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650VJOSkJGs
양희은 / 사랑, 당신을 위한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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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망록
문 정희
남을 사랑하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남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가난한 식사 앞에서
기도를 하고
밤이면 고요히
일기를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구겨진 속옷을 내보이듯
매양 허물만 내보이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사랑하는 사람아
너는 내 가슴에 아직도
눈에 익은 별처럼 박혀 있고
나는 박힌 별이 돌처럼 아파서
이렇게 한 생애를 허둥거린다.
.
.
♠️
* 비망록 備忘錄
어떤 사실을 잊지 않고자 적어둔 기록.
살아온 날들을 돌아다 볼 나이가 되었다.
어느 날 내가 떠난다해도 두렵거나 아쉬울
것이 없다만 , 지난 날은 나만의 걸어온 길
나의 발자취였기에 되돌아 볼 이유가 있다
오늘 간단한 시 한 편을 읽고
다시 나의 길을 되돌아 볼 수밖에 없었다.
나 보다 남을 사랑하는 그 어려운 일은 일단
제쳐두고 , 詩人은 자기 자신은 사랑할 수
있었다는 것에 부러운 생각이 들었다 .
남은 커녕 자신마저 사랑하지 못했던 젊은 날.
끝을 모르고 방황했던 서른 이전의 삶이
너무도 부끄럽기만 하다.
내게는 다행히도 신께 대한 믿음이 있었다.
그마저도 내세울 것 하나 없는 너덜너덜한
누더기의 믿음이었으니 , 그 아슬아슬한
끈 마저 없었더라면 그 거칠고 냄새나는
질곡의 세월을 어떻게 견뎌냈을 수 있었을까 ?
♠️
(아흔 네번째 글에 이어.....)
밀양역에서 새벽을 맞았다
대합실의 연탄 난로에 묵직하게 눌러 앉은
주전자에 물이 끓고 있었다
작은 코펠에 물을 담아 생라면 절반을 짤라내어
우득우득 씹어 먹었다 .
생각해 보니 스물네 시간을 넘도록 뱃속에는
아무 것도 들어가지 않았다 .
라면은 달큰하고 고소하게 지친 몸을 풀어
놓아 버렸다.
배낭을 껴안은 채 잠이 들었다.
아직 밖은 어두운데 경상도 특유의 시끄러운
소리에 눈을 뜨고 말았다
아주머니들이 첫새벽의 정적을 깨뜨리며
커다란 보따리를 이고 메고 열차를 타기 위해
대합실로 우르르 몰려 들었다.
겨울 끝트머리지만 그들은 각자 농사를 지은
귀한 물건을 대도시에 내다 팔기위해 새벽의 노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자리를 피해 찬물로 세수를 하고 양치를 했다
어제의 피로가 말끔히 날아간 것 같았다
밀양 성당을 찾아 갔다
( 옛 성당은 시장통에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어둠 속에서 감실의 불빛이 유난히 붉게 빛나고
있었다
성체조배와 십자가의 길 기도를 드리고
성당을 나왔다
그날은 새벽미사가 없었기 때문이다 .
**메마른 얼굴의 겨울 거리를 태양은 슬그머니
깨우고 있었다 .
발바닥이 화끈거리고 있었다 .
커피 한 모금이 너무 그리운 아침이었다.
어느새 주위는 밝아져 오고 나는 다시 북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우리나라의 작은 행정 구역을 나누는 것이 고개나 강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밀양을 떠나 북으로 청도를 거쳐를 경산이라는 곳을 도착했을 때는
발바닥에서 오는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자연히 걸음은 느려지기만 하였다
" 겨우 이틀째인데 ...."
대구 남부 정류장에서 양말을 벗어 보았다
발바닥의 속살과 피부가 완전히 분리가 되어
덜렁 덜렁 거리고 있었다
아차 싶었다
첫날부터 너무 무리를 한 것 같았다
준비한 예비 양말을 겹쳐 신었다.
동대구역의 밝은 조명 아래 도착한 것은
아홉시가 넘어서였다.
우리나라 최초의 노숙자의 대열에 나도 끼었다
다행인 것은 유리문이 이중이라 문을 여닫을 때마다 온몸으로 맞아야 하는 찬바람만은 맞지 않을 수 있었다 .
" 이런 몸으로는 노가다도 뛸 수가 없는데 ..."
은근히 밀려오는 불안은 어느새 나의
작은방의 온기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역사의 경비가 다가왔다
" 여기서 자면 안됩니다 . 어서 나가세요 "
어쩔 수 없는 순간이었지만 기지를 보였다
거짓말을 하였지만 어쩔 수 없는 거짓말이었다
기차를 놓쳤노라 . 새벽 열차를 타야할 방법 밖에 없어서 여기서 기다리겠노라 고 했다
그 때 당신 서울말의 위력은 상당하였다
세쨋날이 시작 되었다
발바닥은 내내 그 상태였으나 통증은 덜
느껴졌다
대구 시내를 관통해서 왜관을 향해 출발하였다
아침에 처음으로 라면을 끓여 먹었다
삼 일만에 먹어보는 뜨거운 음식이었다.
