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시인의 방 [蒜艾齋 산애재] 원문보기 글쓴이: 松葉
▲마루시 동인시집 [☆한참을 울었다☆]의 앞표지(좌)와 뒤표지(우)
============ ============
[한참을 울었다]
마루시 동인시집 세번째 / 문학의전당(2013.02.28) / 값 9,000원
================= =================
다랑이논길에 업혀서 우네
박백남
옛날 할머니 등 같이
다랑이논 굽은 논길을
할머니 보시면 서운하게 걷다가
내 눈 붙잡고 놓지 않는
벼이삭 보네
활달로 누워 있던 할머니 안색 같네
옛적 생각이 농익어
눈의 맑은 물은 눈두렁을 타고 넘어
논두렁 위 나락에 자꾸만 떨어지네
나는 그만 다랑이논길의 굽은 등에
어린 손자처럼 업혀서
한참을 우네
◀ 김경조
• 경북 문경 출생
• 2005년《현대인》으로 등단
•시집『물 묻은 바람을 찾다』『기다리는 일』이 있다
기도의 벽 외 1편
김경조
가슴도 모르는 눈물이 흐릅니다
아우성 가득한 서원지
차곡차곡 줄 세우고
진언 일일이 눈맞추다
내 어려움을 잊습니다
새겨진 세상 문자들
가슴 헹군 어둔 구정물들
각각의 아픔으로 녹아 흐르는 기도는
소원으로 다짐으로
산속 작은 샘물처럼 맑아집니다
불현듯 다가서는 훈훈한 손길은
긴 시간
양잿물에 누었던 무명실입니다
푸르게 눈썹 떨다 움추려
나의 형상 감추고 녹이다
바람벽 꽃잎으로 다시 섭니다
도시유랑객
김경조
새 돌아오고
새순 돋아도
찬비 피해 육교 밑 찾는
나와는
무관한 일
밤길 쓰는 안부 비질에
한 발 들고 또 한 발 들고
지붕 없어 춥고 섧어라
도시를 깨우는 첫차들 소리
공연히 싫어 돌아눕는다
세상 피해 돌아눕는다
빈자 없던 시절 없었고
부자 없던 시절 없었는데
이젠
너무나 멀어진 이웃들
누운 땅 내 것인 양 알고
널린 옷 내 입은 양 치지만
오로지
빌어먹는 입이 난감하다
◀ 김선자
• 전남 고흥 출생
• 2010년《한국문학평화포럼》으로 작품 활동 시작
• 고흥작가회 회원
그림자 외 1편
김선자
아직도 나는 너를 짓밟고 헛뜯기 일쑤다
천년 상처의 딱지를 떼어내고
슬픈 웃음 토해낼 때마다 오히려
더 뚜렷이 실체를 드러낸다
나는 네 실체를 감추기 위해
흐린 날을 골라 외출한다
그늘은 나의 자궁
어쩌다 빛이 아파트 평수를 넓히면
나는 재빨리 카페에 들어가
그 평수가 죽을 때까지
안락의자 깊숙이 나를 묻는다
너와 나 숨 막히는 불꽃 튀는 좌우의 투쟁
날개와 가면의 웃음이 교차할 때마다
나는 너를 더욱 세차게 짓밟는다
더 넓은 그늘이 된다
더 넓은 그늘 안으로 숨어버린다
그늘의 품에 안겨 너의 이면들을
소리 없이 지켜본다
성에꽃
김선자
잠을 걷어낸 눈앞에 꽃밭이 황하게 열렸다
언 땅속에서 밤새 꽃밭을 열었는지
나는 내 삶의 뿌리 하나 제대로 박지 못하는데
삭막한 유리창에
저토록 깊이 뿌리를 뻗고 있는 것인지
밤새 휘몰아친 바람을 맞으며
차가운 유리벽을 타고 오를 때마다
온몸에 박힌 저 가시들이
제 살을 옥죄며 찔렀을 터
수없이 파닥거려 긁힌 자국화석이 환하다
내 생의 유리창에 수없이 긁힌 흔적들
가만히 어루만져본다
또르르 한 줄기 물방울 흘러내리자
말미잘의 촉수처럼
꽃잎들이 일제히 둥글게 몸을 말며
뾰족한 가시를 감춘다
단 하루를 피기 우이해
홀로 피었다 지는
향기 없는 하루살이 꽃들의 최후
내 마음 혹 깊은 곳
똬리 틀고 화석이 되어가는
가시들의 뿌리
◀ 김연종
• 전남 광주 출생
• 2004년《문학과경계》로 등단
• 시집『극락강역』『히스테리중 히포크라테스』가 있다
설레는 피안 외 1편
김연종
가벼워야 날 수 있다
뼛속까지 비워야 한다
항암의 캡술마저 거부한 채
탕약 찌꺼기 같은 유방을 끝끝내 도려내지 않고
치렁치렁한 암세포를 봉분처럼 모시고 사는
새 한 마리
동그랗게 말린 등뼈를 퍼덕이고 있다
가벼워야 건널 수 있다
아직도 더 비워야 한다
등뼈 곧은 자들은 레테의 강을 건널 수 없다며
찌부러진 생의 좌표를 뽕브라 속에 감추고
불치不治의 뱃속을 또 비우고 있는 새 한 마리
달라붙은 등가죽을 토닥이고 있다
피안을 위해서는
날개가 필요하다
안락의자
김연종
뜨거운 입김으로 유리창에 그려놓은 고총이 부화했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해묵은 논쟁이 사라졌다 퇴한 날개로도 거대한 바위벽을 통과할 수 잇다는 이무기의 논리는 바위에서 박제되었다
페이퍼나이프로 고기를 썰고 과도로 장작을 패듯 대장장이릐 의도와는 무관하게 면도날은 비상구를 찾지 못했다 집도의는 배를 가르지도 못한 채 수술용 가위를 복부에 남겨두고 담금질을 마쳤다
죽은 시계를 차고
죽은 나무로 만든 의자에 앉는다
고총의 현재 시각이 손목에 새겨져 있다
자기 눈으로 직접 볼 수 없는 건
자기 얼굴과 머리통의 치욕뿐이다
안락한 손거울을 들고
안락의자에 앉아 커터를 다시 꺼내 든다
◀ 김정원
• 전남 담양 출생
• 2006년《애지》로 등단
• 시집『줄탁』『거룩한 바보』『환대』등이 있다
궂은 날 외 1편
김정원
소낙비가 연신 싸대기를 후려치고
태풍이 갈비뼈 부러지게 걷어찬다
그래도
괜찮다
괜찮다
스스로 다독이며
아프게 아프게
용트림하는 소나무, 작지 않다
맞서지도 탓하지도 않고
도리어 바람을 빌려
마르고 병약한
이파리와 잔가지들 떨어뜨리고
더 잘 서 있다
느리게 살기 위하여
김정원
네 식구가 한상에 둘러앉아 저녁밥을 먹은 때가 언제던가
국회의원 선거철 어느 늦은 밤 퇴근하는데
이게 사는 겁니까?
