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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1-5
먼저 해결해야 하는 것 / 고신일 목사
<목회기도>
만물을 창조하시고 우리에게 평안을 주신 하나님!
오늘도 죄인 된 우리들의 영의 눈을 뜨게 하셔서
주일 예배의 주인공이 되게 하심 감사 드립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며 허물과 죄를 피할 수 없었음을 고백하오니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우리의 예배를 받아 주시옵소서.
여기 수고하고 무거운, 세상의, 삶의 짐을 가지고 왔습니다.
이길만한 능력을 주시고, 능히 감당케 하여 주시옵소서.
이 자리에 모인 성도 중에 힘들고 지쳐 있는 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기름 값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릅니다.
물가는 오르지만, 우리의 일터는 그로 인하여 더 힘들고 어렵습니다.
그런데도 정치인들은 자기가 당선되면 천국을 만들 것처럼 큰소리 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질리게 만든 정치인들…
우리의 입에서 한숨이 나게 만드는 정치인들로 인해 더 피곤합니다.
신뢰가 가지 않는 대통령, 불안하기 만한 관료들, 미운 마음이 드는 의원들…
하나님 답답한 이 나라를 어찌 하시려는지요!
새롭게 사람을 뽑는다고 하는데 뽑힐만한 사람,
쓸 만한 사람들이 세워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우리의 가정과 일터를 붙들어 주시옵소서.
어려움으로 인해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도록 지켜 주시옵소서.
처처에 난리와 난리, 지진 … 사건 사고 … 많은데 …
군대에, 객지에, 외국에 있는 성도들을 지켜 주시옵소서.
병상에 누운 환자들을 긍휼히 여겨 주시기 원합니다.
오늘 교회에 처음 온 사람들로부터 시작하여 목회자에 이르기까지,
태중의 아이로부터 시작하여 노인에 이르기까지,
하나님 은혜 되는 시간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준비된 말씀에 기름 부어 주시고 연약한 종을 붙들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할렐루야!
복된 주일에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좋은 날에 좋은 일이 많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옆의 분과 "좋은 일이 많기를 빕니다"
교회 나와 신앙생활하는 사람들에게 '6가지 난치병'이 있다고 합니다.
1. 습관성 예배 지각증
다른 사람과의 약속시간은 칼같이 지키면서 하나님과의 약속인 모든 예배에 5분씩 늦게 오는 증세
2. 습관성 찬송 추월증
찬송 중 망상의 나래를 펴고 이곳저곳 헤매는 증세.
3. 습관성 주보 탐닉증
설교가 시작되면 설교에 집중하지 않고 습관적으로 주보를 뒤적이는… 어쩌다 낸 헌금 때문에 명단에서 자기 이름을 찾는 증세.
4. 습관성 안면 철판증
연습 없이 찬양대 가운을 입고 찬양대에 서는 증상.
'내가 찬양대에 선 것만으로도 하나님은 기뻐하실거야.'라고 착각하는 증세.
5. 습관성 제발 저림증 :
설교를 들으면서 "또, 나를 씹는군"하고 생각하는 증상.
6. 만사 삐딱증:
모든 일을 삐딱하게 생각해서 좋은 눈으로 보지 않고 좋은 생각도 하지 않는 증상이라고 합니다.(출처: 대성교회 홈페이지 dsc2000.co.kr)
여러분은 이 중 몇 가지 증상을 가지고 계십니까? 오늘 다 치료되시기 바랍니다.
변화되어 부끄러움 없는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도 성경 높이 들고 우리의 마음을 고백합니다.
저는 예수 믿어 구원받았습니다(요3:16).
저는 예수 믿어 하나님 자녀 되었습니다(요1:12).
저는 예수 믿어 천국 백성 되었습니다(빌3:20).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오늘(시118:24),
하나님 말씀으로 가르침을 받습니다(딤후3:14~17).
눈을 열어 주의 법 안에 있는 놀라운 진리를 보고 깨닫게 하소서(시119:18).
아멘”으로 순종하여(고후1:20)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 되게 하소서(마5:16).
아멘.
고백한 대로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여리고성의 정복
지난 주일에 여리고 성이 무너지는 사건을 보았습니다.
