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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송년예배 특강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까
말씀 / 시편 116:1-19
요절 / 시편 116:12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
오늘 말씀은 시인이 하나님께 받은 은혜에 감사하여 그 은혜를 보답하고자하는 내용의 시편입니다. 오늘 시편의 저자는 엄밀히 말하면 불분명하지만 칼빈과 헨리 매튜를 비롯해 상당수 신학자들이 다윗이 쓴 것으로 보기 때문에 저 또한 다윗이 쓴 시로 단정하고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그러면 다윗은 어떤 은혜를 받았을까요? 또 우리는 지난 한 해를 생각해볼 때 주님께 받은 은혜들이 무엇입니까? 이 시간 시편에 나타난 시인의 고백처럼 주님이 지금까지 베풀어주신 은혜들을 기억하고 감사하면서 한 해를 보내고 마무리하는 저희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1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내 음성과 내 간구를 들으시므로 내가 그를 사랑하는도다.” 이 말씀의 히브리어 원문을 직역하면 이렇게 번역할 수 있습니다. “나는 여호와를 사랑합니다. 왜냐하면 그분이 내 음성과 내 간구를 들으셨기 때문입니다.” 이 시편은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고백으로 시작합니다. 시인은 왜 하나님을 사랑합니까? 하나님께서 자신의 음성과 간구를 들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의 음성을 듣는 것을 좋아합니다. 목소리만 들어도 행복합니다. 특히 사랑하는 사람이 간절한 목소리로 도와달라고 부탁할 때 우리는 귀를 기울여 듣고 목숨을 바쳐서라도 그 부탁을 들어주고 도와주고자 합니다. 시인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그렇게 사랑하심을 잘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 사랑에 화답하여 자신도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합니다. “내가 그를 사랑하는도다.”
시인은 구체적으로 어떤 간절한 기도를 하였습니까? 3,4절을 보십시오. “사망의 줄이 나를 두르고 스올의 고통이 내게 이르므로 내가 환난과 슬픔을 만났을 때에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기도하기를 여호와여 주께 구하오니 내 영혼을 건지소서 하였도다.” 여기 ‘사망의 줄이 나를 둘렀다’는 말은 죽음의 고통이 사람을 꽁꽁 묶어 속박하고 있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스올’은 ‘무덤’ 혹은 ‘지옥’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시인은 죽음의 공포에 휩싸여 곧 무덤에 묻힐 것 같은 고통, 영원히 불타는 지옥 불 못에 떨어질 것 같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래서 8절에 보면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습니다. 그의 발은 적들의 공격으로 넘어져서 일어나지를 못했습니다. 시인은 그야말로 사방이 다 막혀 아무런 희망이 보이질 않고 당장이라도 죽을 것만 같은 극도의 환난과 슬픔을 만났습니다.
바로 이런 극심한 고통의 때에 시인은 무엇을 했습니까? 하나님께 자신의 영혼을 건져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시인의 생애에서 언제 이런 일이 있었습니까? 사무엘상 18장에 보면 다윗을 시기한 사울이 다윗을 불러 수금을 타게 해놓고는 날카로운 창을 집어던졌습니다. 본문의 시인 다윗은 하나님이 도와주지 않으셨다면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아 광야로 피신했습니다. 이후 다윗은 13년 동안이나 하이에나 떼처럼 추격해오는 사울 왕의 군대를 피해 도망 다녀야 했습니다. 사울의 추격이 너무나 끈질겨 다른 나라로 피신하기도 했습니다. 이웃나라에서 살아남기 위해 적장 앞에서 침을 질질 흘려가며 미친 사람처럼 연기하기도 했습니다(삼상21장). 그는 날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다녔습니다. 오죽하면 시편 56편 8절에서는 “나의 유리함을 주께서 계수하셨사오니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하였습니다. 다윗의 고통과 방황을 주님이 다 알고 계시고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든지 자신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을 정도라고 말합니다.