우리 동네 파출소 앞 가로수와 가로수 사이에 팽팽한 진보당 펼침막이 내 뺨을 후려친다, 울고 깊었는데
매사에 최선을 다하지는 말자
십칠 퍼센트만 긴장하고 팔십삼 퍼센트는 이완하자
장거리 달리는 자동차 바퀴에 공기를 백 퍼센트 주입하지 않듯이
다만, 회피回避가 해피한 지경까지 타락하지는 말자
잔별들이 올알이하듯 혼자 주억거리며 집으로 돌아간다
◀ 박백남
• 전북 고창 출생
• 1997년《문학사상》으로 등단
• 시집『석류꽃엔 눈물샘이 있다』가 있다
• <원광문인회> 회원
소금간 친다 외 1편
박백남
바다처럼 등 푸른 간 고등어 먹는다
간잽이의 능숙한 솜씨로
썩지 마라
상하지 마라
누군가의 멋있는 양식이 되라고 친
짭조름한 바다의 눈물,
눈물이 살을 만나 이렇게 맛있다
소금간이 고루고루 밴 간고등어를 먹다가,
누군가에게 정말 밥맛없다는 놈이라는 걸
뼛속까지 알아챈 나는
영혼의 바다 깊은 곳에서 캐낸 하얀 눈물로
내 마음의 배를 열고 소금간 친다
썩지 마라
상하지 마라
마음의 살 속에 두루 배어서
누군가를 위한 맛있는 마음 되라고
오늘은 간잽이 되어
소금간 친다
너무 늦게 핀 사과꽃
박백남
사과나무 위 작년에 보았던 그 우듬지의 흰 꽃
종처럼 매달려 피어 있었네
세상을 울리고 싶은 욕망의 바람에
흰 꽃은 가끔씩 흔들렸네
믿음이 흔들리는 집에 가족사랑 텅 비듯
가끔씩 흔들리던 사과나무
꽃집에 꽃들은 텅 비어 있었네
흰 꽃 보러왔던 나는 발길을 돌리다가
돌아온 탕자처럼 흙 위에서 두 무릎 꿇고 흑흑,
젖어 있는 꽃잎의 눈을 보았네
맑은 이슬이 담긴 눈길이 향한 곳
그곳엔 하늘과 맞닿은 기지와 사과 잎들이 있었네
나도 모르게 두 무릎 꿇자
반 백 년 걸려서 가까스로 피는
내 마음의 시과꽃
보아줄 이 이승에 없어 허망하게 피었네
하나,
잘 익은 꿈에 살짝 다녀가셔서
검은 사과 씨 두 알 있는 내 가슴에
기쁨은 농익은 사과 향처럼 가득 찼네
◀ 송미숙
• 충남 서산 출생
• 2005년《문학공간》등단
얼음 외 1편
송미숙
숙부가 죽어 오일장을 지낸다
나이가 오일이나 젊어 보인다
탱탱한 오일이 얼었다 녹으면서 팔다리가 움직일 것 같다
어디론가 떠날 채비를 하는 것 같다
시간이 가벼워지고 있다
구름 속으로 슬픔이 말려간다
얼었던 길이 한 뭉텅이 빠져 나간다
한 세상 잘 왔다 간다고
기억이 지워지고 있다 크고 작은 주름 속 어둠이
흩어지고 있다
팔다리가 온순하고
입꼬리가 부드러워진다
너희도 그만하면 됐다고 용서가 필요 없는 일이다, 라고
말을 할 것 같다
냉동실에서 오일 동안 젊어진 숙부
미국에서 오는 아들을 봐야 한다며 한사코 젊어진 숙부
죽음도 숙부의 얼굴에서 빠져나가고 있다
세상이 지워지고 있다
모서리
송미숙
모서리가 고을 잡고 있다
공은 벽으로 쌓여 모서리에 머물러 있다
더 이상 물러날 수 없는 순간이 있다
머물러야 할 내일이 있다
벽은 공의 사각 프레임
벽은 공이 숨 쉴 공간이다
공은 벽 속에 내일을 넣는다
튀어 오름을 넣는다
전속력으로 달려오던 벽이 모서리에 모인다
모서리는 힘이 세다
바람도 모서리에서는 곤두박질이다
모서리에서 부딪힌 벽
주저앉은 공
공이거나 공이 아닌 공
웅크린 공이 모서리에 있다
그는 벽처럼 달려와 모서리에 있다
얼마나 고대하던 순간인가
내일로 만들어진 그가 있다
그는 그를 던진다
모서리를 통과한 그가 저기 보인다
◀ 이광복
• 충북 영동 출생
• 2003년《전북중앙신문》신춘문예 등단
맛있는 추억 외 1편
이광복
그는 날마다 추억을 줍는다
구부정한 허리를 한시도 펴지 않고
고샅 여기저기 자신이 흘려놓은 추억을
내 인사도 받는 둥 마는 둥
오늘도 깨끗한 양은냄비 하나
장독간 한족 엎어놓은 돌확에 두들겨 납작하게 만들어 들고
휘청휘청 고샅을 빠져 나간다
그러곤 언제나 두 손에
엿가락 하나씩 들고 와 맛있게 빨아먹는다
팔십 평생 가장 맛있다는 해맑은 표정으로
몇 개 남지 않은 이빨로 오물오물
핥고 빠는
추억이 손가락 사이로 번질번질 흐른다
저문다는 것은
이광복
해가 저물자
하늘이 지워지고
마을이 지워지고
사람이, 사람인 내가 지워진다
지워지는 것들 속으로 당신은 처음처럼 다가와
내 안을 기웃거렸고
그때 내가 바라보는 당신은 처음처럼 거기 있었다
마당가 살구나무
수천수만 개의 꼬마전구를 일시에 꺼버린 듯
꽃이 지고
나무의 몸이 캄캄하게 어두워졌을 때