믿고 순종할 때 여리고 성이 무너졌습니다.
여리고 성을 무너뜨릴 때 하나님의 명령은
"제사장 일곱이 일곱 양각 나팔을 잡고 언약궤 앞에서 행하고 이스라엘의 모든 군사가 그 뒤를 따라 엿새 동안 성을 매일 한번씩 돌다가 제 칠일에는 성을 일곱 번 돌고 제사장들은 양각나팔을 길게 불 때에 온 백성이 큰 소리로 외쳐 부르라”(수 6:3~5) 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이것이 성을 무너뜨리는 방법으로는 맞지 않습니다.
이성적이지 않고 합리적이지도 않습니다.
물론 어떤 과학자들이 그것도 타당하다고, 200만명 되는 사람들이 동시에 크게 소리지르면 그런 효과도 있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해석하면 성경을 인본주의로 해석하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방법으로 여리고 성이 무너진 것을 믿습니다.
이제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 여세를 몰아 '아이(Ai)'라는 작은 성을 공격하게 됩니다.
그들은 '아이'성이 작고 군사도 얼마 없었으므로 쉽게 이길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이성의 위치
지도를 보면 요단강 동편에 느보산이 있고, 요단강을 건너면 길갈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길갈 바로 옆에 여리고가 있고 그 여리고성을 돌고 무너뜨린 다음에 서북쪽에 '아이'라는 성이 있습니다.
[아이]성은 여리고의 북서쪽(산악지역)에 위치한 작은 성이었습니다.
여호수아는 아이성에 사람을 보내 정탐하게 했고 임무를 마치고 돌아온 사람의 보고 내용은"그들은 소수니 백성을 다 올라가게 말고 이삼천 명만 올라가서 아이를 치게 하소서. 그들은 소수니 모든 백성을 그리로 보내어 수고롭게 마소서”(수7:3)라고 했습니다.
보고대로라면, 당연히 이길 수밖에 없는 전쟁입니다.
여호수아 8장에 보면 아이성에 사는 사람은 12,000명에 불과하다고 했습니다.(수8:25)
그러니 여자와 어린아이와 노인을 뺀다면 아이성에 싸움터에 나가 싸울 수 있는 군인은 많아야 3,000여명 되었을 것입니다.
최대한 많이 생각해도 4000여명 정도 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정탐군들의 보고를 들은 여호수아는 3천명을 뽑아 아이성을 공격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아이성에 올라간 군사들은 힘 한번 못써보고 …
36명이 죽임을 당하고 … 도망쳐야 했습니다.
이 일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크게 놀라고 떨었습니다.
오늘 본문 5절에는 "마음이 녹아 물같이 된지라"고 표현했습니다.
이 패배는 여호수아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커다란 슬픔과 두려움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6절에 보면 "여호수아가 옷을 찢고 이스라엘 장로들과 함께 여호와의 궤 앞에서
땅에 엎드려 머리에 티끌을 무릅쓰고 저물도록 있다가 … " (수7:6) 했습니다.
여호수아 7장 7~9절을 보면 여호수아가 하나님께 호소하는 모습이 나오는데, 이를 쉬운성경으로 보면
" … 하나님 여호와여, 주님은 우리 백성이 요단 강을 건널 수 있게 하셨습니다.
런데 왜 주님은 우리를 이곳까지 오게 하셔서 아모리 사람에게 죽임을 당하게 하십니까? … 이스라엘은 적에게 패했고 가나안 사람들과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이 일에 관해 들으면 곧 우리를 포위하여 우리 모두를 죽일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주님의 크신 이름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수7:7~9) - 쉬운성경
아이성 정복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성스러운 전쟁이었기 때문에 진다는 것은 생각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아이성 정복에 실패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더 이상 하나님께서 함께 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
패배의 원인
그러던 중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쟁에서 진 이유를 알려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는데 그것이 10절 이후의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의 패배의 원인은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원인으로는 '믿음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여리고 성의 공격은 믿음에서 출발했습니다.
여리고 성이 무너진 것은 전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믿음과 순종 때문이었습니다.
