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부부의 30년 결혼 생활은 아내의 '의부증' 때문에 종지부를 찍었다. 남편 A씨는 업무상 외근과 지방 출장이 많았다. 아내 B씨는 결혼 초기부터 A씨의 외도를 의심했다. 사무실에 찾아가는 것은 다반사였다. 지방 출장길을 따라가기도 했다. 아내는 남편이 만나는 여성마다 불륜을 의심했다. 직장상사부터 거래처 직원까지 의심 대상이었다. 남편 A씨는 극심한 스트레스에 우울증 약을 먹다가 이혼을 결심했다. 법원은 지난해 7월 '부부 관계를 이어가기 어렵다'고 판단해 이혼을 확정했다.
#부산에 사는 50대 부부는 남편의 '의처증'에 20년 결혼 생활을 마감했다. 남편은 신혼 초부터 하루에 시간을 정해 10여차례씩 자신의 위치를 보고하게 했다. 잠시라도 연락을 받지 않으면 불륜을 의심했다. 전화를 안받는 1시간 동안 부재중 전화 20여통이 찍힌 적도 있다. 불륜을 의심하며 폭언, 폭행을 저지른 적도 많다. 신혼 초에는 남편 폭행에 아내의 갈비뼈가 부러지는 일도 있었다. 아내는 불행한 결혼 생활에 우울증 약과 수면제를 다년 간 복용했다. 법원은 이달 초 1심에서 이혼을 확정하고, 남편이 아내에 위자료 1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의부증과 의처증은 치료 가능한 '정신질환'이다. 하지만 '배우자가 잘못한다'고 믿는 특성상 치료를 스스로 거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법조계에선 의부증, 의처증에 결혼 생활 지속이 불가능한 경우 충분히 이혼사유로 고려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딴 여자 만나나?' 혼자만의 망상...배우자 공격도
의부증과 의처증 등 '부정망상'은 정신의학과적으로 망상장애에 해당한다. 뚜렷한 근거 없이 배우자가 불륜을 저지른다고 의심한다.
배우자의 불륜 상대를 특정해 의심하는 경우가 많다. 직장 상사나 배우자의 친구들, 심지어는 가족 구성원까지 불륜 상대로 상정한다.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과교수는 "2010년대 중반 30대 부인이 삼촌과 내연 관계라 의심해 야구 방망이로 상해를 입힌 사건도 있었다"고 말했다.
가족이 불륜의심을 부인해도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 표창원 범죄과학연구소 소장은 지난달 라디오 인터뷰에서 "(부정망상 환자는) 가족이 '그게 아니다' 말해도 '부인하는 것을 보니 수상하네'라고 또 의심 해석을 한다"고 말했다.
과도한 의심에 배우자를 감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혼전문변호사인 최유나 법무법인 태성 변호사는 "부정망상 때문에 이혼을 결심한 부부를 수없이 만났는데 녹음기를 가방에 넣는 등 배우자를 감시하는 사례가 대부분이었다"고 말했다.
배우자를 공격하는 경우도 많다. 지난 24일 서울 은평구에서는 80대 남성이 불륜을 의심해 자고 있는 부인 머리를 둔기로 여러 차례 때려 경찰에 체포됐다. 최근 울산에서는 의처증 때문에 이혼당한 뒤 전기충격기를 챙겨 전처의 주소에 찾아가 납치를 시도해 법원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은 일도 있었다.
과도한 의심과 공격성에 부정망상 피해를 입은 배우자들은 극심한 공포심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최 변호사는 "세뇌당한 것처럼 위축된 피해자들이 대부분"이라며 "주변을 수시로 두리번거리고, 집중을 잘 못하거나 공황장애와 우울증을 앓는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부정망상, 대부분 치료 거부…"이혼사유로 충분"
정신의학과적으로 부정망상이 치료 불가능한 장애는 아니다. 지속적인 상담 치료나 도파민 작용을 억제하는 약물 치료를 받으면 증세가 호전될 수 있다.
이해국 의정부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2~3달 간 입원치료로 증세가 완화된 남성 사례도 있다"며 "굳이 입원하지 않더라도 1~2주에 한차례씩 꾸준히 통원치료를 받으면 부정망상 증세가 충분히 나아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부정망상 환자들이 치료를 거부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는 점이다. 이 교수는 "망상장애는 '잘못이 배우자에게 있다'고 믿기 때문에 가족이 설득해 병원에 데려오거나 폭행 등 형사 문제로 경찰에 이끌려 오는 것 외 자발적으로 치료를 받는 경우가 많지는 않다"고 말했다.
법조계에선 배우자의 망상장애가 충분히 이혼사유가 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민법은 제840조에 이혼 가능한 사유 6가지를 정리했다. 망상장애는 이중 3호의 '배우자에게 심히 부당한 대우를 받은 경우'와 6호의 '기타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에 해당할 수 있다.
관건은 '망상장애로 결혼 생활 지속이 어려운가' 여부다. 정신의학과적 진단서가 있거나 폭행, 폭언 등 형사 처벌 전과가 있으면 이 점이 입증된다. 그밖에 법원도 '가사 조사'로 가정이 회복 가능한 수준인지 조사를 한다.
최유나 변호사는 "구체적으로 망상장애 증세가 드러난 사례들을 따져서 더 이상 혼인 관계 지속하기 어렵다고 판단되면 충분히 이혼 사유로 고려될 수 있다"고 밝혔다.
김성진 기자
출처 : "딴 여자 만나지?" 지방출장 따라온 50대 아내…'이혼사유' 됩니다 - 머니투데이 (m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