몸살을 앓듯 그렇게 몸이 저물고 나서야
꽃이 지워진 자리가 모두 상처였음을 알았다
저렇게 깜깜하게 지워진 나무의 몸에
꽃이 삶의 전부가 아니라는 듯 나무의 상처 속을 걸어서
당신이 내게 왔다
뜨거운 피가 벌떡벌떡 뛰는 심장으로
저문다는 것은
환한 것에 익숙해진 몸을 지우고
감추고 있던 속살을 헤집어 보는 일
내 몸이 까무룩하게 어두워지기 전
내 몸을 관통해간 수많은 빛의 뒤통수에서
당신과 나의 벌거벗은 알몸을 천천히 들여다보는 일
◀ 이우림
• 전북 김제 출생
• 시집『봉숭아꽃과 아주까리』『상형문자로 걷다』가 있다
• (사)고양문인협회 부회장. 계간《문학과의식》기획위원
•《고양의정소식지》편집위원,〈모윤숙문학상〉수상
그 봄밤 외 1편
이우림
미시령 넘어온 봄바람이 백담사에서 저녁 예불 드린다
목탁 속으로 들어간 바람의 경은 목어의 언 입을 벌려놓고
용대리 황태덕장으로 달음박질한다
운판의 진동이 정지된 도랑 얼음을 흔들고
얼음 틈, 계곡의 소리는 선잠을 깨운다
봄을 좇아 나의 뿌리를 캐러 달려온 만해의 집
내 그림자에 취하고 봄밤에 취한 나의 방황
문턱을 넘어 들어온 계곡의 소리는 나를 끌고 나간다
바람은 문을 닫아버리고 나는 문을 두드린다
그 순간 바람과 나와 닫힌 문은 삼각관계의 매듭을 묶고
눈썹달은 그 밤의 목격자가 된다
문을 열어 보겠다고 베란다 난간에 매달린 허벅지가
봄밤에 미치고 봄밤은 미친 허벅지를 요리한다
발가락을 튕기며 허벅지에 멍빛 동백을 피운다
봄은 푸르지 않았고 시도 붉지 않았다
버려진 항아리
이우림
토요일 오후 하릴없이 낯선 곳을 걷다가
은행나무 아래 누워있는 항아리를 만난다
아직 된장기가 닦이지 않은 것이
고샅길 빠져나가도록 배웅이 끝나지 않은
어머니의 굽은 허리 같다
여기저기 살펴보니 살짝 금이 간 곳도 있다
지린 늙은이 냄새 샐까봐 철삿줄로 친친 감긴 자리에서
감추고 감추는 어머니의 몸짓을 읽는다
누군가 몰래 버린 쓰레기를 끌어안고 있는 항아리를
뒷좌석에 태우고 집으로 온다
이미 마당엔 곰삭은 항아리들이 놀빛에 둥근 몸을 들썩이며
낯선 듯 낯설지 않은 버려진 자의 두려움을 맞이한다
깨끗이 씻은 아담한 항아리를 큰아들 같은 장항아리 옆에 앉혀 놓으니
한 집안의 이력을 삭혀온 뒷방댁 같다
뒷방댁 내 어머니,
바닥나도록 퍼주기만 하다 바닥 드러나고 결국 창고에 틀어박히더니
길거리에 넋을 놓아버린
◀ 이춘희
• 강원도 정선 출생
• 제13회 <수주문학상> 우수상 수상
솜다리 외 1편
이춘희
소중한 추억이라 했던가
줄기까지 뽀송뽀송 수줍음 이끌고 나와
여린 꽃 하나 붙들고 있다
바람은 아무것도 걸칠 게 없어 한참을 머문다
나는 그곳에서 식물을 버리고
솜만 떠올리며 마을의 날들을 짚어본다
월동은 깊고 밤은 더욱 쓸쓸했으리라
아무리 개켜도 녹지 않는
새벽녘 꿈을 주억거리다가
어느 해 가을의 사랑도 기억해내던
어쩌면 그 어딘가의 쓰디 쓴 열망이
솜다리의 생애인 듯
섣불리 눈물의 체온으로도 묻어둘 수 없는
그리움의 생애이리라
지금은 너무 남루해져 장롱 깊이 처박아둔
묵정의 오랜 기억에게 맡겨 놓았던 솜다리꽃을
먼저 온 바람에게 천천히 내준다
동화 속에 들다
이춘희
언제부터인가 그곳은 도깨비들 세상이다
한때 나전羅田을 움푹 파던 광부들이 떠난 후
어쩔 수 없는
도깨비들의 보호구역이 되었다
기다림이 멈춘 시간의 덧문
먼지 낀 속에서 도깨비들
지난날을 잊고서 무정차의 날들만 더듬고 있다
마스코트만 남겨진
검고 움푹 파인 날들의 풍경
바람은 말을 하지 않았다
열리지 않는 개찰구 밖 햇살의 길을
평행의 시간 속으로 날리며
저녁의 끝
황혼의 오지까지 종적을 감춘다
망각을 헹궈내어도 되돌아오지 않는 지난날의 편린들
또 다른 기억들을 향해 폭력처럼 달리는 열차가
빈 역사를 지나칠 때마다
도깨비들 와글와글 무수히 주문을 외워댄다
.♣.
=================
■ 서문
하늘에 먹구름이 자욱하더니
그예 비가 내리고 한참을 울었다.
마루에 앉아서 우두망찰 지켜보다가
문득 고개를 들었다, 그때였다.
산마루 너머 구름 속에서
신이 인간을 사랑하여 세운 집,
일곱 색깔 무지개!
서로 다른 색계가 경계를 허물며
서로서로 사랑하여 세운
슬프고도 아름다운 저 힘!
그 힘으로
우리는 새 집을 또 세운다.
2013년
<머루시> 동인 일동
.♣.