사울 왕이 죽고 다윗이 왕이 되어 이스라엘을 통치하던 시기, 다윗은 일생일대의 큰 죄를 지었습니다. 충성스러운 신하였던 우리야의 아내를 간음하고 그 죄를 숨기고자 충신 우리야를 전쟁을 가장해 죽게 하였습니다. 이후 그는 무서운 죄의식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시편32:3,4절에서 다윗은 그 고통을 다음과 같이 고백했습니다. “내가 입을 열지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빠져서 여름 가뭄에 마름 같이 되었나이다.” 무거운 바위가 짓누르는 것처럼 죄의 짐이 다윗의 마음을 누르고 하나님의 심판의 손이 다윗의 목을 졸라왔습니다. 처절한 고통과 극도의 슬픔 속에서 그는 심판에 대한 두려움에 떨며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나단 선지자가 와서 그의 죄를 지적했을 때 그는 많은 눈물로 자신의 죄를 고백하며 하나님께 용서를 구했습니다. 시편 6편 6절에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 했습니다.
내면의 고통뿐만 아니라 죄의 결과와 영향력은 무서웠습니다. 다윗은 밧새바와의 죄의 열매로 얻게 된 아기를 잃게 되었습니다(삼하12장). 뿐만 아니라 그가 저지른 죄의 영향력은 자식들에게 무섭게 번져갔습니다. 다윗에게는 사랑스러운 딸, 다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다말을 이복오빠이자 자신의 아들인 암논이 강간했습니다. 그러자 다말의 친오빠인 압살롬이 암논을 죽여 복수했습니다(삼하13장). 다윗 입장에서는 한 아들은 죽고 다른 아들은 살인자가 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압살롬은 반역을 일으켜 아버지 다윗을 내쫓고 왕의 자리를 차지합니다(삼하15장). 아버지 다윗의 후궁들을 백주대낮에 백성이 보는 성 위에서 간음하였습니다. 다윗은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비참한 피난길을 떠납니다. 사무엘하 15장 30절을 보면 다윗은 이때 머리를 가리고 맨발로 울면서 도망을 갔다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자식에게 반란을 당해 이렇게 예루살렘에서 쫓겨 도망갈 때 얼마나 비참하고 고통스러웠을까요? 또 반란을 제압했을 때 아들 압살롬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다윗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요? 다윗이 겪은 이 기막힌 고통과 아픔과 절망들, 그야말로 오늘 시편의 표현처럼 사망의 줄이 그를 두르고 스올의 고통이 그에게 이르렀습니다.
이처럼 시인 다윗은 그의 인생 속에서 많은 환난과 큰 슬픔을 만났습니다. 그때마다 그는 여호와 하나님께 자신의 영혼을 건져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면 그가 이렇게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10절을 보십시오. “내가 크게 고통을 당하였다고 말할 때에도 나는 믿었도다.” 사람들은 평소에는 어려운 일이 있으면 언제든 도와주겠다고 말하다가도 자신에게 해가 되거나 귀찮으면 외면하거나 무관심합니다. 이런 일을 경험한 사람은 사람들을 하나 같이 믿을 수 없는 존재들로 여기기 쉽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11절에 보면, 사람들은 다 거짓말쟁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다윗이 믿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5,6절을 보십시오.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의로우시며 우리 하나님은 긍휼이 많으시도다. 여호와께서는 순진한 자를 지키시나니 내가 어려울 때에 나를 구원하셨도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려움을 당하여 극심한 고통으로 부르짖을 때 다른 사람들은 다 외면하더라도 하나님만은 나와 함께 하시며 나를 긍휼히 여겨주십니다. 만사 제쳐놓고 손발 벗고 나서서, 하나님만을 믿고 의지하는 순진한 우리를 구원해 주십니다. 우리는 순진하다고 하면 좋은 의미인데 요즘은 좀 어리석어서 사기 잘 당할 것 같은 사람을 지칭하는데 사용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기 순진하다는 말은 단순한 마음을 가진 사람을 말합니다. 하나님 외에는 자신이나 세상의 것들을 의지하지 않고 전적으로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순진한 다윗은 큰 고통을 당할 때에도 이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나는 믿었도다.” 