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인수봉 귀바위 인공암벽등반
-바위천장에 거꾸로 매달린 인간박쥐들
나이도 있고 해서 이제 암벽릿지등반은 그만 할려고 했는데 다시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 나를 북한산 인수봉으로 이끌었다.
필자가 속해 있는 산악회 암벽릿지팀에서 공지가 떴다. 인수봉 귀바위 등반을 한다는 것이다. 귀바위는 인수봉 정상(810m) 아래 귀처럼 튀어나온 거대한 천장암벽이다. 약 40m 길이의 천장에 박힌 볼트에 자일을 걸고, 마치 박쥐처럼 거꾸로 매달려 끝모서리까지 이동, 끝모서리를 타고넘어 정상에 오르는 암벽등반이다. 보기만 해도 오금이 저리는 최고난도 암벽등반루트. 바위를 타는 사람들이 가장 마지막 단계에서 도전해보고싶은 등반이 귀바위인공등반이기도 하다.
귀바위는 인수봉 정상 바로 아래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해발 700m 이상인 현장접근을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몇구간(핏치)의 암릉을 타야 한다. 가장 일반적으로 귀바위까지 오르는 방법은 소위 '고독의 길'이라고 부르는 암벽릿지코스를 오르는 것이다. 태풍 이름에 여자 호칭 등 부드러운 명칭을 붙이듯 암벽등반 역시 거칠고 위험한 등반이기 때문에 부드럽고 시(詩)적인 이름들이 많다. 인수봉 '고독의 길'도 바로 그런 연유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인수봉에는 80개 내외의 암벽등반루트가 열려 있는데 이중에는 ''마이러브린다', ''우리들의 만남', '꾸러기들의 합창', '임을 위한 행진곡', '아직도 생각중', '아가씨' 등 재미있는 이름들이 붙어 있다. 심지어는 '변소금지'라는 유머스러운 이름도 있다. 도봉산 암벽코스에도 '낭만길', '배추힌나비의 추억' 등이 있으며, 설악산에도 '한편의 시를 위한 길', '그리움 둘'릿지 등이 있다.
필자는 오래전 암벽등반 초기 이곳 '고독의 길'로 인수봉 정상을 오른 적이 있어 그 루트의 난이도를 어느 정도 기억한다. 비록 나이가 들어 어려운 암벽은 타기 힘들지만 '고독의 길' 정도는 별 문제가 없다. 필자의 실력으로 귀바위천장 인공등반을 직접 하기는 쉽지않을 것 같지만, 힘들 경우 베테랑 후배들의 등반장면을 직접 보고 사진이라도 찍어주고싶은 마음에서 감히 참가신청을 했다. 오늘 귀바위 등반 참가자들은 대장을 포함 총 6명.
오전 8시에 수유역 1번 출구에서 만나 택시를 타고 도선사 입구까지 이동, 8시 36분에 산행을 시작했다. 하루재를 넘고 야영장을 지나 약 1시간 10분 정도 오르면 '고독의 길' 제1핏치 아래에 이른다. 이곳에서 하네스, 헬멧 등 암벽장비를 갖추고 암벽등반 시작. '고독의 길' 좌측은 '심우길'이다. 마침 필자가 등산학교 암벽반을 다닐 때 강사를 했던 분들을 만났다. 반갑다. '심우길'을 오를 예정이라 한다.
제1핏치는 약 15미터의 크랙구간이다. 오른쪽 크랙루트 하단부는 벙어리크랙이라 제법 미끄럽다.
제2핏치 왼쪽은 페이스 등반루트이고 오른 쪽은 크랙을 따라 오른다. 필자 일행은 왼쪽 페이스루트를 탔다. 우측으로 크랙루트를 오르는 다른 팀도 보인다.
제2핏치를 지나면 동굴이 나온다. 상당히 비좁은 동굴이라 일단 배낭을 벗는게 좋다. 동굴을 통과하여 20미터 정도 걸어가면 3핏치가 나온다.
제3핏치가 제법 난코스다. 좌측으로 휘여진 바위턱을 두손으로 잡고 레이백 자세로 올라야 한다.좌측의 언더 홀드 루트는 5.8급 정도의 난이도라고 한다.