=============== == .♣. == ===============
<머루시> 동인 詩集 세번째 [※한참을 울었다※]
[ 해설 ] -
램프와 거울 사이의 다양한 풍경들
박 남 희
일찍이 에이브람즈(M.H.Abrams)는 『거울과 램프』(The mirror and Tbe Lamp)에서 거울과 램프를 문학의 가장 큰 상징적 특성으로 보고 문학의 일반론을 전개한 바 있는데, 그에 의하면 문학은 하나의 예술형식으로서 작가, 독자, 작품, 우주라는 네 가지 요소가 유기적으로 결합된 하나의 생명체와 같은 것이다. 그는 저서에서 작품을 중심으로 볼 때, 작품과 우주(자연)의 관계에서 모방론을, 작품과 독자의 관계에서 효용론을, 작품과 작가의 관계에서 표현론을, 그리고 작품 자체의 관점에서 존재론이 성립될 수 있음을 강조한 바 있다. 물론 이러한 이론은 일반화된 문학이론으로 지금까지도 통용되고 있지만 문학작품, 특히 시는 이러한 이론의 틀 속에 가두어두기 어려운 미묘한 특성들이 작품 속에 내재해 있다. 우리는 이것을 넓은 의미의 상상력의 범주에서 이야기할 때가 많이 있다. 에이브람즈가 강조하고 있는 문학의 대표적인 상징인 ‘거울’과 ‘램프’을 상상력의 들판에 풀어놓으면, 그것은 우리에게 참으로 다양한 영감을 던져준다. ‘거울’이 어떤 것을 비추어서 보여주는 반영성이 강조된 것이라면, 램프는 스스로 빛을 발한다는 차원에서 존재성이 강조된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작가나 작품이나 독자나 우주는 모두 이러한 두 가지 특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따라서 하나의 문학작품 속에는 무수한 거울과 램프들이 여기저기 흩어져서 빛을 내고 서로를 비추면서 그 작품이 지니고 있는 고유한 성품을 드러내게 되는 것이다.
이 글의 서두에서 에이브람즈의 이론을 반추해본 것은 이 글이 다루려는 <마루시> 동인의 작품들이 거울과 램프 사이에서 생겨나는 다양한 풍경들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동인 시집은 개인 시집과는 달리 동인들 각자의 작품 속에 나름대로의 개성을 품고 있으면서도 이들이 조화를 이루어 전체적인 풍경을 보여준다. 동인들의 작품은 서로에게 거울이면서 동시에 램프이다. 어떤 작품은 거울의 특성이 승하기도 하고 다른 작품은 램프의 속성이 두드러지기도 한다. 바타이유는 인간이 공동체를 지향하는 이유로 “모든 인간 존재의 근본에 어떤 결핍의 원리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동인 활동 역시 일종의 작은 공동체에 해당하는 것이라면, 동인이라는 공동체는 서로가 램프, 또는 거울이 되어서 서로을 비추어줌으로써 개인이 가지고 있는 결핍을 극복해나가려는 노력의 산물인 셈이다. 이들 작품들은 그 내부에 서로 다른 빛깔의 램프와 거울을 내장하고 있어서 오히려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먼저 김경조 시인의 시를 읽어보자.
빠른 기차 몰아간 남녘땅
무등산 기슭에서
길 바쁜 영동할매 만나
같이 올랐네
할머니 손길은 매섭기도 해
머리칼 가닥가닥
황사로 분칠하고
손끝은 시렸지
입석 서석 사이사이
별처럼 많았던 암자들
별똥별로 묻혀
기둥 뽑힌 돌구멍만
봄볕을 쬐고
억년을 깍여도
단단한 몸매
뜨거운 가슴으로
하늘 받쳐 우릴 반기고
같은 높이에 우리가 선 땅
산버들 솜털 속에 모두 들어
멱살잡이 쉬워도
손잡아 웃는 날 더 많은 터
-김경조,「무등산」전문
무등산은 90년대의 격동기를 지나오면서 광주민주화운동의 시발점이었던 빛고을 광주의 산증인으로서 우리에게 특별한 상징으로 다가온다. 경북 문경 출신인 김경조 시인이 광주에 대해서 특별하게 관심을 가자는 것은 아마도 지금까지 고착되어 온 지역주의의 한계를 넘어서서 한 핏줄로서의 동류의식을 회복하려는 마음에서였을 것이다. 화자가 무등산을 오르면서 같이 등반하게 된 ‘영동할매’ 역시 영남 출신이라는 점에서 화자와 마찬가지로 광주에 대한 부채의식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다고 생각된다. 광주민주화운동이 있은 지 수십 년이 지나버렸지만 아직도 그때의 상처는 남아 있다. 이 시는 화자가 무등산을 오르면서 무등산의 뜨거운 가슴을 온몸으로 느끼게 된 소회를 동류의식의 관점에서 피력하고 있다. 특히 “입석과 사석 사이사이/별처럼 많았던 암자들/별똥별로 묻혀/기둥 뽑힌 돌구멍만/봄볕을 쬐고” 있는 모습은 흡사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사라져간 안타까운 목숨들의 상징으로도 읽힌다. 그리하여 시인은 “같은 높이에 우리가 선 땅”이라는 동류의식을 바탕으로 아직도 지역감정이 남아 있는 이 땅에서 “멱살잡이 쉬워도/손잡아 웃는 날 더 많”으리라는 낙관적인 전망을 하고 있다. 그것은 영호남이 “산버들 솜털 속에 모두 들어” 하나가 됨으로써 가능해지는 것이다.
김경조 시인의 또 다른 시「만파식적」이나「폐허지의 고목」,「기도의 벽」등의 작품들도 어려운 세상살이나 상처를 회복하려는 치유(healing)의 시들이라는 점에서 상통하는 면이 있다.