침묵 속에서 아무 소리도 없이 여리고성을 돌라고 했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소리 없는 기도를 드리며 순종한 그 기도의 힘을 통해서 여리고 성이 무너진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여리고 성을 공격할 때에 이스라엘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믿음으로, 순종으로, 침묵하며 …
기도로 시작해서 기도로 끝냈습니다.
그러나 아이성을 공격할 때에는 인간적인 방법을 동원했습니다.
정탐꾼을 보내고 그 정탐의 보고에 따라서 공격방법을 택한 것입니다.
여리고 성의 공격에서 성공한 이스라엘 민족은 그 승리를 하나님의 은혜의 사건으로 생각하기보다는 자신들의 능력으로 된 것으로 착각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자기 마음대로 해 보려고 하면 하나님이 손을 놓으시는 것입니다.
사람이 떠들면 하나님은 침묵하시는 것입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도 무엇을 하든 기도하고 시작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께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인지,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인 지 … ' 를 살펴야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얄팍한 지식과 경험을 내세워 하지 말고 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하나님께 맡기고 나아가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세요.
여리고 성을 공격할 때는 신앙적인 모습으로 출발했습니다. 믿고 맡기고 순종했습니다.
그러나 아이성을 공격할 때는 자신들의 경험과 지혜를 앞세웠습니다.
인간적인 방법을 택했기 때문에 실패했습니다.
이스라엘 패배의 두 번째 원인은 '범죄한 아간' 때문입니다.
여호수아서 7장 1절을 보면 "이스라엘 자손들이 바친 물건을 인하여 범죄하였으니" 라는 말로 시작됩니다.
여호수아 6장의 마지막 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와 함께 하시니 여호수아의 명성이 온 땅에 퍼지니라" (수6:27) 했습니다.
그런데 곧바로 7장 1절에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진노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 이유를 1절에서 찾아 볼 수 있는 데 " … 아간이 바친 물건을 취하였음이라" (수7:1) 고 했습니다.
보통 싸움에서 이기면 승리한 쪽에서 적들이 쓰던 물건들을 취하게 되어 있습니다.
노예도 차지하고, 물건도 차지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여리고 성에서 어떠한 전리품도 취할 수 없다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아간'이라는 사람이 마음에 욕심을 품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불순종의 죄를 지은 것입니다.
여호수아 7장 21절을 보면 아간이 '내가 노략(擄掠)한 물건 중에 시날 산의 아름다운 외투 한 벌과 은 이백 세겔과 오십 세겔 중의 금덩이 하나를 보고 탐내어 취하였나이다.'고 했습니다.
(한 세겔은 무게의 단위로 약 11.42g - 비전성경사전 참조)
유대 랍비들의 전승에 의하면 시날에서 나오는 외투는 자주색이었다고 하는데 이 옷은 엘리야와 같은 예언자나 니느웨 왕과 같은 사람들이 입었던 옷으로 사람의 탐심을 유발할 만한 예술적인 옷이었다고 합니다.
시날은 바벨론으로서 그 당시에도 바벨론 제품은 뛰어난 명성을 누리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바벨론의 고대 명칭으로 현재의 이라크에 해당하는 곳이다 -비전성경사전)
요즘 우리나라로 치면 '앙드레 김'과 같은 사람이 만든 비싸고 멋진 옷으로, 금은보석이 붙어있는 매우 고가의 예술품입니다.
'아간'이 이런 물건을 보고 탐심이 생겼고 몰래 훔쳤습니다.
그리고 그 물건을 자신의 장막 안에 땅을 파고 숨겨 두었습니다.
아간은 '완벽하게 숨겼으니 누가 이 사실을 알겠는가? 완전 범죄다.' 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역사가 아간의 욕심으로 더럽혀 졌습니다.
도둑질하는 전쟁으로, 노략질하는 전쟁이 되어버렸습니다.
야고보서 1장 15절에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면 사망을 낳는다"고 했습니다.
아간이 가진 욕심이 죄가 되었고 그 욕심이 결국 자기도 죽는 결과를 얻게 했습니다.
사탄이 인간을 파탄시킬 때 대수롭지 않은 것부터 노린다고 합니다.
