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회 하루 전날 택배가 왔다. 전마협에서 공동구매로 139,000원에 판매하는 카본화를 보냈다. 일전에 아들에게 생일선물로 마라톤화를 사달라고 부탁했었다. 요새 나이키 등에서 생산하는 고가의 카본화에 대한 비난여론이 적지 않다. 약간의 기능 차이에 수십만 원을 더 투자할 필요가 있을까? 그 기능에 맞게 내 몸이 스피드를 낼 수 있어야 의미가 있는 것이다. 서브3 할 것도 아니고 그저 즐겁게 달릴 생각이라면 중저가의 카본화가 나에게 딱 맞는 신발이라 할 수 있다.
순천역에서 2.3km 떨어진 순천팔마운동장까지는 새 신발을 테스트할 겸 조깅으로 몸을 풀며 이동했다. 준비한 과일과 음료를 먹으며 환복을 하고 대회 준비를 하는데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짐을 맡기고 스트레칭을 마치자 9시가 다 되었다.
초반에 오버페이스만 하지말자며 달려 나갔다. 8km 지점까지는 5분 30초 전후해서 달렸지만, 10km를 넘어서자 5분 10초대로 끌어올렸다. 하프는 1간 53분 40초에 통과했다. 지금까지 경험을 보면 하프를 넘어서서 어떻게 페이스를 관리하느냐에 따라 기록은 달라진다. 문제는 오른쪽 발바닥의 족저근막염 증상이다. 딱히 발바닥과 발목에 테이핑 한 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지만, 다행히 하프를 지나면서 통증은 잊혔다. 3시간 45분 페이스 그룹이 200미터 전방에서 달리고 있었다. 내 몸 상태로는 3시간 45분 내 완주가 어려운데다 후반으로 갈수록 그들과의 간격은 더 벌어질 것이라 생각했다.
2차 반환점에서 시간을 보니 6분주로 내려앉아도 충분히 4시간 완주는 가능하지만, 일단 1차 목표를 3시간 50분 내 완주로 정했다. 현재의 페이스를 유지만 하면 얼마든지 가능한 상황이었다. 30km 지점에서 스피드가 약간 떨어졌지만 5분 30초대를 벗어나지는 않았다. 5분 40초로 밀려나면 순식간에 6분주로 내려앉는 경향이 있었다. 다행히 3시간 45분 페이스 그룹과의 간격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었다. 37~38km 지점에 이르게 되면 마지막 4~5km 구간이 무척 힘에 부치는데 그런 느낌도 별로 없다. 확실하게 50분 이내 완주가 가능하겠다는 판단을 하고 호흡을 고르며 미끄러지듯이 팔마운동장으로 들어갔다.
3시간 47분 46초! 작년 5월 보성마라톤대회에서 3시간 48분을 찍은 후 40분대 기록으로 복귀한 것은 1년 6개월만이다. 이븐페이스로 주행을 했으니 이번 대회는 페이스관리를 무척 잘 한 셈이다. 최근에 특별히 운동을 더 한 것도 없다. 오히려 달리기는 더 소홀했다. 올해 PB를 달성한 것은 순전히 몸무게가 빠진 것과 아들이 선물한 마라톤화 덕이다. 완주를 하고보니 잊혀졌던 족저근막염이 신호를 보냈다. 그마나 견딜만해서 다행이다. 더 이상 악화하지 않도록 관리를 잘 해야하는 과제도 남겼다.
주최 측에서 제공하는 떡국을 먹고 있을 때, 옆 자리에 앉은 할머니가 젊은 주자와 웃으며 살갑게 정담을 나누고 있었다. 그 노모는 작은 아들 마라톤 대회에 응원 나왔다고 했다. 한 달 전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이 나면서 떡국에 눈물이 떨어졌다. 어머니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졌다. 살아생전 나는 왜 저렇게 하지 못했을까 하는 후회도 밀려왔다. 노모에게 건강하게 오래 사시라며 인사를 건네고 자리를 떴다. 어머니와 그 노모의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여운은 오랫동안 지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