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창한 늦가을 날씨, 금방 겨울될 듯이 차가운 바람이 추위까지 몰고 오더니 오늘은 그런 기운까지는 좀 이른 지 한풀 팍 꺾였습니다. 바닷물에 들어가도 되지않을까 제 스스로 유혹까지 느낄 정도로 햇살 제법 내리쬐는 날입니다.
입병때문에 여전히 입술을 잔뜩 내밀고 다니고 있는 완이. 침도 제대로 못 삼키고 뚝뚝 흘리기까지 합니다. 입병은 입병! 보충제 며칠 제대로 먹였으니 이제 하루 이틀 더 고생하면 될 듯 합니다. 쭉 튀어나온 입술이 하도 귀여워서 사진까지 남겨보았습니다.
이번 일주일 귀가는 뭔일이 있었는지 촉각방어 끝판에다, 다 잡았다 여겼던 옷 훌떡훌떡 벗어제끼는 행동도 원래로 돌아가 버렸고, 나가려고 차에 태우자 바로 양말 바지 벗어버리고, 자꾸 단 것에 집착하고. 안되겠다 싶어 어찌나 심하게 군기를 다시 잡았는지 정신이 버뜩드는지 녀석 급격히 이런 행동을 덜 하긴 합니다.
오늘의 코스는 성산일출봉과 섭지코지 사이 너른 바다 중간에 있는 광치기해변에서 섭지코지 쪽으로 노선을 정해보았습니다. 지난 번에 광치기해변에서 성산 일출봉 쪽으로 이미 했었기에 반대편으로 해보았는데, 탁월한 선택! 제주도 구석구석의 노선을 환하게 알아간다는 것은 영광이자 큰 기쁨입니다.
밀물 때라 누룩빌레가 다 잠겨있기는 하지만 산책시간이 길어지니 조금씩 빌레가 모습을 드러내긴 하는데 다음에는 썰물 때 꼭 제대로 봐야되겠습니다. 광치기해변에서 섭지코지 뒷편 신양리해변 아쿠아플레닛 쪽으로 가는 길은 세 갈래 노선이 있어 더 매력적입니다.
바닷가 모래길을 걸어서 가는 코스. 이 코스는 요즘 유행하는 맨발걷기를 하는 사람들이 좋아하고 그걸 실천하는 몇몇 사람들이 보입니다. 다음, 해변 모래를 따라 놓여진 낮은 방파제 따라걷기. 우리는 갈 때와 돌아올 때 마지막에 이 코스를 이용했습니다.
세번째는 바다와 나란히 펼쳐진 너른 둔덕 쪽으로 길을 잡고 편안한 등산하듯 걷기. 제법 오르락내리락으로 되어있고 퇴색해가는 잡초들 더미의 가을풍경과 바닷풍경 모두를 누릴 수 있으니 운동과 경치감상에 최고!
돌아오는 길에는 올 때에 비해 더이상 견디기 어려운 바닷물에의 유혹때문에 자석에 들러붙는 철처럼 완이가 틈만 나면 바닷가로 달려가니 그것 말리느라 힘이 두배나 듭니다. 들여보낼까 유혹을 느낄만한 날씨이긴 하지만 언젠가는 끊어야 하니 이 참에 정리를 하는 게 낫다싶어 완이에게 끝까지 기회를 주지 않았습니다.
돌아오는 길, 빨리 각도를 꺾어버리는 햇빛이 우리의 그림자를 모래 위에 잘 그려줍니다. 너무 뒤처져서 오는 태균이 때문에 두번째 그림자는 앉아서 태균이를 기다리고 있는 형상입니다.
빨리 좋아진 자리로 돌려보내기 위해 오늘 완이에게 다소 강하게 했지만 그 덕인지 녀석, 그냥 바닥에 막 버려대던 과자 사탕 껍데기도 내 손에 쥐어주고... 글쎄 아침에는 제 손을 잡아끌더니 자기가 꺼내놓은 요쿠르트 앞으로 데려가서는 먹겠다고 허락을 구하는겁니다. 좋아하는 요쿠르트라, 이전의 행동으로 보면 그냥 보이는대로 마구 꺼내서 그냥 마셔대는 게 완이의 법칙이었는데... 저도 놀랄 수 밖에 없는 행동이었습니다.
약하지만 생각이란 걸 했다는 것이 너무 대견하긴 하지요. 마구 제멋대로 하지 않아도 결국 다 먹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 될 수도 있고, 이런 허락절차를 밟고 차분히 하나씩 먹으니 칭찬받고 손해될 게 전혀 없다는 것에 대한 깨달음일 수도 있고...
뭐가 되었던 훌륭한 완이의 변화였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입병때문에 과일먹기도 힘들어하는듯 해서 단 젤리 좀 많이 주었지요. 좀 좋은 거 먹이려고 파바에서 캐릭터모양 수제젤리를 사서주니 완전 거부. 이걸 젤리라고 전혀 생각을 못하니 답답했지만 하는 수 없었죠.
가는 가을이 너무 아까와서 성산일출봉 주차장에서 인라인도 좀 타고. 완이가 다시 나아진 상태를 되찾기 위해서는 하는 수 없습니다. 계속 단련시키는 수 밖에...
집으로 돌아오는 길, 얼마남지 않은 가을 풍경이 아쉽고 아쉬워서 사진에라도 담아봅니다. 태균이가 남겨준 엄마사진에도 가을이 깊습니다.
집에 오니 문 앞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귤 한박스! 이런저런 인연으로 제주도 지인이 된 분이 서로 도움이 되는 부분들이 있다보니 마음을 주고받을 일이 있었는데... 그 분이 하고있는 감귤농장에서 수확한 것이라고 직접 기르고 딴 것들을 이렇게 놔두고 갔네요. 복도 많아라! 과분하게 주어지는 복들에 늘 감사드리고 다시 되돌려 드릴 일이 있기를 바라게 됩니다! 잘 먹을께요!
첫댓글 사진들이 한편의 영화같습니다.
완이의 입병과 퇴행이 정말 궁금합니다. 일주일이 정말 긴 시간이군요.
학교에 입학하고 그 후에 퇴행이 오면 우짜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아무쪼록 건강해지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