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감사절 = 감사 강조기간
우리 어린 시절 학교 다닐 적에는 ‘표어시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학교 가면 거의 분기별로 불조심 차조심 등등 이런 표어를 쓰라는 숙제를 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런 표어를 가슴팍에 달고 다녔지요. 지금이야 유치해 보여서 그렇게 안하지만요. 표어를 붙이고 다니지 않더라도 그만큼 조심해야 한다는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특히 불같은 것은 한번 나면 그 여파는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꼭 산불 같은 것만 조심해야 하는 건 아닙니다. 우리 인생에도 불조심을 해야 합니다.
우리 인생을 파멸로 이끄는 불이 날 때가 있습니다. 야고보서에 보면 우리 혀가 원망과 불평 같은 것을 말할 때, 불이 난다고 했습니다. 그 불을 끄는 것은 감사와 사과의 말입니다. 사람의 불평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와 같습니다. 불평하려면 한도 끝도 없다는 말입니다. 최초의 사람인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 살았습니다. 요즘 말로 파라다이스죠. 그런데 그렇게 좋은 데서 살았지만 불평이 있었습니다. 선악과를 못 먹게 한 것에 대한 불평이었습니다. 동산에 있는 모든, 모든 과실을 다 먹을 수 있었고, 딱 하나 선악과만 못 먹게 했는데, 그걸 불평하다가, 결국 에덴동산 모든 것을 다 잃고 말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교회 나오는 건 그런 죄를 다시 짓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우리도 아차, 하면 똑같은 어리석음을 반복하기 쉽습니다. 우리의 죄성은 항상 내게 있는 것보다 없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푸념할 때가 많습니다. 세상은 불공평합니다. 이 세상은 죄많은 세상이며 천국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불공평한 세상을 원망하며 거기 굴복하지 않습니다. 그 속에서도 하나님이 남겨두신 감사거리를 발견합니다. 내가 당한 고난에서, 내가 남보다 없는 것에서, 도리어 은혜를 찾아내어 불행을 행복으로 역전시켜버립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이 있는 곳마다 모든 불행의 불은 꺼집니다. 11월은 불조심 강조기간입니다. 산불뿐만 아니라, 우리 인생을 재가 되버리게 하는 불이요. 그래서 추수감사절이 이때 있습니다. 한 해가 저물고 결산이 되고 새 해를 앞둔 시기에 추수감사절이 있다는 건 정말 우연이 아닌 겁니다. 올해의 모든 순간을 감사의 렌즈를 통해 다시 돌아봅시다. 추수감사절까지 우리는 감사의 표어를 가슴에 달고 다녀야 합니다. 마음속에만 감사를 고이(?) 간직하지 마십시오. ‘감사(感謝)’의 ‘사(謝)’는 나타내야만 감사란 뜻입니다. 감사를 표현하세요! 그때 그곳의 모든 분노와 갈등의 불이 꺼지고 하늘의 평화가 찾아올 것입니다☺
(2023년 11월 5일 주일 주보에서)
첫댓글 여학생에 달린 리본을 보니 다시 생각납니다.
~~~ 강조기간
지금은 감사 강조 기간!
더더욱 감사를 표현하고 감사를 고백하는 기간, 평생이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