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란자들을 옹호하고 근초고왕에게 대적하겠다는 부여화,왕후자격 상실하다
반역을 꾀한 자기 오빠들을 살려 달라는 마음이야 인간적으로 이해가 갑니다만,
부여화(김지수 역)는 백제1왕후입니다. 왕후는 개인의 사사로운 감정보다 왕의 마음처럼
국가를 우선하고 공명정대함을 잊지 말아야 할 자리입니다.
참수당한 부여민은 근초고왕 입장에서는 처남이 됩니다.
세상에 누가 처남을 죽이고 싶겠습니까?
그 마음은 부여화나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국가를 운영하는 왕이며 왕후입니다.
따라서 국가의 질서를 유지하려면 반역을 꾀한 자들은
가족이든 친척이든 친구이든지간에 국법에 따라 처리되야
국가의 법이 바로 설 수 있으며, 백성들이 법을 지킬 수 있고
왕과 왕후가 법을 지키라고 요구할 수 있는 정당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부여화는 왕의 심정은 생각하지 않고 왕을 물고 늘어지면서
오빠들을 살려 달라고 졸라 댑니다. 차라리 슬퍼하며 침묵을 지켰어야 했습니다.
부여화는 왕후를 버리더라도 끝내 근초고왕에 대적할 결심을 했습니다.
이미 왕후의 자격을 상실한 것입니다. 그러나 부여화가 낳은 아들은
근초고왕의 아들이기 때문에 왕이 될 수 있는 자격을 부여 받았습니다.
근구수왕 "왕 2년에 외삼촌 진고도를 내신좌평으로 정사를 맡겼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근구수왕의 어머니는 진고도의 여동생이거나 누나가 되는 진씨라는 의미가 됩니다
[삼국사기]에는 이미 근초고왕의 왕후 진씨의 아들이 근구수왕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부여화가 낳은 아들은 이미 근구수왕이 될
자격을 상실한 것입니다. [삼국사기]기록에 맞추려면 부여화가 왕후자리를
지키면서 진씨의 양녀가 되는 것인데, 이미 왕후인 이상 그러기는 늦었습니다.
부여화가 왕후에서 폐위된다면 이미 부여화의 아들이 왕이 될 수 있는 각본은
단단이가 데리가 간 부여화의 아들이 진홍란에 의해 양아들로 길러진 것 밖에 없습니다.
이런 각본이 전제되지 않고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부여화의 아들을 왕으로 세운다면
역사적 진실을 기록하고 있는 사서내용을 부정하는 행위로써 작가는 역사날조를 하는 것입니다.
[삼국사기]기록대로라면 위홍란이 진씨의 양녀가 되는 일도 없이
역사적으로 진고도의 여동생이거나 누나되는 진씨가 근초고왕의 왕후가 되었다는 의미가 되며,
현재 사극내용과는 달리 근초고왕과 진씨 가문은 크게 불협화음이 없었다 할 것입니다.
부여화나 위홍란은 만들어진 인물들이라고 해야 맞을 것입니다.
[자료]KBS사극 근초고왕의 문제점
■ 원작 문제에 대하여
우선 드라마에서 다루는 시기는 근초고왕의 일생인데, 원작인 『대륙의 한』에서는 근초고왕의 재위 후반부에서 시작해 아신왕 재위 초반부까지가 시대적 배경이 되므로 서로 합치되지 않는다. 굳이 따지자면 원작 자체가 근초고왕이라는 주제와 맞지 않는 것이다! (더불어 원작에서 요서를 경략하는 주인공은 계왕의 아들인 '부여광'이다.)
또한 『대륙의 한』에서는 백제의 요서진출이 비수대전을 전후해 격변을 거듭하던 중원의 시대상과 맞물리면서 교묘하게 이루어진 중국 거주 백제인의 자치 세력 정도로 묘사되는데, 드라마는 원작과는 시대 자체가 다르니만치 중원의 사정과 전혀 합치되지 않을 뿐더러 근초고왕이 직접 건너가 요서를 정복한다.
그리고 바로 그 근초고왕이 경략하는 요서의 위치 자체도 유사역사학의 난하요수설에 따라 지금의 하북 지방 및 산동반도에 위치한 것으로 나오며, 심지어 백제군이 지금의 중국 내륙 석가장에 주둔한 것으로 자막이 나오기까지 한다.
이문열 씨는 정작 드라마를 보고 이러한 사실에 개탄하여 가로되 "그러나 각색 과정에서 … 원작이 심하게 전용, 개작되어 그 모습이 심하게 변형, 훼손된 점은 실로 유감이다. 마땅히 계약을 파기하고 책임을 물어야 하나 … 공감대를 이끌어 낼 수 있으리라는 기대로 방송기획을 진행시키고"라 언급한 상황에서 더 이상 드라마의 원작을 『대륙의 한』이라 명기하는 것은 가히 시청자를 우롱하는 행위가 아닌가 생각된다.
