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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간절히 원하시는 것
2014, 6, 29
요17 : 23-26
우리는 지난 주 우리 옛 사람은 온전히 죄의 종이요, 심히 부패해 있으며 그 자체가 죄 덩어리로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예수께서 우리 죄를 대신 담당하셨다는 것은 우리의 행위로 지은 죄만 아니라 우리의 옛 사람, 옛 영혼도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안에서 예수님과 함께 죽었다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의 옛 사람은 예수와 함께 죽었습니다.
우리의 신앙에 있어서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예수님 안에서 죽었다는 것을 분명하게 인식하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우리가 복음의 가장 중요한 핵심을 분명하게 깨달을 때, 성경에 나오는 영적인 모든 말씀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예수와 함께 죽은 옛 사람은 없고, 예수님의 부활하실 때 예수 안에 있던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하심과 연합하여 함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새 생명을 얻어 이제 거듭난 새 생명을 얻은 새사람이 된 것입니다.
옛 사람은 그 죄로 인하여 죽었고, 이제 영원히 사는 새 생명만 우리 안에 있습니다.
우리가 분명한 믿음을 갖기 위해서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때 자신의 옛 사람도 그 예수 안에서 예수와 함께 죽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이 사실을 깨닫고 믿을 때 우리의 믿음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옛 사람이란 예수 믿기 전에 자신이요, 그 사람의 영혼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산 사람은 이제 예수 안에서 새 생명을 얻은 새사람만 있을 뿐입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실 때 예수 안에서 함께 부활의 새 생명을 얻은 사람은 지옥에 들어갈 걱정은 없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때 예수와 함께 죽은 우리는 예수께서 부활하실 때에도 예수 안에 있어 예수님의 부활과 연합하여 예수 부활의 새 생명을 얻습니다.
이것이 사도 바울이 로마서 전체에서 진술하는 위대한 복음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부활하실 때 예수 부활과 연합하여 얻은 우리의 새 생명은 죄를 짓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중생한 새 생명은 성령 안에 있는 생명으로 죄와는 상관이 없는 생명입니다.
다시 말해서 성령님은 죄 짓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자기들이 영혼이 있는지 조차 알지 못합니다.
자기 영혼을 의식하고 사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마다 오직 자기 육신만을 위해서 전적으로 육신 위주로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오직 육신만 알고 자기 육신만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자기 육신을 위해서 살 때 죄 짓게 되어 있습니다.
죄는 그 육신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사람의 육신, 다시 말해서 사람의 몸의 본능은 본래 악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 주님도 육체를 가지고 있었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 주님도 죄의 유혹을 받았지만 죄는 짓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마귀는 세상 임금이요, 모든 사람은 마귀의 종입니다.
성경에 죄가 우리의 육신 안에 있다고 하셨지 않습니까?
그 말은 육신 안에서 마귀가 역사하여 죄로 유혹하고 죄 짓게 한다는 뜻입니다.
마귀는 절대적인 권세를 가지고 있고 사람의 육신 안에 거하면서 그의 육신의 본능을 악하게 이용하여 죄 짓게 하고 자기 종으로 부리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자기 육신을 위해서 사는 자는 마귀의 종노릇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
여기서 육신은 사람의 모든 장기의 기능과 뇌의 기능을 포함한 것입니다.
뇌의 기능을 자기 영혼으로 잘 못 인식하지 않도록 하십시오.
사람의 영혼과 몸은 엄연하게 구별되는 존재입니다.
사람의 영혼과 몸이 분리되는 것을 죽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 옛 사람의 영혼은 아담으로부터 받은 애초부터 죄 된 영혼이요, 부패한 영혼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 믿고 자기 영혼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깨끗하게 씻음 받은 새사람이라고 흔히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람의 영혼은 깨끗이 씻음 받았다고 해도 변하지 않습니다.
예수와 함께 죽은 자에게 예수 부활과 함께 새 생명이 들어와 새사람이 된 것입니다.
우리의 그 옛 영혼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와 함께 죽었다는 것을 신약 성경에 특별히 로마서에 계속해서 강조되고 있는 내용입니다.
이점을 칼빈은 물론이고 로이드 존슨의 로마서 강해에서 내내 강조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나니
(-여기서도 우리 옛 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고 했습니다.-)
그런즉 이제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깨끗해진 내 영혼으로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나의 옛 사람은 죽었고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신 것이라 하시는 뜻이죠?-)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이제 내가 사는 것은 내 안에 계시는 주님으로 말미암아 사는 것이란 뜻입니다.
그러므로 성경 말씀은 이제 네가 새 생명을 얻었으면 육신을 위해서 살지 말고 네 안에 계시는 주를 위해서 살라는 말씀입니다.
