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은 아래 분 글과 똑같이 달아 봤습니다만,
실은, 그 글과 미협의 해명을 반박하는 내용입니다.
언어란 의사 소통의 도구이니, 어쨌건 알아듣고 알아보면 되는 것 아니냐는 논리를 주장하는 분들이 더러 계신 듯합니다.
이번 미협의 해명도 그런 논조이고, 최근 며칠 동안 덧글 다시는 몇몇 분들도 그렇게 강변하고 계십니다.
사실, 말소리나 글자가 사회적으로 유통되다 보면, 발음이나 서사가 간편하게 변한다든지,
강조 등의 이유로 격음, 경음화된다거나, 다른 요소가 덧붙어 서사되는 예도 있고,
지역에 따라 방언이 형성되기도 합니다.
은나라 청동기 금문에도, 그 이전 시대의 도상문자를 다시 기호화(간략화)하여 나타낸 것들이 존재하며,
춘추전국시대에는 수레바퀴도, 글자도 나라마다, 지방마다 달랐다 할 정도로 혼란했는데,
진나라가 들어서며 이사가 小篆으로 표준화, 정형화하여 중앙 집권의 기틀을 닦았다는 것은 중국사, 문자학, 서예사의 기본 상식입니다.
목간 자료들을 보면, 좀 더 간단하거나 상통자인 ○라는 글자로써 △라는 글자를 대신한 예들도 많긴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쓸 수 있는 문자학적 근거가 있다든지, 그 글자가 상통자로 유통되었다든지 등의 경우에 가능했던 것이고,
옛날 사람이라고 誤字를 쓰지 않았을 리 없습니다.
도리어 현대와 달리 미디어 매체도 없었고, 표준화도 미비했고, 체계적인 학교 교육도 없었으며,
필기 재료와 도구도 불편했고, 조명도 고작 등불 밖에 없었으니, 오자는 더 빈번했을 것입니다.
사회적으로 유통되는 기호라는 언어의 속성상, 잘못 쓰인 글자가 널리 유통되었다면, 이체자로 인정할 수 있으나,
(음운 규칙에 맞지 않더라도 많이 사용되면 사전에 등재되고 마침내 표준어를 밀어내고 새로운 표준어가 되기도 하는 것과 같습니다)
어쩌다 한두자 그렇게 쓰였으면 그것은 오자이며,
더욱이, 문맥과 상관없이 엉뚱한 글자가 들어갔다면, 그것은 더 말할 것도 없는 오자입니다.
'八月大古'라는 벽돌 탁본은, 관례적 문맥상으로 '八月大吉'인줄 짐작하는 것이지,
吉을 古로 써도 된다는 어떠한 근거도 되지 못하고,
그 자체는 그저 '八月大古'일 뿐입니다. 吉자 들어가야 뜻이 자연스러운 자리에 古자 들어갔다고, 그 古자가 吉자의 자격을 가질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벽돌에 긁어 쓴 옛 사람이, 정말로 '八月大古'라 썼을지도 모르는 일 아닙니까?
그 탁본의 古자를 자전에 넣는다면, 古란에 넣어야 할까요, 吉란에 넣어야 할까요?
고증학과 금석학, 전서, 전각이 개화, 발달한 청나라의 전서 대가들도 오자를 더러 썼습니다.
그 이전의 대가들도 그렇구요.
현대의 작가들도 오자를 심심찮게 씁니다.
선생님들이 체본 줄 때도 오자가 더러 섞입니다.
그러나, 오자는 오자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이 좋으니 감상하고 임서하는 것일 따름인데,
그렇기에 문자학적 판별 안목을 갖기 위해 개론적 지식을 공부하고, 비판적 감상, 임서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강조하고 싶은 점은,
그러한 작품들은 공모전에 출품된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누구나 오자를 쓸 수 있고, 작품 제작에 있어 실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점들까지 다 봐서 그 작품의 우열, 작가의 안목과 실력, 공부의 정도를 측정하는 것이 공모전입니다.
그리고, 그 작품이 아무리 결구, 장법 등 조형성이 좋고, 선질, 운필, 발묵이 훌륭하다 해도,
오자가 있다면 낙선시키도록 하는 것이 미협, 서협 등 현재 우리나라 공모전들의 규칙입니다.
오양지의 전서 대련에 오자가 있더군요. 業자에서 가로획을 하나 더 그었습니다. 業자인줄 짐작해 읽긴 하죠.