아직도 나는 너를 짓밟고 헐뜯기 일쑤다
천년 상처의 딱지를 떼어내고
슬픈 웃음 토해낼 때마다 오히려
더 뚜렷이 실체를 드러낸다
나는 네 실체를 감추기 위해
흐린 날을 골라 외출한다
그늘은 나의 자궁
어쩌다 빛이 아파트 평수를 넓히면
나는 재빨리 카페에 들어가
그 평수가 죽을 때까지
안락의자 깊숙이 나를 묻는다
너와 나 숨 막히는
불꽃 튀는 좌우의 투쟁
날개와 가면의 웃음이 교차할 때마다
나는 너를 더욱 세차게 짓밟는다
더 넓은 그늘이 된다
더 넓은 그늘 안으로 숨어버린다
그늘의 품에 안겨 너의 이념들을
소리 없이 지켜본다
-김선자,「그림자」전문
김선자 시인의「그림자」는 그 이면에 어느 정도 심리학적 성향을 내포하고 있는 것처럼 읽힌다. 이 시에서 ‘나’가 심리학에서 말하는 페르조나(persona)라면 그림자는 쉐도우(shadow)이다. 심리학에서는 이 두 가지가 충동하여 불안이나 갈등이 생긴다고 보고 있다. 이 시에서 ‘나’는 ‘너’인 ‘그림자’를 짓밟고 헐뜯기 일쑤다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나’가 “천년 상처의 딱지를 떼어내고/슬픈 웃음 토해낼 때마다 오히려” 그림자는 더 뚜렷한 실체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나는 네 실체를 감추기 위해/흐린 날을 골라 외출한다.” 이러한 나의 행위는 일종의 도피행위라고 볼 수 있는데, 이것은 화자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날개’(초월)와 ‘가면의 웃음’(허위성) 사이에서 무수히 길항하면서 자신의 내면의 그림자와 끊임없이 싸우다가 지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화자는 빛으로부터 자신을 은폐시켜 그림자가 보이지 않게 함으로써 안식을 얻게 된다. 그림자가 보이지 않는 그늘은 화자에게는 엄마의 자궁처럼 편안한 곳이다. 그런데 화자에게 있어서 그림자는 ‘이념’, 즉 이데올로기의 성향을 띠고 있다. 이것은 시인의 내면에 어쩌면 자신도 모르는 이데올로기 기피증이 내재해 있다는 증좌가 된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시인의 내면에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그림자로 왔다가 그림자로 가”(「봄 산길에서」)는 숙명을 지닌 존재라는 인식이 깊이 자리하고 있다. 이러한 ‘그림자’는 때로 “생일 유리창에 수없이 긁힌 흔적들”(「성에꽃」)로 나타나거나, “햇빛 한줌 스미지 않는 화분의 집”(「화분의 집」)으로 형상화되기도 한다.
이 세상에서 살펴본 바에 의하면 김선자의 시에는 무수한 램프와 거울이 내면적으로 충돌하면서 길항하고 있다. 김선자 시의 ‘그림자’는 램프의 특성보다는 거울의 특성이 강화된 이미지이다.
가벼워야 날 수 있다
뼛속까지 비워야 한다
항암의 캡슐마저 거부한 채
탕약 찌꺼기 같은 유방을 끝끝내 도려내지 않고
치렁치렁한 암세포를 봉분처럼 모시고 사는
새 한 마리
동그랗게 말린 등뼈를 퍼덕이고 있다
가벼워야 건널 수 있다
아직도 더 비워야 한다
등뼈 곧은 자들은 레테의 강을 건널 수 없다며
찌부러든 生의 좌표를 뽕부라 속에 감추고
불치(不治)의 뱃속을 또 비우고 있는
새 한 마리
달라붙은 등가죽을 토닥이고 있다
피안을 위해서는
날개가 필요하다
-김연종,「설레는 피안」전문
인간에게 있어서 죽음은 가장 큰 두려움 가운데 하나이다. 그것은 죽음이 지상에 존재하던 모든 것을 지워버릴 것이라는 생각이 그 내면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세의 소망이 있거나 이 세상의 극심한 고통으로부터 탈출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죽음이 오히려 축복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김연종은 죽음을 가벼운 날개를 달고 피안의 세계로 날아가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에게 있어서 죽음은 ‘설레는 피안’으로 가는 통과의례 정도로 인식된다. 인용 시는 유방암이 걸린 시적 대상이 유방암 수술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레테의 강, 즉 죽음을 건널 날만 기다리고 있는 암담한 상황을 오히려 역설적인 언어로 형상화함으로써 비극적 상황을 초탈하려는 노력을 보여준다. 이러한 시인 의식은 그의 또 다른 시「환생을 위해서는 환승해야 한다」에서 죽음에서 살아 돌아오는 환생을 환승으로 인식하거나,「데스홀릭」에서는 죽음 저쪽 세상을 “입술과 항문과 성기가 없는” “슬픔과 광기와 피 흘림이 없는” 곳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이처럼 시인이 죽음을 긍정하고 있는 것은 신앙적 가치관 때문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고통스러운 세상으로부터의 탈출의 의미가 강하다. 그가 「안락의자」나「자살토끼의 생환」에서 자살을 꿈꾸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소낙비가 연신 싸대기를 후려치고
태풍이 갈비뼈 부러지게 걷어찬다
그래도
괜찮다
괜찮다
스스로 다독이며
아프게 아프게
용트림하는 소나무, 작지 않다
맞서지도 탓하지도 않고
도리어 바람을 빌어
마르고 병약한
이파리와 잔가지들 떨어뜨리고
더 잘 서 있다
-김정원,「궂은 날」전문
