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이야기
2.우리 유년의 뜰,
그 정겨운 마실 이름
1. 바람의 기억
눈을 감으면 소백산 자락을 타고
내려오는 거센 바람 소리가
내 가슴속을 쓸어내리듯 불어옵니다.
태어날 때부터 감싸안아 주던 소백산,
그 산은 거친 숨을 몰아쉬는
칼바람이 되었다가도 어느새
가슴을 식혀주는 시원한 바람결이 되어
내 유년의 추억 뜰을 쓸고 지나갑니다.
풍기 옛 선인들은
이곳을 일러 '사람을 살리는 산'
아래 자리 잡은 복된 땅이라 했습니다.
북위 36.5도,
사람의 체온과 가장 닮았다는
그 땅 풍기는, 거친 바람이 불어도
어머니의 가슴처럼 우리를
포근히 감싸주던 곳입니다.
풍기는 예로부터 이름조차
'터의 고장'이었습니다.
신라 때는 기목진이라 불렸고,
고려 시대에는 기주라 하여
'기(基)' 자를 품고 살았으니,
이곳은 말 그대로 삶의 토대이자
근본이 되는 '텃고을'이었습니다.
2. 이름 속에 깃든 이야기들
하지만 거창한 역사보다
더 깊이 내 가슴을 파고드는 것은,
투박한 사투리 속에 섞여 나오던
그 정겨운 순우리말 지명들입니다.
한자 섞인 행정 구역 이름 뒤에는
이 땅의 생김새와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대로 담은 '진짜 이름'들이
숨 쉬고 있었습니다.
달과 별이 빚은 골짜기
저 소백산 깊은 골짜기,
삼가리의 달밭골을 기억합니다.
밤이면 산에 둘러싸여 해보다
달과 별을 보는 시간이 더 길어
'달밭골'이라 불렸던 곳.
누군가는 달맞이꽃이 많이 피어
달밭골이라 했고, 또 누군가는
옥토끼가 달을 바라보는 명당이라
하여 그리 불렀다지요.
그 옆 샘밭골에는
늙은 용의 코에서 나온다는
마르지 않는 샘물이 흘렀고,
곰이 살았다는 비로사 가는 길
곰수골(곰실)에는 스님이 써 붙인
'사자목'라는 글씨가 곰을 쫓아냈다는
전설이 바위처럼 박혀 있습니다.
흰 바위의 전설
그 너머 백리(백신리)에는
'희여골'이 있습니다. 마을 뒷산의
바위가 희고 맑은 물이 흘러내려
'흰물내기'라고도 불렸던 곳입니다.
옛 선조들은 뒷산의 흰 바위가 마치
백호(白虎) 두 마리가
웅크린 모습 같다고 했습니다.
호랑이가 많았던 소백산 자락,
그 두려움마저도 하얀 바위의 전설로
바꾸어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삼았던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그 이름 속에 녹아 있습니다.
땅의 생김새를 닮은 이름들
소의 귀를 닮았다는 '우이실',
두 냇물 사이에서 빨래하기 좋았던
'속계'도 잊을 수 없는 이름들입니다.
금계리 뒷산이 소의 발을 닮아
'쇠바리'라 불렸던 마을,
긴 배처럼 생겼다 하여 '장생이'라
불리던 마을들은 억지로 꾸미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우리말이라
더 살갑게 다가옵니다.
정감록이 일러준 십승지의 땅,
금계포란(金鷄抱卵)의 명당을 찾아
몰려든 사람들은 닭이 알을 품은 듯한
'부계밭'과 '임실',
그리고 '갓발'과 '수레바위', ‘
무릉터'에 삶의 터전을 닦았습니다.
그 땅에 '금계바위'가
마을을 지키고 있었고,
용이 하늘로 날아올랐다는
'용천'의 전설도 흐르고 있었습니다.
구름 위를 걷는 마을
그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이름은
동부동의 '구름밭'이 아닐까 합니다.
마을의 허한 기운을 막기 위해 심은
솔숲에 학들이 구름 떼처럼 날아와
집을 지었다지요. 소나무 숲이
비단 병풍처럼 둘러진 '솔경지'
숲을 지나 구름밭을 거닐면,
마치 신선이 노니는 무릉도원에
들어선 듯했습니다.
성터와 장터의 흔적
남원천과 금계천이 만나는 곳,
옛 풍기성(豊基城) 동쪽에는
흙으로 쌓은 옛 성터가 있어
'토성'이라 불렸고, 그 앞에서
바라보던 우리 소풍 가던
청계사도 아른거립니다.
서부동에는 풍기역 뒤편
참나무 숲이 울창했던
'참남배기'가 있었고,
수철리 깊은 골짜기에는
화초가 무성하여
'시맥골'이라 불리는 곳이 있었습니다.