그러나, 거장 중 거장인 오양지라 하더라도, 그 작품이 출품되었다면 당연히 낙선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문자학적으로 정확하냐, 이런 자형으로 써도 문제 없겠느냐를 판단, 결정하는 것은 서예가로서의 중요한 실력 중 하나입니다.
형성자인 힐에서, 음가를 갖는 구성 요소인 吉을 古로 쓴다면 힐로 알아볼 도리도 없거니와,
설령 머리를 짜내서 힐로 읽는다 치더라도, 틀린 글자는 틀린 글자입니다.
미협 측과 대상 작가께서, 자신들이 옳다는 근거로 제시한 '八月大古' 탁본이야말로, 옳음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아니라,
설령 그렇게 짐작해 읽을 수 있다 쳐도, 틀린 글자는 틀린 글자일 뿐이라는 근거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한자가 몇 자인지 누구도 모릅니다. 가장 많은 글자를 수록했다는 중국의 『한어대자전』에 6만자가 훨씬 넘게 실려 있다 하고,
이번 미술대전의 감수위원이신 허호구 선생께서 편찬 총지휘를 하신 『한한대자전』에는 그보다 더 많은 글자가 수록되었다 합니다.
'吉'이 아닌 '古'가 중간에 끼인 별개의 글자가 있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게다가, 타인의 문장, 시를 쓴다면, 그 텍스트를 정확히 써야 하는 것은, 현대인에 있어 상식 중 상식이며, 예의입니다.
클래식 음반들을 보면, 스튜디오에서 녹음한 것들은 가능한 실수를 없애기 위해 부분 재녹음도 하고 편집도 합니다.
실황 녹음도 연주회 후 그렇게 해서 편집하는 예가 많은데, 그런 편집을 할 수 없는 일회성의 녹음 중,
중대한 실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연주가 워낙 가치있고 뛰어나다면 그건 명반으로 대접받습니다.
예컨대, 번스타인이 평생에 단 한 번 베를린 필을 지휘한 연주회의 실황 녹음인 말러 교향곡 9번 음반에서는,
4악장에서 한참동안 트롬본이 연주를 안 해 버리는데, 그러한 치명적 실수에도 불구하고, 연주가 워낙 처절하고,
거장이 단 한 번 베를린 필을 지휘했다는 역사적 가치 때문에 명반 중의 명반으로 대접받긴 합니다.
그러나, 연주자의 우열을 가리는 콩쿠르라면 얘기가 달라지지 않겠습니까?
실수라든지, 악보와 다르게 연주했다든지 등은 중대한 감점 요인이며, 최우선 낙선 대상일 것입니다.
실수했고 음표 빠뜨려 먹었지만 연주는 좋으니 우승이나 차석 등 입상자로 뽑는다면, 문제가 심각해질 것입니다.
(더욱이 그 연주가 과연 좋은지조차 의문시된다면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옛날과는 달리 문자학, 서예학도 진보했고, 책, 미디어 매체도 널리 보급되었으며, 공부하기도 어렵지 않습니다.
제백석 자서전을 보면, 조지겸 인보를 어렵게 빌려다 주묵으로 모사해 그려서 그걸로 공부했다는 대목이 나옵니다.
청 말기에조차 그랬다는 것입니다.
석고문 임서로 유명한 오창석이 대본으로 삼은 석고문 탁본은, 원탁도 아닌 천일각 복각본이었다 합니다.
가까운 시대의 거장들조차 형편이 이렇듯 나빴습니다. 그에 비해 지금은 얼마나 좋은가요?
체본대로 따라 쓰는 정도의 초학자 분이 아니라(사실, 그런 분이라면 애초 선생님들 선에서 미술대전에는 출품 못하게 해야 한다고 봅니다),
프로 작가라면, 더욱이, 공부하기 좋은 환경인 현대의 작가라면, 작품에 써도 문제 없을 자형을 선택하는 판별력은 당연히 갖추어야 합니다.
문자학적 판별력, 실수 없이 작품하는 것, 이게 다 작가의 실력 중 중요한 덕목들이며,
공모전의 핵심 채점 기준들 중 하나입니다.
이것을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리고, 별 문제되지 않는다라고 강변하는 공모전은, 그 공정성을 스스로 부정하는, 무가치한 공모전일 것입니다.