인간에게나 인간 이외의 생물에게나 ‘궂은 날’은 시련이 따라오게 마련이다. 인간은 ‘궂은 날’의 시련을 극복하려고 부단히 노력하지만 그 과정에서 상처를 입고 좌절을 경험하기도 한다. 시인은 이러한 인간과 대비되는 이미지로 ‘소나무’를 전경화하고 있다. 이 시에서 소나무는 “소낙비가 연신 싸대기를 후려치고/태풍이 갈비뼈 부러지게 걷어”차도 “그래도/ 괜찮다/괜찮다//스스로 다독이며/아프게 아프게//용트림하”는 달관의 경지에 들어 있다. 인간의 차원에서 보면 이러한 행위는 바보스럽거나 불가능한 행위처럼 인식되겠지만, ‘소나무’라는 자연의 차원에서는 오히려 너무나 자연스러운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이 시에서 소나무는 “맞서지도 탓하지도 않고/도리어 바람을 빌어/마르고 병약한/이파리와 잔가지들 떨어뜨리고//더 잘 서 있다”. 이러한 사유는 그의 또 다른 시 「아까시」에서 “햇빛 나면 햇빛 쐬고/비 오면 비에 젖고/바람 불면 바람 맞는” 아까시 나무의 태도에도 동일하게 드러나 있다. 그것은 “바람에/꽃은 떨어져도/향기는 멀리 간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김정원 시인은 가장 전형적인 자연주의자이다. 그가 “네 식구가 한 상에 둘러앉아 저녁밥 먹”(「느리게 살기 위하여」)을 겨를도 없이 정신없이 돌아가는 문명 세계 속에서 느리게 사는 삶을 꿈꾸는 것도 자연의 시간이 느림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바다처럼 등 푸른 간고등어 먹는다
간잽이의 능숙한 솜씨로
썩지 마라
상하지 마라
누군가의 맛있는 양식이 되라고 친
짭조름한 바다의 눈물
눈물이 살을 만나 이렇게 맛있다
소금간이 고루고루 밴 간고등어를 먹다가
누군가에게 정말 밥맛없는 놈이라는 걸
뼛속까지 알아챈 나는
영혼의 바다 깊은 곳에서 캐낸 하얀 눈물로
내 마음의 배를 열고 소금간 친다
썩지 마라
상하지 마라
마음의 살 속에 두루 배어서
누군가를 위한 맛있는 마음 되라고
오늘은 간잽이 되어
소금간 친다
-박백남,「소금간 친다」전문
박백남 시인의 시에는 기독교적 사유가 우선적으로 눈에 띤다. 인용 시 「소금간 친다」가 성경에 나오는 빛과 소금의 비유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이라면,「회심곡(悔心曲)」에서는 죄와 회개의 문제가,「병」에서는 죄가 병을 낳는다는 인식이,「너무 늦게 핀 사과꽃」에서는 돌아온 탕자의 비유가,「복 있는 자를 위한 잠언」에서는 성서에 나오는 복 있는 자의 조건이 중심 모티브로 자리하고 있다. 이러한 시인의 기독교 의식은 죄의 문제에 대한 해결로 회개만이 자신을 성결하게 할 수 있다는 믿음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인용 시에서도 간고등어가 썩지 않고 상하지도 않고 맛있는 비결이 소금 때문인데, 여기서 소금은 단지 부패를 방지하는 방부제의 역할 뿐 아니라, 바다의 눈물이라는 점이 강조되어 있다. 1연의 ‘바다의 눈물’은 3연에 오면 “영혼의 바다 깊은 곳에서 캐낸 하얀 눈물” 즉 회개의 눈물로 연결됨으로써 자연스럽게 죄의 문제와 만난다. 따라서 시인이「회심곡(悔心曲)」에서 “사흘 밤낮으로 죄 눈물 같이 쏟아내니/먹구름 조금씩 옅여져 사라지고/비 그쳐/그제서야 창창한 하늘나라/맑고 연한 빛, 한 몸으로 가득하”다고 고백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시인에 의하면 인간에게 죄가 들어오는 것은 욕심 때문이다. 죄의 근원인 인간의 욕심은 결국 병을 가져오게 되고 인간은 결국 “병에 갇힌 몸과 목숨”(「병」)이 되어 사망에 이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바닷가 절벽 위에 풀어놓은 염소 Ep
누가 움직이나
염소들이 온다
내 머릿속 신음소리를 지나 어린 염소들은
좁은 생각의 언덕을 지나 조용한 바람을 생각하면서
자작나무 눈썹에서 염소들은 온다
내가 쓰고 있는 백지의 풀밭
여린 풀이파리를 뜯으며 염소들은
하나, 둘 차가운 바다를 건너 불타는 손가락 사이로 온다
끈처럼 질긴 슬픈 산등성이를
되새김질하며 뼈 마디마디를 빠져나오는 염소들은
내 입술을 태우며 이글거리는 불처럼
백지를 환하게 밝힌다
글자들은 푸르게 출렁이고
백지 위에서 검은 뿔로 일어선다
글자와 글자 사이를 돌며
내가 한 마리 염소이었을 적에, 라고 쓴다
-송미숙,「염소」전문
시인이 시를 쓰는 행위는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아니라 때로는 무의식적이기까지 하다. 그렇기 때문에 시인은 때로 자신이 시를 쓰는 행위를 구체적인 이미지를 통해서 보여주고 싶어 한다. 일종의 메타시의 형태를 지닌 이러한 시들은 시에 대한 자의식의 표출이라는 점에서 ‘램프’보다는 ‘거울’의 성격이 강조된다. 인용 시에서 시인은 ‘염소’라는 가시적 상관물을 통해서 포에지, 또는 시상(詩想)이라는 관념을 구체적 형상으로 이미지화한다. 시인이 이 시의 초두에서 “바닷가 절벽 위에 풀어놓은 염소 떼”를 움직이는 주체에 관심을 가지는 것도 시를 쓸 때 상상력의 주체가 온전히 시인의 것이 아닐 수 있다는 심증이 있기 때문이다. 이 시에서 ‘염소들’ 즉 시상이나 상상력이 시인을 향해 오고 있는 것은 ‘절벽’같은 절망적이 세상에서 ‘신음소리’를 내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시인의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즉 이 시에 의하면 시인의 삶의 근저에 자리하고 있는 악조건들이야말로 시를 쓰게 하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시인은 “차가운 바다를 건너 불타는 손가락 사이”로 오는 시상을 담아서 백지 위에 염소의 ‘검은 뿔’로 시를 쓰게 된다.