그래서 이 하나님께 자신의 영혼을 건져달라고 간구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또한 불의한 자들을 심판하시고 의인을 구원해주시는 의로우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도망 다니던 다윗을, 이방 왕 앞에서 침을 질질 흘리며 두려워 떨던 다윗을, 주변의 모든 대적들과 악인들을 두려워 떨게 하는 이스라엘의 강력한 왕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의 끔찍한 죄를 용서해주시고 그의 영혼을 사냥꾼의 올무에서 벗어난 새처럼 가볍게 해주셨습니다(시124:7). 압살롬의 책사였던 아히도벨의 계략을 파하여서 반란도 평정하게 해주셨습니다(삼하15:31). 이처럼 하나님은 은혜로우시고 의로우시고 긍휼이 많으신 분이십니다. 이런 하나님이 다윗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고 그의 영혼을 사망에서 건져주셨습니다. 8절에 보면 날마다 눈물 마를 날이 없던 그를 더 이상 울지 않게 하셨습니다. 도망 다니며 수없이 넘어지던 그의 발을 이제는 일으켜 세워주셨습니다. 더 이상은 도망 다니다 넘어지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아예 도망 다니지 않게 해주셨습니다. 세상에 이런 후한 대접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7절을 보십시오. “내 영혼아, 네 평안함으로 돌아갈지어다. 여호와께서 너를 후대하심이로다.” 하나님은 참으로 은혜로우신 분이십니다.
다윗은 이제 하늘의 평안함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심령에 평안이 임했습니다. 9절을 보십시오. 이제 죽음의 공포로 두려워 떨며 유리방황하던 사망의 땅에서 건짐을 받아 생명의 땅으로 옮겨졌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앞으로는 생명을 건져주신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생명의 땅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순종하는 삶을 살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환난과 슬픔과 극심한 고통에서 건짐 받고 생명력으로 충만한 다윗의 인생은 참으로 감동적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이 모든 은혜를 생각할 때 감사의 마음이 충만하여졌습니다.
12절을 보십시오.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 그러면 시인은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어떻게 하고자 합니까?
첫째, 자신을 구원해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13절을 보십시오. “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여기 ‘잔’은 ‘은혜’ 또는 ‘감격’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것입니다. 내게 베푸신 구원의 은혜에 감격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을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썩어질 인간들이나 피조물을 찬양하고 경배할 것이 아니라 천지를 창조하시고 만유를 다스리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그분의 지혜와 권능을 찬양해야 합니다. 죄로 고통할 인생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의 고난에 내어주시고 우리 인생들을 괴롭히는 죽음도 정복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그분의 위대하심을 찬양해야 합니다.
둘째, 자신의 서원을 하나님께 갚고자 합니다. 14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나는 나의 서원을 여호와께 갚으리로다.” 그는 하나님을 믿는 모든 백성 앞에서 공개적으로 자신이 과거 하나님께 한 서원을 갚겠다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이 극심한 고통에서 구원해주시면 하나님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을 다하겠다고 진실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서원을 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서원을 갚는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본문의 18,19절에 보면 시인은 서원을 갚겠다는 말을 거듭 반복합니다. 어찌하든 서원한 것들을 여호와 하나님께 갚아드리고 싶었습니다. 모든 백성이 보는 앞에서, 특히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성전 뜰에서, 예루살렘 한 복판에서, 하나님 앞에서 그가 한 서원들을 갚겠다고 합니다. 이것들은 고난과 역경 속에서 건져주신 은혜, 죄의 고통 가운데서 구원해 주신 은혜에 기초한 시인의 고백입니다.
