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3년 몰타기사단의 의뢰로 제롤라모 카사르가 설계한 웅장한 규모의 성 요한 대성당은 므디나 의 성 바올 대성당과 함 께 대주교좌 성당이나, 일반 신도를 위한 기도처가 아니라 십자군 기사들이 다함께 기도드리기 위해 모이던 장소였다.
몰타 십자가가 그려져 있는 외관은 투박하나 내부는 색갈이 다른 대리석 바닥과 화려한 금도금 외에 명화와 조각으로 장식하고 있고 천정에는 기사들의 활약상이 그려져 있다. 기대했던 성스러움과 장엄미는 지나치다고 해야 할 정도의 화려한 내장에 빛을 잃었다. 수없이 많은 성당을 방문했지만 이런 호화스러운 장식과 금으로 덧칠을 한 성당은 처음이다.
대성당 안의 8개의 작은 예배당은 몰타기사단을 구성한 8개국의 기사들이 각자의 수호성인을 모시고 따로 예배를 보기 위해 건축된 것으로, 가로와 세로가 약 90cm와 180cm 크기의 405개의 사각 대리석 바닥에는 몰타를 지킨 기사들의 각자 일생에서 중요한 일들이 상감기법으로 새겨져 그들의 한 생을 기억하게 하는 것으로, 지하에는 약 4000여명의 기사들이 영면하고 있고, 12명의 기사단장 묘지가 별도로 있다. 결혼이 금지된 기사들이라 처자도 없으니 호사스런 성당에서 기도하고 사후에 이 성당에 뼈를 묻는 것이 그들에게는 최상의 영광이었던 모양이다.
이층으로 올라가면 내부가 한 눈에 잡힌다. 청빈과 환자 구호를 목적으로 설립된 몰타 기사단이 해적질을 해가며 쌓은 부로 이런 초호화판 성당을 장식한 것을 그리스도가 좋아했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감돌아 우리나라의 대형 교회가 떠오른다.
대성당의 중앙 제단은 대리석과 금속 장식이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성당 우측에 별도로 마련된 큰 기도실에는 이곳으로 도망쳐와 몸을 엎드렸던 시절의 카라바조의 작품 약 50여점 중 그의 서명이 있는 유일한 작품인 ‘세례자 요한의 처형’이 정면 벽에 걸려있고 맞은편에는 아담한 크기의 ‘성 제롬의 저술’이 마주보고 있다.
검은 배경에 그의 사랑을 구하지 못한 살로메가 의붓아비인 헤롯에게 그의 목을 요구하여 요한이 처형당하는 이 대작을 보면 카라바조가 위대한 작가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어, 섬쩍한 분위기의 명화지만 사진을 올린다. 좁은 돌계단을 올라 2층으로 올라 성당 내부 전체를 렌즈에 담고, 성당 문을 나서니 아쉬워 노천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오가는 관광객 구경을 한다, 아직 몰타는 동양인은 드물고 서양인들만 북적인다.
*용량 초과로 카라바조의 명작 사진을 올리지 못해 유감입니다*
지금은 대통령 집무실로 사용되는 몰타기사단장 궁전은 1547년에 건축한 성 요한기사단의 본부로 지금은 기사단 박물관과 대통령 집무실로 사용 중이다. 무기고에는 기사들의 갑옷과 그들이 사용한 무기가 전시되어있는데, 복도에는 8개국 고유의 갑옷을 입은 기사들의 동상이 도열되어 있으며, 내부에는 기사단장들의 초상화가 걸려있다.
16세기에 기사단의 본부로 사용했던 리퍼블릭 스트리트의 국립고고학박물관에는 몰타의 신석기시대부터 BC 8-6세기까지의 페니키아 시대 유물들이 전시되어있다. 영국의 스톤헨지의 거석문화를 앞선다는 제단의 스파이럴 문양은 신비감을 주며, 발레타 인근의 파오라에서 출토된 잠자는 몰타의 여신(Sleeping Lady)는 인형처럼 자그마하지만 근대 작 같은 느낌을 주며, 언제 잠에서 깨어나 아장아장 걸음을 걸으며 미소 지으려는지 궁금하다.
BC 3000경에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50cm 크기의 몰타의 비너스는 미로의 비너스처럼 미끈한 대리석 조각이 아니고 흙으로 빗은 것 같아 보이지만, 예술성이 높아 보이는 것으로 절대로 해외 전시를 하지 않는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