세상 일이라는 게 상식과 원칙대로 되지만은 않는다지만,
골간이 되는 부분까지 허물어진다면, 결국 그 집은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누구나 병은 하나 둘 달고 삽니다만,
심장이나 폐, 위, 척추 등이 타격을 받으면, 그 사람은 쓰러지고,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며, 심하면 죽고 맙니다.
사람은 천성적으로 이기적인 동물이라고 저는 봅니다만서도,
내가 살기 위해서는, 내가 사는 집이 무너지지 않게 신경쓰는 것도 자기 몸 건사하고 자기 배 불리는 것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서단의 선생님들, 선배님들께서는 부디 유념해 주셨으면 합니다.
첫댓글 좋은 내용의 글 입니다. 모두 같은 생각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동감입니다..공모전은 공모전답게..이번 사건은 꼭 짚고 넘어가야 할거 같네요..분명 오자는 오자인데..것도 대상에서...이렇게 말이 많은데..대상자도 많이 부담스러울것 같네요..
내년엔 어떤 서예인들이 공모전을 내겠습니까? 이제 구경만 합시다.ㅎㅎㅎㅎ
구구절절 옳은 말입니다.
긴 글 잘 읽었습니다
오자에 대해서 많은 공부가 되었구요..그래도 대상자와, 상을 준 그 사람들은 그대로 밀고 나갑니까??
상이 뭐간데...받아서 기분 좋고 떳떳하고 자랑스러워야 상이 아닙니까
오직 초대작가 되기 위한 도구로만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오는 겁니다
빨리 초대작가 되어 목에 힘도 주고 심사도 하러 다니고 돈도 벌어야 하니까요
돈을 써서라도 하루빨리 초대작가 되어 활동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계산해도 훨씬 낳다고
초대작가 되신 분들의 말씀이더라구요 ㅋㅋㅋ
서예를 오로지 돈벌이 수단으로 생각하는 인간들이 온통 흙탕물을 일으키지요. 차제에 이런 인간들을 모두 추방해야 될텐데.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大古 의해석- 중국자전 인용 1.特别。2.犹大概?大约。중 2 항의 뜻을 인용하면 八月大古'은 '八月 즈음에' 혹은 '아마도 八月 '정도로 해석하면 어떨까? 고로 大吉과 大古는 전혀 다른 뜻이며 감수자료를 잘못 선정하였고 吉을 古와 같은 어원이라는것은 여지껏 인정되어온 어원설을 뒤집는 억지 주장이다(BS)
동의합니다^^
참으로 훌륭하십니다. 구구절절이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정확하게 꽤뚫고 있는 지적입니다. 굿~~~한 표 동의합니다^^
공부많이하신 분이시네요. 역시 서예세상 강호 무림에는 숨은 고수들이 많습니다. 멋진 글입니다 . 찬성합니다*^^*
애쓰셨습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좋은글입니다. 강추*^^*
가슴이 다 후련합니다. 정말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여러분들이 즐겨보는 요즘의 <나가수>에서도 그런 경우가 있지않습니까? 임재범이 지난주 조율을 불러 2위를 했음에도 중간에 멈추고 다시했다는 이유로 본인이(물론,네티즌들의 항변의 영향도 크게 작용했겠지만,,ㅎ)인정하고 물러나지 않았습니까,,,바로 그런겁니다요.
어쩜 이리도 논리적이고 명쾌합니까?? 더이상 무엇으로 궤변과 변명을 일삼으리요.. 알량한 지식이나 당장 눈앞의 이로움을 좇아 몸과 이름을 버리는 일은 없어야합니다
그런데 지금 특선의 오탈자 작품은 거론되고 있는가요? 많다고 들었는데...
글쓴 분들의 주장에서 보면 자전이나 법첩에도 오자가 들어 있다고 하는데 초보자로써 무엇이 오자인지....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네요 차라리 책에 오자라고 기재를 해놓지....초보자가 공모전에 내면 자전이나 법첩 그대로 썼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피해는 초보자한테 오게 되어 있습니다. 참....서예를 어떻게 써야 할지....
오자가 있는 잘못된 법첩이나 자전이 있으면 폐기시켜 팔지 말아야지 왜 필방에서 팔게 만드는지....결국 피해는 보고 쓴 사람에게 오게 되어 있어요....저는 자전에 기재되어 있으면 맞다고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