■ 백제의 요서경략 문제에 대하여
백제의 요서경략을 증거한다고 하는 중국의 사서에는 '고구려가 요동을 경략하여 차지하자, 백제가 요서를 경략하여 차지하고'라고 서술되어 있다. 사실 기록 자체의 진위에도 논란이 많거니와, 아무리 이러한 기록을 액면 그대로 신빙한다고 해도 백제의 요서경략이 실행된 시점은 고구려가 요동을 차지한 385년 또는 488년 이후인 것이다. 그런데 근초고왕은 375년에 이미 죽었다. (백제의 요서경략을 긍정하시는 이도학 교수님 또한 여기에는 동의하셨다.)
더불어 제작진은 요서경략의 또 다른 증거로 '백제도래지왕'이라는 문구가 중국 사서에 있다고 했는데, 실제로는 원나라 때 편찬된 사료에 산동의 동래군 서남 25리 고자성에 백지래왕(百支萊王)의 사당이 있다는 기록이 확대 부회된 것이다.
역시 사이비 역사학의 주장에 따라 백제가 경략하는 요서가 요서가 아니고 산동이다. (심지어 석가장) 신채호는 『조선상고사』에서 이러한 모습을 가지고 '도깨비 땅 떠서 옮기듯'이라고 하였거니와, 이러한 주장의 근거가 된 난하요수설은 학계에서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비주류 학설이므로 공영방송인 KBS에서 다룰 만한 내용이 아니다.
■ 등장인물의 가공성에 대하여
드라마 초반부터 확연하게 드러나고 있던 문제로, 정작 있어야 할 인물이 없고 없어야 할 인물이 있다는 점이 대강의 요체라 하겠다.
근래 복구검이 목라근자로, 두고가 막고해로, 아지카이가 아직기로 개명하면서 이러한 부분에 대하여 보강 조치가 취해졌으나 그럼에도 여전히 문제가 있는 것이, 희대의 외교관이었던 구저, 미주류, 막고와 더불어 사백, 개로, 사사노궤는 아직까지 묻혀있는 상태이면서 아직기는 일본어로 '아지키시'로 뒤의 '키시'는 존칭이고 앞의 '아지'는 전형적인 고대 한국 이름이라는 점을 무시하고 있다. (김춘추의 아내가 된 문희의 어릴 적 이름이 바로 '아지'이다.)
더불어 사씨에 대해 일본서기에 사백, 사사노궤, 사지비궤가 잇달아 등장하여 그 계보를 명백히 확인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무시하고 사충선-사어달(사기)로 이어지는 족보를 위작했다. 더불어 이 사어달이 근초고왕에 의해 사기로 이름을 하사받는데, 이 사기가 치양 전투에서 첩자로 활약한 그 사기라면 커다란 문제가 된다. 치양 전투의 사기는 斯紀이고 백제 귀족 대성인 사씨는 沙이니, 글자 자체가 다르다!
마지막으로 현재 가장 큰 문제로 떠올라 있는 것은, 홈페이지의 예고편 안내 서술에서 부여화의 아들의 이름이 '구수'로 명기되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근초고왕의 뒤를 이어 즉위하는 근구수왕은 그 장인 또는 외숙이 진씨인 진고도라고 삼국사기에 명시되어 있으며, 그 이전까지 위홍란이 진씨 가문의 양녀로 들어가고 태중의 아이를 진고도의 딸과 미리 혼약을 맺어놓았던 점으로 미루어 바로 이 위홍란의 아들이 근구수왕으로 진행되어야 실제 역사와도 무리 없이 진행된다.
사실 삼국사기에 따르면 근초고왕은 비류왕의 '제2자'라 했는데도 이 드라마에서 4남으로 나온 것부터가 왜곡이긴 한데, 여기에 근구수왕의 문제까지 겹치게 되면 지금까지 근초고왕을 시종했던 상당수 세력들을 한꺼번에 쓸어버리고 지금까지의 극 전개까지도 뒤집어버리겠다는 의도로 비친다는 점이다.
■ 업적의 위조에 대하여
대세론적 서술을 통해 근초고왕이 졸지에 요서경략의 주인공으로 부각당한 것은 그 근원을 따지자면 대체로 김상기 씨의 「백제의 요서경략에 대하여」에 등장했던 억측에 근거한 것이며, (본문에서 스스로 억측이라는 사실을 시인하고 있다) 전술한 것처럼 오늘날에는 이도학 교수를 비롯한 여러 역사학자에 의해 부정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고등학교 과정 교과서에도 나오고 있다.
36화에서는 근초고왕이 즉위하면서 동시에 6좌평을 설치하는 것으로 묘사되었는데, 이는 삼국사기에 명백히 고이왕 27년의 사건으로 서술되어 있으며 그 각 좌평의 이름까지 상세히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명백히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아무리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에 의거하고 있다고 해도 이는 교과서적 서술의 틀조차 벗어난 것으로 가히 공영방송의 본분으로서는 지나친 일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