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코와 함께 떠나는 복음 여행]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진 것을(마르 12,44)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지 사흘째 되는 날, 예루살렘 성전으로 나아가신 예수님 앞에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 그리고 원로들이 다가와 말합니다.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오? 또 누가 당신에게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소?”(마르 11,28)라고 따집니다. 아마도 전날 성전에서 장사하던 이들과 환전하는 이들의 자리를 둘러엎으셨던 사건을 빌미로 예수님을 고발할 근거를 찾고자 추궁하는 것 같습니다.(마르 11,15-19 참조) 예수님께서는 요한이 세례를 베푼 것은 누구의 권한이냐고 되물으십니다. 그들은 요한을 참 예언자로 여기던 군중들이 두려워 제대로 답변을 내놓지 못하였고, 예수님께서도 그들에게 굳이 자신의 권한이 어디에서 오는지 말할 필요가 없음을 피력하십니다.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포도밭 소작인의 비유’(마르 12,1-9)를 통해 당시 종교 지도자들은 자신들이 하느님의 포도밭에서 일하는 소작인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채, 마치 그 포도밭의 주인인 것처럼 행세하고 있음을 고발하십니다. 예수님의 비유가 무엇을 뜻하는지 잘 알고 있던 그들은 예수님을 붙잡으려 했지만, 사람들의 시선이 무서워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려 황제에게 세금을 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로 시비를 걸어옵니다. 이러한 그들의 위선을 간파하신 예수님께서는 데나리온에 그려진 초상에 빗대어 카이사르의 것, 곧 황제에게 바치는 것과 하느님의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것임을 분명하게 가르치십니다.
예수님께 이번에는 사두가이파 사람들이 찾아와 부활에 관한 논쟁을 벌입니다. 이때도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잘못된 생각을 질책하시며 부활의 참된 의미를 설명해 주십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반대하는 모든 이들을 물리치지 않으시고, 잘못된 그들의 생각을 바로잡기 위해 갖은 애를 쓰십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요? 잠시 휴식을 취하고 계신 예수님의 눈에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한 여인의 모습이 들어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주고받는 왁자지껄한 소리 때문에 정신이 없었을 법한데, 예수님은 가난한 과부 한 사람이 렙톤 두 닢, 곧 콰드란스 한 닢을 헌금함에 넣고 있는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십니다. 당시 1콰드란스가 하루 품삯인 1데나리온의 1/64 정도의 가치를 지니고 있던 점을 생각할 때, 과부는 정말 작은 액수를 봉헌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가까이 부르시어 말씀하십니다. 그 여인이 봉헌한 콰드란스 한 닢이 부자들이 봉헌한 많은 돈보다 훨씬 큰 금액이었다고. 겉으로 보기에, 부자들이 낸 것이 당연히 더 많지만, 예수님께서는 겉모습이 아닌 봉헌하는 이의 내면을 들여다보십니다. 부유한 가운데 얼마를 하느님께 봉헌한 것이 아니라, 비록 콰드란스 한 닢이지만 자신이 가진 전부를 내놓았기에 그녀의 봉헌이 더욱 값지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분명합니다. 하느님의 계산법은 우리의 계산법과 다르다는 것. 그리고 그분께서 보시는 것은 겉모습이 아니라 진심으로 주님만을 믿고 자신의 모든 것을 봉헌할 줄 아는 우리의 마음가짐인 것을.
[2024년 9월 15일(나해) 연중 제24주일 서울주보 4면, 이영제 요셉 신부(문화홍보국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