지금도 우리가 육신의 생각을 하며 육신을 위해서 살면 죄 짓고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이 때 우리가 죄 짓는 것은 우리의 중생한 새 생명이 죄짓는 것이 아니요, 우리의 육신이 짓는 죄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우리 영혼이 원하지 않는 죄를 육신의 뜻으로만 죄를 지을 수 있느냐 하고 물으실 것입니다.
예, 맞습니다. 우리의 새 생명이 원하지 않는 죄를 육신이 짓습니다.
우리 중생한 새 영혼이 원치 아니하는 것을 육신이 짓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7장 17절에서 “이제는 그것을 (죄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했습니다.
또 7장 19-20절에서 반복하기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는 바 악을 행하는 도다.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행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하셨습니다.
자기 육신 안에 있는 죄가 자기 육신의 욕망으로 죄를 짓는 다는 것입니다.
자기 영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네 육신을 위해서 살지 말고 네가 새롭게 얻은 새 생명으로 주를 위해서 살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이 바로 그런 뜻입니다.
23절에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과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함은 ”
예수께서 기도하신 내용은 이런 뜻입니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나를 믿는 자들 안에 있어 그들과 온전히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하는 기도를 하신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앞에 21절에서도 22절에서도 23절에서도 또 26절에서도 똑 같은 내용의 기도를 하고 계십니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그들 안에 있어 그들과 하나 되게 하옵소서” 하시는 기도입니다.
우리 주님은 아버지께서 예수님 안에 계심으로 예수님과 일체가 되신 것처럼 우리도 우리 안에 계시는 주님과 온전히 하나가 되고 일체가 되기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시는지 모릅니다.
“내가 그들 안에 있어 밀접하게 일체가 되고 한 마음 한 뜻되게 하시어 그들도 나처럼 온전히 아버지의 뜻을 행하게 하옵소서.” 하시는 기도입니다.
이것이 지금 우리 안에 계시는 주님의 간곡한 뜻입니다.
우리가 먼저 우리 안에 계시는 주님을 알아야 하고 하나가 되고 일체가 되어야 우리가 주님의 뜻을 생각하고 주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님이 우리 안에 계시는 것을 아는 것이 그 토록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질문하실 분이 있을 것입니다.
예수 믿고 거듭난 그리스도인 안에는 옛 사람은 없고, 그들 안에 계시는 분은 오직 부활하신 주님의 생명 다시 말해서 주의 영이신 성령이 계실 뿐인데 새삼스럽게 주님과 하나가 되고 일체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시는 것은 무슨 뜻인가?
이미 옛 사람은 죽고 주님 자신이 우리 안에 계신다고 했지 않은가? 하고 물으신 분도 있을 것입니다.
당연한 질문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육신도 있고 육신 안에 죄가 다시 말해서 세상 신인 마귀가 늘 우리 육신을 그의 뜻대로 끌고 간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육신에 죄가 있다는 말은 우리 육신에 마귀가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 안에는 두 신이 있습니다.
내 영혼에는 성령이 계시고, 내 육체 안에는 세상 신인 마귀가 있어 늘 그의 뜻대로 끌고 갈려고 합니다.
이 내용이 갈라디아서 5장 16-17절에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소욕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는 성령이 소욕을 거스리고 성령은 육체의 소욕을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우리 안에 성령이 계실지라도 죄를 짓는 것입니다.
우리는 육신으로 말미암아 육신을 좇아 행하며 죄를 짓는 다는 것을 여러분도 아십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성령으로 우리 육신 안에 있는 죄성까지 온전히 점령하고 우리 몸을 하나님께 드려지게 하옵소서 하시는 기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로마서 12잘 1절에 있는 말씀처럼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하셨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신앙의 과제입니다.
우리 몸을 세상 신 마귀의 권세에서 빼앗아서 하나님께 돌려 드리는 것입니다.
23절 하반절에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우리가 복음으로 새 생명을 얻은 것은 아버지께서 성경에 약속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세상에 오시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생명을 얻지 못하였을 것이고 아버지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와 영생과 지옥과 영벌을 지금처럼 어찌 생생하게 알 수 있겠습니다.
구약을 통해서도 살아계신 하나님을 알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을 통해서 아는 것처럼 그처럼 생생하게 알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가 보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영생과 하나님 나라가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세상에 전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후서 4장 1장에서 디모데에게 편지하기를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예수님 앞에서 그리고 하나님 나라를 두고 엄하게 명령을 내리노니 너는 복음을 전하라 하셨습니다.
전도하지 않은 사람은 그 나라에 들어가서 엄히 문책을 받는 후회하는 일이 있을 것이고 전도하여 영혼을 얻은 사람들은 큰 축복을 받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는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주님이 가장 원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24절에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도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하는 말씀은 예수 믿는 자들도 예수님과 함께 있게 해 주시고 그들도 내 영광에 참여하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주님의 이 기도는 장차 우리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알게 하시는 아주 중요한 내용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올라가면 주님과 함께 있을 것입니다.
