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랑은 다 로맨스다 / 이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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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 좋습니다. 허허”
한잔 거나하게 걸친 낯모른 남자는 우리 내외를 번갈아 쳐다보며 이상야릇한 웃음을 보이며 한마디 하면서 지나갔다. 우리는 어리둥절 해가며 서로의 모습을 쳐다보고는 허리가 휘도록 웃었다.
몇 년 전 테니스를 하다가 넘어져 아킬레스건이 파열됐다. 수술하였으나 잘 못되어 한동안 고생했다. 수술만 하면 다시 운동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운동은 고사하고 제대로 걸을 수 조차 없었다. 외출할 때면 목발을 짚거나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만 하기에 직장도 병가를 내고 집안에 틀어박혀 따분한 생활을 해야만 했다.
어느 날 남편은 큰 인심이나 쓰듯 드라이브를 시켜 준다며 서울을 벗어나 충주호로 데리고 갔다. 전날 비가 와서 길은 미끄러웠지만, 강가에 나와 바람을 쐴 수 있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 날아갈 것만 같았다. 길이 미끄러울수록 남편에게 바싹 매달려 걸었다. 강바람은 시원했고 무슨 이야기를 해도 재미있었다. 남이 우리를 쳐다보는 것 같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산책을 했다.
이런 우리의 모습을 본 그 남자는 우리를 오해한 것 같았다. 머리가 희끗희끗하게 센 중년의 남녀가 희희낙락거리며 몸을 밀착하여 산책하였으니 오해를 살 만도 했다. 그는 우리가 정상적인 부부가 아니고 불륜 관계로 생각하여 벌건 대낮에 너희가 사랑을 나누는 것을 나는 다 안다는 표정이었다. 지금도 그 남자의 알다가도 모를 듯한 웃음이 생각나면 절로 웃음이 나온다.
내가 불편할 때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는 것은 감사한 일이지만 부담스러웠다. 그런데 도움을 주는 사람이 남편일 경우는 상황이 달랐다. 남편이 도와줄 때는 마음이 편할 뿐만 아니라 사랑의 표현으로 감사한 마음이 애정으로 바뀌기도 했다.
다리의 불편은 오랫동안 지속했다. 외출할 때면 남편의 손을 잡거나 팔짱을 끼고 걷는 일이 많아졌다. 차를 탔을 때는 여느 부부들처럼 서로 말이 없다가도 차에서 내려 걸을 때는 다정한 부부가 됐다. 이런 모습을 본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남편의 부축을 받으면서도 다리를 절룩거릴 때는 나의 불편함이 겉으로 드러나 그냥 묵인하는 눈치였다. 그런데 절룩거리는 다리가 조금씩 나아지고 남편이 잡아주면 정상인처럼 보일 때는 주변의 시선이 따가 왔다. 남편도 주변 사람들을 의식하는지 동네 어귀에 들어설 때면 잡고 있던 손을 슬그머니 놓았다. 그러면 나는 어색하여 일부러 남편에게 팔짱을 더 끼려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왜 그래, 우리보고 닭살 부부라고 놀릴까 봐 아니면, 불륜이라고 생각할까 봐 그래”
난처해 하면서도 나를 뿌리치지 못하는 남편의 입장을 헤아려 나도 남이 보면 남편과의 거리를 두고 집까지 힘들게 걸어가야만 했다.
이렇게 다리의 불편함 못지않게 마음이 불편할 때가 많았다. 주변에서 우리를 부부로 보거나 연인으로 보거나 관계없이 우리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에 신경을 써야 했다. 미혼 남녀 간의 사랑은 크게 문제 되지 않으나, 기혼의 사랑은 불륜으로 오해를 받거나 빈축을 사게 된다. 그래서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생겼나 보다.
사람들은 영화나 소설 속에서 연애하는 감정에 너그럽다. 아니 그 이상이다. 자신도 그런 사랑을 나누고 싶은 마음에서 박수를 보낸다. 그것이 순수한 것이든 불륜이든 상관하지 않는다. ‘자유부인’이 그랬고 ‘차탈레 부인의 사랑’이 그랬다. 그런데 그런 사랑이 우리 마을이나 이웃집에서 일어났을 경우는 정 반대의 상황이 벌어진다. 입방아에 오르고 급기야는 마을에서 쫓아내려고도 할 것이다.
그 동안 남편의 도움을 오래 받다 보니 나의 사랑 관이 많이 넓어지고 대범해졌다. 젊은 사람이든 늙은 사람이든, 기혼이든 미혼이든 사랑하는 마음은 모두 아름답다. 그러므로 내가 해도 로맨스이고, 남이 해도 로맨스이다. 예술 작품을 통해서만 사랑의 표현이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나의 이웃, 주변에서 보게 되는 사랑의 표현들이 모두 아름답다. 젊은 사랑은 풋풋해서 좋고, 늙은 사랑은 포근해서 좋다. 그러므로 모든 사랑은 다 로맨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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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전적으로 동의 합니다.
로맨스이든 아니든 사람을 꽃처럼
아름답게 볼 수 있는 사랑관이 필요할 듯 합니다.
저의 대범한? 사랑관에 동의 해 주시는군요.
지난 번 범생이들 모임에서 이 이야기를 했더니 위험하다고 , 약간만 수정하란 경고를 받았는데
역시 덕성시원은 아니 전선용 시인님은 뭐가 달라도 다릅니다.
부군의 부축을 받으며 걷던 것이 다리가 다 나은 뒤에도 아름다운 습관으로 자리잡게 되었을 것 같군요.
아킬레스 파열 수술 이후 허리 디스크 수술까지했으나, 요통은 여전합니다. 하지만 남편의 도움은 사양하고 있습니다.
노년 부부가 부축해가며 걷는 모습은 아름답지만 저는 아직 중년이라고 강력히 주장하기에
불륜은 부러워서 하는 말 아닐까요? 하하. 로맨스 그레이가 더 멋집니다.
그렇지요.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 이라는 말도 설득력이 없지요 .
그러니 뭇사랑은 다~ 첫사랑 인가 봅니다.
불륜은 윤리적이지 못하다는 말인데요.
남들의 윤리에 개입하는 것보다는 자신의 윤리를 살피는 것이 더 윤리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시대에 따라 단어의 뜻도 달라지나 봅니다.
불륜은 윤리에 어긋난다의 넓은 의미보다는 부적절한 남녀 관계를 뜻하니 시대 상황이 그러하나 봅니다
요즘 시대상을 잘 표현하신 것 같습니다.
잘 보았어요.
봄이 지나고 여름이 되어 답글 쓰게되어 죄송합니다.
두문 불출하고 집에 있다보니 그런 글도 나오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