교도라고 부릅니다. 이들이 모진 핍박의 시기를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분명한 좌우명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가장 좋은 것은 아직 오지 않았다.’ 가나의 혼인잔치의 막바지에서 가장 좋은 포도주 맛을 보았던 하객들의 고백을 기억하십니까? ‘보통 사람들은 처음에 좋은 것으로 대접하다가 나중에는 안 좋은 것이 나오기 마련인데, 이 집은 가장 좋은 포도주를 마지막에 준비하셨군요.’
미국의 건축가인 리차드 노이트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가 지은 건축물이 대상을 받기도 하고 아름답고 멋진 건물이라고 많은 칭찬을 받았습니다. 노년에 기자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은 파르테논 신전이겠지요?” 이때 노이트는 단호하게 ‘노’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은 아직 지어지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다음에 지을 건축물입니다.”
경영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피터 드러커 박사도 그가 쓴 오십 여권의 책 중에 가장 훌륭한 책이 어떤 것이냐고 묻는 기자에게 “다음에 나올 책”이라고 했습니다. 오페라의 아버지로 불리는 주세페 베르디도 그가 작곡한 오페라 중에 어떤 것이 가장 훌륭하느냐고 물었을 때 역시 그렇게 대답했습니다. “다음에 나올 곡”이라고 말입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더 좋은 은혜를 주시려고 하십니다. 가장 좋은 복은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가장 좋은 날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예비하시는 미래, 그 미래에 대한 하나님의 분명한 약속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처음에는 힘들지만 하나님의 때에, 가장 좋은 것으로 채워주실 계획을 가지고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까지 와서 거의 포기했습니다. 돌아가자고 불평했습니다. 그러나 소수의 용기 있고 믿음 있는 사람, 소망과 비전을 가진 사람들만이 요단강 건너편의 가나안 땅에 대한 꿈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깃발을 들고 요단강을 건너갔습니다. 그들을 통해서 가나안 정복의 역사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다윗은 시30:5에서 고백합니다. “그의 노염은 잠깐이요 그의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깃들일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하나님은 과거에도 우리를 구원하셨고, 지금도 우리와 함께하시고, 미래도 인도하실 것입니다. 세상 끝 날까지 너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임마누엘의 약속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계획하심과 준비하심을 믿고 감사함으로 주님을 섬기고 순종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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