우리 영혼이 하나님 나라에 올라가면 바로 신령한 몸을 입는 것이 아닙니다.
주께서 재림하신 후에 우리는 신령하신 몸을 입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올라가서 신령한 몸을 입기 전이든, 입은 후이든 우리는 주님과 함께 있어 주님의 영광에 동참하는 자요, 그 영광을 누릴 자들임을 가르쳐 주시는 말씀입니다.
누가복음 23장 43절에서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있을 때 오른 편 강도에게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하셨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7절에 주께서 재림해 오실 때를 말하여 “우리가 주를 영접하여 그리하여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하셨습니다.
우리는 천국에서 모든 축복을 받으며 주와 함께 영생을 누릴 것입니다.
어느 학자는 말하기를 천국은 이 세상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넓고 아름다운 곳이라고 했습니다.
25절에 “의로우신 아버지여 세상이 아버지를 알지 못하여도 나는 아버지를 알았사옵고 그들도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실 줄 알았사옵나이다.”
주께서 성육신 하시고 세상에 오셨을 때 세상은 주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세상은 아버지께서 보내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를 알지 못했고 또 그분이 전하시는 아버지의 말씀을 들을 줄을 몰랐습니다.
주님이 세상에 오셔서 다시 아버지께 올라가시기까지 오직 제자 몇 사람만이
주는 아버지 하나님의 독생자 아들이시오, 아버지께서 성경에 약속하신 주주로 보내신 그리스도가 되심을 알았고 또 그분의 말씀대로 반드시 되는 것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알고 믿는 제자들은 주님이 세상에 오셔서 세상에 남기신 유산과 같은 존재들이었습니다.
주님은 세상에 오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하나님을 믿는 제자들을 얻으시고 아버지께 다시 올라 가신 것입니다.
복음은 초대교회 시대부터 많은 부분이 다르게 전해져 왔고 이로 인해 얼마나 많은 종교가 생겨났고, 지금도 기독교 안에서 조차 얼마나 다르게 복음이 전해지고 있습니까?
복음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자기들의 복음을 전하면 이단이 되고, 복음을 바르게 이해하고 있다 해도 자기의 생명을 드릴 수 있을 만큼 온전히 믿지 않는 사람이 전하면 이론만 있고, 그 실제가 없는 종교가 될 뿐입니다.
복음을 생명을 얻고 예수께서 그 안에 계시는 사람들이 전해야 합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 복음을 아는 자를 우리 주님이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시는지 주님의 기도를 통해서 깨닫고 느끼시기 바랍니다.
생명을 얻었다면 복음을 전하시기 바랍니다.
세상에 이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 모두는 온 세상에 다니며 복음을 전하라는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것이 우리 주님의 간절한 뜻이십니다.
26절“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그들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나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하늘에 계신 살아계신 아버지 하나님을 여실히 알게 되었고 죄로부터 구원과 영생이 있음을 분명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구원 받은 우리에게 주님의 생명만 주신 것이 아니요, 하나님에 대한 큰 사랑도 부어주심으로 우리가 나가서 복음을 전하게 하신 것입니다.
주께서 떠나신 후에도 복음을 전하는 신실한 믿음의 사람들의 전도와 또 믿는 자안에 계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살아계신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은 “그들에게 알게 하였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알게 하리이다.” 하시는 말씀은 주께서 믿는 자안에 계시면서 계속해서 아버지 하나님을 더욱 분명하게 그리고 더욱 밀접하고 친밀하게 알게 하실 것이란 뜻입니다.
전도자의 전하는 말로만으로는 우리는 믿음을 가질 수 없습니다.
아버지께서 사랑하시고 택하신 자들에게 역사하시는 성령의 가르치심으로 복음을 듣고 깨닫고 참으로 믿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의 결국은 그들이 구원 받고 그들 안에 생명으로 주가 계시는 것과, 아버지께서 주를 사랑하시는 것처럼 그들도 사랑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주님이 끝마치는 기도 내용을 유의해서 보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아버지의 사랑이 그들 마음속에 거하게 하시고 예수님 자신도 그들의 마음 안에 있으시겠다는 기도였습니다.
여러분 주님의 기도대로 여러분 안에 지금 주님이 계십니다.
우리가 살면서 항상 이점을 생각해야 합니다.
맨튼이라는 학자는 이렇게 예를 들었습니다.
“세상의 임금이 어느 집에서 단지 하룻밤 묵게 된다 해도 그 왕에게 거슬리는 것이 거기에 아무것도 없게 할 것입니다.
하물며 하늘의 임금이 우리 안에 거처를 마련하시고 항구적으로 거하시는데 우리는 당연히 우리 마음을 깨끗하게 해서 그분을 기쁘시게 해 드려야 하지 않겠는가?”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우리 안에 계시는 주님을 항상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