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께 가까이-하나님의 이름을 묵상하라-
시편 73:28,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
2019년 새해 첫 주일을 맞았습니다. 올해 저희 함께가는교회의 표어는 “하나님께 가까이”입니다. 성전 강대상 위에 걸려진 새해 현수막을 보면서 우리 함께 큰 소리로 고백해봅시다.
“하나님께 가까이~”이 말씀은 시편 73편 28절 말씀에서 나온 것입니다. 올해 우리들에게 주신 말씀은 시편 73:28 말씀입니다. 함께 다시 한번 이 말씀을 읽겠습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
이 말씀은 올해에 함께가는교회 우리 성도들이 늘 기억하며 자기의 삶을 비추어보고 다시금 추스르고 앞으로 이 말씀 붙들고 나아가야 할 영적 거울이요 소망의 푯대요 영적 싸움터에서 힘차게 펄럭일 우리 교회의 깃발입니다.
그러면, 이 시편 기록자의 확신이자 우리의 신앙적 결단의 고백인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는 이 말씀대로 살아가고자 하면 어떻게 하면 될까요? 모든 은혜의 수단이 다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방법입니다. 기록된 말씀, 기도, 성례, 성도의 교제, 봉사 등 모든 은혜의 수단들이 다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복된 통로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들은 올해 하나님을 더 자주 생각하고 하나님의 존재와 성품과 행적을 자주 묵상하기를 바랍니다. 즉 하나님을 생각하고 묵상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가까이 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특별히 오늘 올해 첫 예배에는 우리가 함께 하나님의 존귀한 이름, 하나님의 성호를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이름에는 곧 하나님의 성품, 그의 존재, 그의 인격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이름을 오늘 우리가 하나씩 살펴보고 그 의미를 묵상함으로써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기를 배우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이름은 성경에 어떻게 소개되어 있는가요?
첫째, 하나님은 크고 강하신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성경에 히브리어로 ‘엘로힘’이라고 주로 불리웁니다. 원래 ‘엘’이라고 하는 이름이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라는 ‘엘’은 ‘힘있는 자’입니다. 그런데 ‘엘로힘’은 ‘엘’의 복수형입니다. 그래서 ‘더 힘이 있고 강력하고 두려워할 자’라는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신 중에 신이요 가장 강력하고 힘있는 하나님이시요 ‘생명과 능력으로 충만한 자’로서 우리는 그를 크게 두려워하고 경외해야 하는 분입니다. 그는 크고 힘 있으며 두려워해야 할 신들 중에 가장 크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로 그 크고 위대하신 하나님을 섬기는 하나님의 종들이요 하나님의 자녀들인 그의 백성들입니다. 이를 항상 기억하십시오.
둘째, 하나님은 지극히 존귀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히브리어로 ‘엘리욘’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웁니다. 이 뜻은 하나님은 지극히 높으신 분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14:18 말씀에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라는 말씀을 예로 들 수 있고, 누가복음 1:32 말씀에,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라는 말씀에서 ‘지극히 높으신 이’라고 불리워지는 것이 이 이름입니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께서 지극히 존귀하고 높으신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묵상할 때, 우리가 장차 하늘 나라에 올라가 뵙고 섬길 자가 거룩하시고 존귀하신 하나님이심을 깨닫고 우리 자신도 이 땅에서 그분을 본받아 존귀하고 거룩하고 고상한 생각과 말과 행동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이사야 32:7,8 말씀에,
“악한 자는 그 그릇이 악하여 악한 계획을 세워 거짓말로 가려한 자를 멸하며 가난한 자가 말을 바르게 할지라도 그리함이거니와 존귀한 자는 존귀한 일을 계획하나니 그는 항상 존귀한 일에 서리라”
고 하였습니다. 지극히 높으시고 존귀하신 하나님, 엘리욘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은 그를 본받아 항상 존귀하고 거룩하고 고상한 일에 서게 될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은 주님이십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은 히브리어로 ‘아도나이’, 우리 말로 ‘주님’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창세기 18:27 말씀에,
“아브라함이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티끌과 재와 같사오나 감히 주께 아뢰나이다”
라고 하였을 때, 하나님을 ‘주, 아도나이’라고 부릅니다. 이는 하나님이 만물의 소유자요 만유의 통치자라는 뜻으로 하나님을 주님이라고 부른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순종해야 하고 복종해야 하는 임금입니다. 그가 우리의 임금이요 우리는 그의 신하요 종들이며 하나님은 우리의 생명과 재산의 온전한 소유권을 쥔 자요 우리는 그에게 모든 충성을 다해야 하는 주인님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에게 그의 외아들 이삭을 번제로 내게 바치라고 요청했을 때 아브라함은 그 주인님이신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함으로써 그를 경외함을 입증함으로써 만세의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는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넷째, 하나님은 전능자이십니다.