물론 수중에 돈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이
여행의 의미에 어긋나게 하면서 , 배 부르고
등 따뜻함을 추구할 수는 없었다.
얼마를 걸었는지 모르겠다
저녁 노을이 곱게 물들어 가는데 가까운 곳의
성당에서 삼종이 종이 울리고 있었다
걷던 길을 멈추고 내 생애 가장 아름다웠던
삼종 기도를 올렸다.
왜관역의 하룻밤
피곤이 몰려왔다 .
기도의 의미 조차 상실해 버렸다
" 내가 왜 이 짓을 ? 미친 놈 아닌가 ?"
당장 서울행 기차에 올라타고 싶었다
비상식인 라면도 떨어졌다
절반의 라면으로 삼 일을 버틴 것도 버틴 것이었지만 150 km 의 길을 걸었다는 것에
스스로 놀랐다 .
그렇지만 마음은 흔들리고 있었다.
억지로 하는 기도가 싫어지기 시작하였다 .
사 일째 .
내 생애 가장 어렵고 곤란한 일중에 하나를
겪은 날이었다.
눈이 내리지 않는다는 구미시에도 눈보라가
몰아쳤다 .
다행스럽게 쌓이지 않았기에 덜렁거리는
발바닥을 위로하면서 , 길을 재촉하였다 .
가다가 한 번 쉬게 되면 일어설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
문제는 여기서 일어났다.
김천역을 들어 가기엔 이른 시간이었고
마땅히 쉴 곳도 없던 차에 혹시나 하고
성당을 찾았으나 지나치고 말았다
기차역은 나 같은 나그네에게는 더 없이 좋은
하룻밤 머물 장소였다.
야간 열차를 타야하는 사람들이 기다리는
대합실의 온기 속에서 하룻밤을 훌륭히 보낼
수 있는 최고의 오성급 호텔이었다.
오늘 길에 어느 시인의 말처럼
" 라일락 향기가 내 머리를 강하게 때렸다 "
역으로 돌아 오다 어느 가게의 불빛을 따라
수증기와 함께 피어나는 국밥의 냄새
그 구수한 냄새는 유혹의 단계를 이미 넘어섰다
인간의 욕망 중에 으뜸은 식욕이라 한다
자연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가 앉기도 전에
국밥 한 그릇을 시켰다.
배고픔은 인간의 의지마저도 집어 삼켰다.
뚝배기 가득하게 담긴 국밥 앞에서 나는 그저
한 마리 개였을 뿐이었다.
나흘을 라면 두 개로 버틴 뱃속에 기름기
넘치는 고깃 덩어리는 결국 큰 혼란을
일으키고야 말았다.
밤새 역사의 화장실을 들락거렸다
먹는 것의 짧았던 희열에 댓가는
시도 때도 싸야하는 긴 고통으로 치루었다
긴 보도 여행의 철저하고 소소한 것까지
준비하지 못했던 무지의 소치는,
신앙이라는 믿음과 의혹의 경계선을 그어보고
싶었던 여행을 그치게 하고 말았다.
해프닝으로 끝나고 말았지만 그 고통속의
시간은 나의 자존감을 찾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이 글을 포스팅해야하나 써 놓고도
고민을 하게 되다.
서랍 속의 굴러다니는 내 인생의
잡동사니 하나였음을 ....
첫댓글 인생의 여정을 정리하고
포스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기록이란
시간이 지나 추억되는 순간 사랑스럽게 되더라구요
젊은 날의 어느 한 때의 이야기였습니다.
살아야 할 이유를 심각하게 고민하던 날이었지요.
검은 옷이 어울리지 않음을 확인하던 짧은 해프닝이었습니다 ^^
문정희 시인
시를 참 잘 쓰는데
개인적으로는 좋아하지 않는 사람..ㅋㅋ
자신을 사랑해야 남도 사랑 하지만
자기애가 너무 깊으면 부작용이 생기겠지요
그렇죠 ...
원색적인 詩가 ㅎㅎ
한번 보고 싶은 시인입니다
자애가 깊으면 정말 못말리지요
ㅎ
어느 사춘기 소년의 젊은 혈기의 무전여행에 종종 어이없는 웃음이 나오곤 했었는데...
어떠한 감성과 상념으로 노숙여행을 하시게 되었는지
그때의 고심은 해결되고 인생에
적절한 반영은 되었는지 궁금하네요.
젊은 날의 몸부림을 존중합니다.
그때에 이미 성불하셨네요.
ㅎㅎ
그때 더 적극적이지 못했음을 후회하기도 하지만 이미 다 지난 일 .... 그때 그 사건이 신앙생활에 도움이 된 것은 틀림없지요 .
서슴없이 다가 갈 수 있으니 좀더 자유로운 생각과 거기에 맞는 책임으로 .... ㅎㅎ
길다 ㅉ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