산법리 노인봉 아래 옹기종기 모인
'엉골'의 아늑함도 눈에 선합니다.
읍내 장터의 시끌벅적함이
서린 '싸전꺼리', '소전거리',
'나무전거리'를 지나, 성 안쪽이라
'성내', 성의 동쪽이라 '동부'라 불리던
그 길목마다 숱한 이야기들이
'비사거리'의 비석처럼 서 있습니다.
세월을 견딘 길
세월은 흘러 창락역에서
말을 갈아타던 길손들은 사라지고,
고려 태조 왕건이 싸웠던 등항과
마산의 함성도 희미해졌습니다.
하지만 '죽령' 고갯마루를 지키던
장승은 여전히 눈을 부릅뜨고 있고,
옛 선비들이 책을 읽던 '소수서원' 앞
죽계천 물소리는 변함없이 흐릅니다.
신라의 죽죽(竹竹) 장군이
길을 열었다는 죽령 옛길을 넘으며,
나는 다시 확인합니다.
풍기는 단순한 행정 구역이 아니라,
억센 바람과 비옥한 땅이 빚어낸
생명의 터전임을.
달밭골의 달빛과 희여골의 흰 바위,
곰실의 전설, 그리고 장생이와
구름밭의 꿈이 살아 숨 쉬는 풍기는
영원히 가슴 속에 남아 있을 것입니다.
3. 3·8일 풍기 장날,
살아있는 목소리들
이런 아름다운 이름들을 부르며
살아가던 사람들의 목소리가 가장
생생하게 살아나는 곳은 3·8일
풍기 장날이었습니다.
바람 타고 장마당을 돌아다니던
투박하고 억센 사투리가
귓가에 스칩니다.
"아이고 희여골 아지매 아이껴!
오랜마이씨더 장에 나오션니껴?
어르신들 마카다 별일 업지요?
그카고 곰실 아지매는
무릅꼬베이(무릎) 쑤서가지고
침 마즈러(맞으러) 댕기디만
우에 게안은동 몰씨더.
참 지난해 서울 시집간
이쁜 딸래미는 얼라(아이) 난니껴?“
어물전 앞에서는
우금지안동 아지매의 푸념과
원망이 하늘을 찌릅니다.
"지난 장날 나 한테 댕겨들던
어그빠리씬 그 여편네는
우에 오늘 안보이니더
베라처먹을X 그래도 얌통머리는
있는가 보니더, 장마당에
꼬라지 안 보이는 걸 보이께네
그냥 오늘 만나면 기싸데기를
애베당 종치드시
후래 갈게 줄라고 핸는데.....“
고추전거리에서는
세파에 시달린 뒤창락 이씨 아저씨
목청이 장마당을 뒤집어 놓습니다.
"살다살다 별꼬라지 다 보고 사니더.
사람 맴이 마카 다르고
희얀얄라꿍(희한할 따름)해요.
내가 얼매나 진심으로 애끼주고(아껴주고)
도와주고 좋아 핸는데,
고마 고무신 꺼구리 신고
별 오두방정을 다 떨고 댕기니더.
우에든동 소백산 바람이 씨게 불면
마카다 조심해야 되니더.
세상에 믿을 게 한 개도 업어요...“
장날의 이런 투박한 대화들 속에도
결국 사람 사는 이야기가
담겨 있었습니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때로는
섭섭함을 토로하고, 세상살이의
고단함을 나누는 그 모습이
지금은 보기 힘든 고향 사람들의
진짜 모습이였습니다,
4. 바람은 지금도 불고
해가 기웃기웃 죽령재를 넘어가며
비추는 노을의 아름다움과 소백산의
그 세찬 바람이, 고향의
그 투박한 언어들을 순화시키며
힘들던 내 등을
토닥여주는 것만 같습니다.
오늘따라 소백산 바람 소리에
실려 오는 고향의 흙내음,
그 오래된 이름들에 새겨진 추억이
툭툭 튀어나와 마음을 아리게 합니다.
세월이 흘러 고향의 풍경도 변하고,
그 구수한 순우리말 지명을 쓰는 이들도,
그 깊은 의미를 이해하는 이들도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억합니다. 그리고 기록합니다.
욕심과 시기로 아픔도 많이 준
고향의 바람이지만, 그 바람은
언제나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려 용기를 줍니다.
그 바람은 지금도
소백산 자락을 타고 불고 있겠지요.
십자거리, 오거리를 바쁘게 오가며
바람을 피하려 옷깃을 여미는
모습들이 보입니다.
2026.1.12.
시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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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밭#토성#죽령#소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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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이야기/ 2.우리 유년의 뜰, 그 정겨운 마실 이름
신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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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1.13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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