히브리어로 성경에 하나님은 ‘엘 샤다이’ 곧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소개되곤 합니다. 이 이름의 의미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위하여 모든 능력과 힘을 가지고 보호해주시고 축복해주고 인도해주신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창세기 17:1 이하에 이렇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자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아브람이 구십구 세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두어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 하시니”
여기서 하나님은 자기를 ‘엘 샤다이, 전능한 하나님’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어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 대한 언약을 지켜서 그의 후손들을 번성하게 할 것이며 이방 세계 속에서 그를 지켜주시고 호위해주시며 그의 후손들을 복 주실 것을 약속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나이가 많은 그와 그 아내 사라를 통하여 자식 이삭을 낳게 하시고 그 후에 그 후손들을 번창하게 하시고 그 팔레스타인 땅을 그의 후손들에게 기업으로 주시는 놀라운 일들을 다 성취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엘 샤다이, 전능하신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을 지키고 인도하며 복주시며 그 언약을 능히 지키시는 복된 은혜의 하나님에 대한 호칭인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은 전능자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이 예수님 안에서 그의 자녀 된 우리들을 항상 보호해주시고 지키시고 인도해주시고 번성하게 하실 것이니, 이를 굳게 믿고 두려워하거나 놀라거나 염려하지 말고 믿음 안에서 평안과 담대함을 가지고 살아가는 성도님들 되시기 바랍니다.
다섯째로, 하나님은 여호와이십니다.
이 여호와라는 이름은 깊고 오묘한 의미가 있어서 학자들이 다 풀어내지 못하고 확정하지 못하는 뜻이 담겨 있다고들 이구동성으로 말합니다. 이 이름 속에서 다음 세 가지 의미가 특별하게 선명하게 담겨 있어서 이 세 가지 이름의 의미를 잠깐 나누고자 합니다.
먼저, 여호와란 스스로 존재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뜻이 있습니다.
출애굽기 3:13 이하에 보면 이렇게 이 이름에 대한 해석이 나옵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의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칭호니라“(출애굽기 3:13~15)
여기서 하나님께서 친히 그 이름을 “나는 스스로 존재하는 자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은 누가 존재하게 해서 존재하게 된 피조된 존재가 아니요 아무런 원인자 없이 스스로 존재하시는 영원하신 분이라는 뜻입니다. 이러한 뜻으로 이사야 41:4 말씀에 그 이름을 설명하시기를,
“이 일을 누가 행하였느냐 누가 이루었느냐 누가 처음부터 만대를 불러내었느냐 나 여호와라 처음에도 나요 나중 있을 자에게도 내가 곧 그니라”
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에서 알 수 있듯이 처음에 계신 분도 하나님이시오 영원히 그 나중에 계실 분도 오직 여호와 하나님 한분이신 것입니다. 이렇듯 하나님만이 스스로 존재하시며 모든 존재들을 존재하게 하신 원인자, 곧 유일하신 창조주이신 것입니다.