셋째, 감사제를 드리고자 합니다. 17절을 보십시오. “내가 주께 감사제를 드리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로다.” 시인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여 보답하고자 감사제를 드리며 하나님을 찬양하고자 합니다. 시인은 먼저 왜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혼을 구원해주셨는지 발견하고 고백합니다. 15절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경건한 자들의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여기, ‘귀중한’이라는 말은 ‘가치가 높은’, ‘영향력 있고 무게가 많이 나가는’이라는 의미입니다. 시인의 죽음이 일개 동물이나 악인의 죽음처럼 무가치한 것이라면 그는 벌써 죽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경건한 자들의 죽음을 아주 귀하게 여기십니다. 그래서 우리 믿는 자들의 생명이 사악한 자들의 발에 무참히 짓밟혀 아무런 영광이 안 되게 그렇게 끝나도록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믿음의 사람들의 생명을 지키시고 죽음도 영광스럽게 하시고 많은 사람들에게 은혜와 감동을 주는 방식으로 맞이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또한 시인은 왜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혼을 구원해주셨는지 생각할 때 하나님의 택해 주신 은혜를 생각하였습니다. 16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여, 나는 진실로 주의 종이요 주의 여종의 아들 곧 주의 종이라. 주께서 나의 결박을 푸셨나이다.” 시인은 하나님의 종입니다. 여기 ‘종’은 속하였다는 의미입니다. 즉 시인이 하나님께 속하였다는 말입니다. ‘주의 여종의 아들’은 이미 모태에서부터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부터 하나님께 속했고 하나님께서 택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처럼 하나님께서 시인을 택하셨기 때문에 사망과 스올의 결박으로부터 그의 영혼을 풀려나게 하시고 구원해주신 것입니다. 시인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구원해주신 은혜에는 이런 깊은 영적 의미가 있음을 깨달으며 하나님께 감사제를 드리고자 합니다. ‘감사제’는 하나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드려지는 희생 제사를 가리킵니다. 시인은 말로만이 아니라 희생과 헌신을 드려 감사함을 표현하고자했습니다. ‘감사제’는 희생제물 가운데 하나님께 태워 드릴 기름과 제사를 섬기는 제사장의 몫 일부를 제외하고는 제사에 참석한 모든 회중이 제물을 나누어 먹었습니다. 그러므로 시인이 감사제를 하겠다는 것은 혼자서만 조용히 감사하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온 이스라엘 백성을 불러 모아 자신의 구원의 은혜를 나누며 희생 제물의 고기를 함께 먹고 마시며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고 춤을 추겠다는 것입니다.
넷째, 시인은 하나님께 평생 동안 기도하겠다고 말합니다. 함께 2절을 보십시오. “그의 귀를 내게 기울이셨으므로 내가 평생에 기도하리로다.” 시인은 자신의 영혼을 구원해달라는 기도에 응답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평생에 기도하기’를 작정합니다. 1절에 보면 시인은 하나님이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것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였고 그 사랑을 확신하였습니다. 그래서 시인도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랑고백합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우리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합니까? 사랑하는 사람과는 늘 함께 하고 싶습니다. 입이 아프고 부르틀 정도로 대화해도 시간가는 줄 모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만나려고 기다리고 있는데, 비 오는 날의 우산이 되어주고, 눈 오는 날의 따뜻한 외투가 되어주는 그 사람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데 바람맞히는 법은 없습니다. 그렇기에 시인은 평생에 하나님께 나아가 영적 대화인 기도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사랑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천지를 창조하시고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위대함과 영광을 찬양하고 믿는 자들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표현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그분의 마음을 나누며 그분의 뜻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와 사랑과 인도하심에 감사해 자신을 하나님께 옥합처럼 깨뜨려 쏟아드리는 최고의 사랑고백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기도할 때 하나님도 우리 내면의 모든 아픔과 고통을 어루만져주시고 내 필요를 채워주십니다. 내 인격을 성숙하게 해주시고 더 나아가 나의 삶 전체를 아름답게 빚어주십니다. 풍성한 내적 외적 열매들로 열매 맺게 하십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환난과 슬픔을 만나게 됩니다. 올해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취준생들은 취업이 어렵고 직장 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분들도 있습니다. 선교사님들도 경제적으로 어렵고 건강문제로도 고통을 겪고 계시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선교지에서 이방 영혼들을 섬기는 것을 절대 사명으로 살고 모든 것을 견디며 살아오신 분들인데 코로나19로 인해 양들을 섬기는 것도 쉽지만은 않습니다. UBF본부에서는 성탄예배 때 드려진 헌금들을 모아 선교사님들을 위해 쓰고자 합니다. 또 국내 지부에 코로나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분들을 섬기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또 고통하는 그분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모든 시련과 슬픔에서 건져주실 줄 믿습니다.