'누구나 하는 것인데 내가 했다고 큰 죄가 될까?'하는 생각입니다.
운전하다 보면 빨강 신호등이 켜지면 서야 합니다.
그런데 빨강 신호등을 무시하고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옆에서 한 두 사람 그렇게 가는데뒤에서 빨리 가라고 깜박이면 그때 여러분들은 어떻게 합니까?
아마 대부분 '다른 사람도 가는데 뭐 ~' 하면서 가지 않나요?
이것이 바로 사탄의 유혹방법입니다.
작은 것인데 매일 하는 것도 아니고 그 정도쯤은 뭐~ 이번 딱 한 번뿐이니까 괜찮겠지 …
이 정도는 보상차원에서 괜찮을 거야 … 라고 생각하는 것 모두가 사탄의 유혹입니다.
이처럼 사탄은 '작은 것'이라고 느껴지는 것을 이용하여 우리를 서서히 넘어뜨리는 것입니다.
(출처: 교회사에서 골라낸 1,882가지 신앙이야기 - 기독교문사)
이스라엘은 아이 성의 일차 공격에서 36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어버렸습니다.
여리고에서 한 사람의 잘못 때문에 아이성에서는 이스라엘 전체가 곤경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결국 아간은 불순종 때문에/감춘 것 때문에…
자신과 가족, 자기 소유의 짐승까지도 아골 골짜기에 묻히게 되었습니다(수7:24~26).
사람이 탐욕에 눈이 어두워지면 판단력을 잃어버리게 되어, 오직 자신의 목적 하나만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자신은 물론 가족 그리고 공동체까지 파괴시키는 욕심을 우리가 버리지 않으면 결국 자신도, 가족도 공동체도 파멸되는 것입니다.
교회 일을 할 때에도 자신의 욕심만 생각하면 죄를 범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교회 일을 할 때, 눈을 크게 뜨고 하나님의 원하심인지 살피면서 교회 전체를 품은 생각을 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 각자 어떤 말을 하든지 / 어떤 일을 하든지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인지, 교회 전체에 미칠 파장을 가져올 것인지 깊이 생각해 보고 말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자신이 손해를 좀 보더라도 자신의 명예는 좀 손상되더라도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교회가 평안하게 되는 길이라면 그 쪽을 택해야 합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은 야망을 버리고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둘 다 '꿈'을 말합니다. 그러나 야망은 자기 욕심이 들어 있는 꿈을 말합니다.
비전은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는 꿈입니다.
내가 이 일을 하므로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이웃에게 유익을 끼치고 내 자신도 기쁜 삶을 살겠다는 마음은 비전입니다.
그런데 내가 이것을 하므로 내가 잘 살아야지 라고 생각하는 자기 만을 위한 욕심은 야망입니다.
같은 꿈이라도 비전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시고 하나님께서 축복하시는 것이지만 야망은 결국 자기의 욕심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까지 피해를 주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는 우리는 비전을 품은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비전의 사람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해야 합니다.(고전10:31)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합니다(골3:17).
하나님의 뜻하심을 먼저 생각하고, 빛 되고 소금 되려고 애쓰고 교회 공동체를 먼저 생각하고 섬기기 위해 낮아지고 결국 손해까지 봅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교회에서 섬기고 봉사하기 때문에 손해 보는 것이 있으십니까? 허전한 것이 있으십니까?
찬양대를 하기 때문에, 교사를 하기 때문에 … 손해본 것이 있으십니까?
허전한 것이 있으십니까? 뭔가 뻥 뚫린 것 같은 느낌이 드십니까?
자신이 허전함을 느낄 수 없는 섬김과 봉사는 자신이 즐기는 것일 뿐입니다.
언젠가 말씀 드렸는데 기억하실 지 모르겠습니다.
요즘 같은 날씨에는 아니지만, 추운 겨울에 오줌을 참았다가 누면 몸이 떨리게 됩니다.
왜 그런지 아시나요? 저는 궁금한 것은 참지 못해서 알아봤습니다.
우리의 몸의 온도는 37도 정도입니다. 목욕탕의 물의 온도는 39도 정도라고 합니다.