또한. 여호와란 무엇이라고 규정할 수 없이 풍성하신 분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이름을 모세에게 소개할 때,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라고 하였는데, 그 말의 원문은 “에흐웨 아세르 에흐웨”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영어로 표현하면 “I am that I am.”입니다. 이것을 액면 그대로 해석하면 “나는 무엇이라고 다 할 수 있는 존재다.”라는 것입니다. 또 이는 어떤 뜻이냐면 한 마디 말로 어떻게 표현될 수 없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은 그가 되실 수 있는 대로 되시는 분이시라는 뜻입니다. 실로 이 의미는 참 기묘합니다. 하나님은 무엇이든지 될 수 있는 분이시기에 한 마디로 무엇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났을 때 삼손의 아버지 마노아가 그의 이름을 물었을 때에 이렇게 대답합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내 이름을 묻느냐 내 이름은 기묘자니라 하니라”(삿 13:18) 야곱이 얍복강에서 그와 씨름하였던 하나님의 사자 곧 하나님을 향하여 “당신의 이름을 알려주소서”라고 했을 때에도, 그는 대답하기를, “어찌하여 내 이름을 묻느냐”하고 대답해주지 않으시고 축복하고 떠났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의 이해를 초월하신 분이며 한 마디로 규정할 수 없는 분이시기에, 우리가 감히 나는 하나님을 다 안다고 말할 자 없습니다. 그는 알면 알수록 더 모르는 분이요 가까이가면 갈수록 더 그 영광과 사랑과 지혜와 오묘함의 신비는 풍성하고 깊고 깊어서 다 헤아릴 수 없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를 이 땅에서도 평생 알아가며 놀라워하겠지만, 장차 우리가 저 천국에 들어가면 더 가까이 그를 알아가게 될 것인데 알면 알수록 영원히 경탄하게 될 것이며 놀라고 황홀해하며 감격하여 그 앞에 엎드려 찬양하고 또 찬양하게 될 줄 믿습니다.
또한, 여호와란 자기 택한 백성들에게 영원히 신실하신 분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여호와란 이름은 구약 성경에 함부로 쓰지 않았고 주로 자기 택한 백성들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사용되었습니다. 그 이름을 사용할 때에 그는 자기가 애굽의 종살이에서 그의 능력의 팔로 구속하여 자기 백성으로 삼아 언약을 맺고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해들인 자기 백성들에게 그 이름을 존귀하게 부르고 그 이름으로 일컫는 백성으로서 자긍심을 갖고 언약을 지키며 살아가기를 요구하였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도 그 이름을 부르는 자기 언약 백성들에게 그 이름을 걸고 그들에게 하신 언약을 지키신다고 자주 약속하셨고 지키셨습니다. 그래서 자기 백성들에게 하나님 자신에게 신실함을 지키라고 요구하실 때에나 어떤 약속을 지키신다고 말씀하실 때 언제나 자기 이름 여호와의 이름을 걸고 그 약속의 신실성을 담보하셨습니다. 한 예로 호세아 13:4 말씀에 이르기를
“그러나 애굽 땅에 있을 때부터 나는 네 하나님 여호와라 나밖에 네가 다른 신을 알지 말 것이라 나 외에는 구원자가 없느니라”
고 하였습니다. 즉 이 여호와라는 이름에는 자기 택한 백성들에 대하여 신실함을 끝까지 지키시며 영원히 그 택한 백성들의 하나님으로 남아주실 분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이렇게 신실하시기에 그의 약속대로 아브라함과 다윗의 후손 중에 구원자인 예수를 보내어 마침내 죄와 허물로 죽은 아담의 후손들을 다시금 죄에서 건져내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실 길을 여시고, 그 부르심에 순종한 하나님의 참 백성들을 영원히 보존하시는 그의 언약을 온전히 이렇게 성취하시고야 만 것 아닙니까? 참으로 하나님은 여호와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며, 그 아들 예수 안에서도 택하신 그의 백성 된 우리들에게도 영원히 신실하신 여호와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신실하신 언약의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바울이 그의 편지 디모데후서 2:13 말씀에 이르기를,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항상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
