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정하고 사는 사람들
‘나자렛 사람 예수’는 세상의 역사에서는 실패 한 인물로 여겨졌을 것입니다.
세상에 나선지 삼 년 만에 권력자들에게 제거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괘씸해하면서도 내심 두려워하던 이들은 자기들이 승리했다고 안심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실패했습니다.
그들이 지키려던 권력은 허무하게 사라졌고, 그들은 심판받았습니다.
예수님은 성공하셨습니다.
세상의 권력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권력을 뛰어넘는 ‘만왕의 왕’이 되셨습니다.
그분의 가르침과 십자가의 의미를 깨달은 제자들이 그분을 자기 삶의 주인으로, 왕으로 모시며 살았습니다.
그분을 증거하며 목숨 바쳐 순교했고, 이 땅의 하느님 나라를 위해 헌신했습니다.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고 살기로 작정한 사람들에 의해서 진정한 왕이 드러났습니다.
사실 예수님은 남들이 당신을 왕으로 모시기를 원치 않으셨습니다.
군중이 억지로라도 당신을 왕으로 삼으려 할 때, 되레 산으로 피하셨습니다.(요한 6,15 참조)
세상적인 문법의 왕이길 거부하셨습니다.
하지만 진리를 증언하신 당신의 삶을 통해서,
마침내는 십자가의 죽음과 승리를 통해서 참된 임금이 되셨습니다.
“내가 임금이라고 네가 말하고 있다. 나는 진리를 증언하려고 태어났으며, 진리를 증언하려고 세상에 왔다.
진리에 속한 사람은 누구나 내 목소리를 듣는다.” (요한 18,37)
당신은 진리를 증언하는 존재라고 하십니다.
세상의 왕은 힘으로 다스리려고 하지만, 그리스도 왕은 진리로 세상을 다스리십니다.
세상의 왕은 다른 이들이 자기에게 충성할 것을 바라며 자기를 위해 목숨을 바라고 요구하지만,
그리스도 왕은 먼저 사람들을 섬기고, 오히려 사람들을 위해 목숨을 내놓으십니다.
당신 스스로를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마태 20,28)고 하시면서 말입니다.
소위 세상의 권력자들이 이 진리를 조금이라도 깨달았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의 권력을 위해 진리를 외면하는 이들을 보면 한심하고 가련합니다.
그들은 심판을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는 세례를 받을 때 그리스도의 ‘왕직’ 을 받았습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 왕의 모범’을 따르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의 왕직은 한마디로 봉사직입니다.
사랑으로 헌신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자신도 그러셨고, 제자들에게도 그렇게 하라고 가르치십니다.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모든 것을 함께 사랑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함께 사랑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인간의 욕망으로 허물어지는 우리 공동의 집인 지구를 구하는 일입니다.
고통으로 신음하는 세상의 모든 가난한 이들의 손을 잡아주는 일입니다.
정의와 사랑과 평화를 위해 투쟁하는 일입니다.
이 일들이 이미 너무 늦어버린 것은 아닌지 두렵습니다.
우리 천주교 신자들은 집이나 방에 가장 중심이 되는,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 십자고상을 모십니다.
그리고 그 십자고상 뒤에는 성지 주일에 손에 들었던 ‘성가지[聖枝]’를 걸어두곤 합니다.
‘십자가에서 희생하신 겸손하신 주 예수님을 나는 내 삶의 왕으로 모시겠다고 약속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겠다고 다짐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고 살기로 작정한 사람’ 으로, 우리가 살아야 할 삶을 잘 살아갑시다. 아멘.
이재학 안티모 신부 부평1동 본당 주임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 (성서 주간) 주보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