꽃탕, 열탕이라고 말하는 물의 온도는 41도 정도라고 합니다.
우리의 몸보다 뜨거운 온도이기 때문에 뜨겁게 느끼는 것입니다.
그러니 따뜻한 물을 배에 담고 있는 것은 난로를 갖고 있는 것과 같은 효과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빼버리면 한기를 느끼기 때문에 몸을 떨어 열을 보충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몸에서 오줌만 내보내도 몸이 떨릴 만큼 허전함을 느껴야 하는데 우리가 섬기고 봉사하는 자리에 있으면서 내 몸에 허전함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온전한 봉사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겉옷만 만져도 자신의 문제가 해결될 줄로 믿은 열두 해 혈루증을 앓던 여인이 예수님 뒤로 와서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니 그 병이 나았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자기 몸에서 능력이 나간 줄 아셨습니다(막5:30).
그래서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한 여인의 병이 치료받기 위해서도 예수님의 몸에서 능력이 빠져나감을 느낄 만큼 허전함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섬기고 봉사하는 일에 아무 희생도 없이, 허전함도 없이… 봉사한다면 그것은 온전한 봉사가 아닙니다.
요즘 정치인들이 우리 마음에 들지 않는 다고 열을 내는 이유가 있습니다.
탐욕과 욕심으로… 국가와 국민보다 자기들의 욕심이나 채우려 하고 정치 철학을 실현시키려 하고, 이념 성취를 위해 애쓰고, 남의 탓이나 하고, 편가르기나 하고, 정죄하는 데 앞장서기 때문에 그들을 싫어하는 것입니다.
정말 백성들을 위하고 자신들이 손해 본 것이 얼마나 있는가 말입니다.
그것이 없다고 느끼기 때문에 우리가 그들에게 화를 내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교회 일을 할 때도 자기의 만족을 위하여 일하면 그것은 탐욕으로 일하는 것이고, 자기 즐거움의 성취를 위해 일하는 것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위해 일하는 자기 희생이 있는 섬김이 되시기 바랍니다.
감춘 것이 무엇인가?
아간이 탐욕과 범죄의 유혹을 물리쳤더라면 아간의 가족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려움을 당할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오히려 아이성의 전쟁에서 승리했을 것이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잊어버렸습니다.
지금 우리는 자기 욕심만 채우고, 자기 자식, 자기 부모, 자기 가족 밖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는 듣지만 몰래, 아무도 모르게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 슬쩍 땅을 파고 감추는 아간처럼, 감추는 것이 많은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감추고 사십니까? 어떤 분은 때로 믿음을 감춥니다.
자기 욕심을 위해서, 자기 야망 성취를 위해서, 믿음을 감춥니다.
어떤 분은 천국을 향한 소망을 감춥니다. 어떤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사람인 것을 감춥니다.
어떤 분은 자신이 하나님의 사람인 것을 드러내면 손해 날 것이 있을 것 같아서 하나님의 사람임을 감춥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날을 감춥니다. 주일 성수를 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것을 감춥니다.
성경에 하나님께서 '이것은 내 것이라'고 구별해 놓으신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죄송합니다.' 하고 하나님의 것을 감춥니다.
처음엔 떨리지만 자꾸 감추다보면 익숙해집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감추고 사는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그것이 다 불순종이요, 인간의 야망 때문에 감추는 것이 아닙니까?
우리가 예수 믿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려는 신앙인이라면 …
예수 믿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사는 천국백성이라면 …
불순종과 개인의 야망을 먼저 해결해야 합니다.
[믿고 순종] 하는 것이 단지 구호가 되기 때문에 야망이 앞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개인적으로 꿈꾸는 것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자식들이 되기 원하는 것이 무엇이며 어떤 목적입니까?
단지 내가 못했던 것, 내가 이루지 못했던 꿈을 내 자식이 이뤄주기를 바라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것이 여러분의 욕심입니까?
그렇다면 아간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담긴 비전은 없으면 아간처럼 자기 욕심만 담긴 야망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믿고 순종치 않는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침묵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다면 하나님께 구하고, 하나님께 맡기고, 믿고 순종해야 합니다.