고 하였으니,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아들의 피값을 주고 우리를 사셨으니, 우리가 연약하고 넘어지고 흔들릴지라도 그가 약속하신 말씀대로 우리를 성령으로 보증하시고 그의 강한 팔로 붙드시고 끝까지 지키시고 인도하사 끝까지 우리 구원을 이루어주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렇듯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 하나에만 해도 이렇게 깊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은 여호와 그 이름의 뜻대로 스스로 존재하는 영원한 분이요, 그는 우리가 알면 알수록 새롭고 또 새로운 은혜와 영광과 지혜와 사랑과 능력과 위엄과 존귀가 알게 되는 지극히 풍성하신 기묘자이시요 또한 그는 자기 택한 백성들을 향하여 영원히 그 신실함을 지키시는 언약의 하나님이십니다. 바로 이 여호와의 백성이 된 것처럼 복이 어디 있습니까? 모세가 신명기 33:29 말씀에서 이같이 노래한 것은 당연한 감격의 발로입니다.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는 백성이 누구냐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네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
이 행복자가 바로 여러분임을 깨닫고 기뻐하며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여섯째로, 하나님의 이름이 만군의 여호와입니다.
이는 히브리어로 “여호와 체바오트”라는 이름인데, 이는 ‘만군의 여호와’로 성경에 자주 등장합니다. 하나님께서 만군의 여호와라고 불리우는데, ‘만군’이란 하나님을 호위하고 있는 천군 천사들을 가리킵니다. 혹은 만군이라는 이름이 하늘의 별들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만군의 여호와라는 이름에는 하늘의 천천 만만의 천군과 천사들을 거느린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과 위엄을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블레셋의 거인 대장 골리앗과 맞서 싸우러 나갈 때 그가 부른 이름이 만군의 여호와입니다.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사무엘상 17:45)
지금도 하나님은 하늘의 수천 수만 수억의 천사들을 거느리고 계신 큰 권능과 위엄 중에 만유를 다스리는 영광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를 대적할 자는 아무도 없으며 어떤 영적 권세도 그와 맞설 자가 없습니다. 하늘의 별과 같이 빛나는 영광의 천사들도 연약하여 그 앞에 부끄러워할 따름입니다. 그가 이렇게 그의 백성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구원자는 그의 이름이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시니라 딸 갈대아여 잠잠히 앉으라 흑암으로 들어가라 네가 다시는 여러 왕국의 여주인이라 일컬음을 받지 못하리라”(이사야 47:4,5)
“나는 네 하나님 여호와라 바다를 휘저어서 그 물결을 뒤흔들게 하는 자이니 그의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니라”(이사야 51:15)
이처럼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께서 친히 천군 천사를 동원하사 자기 백성을 위하여 싸워주시며, 용사처럼 일어나 그 대적들을 물리쳐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아무리 큰 어려움과 높은 장벽과 강한 대적을 만날지라도 어떤 난관도 어떤 강한 대적들도 너끈히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이름의 권세를 붙들고 의지하고 사용하십시오.
성경에는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이 그 외에도 많이 있습니다. 히브리어로 “여호와 찌두게누”가 있는데 이는 ‘여호와 우리의 의’라는 뜻입니다. 또 “여호와 라파”가 있는데, 이는 ‘여호와 우리의 치료자’라는 뜻입니다. 또 “여호와 삼마”가 있는데, 이는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또 “여호와 로이”라는 이름이 있는데, 이는 ‘우리의 목자 되신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이름들 속에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 대한 사랑과 보호와 돌보심과 구원하심에 대한 귀한 약속이 담겨 있습니다. 이 이름들에는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가 담겨 있습니다.