시인의 또 다른 시「모서리」에서 “공은 벽으로 싸여 모서리에 머물러 있다/더 이상 물러날 수 없는 순간이 있다”고 한 것도 위의 인용 시에서 ‘바닷가 절벽’의 상황과 흡사하다. 여기서 공이 시인을 상징한다면 벽은 시인이 처해 있는 한계상황처럼 읽힌다. 시인이 “벽은 공의 사각 프레임/벽은 공이 숨 쉴 공간이다/공은 벽 속에 내일을 넣는다/튀어 오름을 넣는다”는 진술을 할 수 있는 것도 한계상황으로 인식되는 벽이 시인에게는 오히려 창조적인 공간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송미숙의 시들에게서 이처럼 메타 언어적 사유가 돋보이는 것은 이 시인이 본질적으로 시 쓰기에 대한 섬세한 자의식의 소유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암스트롱이 달에 발자국을 찍던 날
계수나무는 말라 죽고
옥토끼는 털가죽이 벗겨져
낯선 푸줏간 냉장고 갈고리에 걸린 채 얼어 죽어
사람과 사람 사이엔
달이 떠오르지 않는다
아이들은 낡은 책갈피 사이에 버려진
달의 유골을 꺼내
질량과 부피로 해부하거나 DNA 검사를 하지만
그리움의 유전자가 없어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달
달도 아닌 달이
빌딩 등 뒤에 숨어 떠오르다 가로등 불빛에
제 살을 묻는 저녁
사람들은 머리에 빛 잃은 차가운 달 허물 하나씩 쓰고
골목 안으로 사라진다
이제 달은
사람이 없는 어둠과 어둠 사이에 숨어
피었다 진다
-이광복,「사라진 달」전문
옛날에는 달이 자연의 차원을 뛰어 넘어 신처럼 여겨지기도 했고 때로는 설화 속의 공간이 되어 어린이들에게 무한한 동경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문명이 발달하면서 달은 점점 인공 빛에 가려서 그 빛을 잃기 시작했다. 시인은 그 기점으로 암스트롱이 달에 착륙을 한 사건을 꼽고 있다. 그 사건으로 달에는 더 이상 계수나무와 옥토끼가 살지 않는 삭막한 공간이 되어 “사람과 사람 사이엔/달이 떠오르지 않는다”고 말한다. 즉 이제는 더 이상 달에 ‘그리움의 유전자’는 존재하지 않게 된 것이다. 시인에게는 더 이상 이러한 달이 옛날에 정겹게 느껴지던 순수한 달이 아닌 것이다. 그리하여 급기야 “사람들은 머리에 빛 잃은 차가운 달의 허물 하나씩 쓰고/골목 안으로 사라”지는 초라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달 역시 “사람이 없는 어둠과 어둠 사이에 숨어/피었다” 지는 초라한 신세가 되었다는 점에서 문명의 발달이 인간과 자연의 동반몰락을 의미하게 되었음을 강조하고 있다.
시인의 문명에 대한 비판의식은 그의 또 다른 시「나는 날마다 변비를 읽는다」에서처럼 화장실에서 신문을 읽는 습관이 시인을 변비 중독환자로 만들거나, 「회 한 접시의 비망록」에서처럼 시인이 한 접시의 회가 되어 “맵고 달콤한/초장에 길들여진 혓바닥 위에서” 잘근잘근 씹히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시인이 만나게 된 것이 시이다. 시인은 사랑이 저물 때, 즉 “꽃이 지고/나무의 몸이 캄캄하게 어두워졌을 때/몸살을 앓듯 그렇게 몸이 저물고 나서야/꽃이 지워진 자리가 모두 상처였음을”(「저문다는 것은」) 깨닫고 비로소 상처 속을 걸어서 시인에게로 오는 시를 발견하게 된다. 그리하여 시인에게는 의미 없이 느껴지던 ‘저문다는 것’이 “뜨거운 피가 벌떡벌떡 뛰는 심장으로/저문다는 것”으로 바뀌어서 “환한 것에 익숙해진 몸을 지우고/감추고 있던 속살을 헤집어보는 일” 즉 시 쓰기의 진면목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미시령 넘어온 봄바람이 백담사에서 저녁예불을 드린다
목탁 속으로 들어간 바람의 경은 얼었던 목어의 연 입을 벌려놓고
용대리 황태덕장으로 달음박질한다
운판의 진동이 정지된 도랑 얼음을 흔들고
얼음 틈, 계곡의 소리는 선잠을 깨운다
봄을 쫓아
나의 뿌리를 캐러
달려온 만해의 집
내 그림자에 취하고 봄밤에 취한 나의 방황
문턱을 넘어 들어온 계곡의 소리는 나를 끌고 나간다
바람은 문을 닫아버리고 나는 문을 두드린다
그 순간 바람과 나와 닫힌 문은 삼각관계의 매듭을 묻고
눈썹달은 그 밤의 목격자가 된다
문을 열어 보겠다고 베란다 난간에 매달린 허벅지가
봄밤에 미치고 봄밤은 미친 허벅지를 요리한다
발가락을 튕기며 허벅지에 멍빛 동백을 피운다
봄은 푸르지 않았고 시도 붉지 않았다
-이우림,「그 봄밤」전문
봄밤은 시인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그것은 봄바람이 시인의 마음속으로 침투해 들어가 겨울처럼 꽁꽁 얼어 있던 시인의 마음을 녹여주기 때문이다. 인용 시에서 시인이 “목탁 속으로 들어간 바람의 경은 얼었던 목어의 입을 벌려놓고” “운판의 진동이 정지된 도랑 얼음을 흔들”고 있다고 진술하고 있는 것도 봄바람의 위력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러한 봄바람은 시인으로 하여금 자신의 뿌리를 찾기 위해 ‘만해의 집’으로 달려오게 만든다. 시인의 이러한 행위는 시인이 자신의 그림자에 취하고 봄밤에 취했던 방황으로부터 자신을 성찰하려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바람은 만해의 집 문을 닫아버리고 화자는 문을 두드린다. 여기서 문을 두드리는 행위는 “바람과 나와 닫힌 문의 삼각관계의 매듭을 묻”는 행위에 비견된다. 여기서 “바람과 나와 문의 삼각관계”는 나와 바람 사이를 막고 있는 닫힌 문에 대한 시인의 인식이 그만큼 첨예해졌음을 의미한다. 이처럼 예민해진 시인 의식은 급기야 시인으로 하여금 미치게 만든다. 시인은 “봄밤에 미치고 봄밤은 미친” 시인의 허벅지를 요리한다. 그러면 시인은 “발가락을 튕기며 허벅지에 멍빛 동백을 피”우게 된다. 여기서 ‘멍빛 동백’은 시를 말하는 것이다. 시인이 이 시의 말미에서
“봄은 푸르지 않았고 시도 붉지 않았다”고 진술하고 있는 것은 ‘미친 허벅지’로 상징되는 시와 사랑이 모두 시인이 바라던 색의 경지에는 이르지 못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시인은 그의 또 다른 시「참 붉은 봄날」에서 봄을 “먹장구름 옥빛바다 붉은 소나무 현무암으로 버무려진 색”으로 표현하여 자신의 삶의 색이 결국은 세상과 범벅이 된 색을 벗어날 수 없음을 고백하고 있다.
