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회고록8막63장 (4부)
코로나의 여파로 경제는 풍지박살이 났다.
사람의 왕래가 없어지고 서로 만나는 기피현상 까지 생기니 서비스산업 전분야에 막대한 타격을 주었다.
식당,노래방,관광.버스.택시.쇼핑몰,극장 ,주점, 백화점등 공공시설에 인파가 찾아들지 않으니 매출부진으로모두 자포자기 상태에 이르러지니 국가경제가 풍전등화와 같았다.
급기야는 정부에서 수십조의 돈을 재해 기금으로 소상공인은 물론 개인들에게 까지 생활 보조금을 지원하여 주는 사상 초유의 사건이 발생 되기도 하였다.
그로 인해 경제시장에는 돈이 도는것 같았으나 이것또한 한강물에 돈더지기 였다.
그때 대호황기를 맞은 직업이 있었다.
외출하기를 꺼리는 소비자가 인터넷으로 쇼핑하고 야식거리나 음식을 배달해 먹는 칩거 형태의 소비가 증가한 것이다.
"퀵배달"과 "택배사업".
두업종이 코로나 시국의 틈새 시장에 생각지도 못한 대호황을 맞게 된것이다.
나는 코로나 시국에 생활에 보탬이 되고져 알바를 알아보던중 "쿠팡 플렉스"을 알게 되여 근무하게 되였다.
처음에 쿠팡에서는 배송 건당2000원이라는 높은 가격으로 쿠팡플렉스를 모집하였다.
선진국의 우버택시 처럼 자가용으로 유상배송을 해주는 시스템이였다.
자체회사의 물건을 배송하는 쿠팡플렉스 시스템은 자가용 영업 행위에 위배되지 않고 합법적으로 수익을. 창출할수 있는 알바였다.
코로나 시국과 더불어 신청자는 캠프에 가득차 쿠팡물류쎈터가 마비되기도 하였다.
나는 그들 틈에 끼여 생계를 유지해 나갔다.
처음에는 알바식으로 근무하게 되였으나 점점 신청자가 줄어들고 (※쿠팡에서는 배송단가를 800원으로 인하함.) 한적해 짐에 따라 나는 묵묵히 쿠팡 배송 일을 하게 되였다.
(※이후 쿠팡에서는 몇년 근무하게 되고 그에 대한 에피소드는 추후 이야기 하겠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