우리 중에도 이런 기도의 응답이나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베풀어주신 구원의 은혜들이 있습니다. 때로는 경제적으로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 때로는 자녀문제로 힘들어할 때, 때로는 건강문제로 두려워할 때에 하나님은 우리 곁을 지키시고 우리 음성과 간구에 귀 기울여주시고 그런 상황들 속에서 건져주셨습니다. 고통 중에 드린 작은 기도에도 응답하셨고 크고 작은 위기와 시련 속에서 드린 기도에도 응답하시고 지금껏 인도해주셨습니다. 무엇보다 올해는 코로나로 인해 여러모로 어려움을 겪은 한 해였습니다. 모임이 많지 않고 사역의 규모도 크지 않지만 해오던 사역마저도 줄여야하고 다른 방법을 고민해야 했습니다. 양들도 비대면 수업이라 집에 있어 양들을 대면해서 만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직장 근무하시는 목자님들이나 형제자매들도 코로나에 대처하는 직장 상황에 맞추어 일하느라 여러모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습니다. 마음 놓고 말씀공부하고 예배하기에 적잖은 부담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런 상황에서도 우리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우리와 함께 해주셨습니다. 목자님들과 가족들, 형제자매들을 코로나로부터 지켜주셨습니다. 어려운 가운데서도 형제자매들을 일방적인 은혜로 보내주시고 섬기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물론 지금도 경제적인 어려움 가운데 있거나 질병이나 사람과의 관계문제나 가족문제나 죄 문제로 고통하며 기도하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 신자들의 생명을 귀중하게 여기십니다. 우리의 생명을 지켜주십니다. 우리의 환난과 고통과 슬픔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작은 신음과 간구에도 귀를 기울이시고 하나님의 때에 반드시 응답하여 주십니다.
저는 연초부터 터진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사역에서 더 움츠려들기 쉬웠고 고민과 긴장은 했지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뭐하고 있나 하는 생각에 적잖은 부담이 짓눌러왔습니다. 게다가 가깝고 저희 가정을 잘 챙겨주던 형님의 갑작스런 소천은 저에게 큰 슬픔이 되었습니다. 올해 내내 허리 디스크로 다리 마비 증세까지 올 정도로 고통하시다가 드디어 수술하신 어머니를 생각할 때도 마음에 슬픔이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나의 힘과 위로가 되시고 나에게 관심 가지고 도우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생각하게 됩니다. 신학공부도 비대면 수업일 때가 많아 교회 룸에 앉아 신학을 공부하고 책과 성경을 읽고 묵상하면서 하나님에 대해 조금씩 더 알아가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특히나 어렵게만 느껴졌던 시편을 묵상해가면서 내 곁에 계셔 시련과 슬픔 가운데도 함께 하시고 현실에서 건져주시고 도우시는 하나님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형의 소천이 큰 슬픔이었지만 어머니도 덤덤하게 잘 이겨내게 도와주셨습니다. 아이들이 종종 “삼촌 하나님 나라 갔지? 우리도 하나님 나라 가고 싶다” 이런 말을 할 때마다 하나님 나라와 부활의 소망을 붙들게 되어 감사합니다. 어머니도 큰 걱정이 되었지만 수술이 잘 되어 목소리도 좋고 병실에서 잘 걸어 다니게 되어 감사합니다. 저는 믿음이 연약해 사역과 가족들로 인해 걱정하고 슬퍼하였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택하신 저를 귀하게 여기시고 부족한 기도에도 귀 기울이시고 답답하고 슬픈 현실에서 구원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감사하고 찬양합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어떠합니까?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하면 좋을까요? 우리가 시인처럼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은혜에 대해 감사로 제사 드리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드리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 앞의 서원과 결심과 기도했던 모든 것들을 지켜드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소중한 시간을 내어 기도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 모든 은혜에 감사드리고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기를 기도합니다. “여호와께서 내 음성과 내 간구를 들으시므로 내가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