그런 은혜의 이름 중에 하나를 소개하자면, 하나님은 자신을 택한 백성들의 남편으로 소개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예레미야 3:14 말씀에,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배역한 자식들아 돌아오라 나는 너희 남편임이라”
고 하였고, 이사야 54:4 이하의 말씀에도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 놀라지 말라 네가 부끄러움을 보지 아니하리라 네가 네 젊었을 때의 수치를 잊겠고 과부 때의 치욕을 다시 기억함이 없으리니 이는 너를 지으신 이가 네 남편이시라 그의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이시며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시라 그는 온 땅의 하나님이라 일컬음을 받으실 것이라 여호와께서 너를 부르시되 마치 버림을 받아 마음에 근심하는 아내 곧 어릴 때에 아내가 되었다가 버림을 받은 자에게 함과 같이 하실 것임이라 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느니라 내가 잠시 너를 버렸으나 큰 긍휼로 너를 모을 것이요 내가 넘치는 진노로 내 얼굴을 잠시 가렸으나 영원한 자비로 너를 긍휼히 여기리라 네 구속자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사 54:4~8)
고 하였습니다. 남편은 그 아내를 자기 몸처럼 사랑합니다. 그래서 모든 수고를 아끼지 않고 그를 끝까지 사랑하며 지키고 헌신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남편은 아내에게 정절을 요구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하나님 한분만을 섬기고 미신을 믿거나 잡신과 우상을 하나님과 함께 섬기는 영적 음란을 일체 버려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 한분만을 우리가 섬길 때 하나님은 우리들을 사랑하고 지키고 보호하시고 모든 헌신을 아낌없이 베풀어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우리의 남편으로 알고, 우리는 그의 사랑받는 아내로 기억하며 오직 순결한 마음으로 하나님 한분만을 날마다 사랑하는 그의 아내, 그의 신부로 살아갑시다.
참으로 이렇게 하나님의 이름을 하나 하나 생각하며 그 이름에 담긴 하나님의 존재와 그의 성품과 그의 사역을 묵상하는 것 자체가 곧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좋은 길입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하나님은 크고 강하신 엘로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지극히 높고 존귀하신 하나님, 엘리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주님 되신 하나님, 아도나이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전능자 하나님 엘 샤다이 하나님이 되십니다. 또 우리 하나님은 여호와 하나님, 곧 영원전부터 영원까지 스스로 존재하시며 무엇 하나로 규정할 수 없이 지극히 풍성하신 기묘자시며 자기 백성들과 맺은 언약을 끝까지 지키시며 보호하시며 구원하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또 우리 하나님은 만군의 여호와, 곧 모든 천군 천사 가운데 좌정하시며, 그 권세로 자기 백성을 끝까지 지키시며 우리의 싸움 가운데 함께 하사 승리하시는 크신 위엄과 영광의 하나님이십니다. 또한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자기와 한 몸으로 삼으시고 지극히 사랑해주시는 남편이 되어주시는 분이십니다.
이러한 모든 이름들을 생각하고 묵상하면, 우리가 얼마나 행복하고 복된가를 알 수 있습니다. 이런 하나님을 모시고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감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올해 우리들이 바로 이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삶을 살도록 특별히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이 시편 기록자의 고백이 곧 나의 고백과 삶이 되고 새해의 내 삶의 가장 귀중한 결단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그리할진대, 오늘 이 시편 기록자가 고백한 대로, “여호와를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고 한 말씀이 내 삶에 임할 것입니다. 여기서 ‘복이라’는 단어는 히브리어 ‘토브’인데, 그 뜻은 내 영혼과 삶 전체에 크고 풍성한 복락을 얻게 된다는 뜻입니다. 실제적이고 현실적인 은혜와 축복이 담겨진 약속입니다. 하나님을 날마다 가까이 나아감으로써, 날마다 더 가까이 하나님께 나아가 교제함으로써 이 풍성하고 기름지고 평안하고 영적인 놀라운 복이 올해 여러분의 삶에 가득히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