소중한 추억이라 했던가
줄기까지 뽀송뽀송 수줍음 이끌고 와
여린 꽃 하나 붙들고 있다
바람은 아무것도 걸칠 게 없어 한참을 머문다
나는 그곳에서 식물을 버리고
솜만 떠올리며 마을의 날들을 짚어본다
월동은 깊고 밤은 더욱 쓸쓸했으리라
아무리 개켜도 녹지 않는
새벽녘 꿈을 주억거리다가
어느 해 가을의 사랑도 기억해내던
어쩌면 그 어딘가의 쓰디쓴 열망이
솜다리의 생애인 듯
섣불리 눈물의 체온으로도 묻어둘 수 없는
그리움의 생애이리라
지금은 너무 남루해져 장롱 깊이 처박아둔
묵정의 오랜 기억에게 맡겨 놓았던 솜다리꽃을
먼저 온 바람에게 천천히 내어준다
-이춘희,「솜다리」전문
솜다리꽃은 흔히 에델바이스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 꽃으로 뽀송뽀송한 솜털이 나 있다고 해서 솜다리로 불린다. 시인에게 있어서 솜다리는 추억 속의 꽃이고, 직접적으로는 시인 자신의 실존을 표상해주는 꽃이다. 추억 속의 솜다리는 “줄기까지 뽀송뽀송 수줍음을 이끌고 와” 피어 있는 ‘여린 꽃’의 이미지로, 시인 자신의 유년의 순수성을 상징한다. 이렇듯 순수한 꽃에게 “바람은 아무것도 거칠 게 없어 한참을 머문다”, 하지만 이렇듯 순수했던 유년은 덧없이 지나고 시인에게 있어서 솜다리는 식물의 이미지를 버리고 솜의 이미지만 남게 된다. 이것은 시인의 유년이 춥고 쓸쓸했던 겨울밤처럼 황량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에게 있어서 젊은 날은 “아무리 개켜도 녹지 않는/새벽녘 꿈을 주억거리다가/어느 해 가을의 사랑도 기억해내던” “어딘가 쓰디쓴 열망”만으로 기억되는 ‘솜다리의 생애’로 정의할 수 있다. 시인은 장롱에 깊이 처박아두었던 솜이불을 펼쳐내듯 기억의 장롱, 즉 “묵정의 오랜 기억에게 맡겨 놓았던 솜다리꽃을/먼저 온 바람에게 천천히 내준다”, 시인이 젊은 시절을 뒤로하고 뒤늦게 사랑을 꿈꾸거나 새롭게 시에 대한 열망을 품게 되는 것이야말로 시인이 먼저 온 바람에게 자신을 내어주는 행위가 아니고 무엇일까.
이춘희 시인의 시들은 이렇듯 작은 것이나 잊히고 버려진 것들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하고 있다. 광부들이 떠난 후 버려진 채 ‘도깨비들의 보호구역’이 되어버린 탄광촌을 동화적 상상력으로 그리고 있는「동화 속에 들다」나, 동강 근처의 버려진 마을인 ‘덕천리 제장마을’(「나무속의 날들」)과 신축 아파트에 짓눌려 불안한 날들을 보내고 있는 바구니 마을(「그 마을」)의 쓸쓸한 풍경을 그리고 있는 시들 역시 같은 맥락 안에서 읽혀진다.
동인지의 역사를 더듬어보면, 우리 근대문학 초창기에 동인지 문단시대가 있었다. <창조>, <백조>, <폐허>등으로 대표되는 당시의 동인지들은 문학잡지가 희귀하던 시대에 일정한 유파를 형성하여 우리 문단을 이끌어왔다. 하지만 요즘의 문학동인은 일정한 유파를 형성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개인적 친분이 있거나 이런 저런 이유로 모인 시인들끼리 문학 동호회를 만들어 정기적으로 합평을 하거나 함께 문학기행을 가는 것이 보통이다. 지금까지 두 권의 동인 시집을 출간한 바 있는 <마루시> 동인 역시 이러한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이들은 각자 다른 시세계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몇 가지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첫째 이들 시들은 대부분 시인의 상처나 갈들을 시적 열정으로 승화시키는 과정에서 탄생한 것들이라는 점과, 둘째로 시인 자신의 생명(죽음)이나 죄의 문제를 내세나 피안과 연결시켜 사유함으로써 현세의 단절감을 극복하려는 노력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과, 셋째로 삶이나 사랑에 대한 열정이 자연스럽게 시에 대한 열정이나 자의식으로 연결되고 있다는 점 등이다. 이러한 공통분모는 <마루시>동인들의 시에 내재해 있는 램프와 거울들이 서로 길항하면서도 은연중에 같은 무늬를 발산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러한 무늬가 결핍의 무늬이든 상처의 무늬이든 상관없이 이들 시에 내재해 있는 거울과 램프의 빛이 살아 있는 한, <마루시>의 앞날은 풍성한 시의 한 계절을 지나게 될 것이다.★.
.♣.
=================
◆ 표사의 글 ◆
<마루시> 동인들은 각자 다른 시세계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몇 가지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첫째 이들 시들은 대부분 시인의 상처나 갈들을 시적 열정으로 승화시키는 과정에서 탄생한 것들이라는 점과, 둘째로 시인 자신의 생명(죽음)이나 죄의 문제를 내세나 피안과 연결시켜 사유함으로써 현세의 단절감을 극복하려는 노력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과, 셋째로 삶이나 사랑에 대한 열정이 자연스럽게 시에 대한 열정이나 자의식으로 연결되고 있다는 점 등이다. 이러한 공통분모는 <마루시>동인들의 시에 내재해 있는 램프와 거울들이 서로 길항하면서도 은연중에 같은 무늬를 발산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러한 무늬가 결핍의 무늬이든 상처의 무늬이든 상관없이 이들 시에 내재해 있는 거울과 램프의 빛이 살아 있는 한, <마루시>의 앞날은 풍성한 시의 한 계절을 지나게 될 것이다.★.
- 박남희(시인)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