제4핏치 왼쪽 크랙은 레이백과 홈 파인 바위틈을 이용한 발 재밍으로 오른다. 오른 쪽으로도 오를 수 있는데 이쪽은 출발지점이 5미터 정도 올라가서 시작된다.턱진 슬랩을 왼쪽으로 올라서야 하는데 매우 까다롭다. 필자는 왼쪽 크랙을 발 재밍으로 올랐다.
4핏치를 오고 나면 우측으로 장군봉이 보인다. 장군봉 역시 오래전 암벽등반 초기 오른 적이 있는데 이곳에서 바라보니 전혀 다른 모습이다.
제4핏치를 오르면 드디어 귀바위 아래 긴 테라스. 필자 일행은 이곳에서 점심식사를 한 후 귀바위 인공등반을 시작했다.
귀바위를 오르려면 제5핏치인 약 40m의 물길크랙을 올라야 한다. 거의 직벽루트이지만 홀드가 좋아 계단식으로 조심스럽게 오르다 보면 귀바위 아래 좁은 테라스에 닿는다.
귀바위 등반에 도전할 산우들은 테라스벽에 확보하고 좌측으로 자일트래버스하여 귀바위인공등반 출발점으로 향한다. 필자는 일단 테라스 확보점에서 사진촬영 준비에 들어간다.
드디어 귀바위 인공등반 시작. 먼저 대장이 천장에 박힌 볼트를 따라 자일을 건 후 끝모서리를 넘어 정상에 확보한다.
그리고 여산우, 남산우 순으로 계속 바위천장에 붙는다.
여산우의 실력도 대단하다. 조금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이 여유만만하게 한고리 한고리 앞으로 나아간다. 뒤집어질 듯 말듯 균형을 유지하는 여산우. 지금 그녀의 마음은 어떤 상태일까? 아무 생각없이 머리가 텅빈 상태에서 천장만 더듬고 있는 건 아닐까.
세번째 도전한 남산우 역시 래더에 다리를 길게 받치고 하늘을 걷는다.
워낙 위험한 등반이라 조심, 또 조심하면서 이동하다보니 한 사람당 보통 1시간-1시간 반 정도 걸리는 것 같다.
13시 36분에 시작한 귀바위 등반이 18시 20분경에 끝났다.
대장은 모서리 정상에서 확보후 산우들의 등반을 지도독려하고, 마지막 등반산우는 퀵드로 및 자일을 회수하면서 박쥐등반을 마무리한다.
정상에서 자일하강하는 대장 및 산우들, 정말 대견스럽다.
멀리 도봉산 오봉이 내려다보이고 우측으로 신선대, 자운봉, 만장봉, 선인봉 등도 눈에 들어온다. 가슴 조였던 하루가 서서히 가라앉고 있다. 귀바위 인공암벽등반 만 거의 5시간 가까이 걸렸다.
귀바위 등반 후 하늘문같은 구멍바위를 오르면 제6핏치 침니구간. 이곳은 왼쪽 바위벽을 왼발로 밀면서 오르는 과감한 스테밍 자세가 요구된다. '고독의 길'을 끝까지 오를 경우 연이어 제 7핏치 영자크랙과 참기름바위를 오르면 인수봉 정상이다.
영자크랙에서는 왼쪽의 좁은 바위홈에 발을 끼워넣는 재밍과 양손을 지그자그로 넣어 중간턱까지 올라야 하는데 경사가 거의 직벽이라 꽤 미끄럽다. 중간 발디딤까지 오른 후에는 날선 바위모서리를 왼쪽으로 당기는 레이백 자세로 오른다.오른 쪽 페이스를 올라 손가락 들어갈 정도의 언더홀드로 오를 수도 있지만 결코 만만치가 않다. 영자크랙 후 숲길을 걸어올라가면 참기름바위가 나오고 그 위가 바로 정상이다.
그런데 필자 일행은 시간이 너무 늦어 영자크랙 아래에서 좌측 협곡, 인수A길을 따라 180m 3단 자일하강했다. 하강 완료 후 등반장비를 풀으니 시간은 이미 밤 8시. 랜턴을 켜고 하산, 도선사 입구까지 40분 정도 걸렸다. 오전 8시 36분 도선사 입구에서의 산행시작부터 계산하면 총 12시간 이상의 강행군이었다. 피곤하지만 짜릿한 환희. 10년은 더 젊어진 것 같다.(글,사진/임윤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