불순종과 잘못된 야망을 해결해야 하나님이 일하십니다.
하나님이 일하지 않으신 때는 내 머리의 지식을 동원하고 내 삶의 경험을 내세우고, 내 기술을 동원합니다.
인간적인 방법을 동원합니다. 그럴 때는 하나님께서 역사하지 않으십니다.
어떤 교회에서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가르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 죄를 용서해 주십니다.
그래서 교회에 오면 먼저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자, 하나님 앞에서 할 일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 얘기해 보세요!"
한 아이가 손을 들더니 "네, 하나님 앞에 먼저 해야 할 일은 우선 죄를 짓는 일입니다."
죄를 지어야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이미 죄인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깨끗하게 살려고 해도 세상이 우리를 가만 두지 않습니다.
아침에 아무리 깨끗하게 씻고, 깨끗한 옷을 입어도 저녁에 보면 여기 저기 때가 묻어 있습니다.
아무리 깨끗하려 해도 세상이 더럽기 때문에 옷에 때가 묻는 것처럼 우리가 아무리 깨끗하게 살려 해도 우리는 죄 속에 살기 때문에, 죄와 어울려 살기 때문에…
우리가 의도적으로 죄를 짓지 않아도 우리는 회개하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회개할 때,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순종하려고 결단 할 때…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믿음과 순종은 한 걸음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여러분 가운데 신앙생활 처음 하는 분들, 아직도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분들은 지금 할 수 있는 것부터 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들이 신앙을 위해 내딛는 첫걸음은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에디슨은 인류 역사상 최초로 전구 실험을 해서 성공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그 전구가 얼마나 희미한지 촛불을 밝혀야 볼 수 있었다고 합니다.
라이트형제가 비행기를 처음 만들어 날렸을 때, 그 비행기는 공중에 불과 12초를 머물다가 떨어졌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가 15시간, 20시간, 수많은 사람과 짐을 싣고 하늘을 날아다닙니다.
최초 자동차 실험에서 자동차는 1시간에 2마일을 갔답니다.
1시간에 2마일은 3.2km입니다. (1 mile = 1.6km )
그러니까 마차하고 가면 자동차보다 마차가 먼저 갔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그 당시 마차를 타고 가던 마부들이 차라리 내 마차나 타라고 하며 자동차를 비웃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우습게 생각했던 그 불완전한 자동차가 지금은 얼마나 빠르게 달립니까.
우습게 생각되어도 작은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순종을 결단하고 내가 가진 야망을 비전으로 바꿀 때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따라서 합니다. "하나님은 믿고 순종하는 자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믿고 맡기는 자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일하시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역사 하시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게 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먼저 불순종을 해결해야 합니다.
아간처럼 욕심이 담긴 야망을 버려야 합니다.
믿음의 감춤, 하나님의 사랑 감춤, 소망의 감춤, 하나님의 날을 감춤, 하나님의 것 십일조를 감추고, 내가 믿음의 사람인 것을 감추고, 아닌 척하고 완전 범죄한 것처럼 태연하게 있으면 결국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일터에서, 교회에서 모든 삶의 현장에서 순종하며 살고 하나님의 뜻이 담긴 꿈, 비전의 사람으로 살면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일하십니다.
내 지혜를 앞세우기 전에, 내 경험을 앞세우기 전에, 내가 가진 것 가지고 큰 소리 치기 전에 하나님의 원하심이 무엇인지 먼저 살피고, 내가 가진 욕심을 버릴 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믿고 순종하고, 야망을 비전으로 바꾸어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임을 증거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은혜와 사랑을 감사합니다.
거룩한 주일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귀로만 듣고 그치는 자가 되지 말게 하시고 불순종을 해결하며
욕심이 담긴 야망을 비전으로 바꿔 하나님이 일하시게 하여
하나님께서 함께 계심을 간증하며 살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세상을 우리를 가만히 두지 않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깨끗하게 하려 해도 세상이 우리를 더럽힙니다.
순간 순간 우리의 허물과 죄를 회개하며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믿음의 사람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에도 정성으로 귀한 것을 하나님께 구별하여 드리려고 합니다.
저들의 마음을 받아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