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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5.23(월) 창 39:20~40:4 찬송가 312장 너 하나님께 이끌리어 요셉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
본문요약) 보디발의 아내의 참소로 요셉이 옥에 갇힙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계시므로 간수장은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고 제반 사무를 처리하게 합니다. 그 후에 애굽왕의 술맡은 관원장과 떡굽는 관원장이 요셉이 있는 옥에 갇히자, 요셉은 그들을 섬깁니다. *형통케 하셨더라(39장 20~23절) 요셉은 보디발 부인에게 누명을 써서 억울하게 감옥에 들어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셔서 간수장에게 신임을 받게 하십니다(22절 말씀). 또한 간수장은 요셉이 하는 일마다 형통한 것을 보고 모든 일을 그의 손에 다 맡깁니다. 요셉은 감옥에 들어가서도 간수장을 열심히 섬기는 데, 하나님께서 하는 일마다 형통하게 하십니다. 어저께 청년다니엘 기도회 3일째를 들었는데, 그 강사목사님께서 형통은 세상적으로 업적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그 환경 속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요셉의 형통은 세상적인 기준에서의 형통이 아닙니다. 하나님 보기기에 형통입니다. 결국 요셉을 형통케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내 힘으로는, 내 능력으로는 형통할 수 없습니다. 형통은 내게 주어진 환경이 어떠하더라도 그 속에서 끊임없이 말씀을 묵상하고, 말씀을 깨닫고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나로 형통케 하십니다. [수1:7,8]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환난과 유혹과 두려움과 염려 속에서도 범사에 형통하게 되는 삶은 말씀을 통해 내가 죄인임을 깨닫고 십자가를 붙들고 걸어갈 때 주어집니다. 요셉과 같은 갇힌 환경 속에서도 나는 말씀을 묵상하며 내가 감당해야 할 책임과 역할을 잘 감당하고 있습니까? 성도가 당하는 고통과 괴로움이 크면 클 수록 하나님의 보호하심 역사 더 깊고 세밀한 곳까지 임하십니다. 따라서 성도에게 임하는 모든 일은 합력하여 결국 선을 이루게 됩니다. [롬8:28]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 두 관원장과의 만남(40:1~3절) 요셉이 이처럼 왕실의 죄수를 가두는 감옥에서 성실하게 믿음으로 살아갈 때 애굽왕의 술 맡은 관원장과 떡굽는 관원장이 죄를 지어 그 곳에 들어옵니다. 요셉은 노예의 신분으로서는 결코 만날 수 없는 높은 신분의 두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요셉이 보디발 아내로 인해 누명을 써서 억울하게 투옥된 것이 비극 같아 보이지만, 이 모든 과정에서 역사의 주관자되신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하심을 보게 됩니다. 요셉은 이들의 꿈을 듣고 해석해 줍니다. 요셉은 이들과의 만남을 귀하게 여기고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성실하게 살아갈 때 이것이 계기가 되어 훗날 애굽의 총리까지 오르게 됩니다. 군대용어로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이 있습니다. 힘들다고 계속 문제를 회피하기 보다는 요셉과 같이 갇힌 환경 속에서 원망하지 말고, 현재를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형통한 삶이 이어지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만남은 우연이 없음을 기억하시고 오늘 내가 관심을 가져야 할 사람은 누구인지, 또 내가 섬겨야 할 자는 누구인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4절에 “친위대장이 요셉에게 그들을 수종들게 하매 요셉이 그들을 섬겼더라”라고 합니다. 시위대장 보디발이 등장합니다. 시위대장은 요셉을 옥에 보내었지만, 요셉을 통해서 두 사람을 시중들 수 있도록 합니다. 이는 관원장들의 신분의 중요성을 나타냅니다. 두 사람은 국가의 고위직이 있었던 관계로 저들이 복직될 경우 시위대장에게 정치적 특혜를 베풀수 있었던 것입니다. 어쨋은 보디발의 요셉에 대한 신뢰와 신임은 여전했음을 보게 되고, 이에 따라 요셉도 그들은 섬기게 됩니다. 여기서 ‘섬겼다’는 단어는 ‘솨라트’로 중요한 인물이나 하나님을 최대한의 봉사와 충성으로 섬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여호수아가 충심으로 모세를 섬겼듯이, 엘리사가 진심으로 엘리사를 섬겼듯이, 천사들이 뜻을 받들어 여호와 하나님을 섬길 때 쓰는 단어입니다. 요셉을 두 관원장을 섬기기를 마치 하나님을 섬기듯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충성을 다하여 섬겼음을 보여줍니다. 성도는 누구를 만나든 진심으로 대하고, 또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면서 자기 일을 묵묵히 감당해야 합니다. 성도는 어느 곳에 있든지 주께 하듯 최선을 다해 맡겨주신 업무와 주님 주신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때가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적용의 말씀입니다. 내가 만난 요셉과 같이 갇힌 환경은 무엇입니까? 나는 그 곳에서 답답해하고 억울해 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말씀을 묵상하며 순종하며 나아가고 있습니까? 그 곳에서 주시는 만남이 있습니까? 붙여주시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 만남을 소홀히 여기고 있지는 않습니까? 또한 그 곳에서 맡겨진 일에 소홀히 대충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그 문제를 회피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과 때를 기다리면서 오늘 내가 만나는 사람을 하나님 처럼 섬기고, 내가 해야 할 일을 묵묵히 감당해야 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주님 주위 사람들을 섬기라고 지금의 환경을 허락하셨는데,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 벗어나려고 한 것을 용서해주세요. 어떤 사건에서도 내 죄를 먼저 보고, 현재의 만남을 귀하게 여기게 하옵소서. 지금의 자리에서 인내하면서 주께서 맡겨준 복음증거의 사명, 일어나 빛을 발하라는 사명을 잘 감당하는 데 최선을 다하게 하옵소서. 예수님 거룩하신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