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쥬신제국사2/8-신라왕자 천일창>
新羅王子(신라 왕자) 天日槍(천일창)
☯ 실라 연방공화정부의 왜도(倭島) 진출 시도
이 시점에서 이야기를 잠시 쥬신 반도로 옮겨보자, 천황의 신국백제(神國百濟)), 그리고 금관가야(金官加耶)를 종주(宗主)로 하는 가야 연맹과는 달리, 불구래왕[박혁거세(朴赫居世)]의 박씨(朴氏) 집단과 사벌(沙伐)의 김씨 집단 그리고 석타래의 큰무라[건모라(建牟羅)]집단의 연방공화정부(聯邦共和政府)는 이제 큰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하여 빠른 속도로 강국의 대열에 올라서기 시작하였다.
겨우 안정을 찾은 실라[신라(新羅)]는 이제는 동족(同族)으로 변한 석타래의 무라[모라(牟羅)]세력이 누구보다 먼저 다물도(多勿島)와 규슈[구주(九州)]에 진출하여 영지(領地)를 확보했음에도 불구하고, 뒤쫓아 온 가야 세력과 백제 세력에 짓눌려 숨도 크게 못 쉬는 형편이 되었음을 분하게 생각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결국 신천지 왜국 열도에 대한 영토 경쟁에서 실라만 탈락할 형편이었다.
그래서 수도 월성(月城)에서는 나라의 최고 회의인 6칸[육한(六汗)] 비상회의가 열렸다.
이 6칸 회의는 몇 달 전 왜국 나라에 새로 세워진 백제의 숭신 단국 나라의 실상을 정탐하고자 열렸다. 신왕조에 대한 인사(人事)를 가장하여 현지를 방문하고 돌아온 무일조명(武日照命)의 보고를 듣기 위한 것이었다.
♬(말풍선)
“우리 실라의 무라[모라(牟羅)]들은 모두 야뫼도 백제의 조공국이 되어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으며, ᄀᆞᆷ나루 백제는 숭신 단군을 파견하여 왜국 동부 깊숙이까지 진출하여 나라[국(國)]를 세워 놓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숭신 단군이 죽고, 그의 아들 수인이 왕위를 이었는데, 신수두의 대단군 숭신 밑에 모였던 옛 쥬신 유민인 하이인들이 수인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우리 실라가 신천지(新天地: 왜국倭國)에 영토를 확보하려면 지금이 가장 좋은 때입니다. 이미 무라 세력과 길비국, 출운국 지역엔 많은 실라인들이 진출해 있으므로 잘만 하면 백제와 한번 겨루어 볼 만 합니다.” (이상 무일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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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소! 사정이 그러하면 내가 한 번 원정군을 지휘하여 가겠소, 어차피 나는 태자(太子)가 아니므로 이번 기회에 왜국으로 진출하여 영지를 확보하고 새 나라를 일으켜 보겠소.” (천일창 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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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일창(天日槍) 왕자님이 직접 가신다면 반드시 성공할 것이오, 이 6칸 회의는 왕자의 원정에 정식으로 동의하오.” (6칸 회의 좌중)
☯ 실라 왕자 천일창(天日槍)의 왜도 영토경쟁 원정
이리하여 실라 왕자 천일창(天日槍)이 이끄는 원정군은 정예군으로 대선단을 꾸며 다물도(多勿都)의 북단 무라[모라(牟羅)]지구(地區)에 상륙한 다음, 성을 쌓아 그들의 중간 거점으로 삼았다.
그리고는 다시 파도를 가르며 북규슈[북구주(北九州)]와 밝다[박다(博多):밝은 땅]에 상륙하여 그 일대를 정복, 실라의 영지로 편입하였다.
그동안 백제의 정복 활동에 눌리어 기가 죽어 있던 무라계의 집단들은 왕자 천일창이 실라 연합군을 이끌고 밝다에 상륙하자. 용기백배하여 증원군을 보내 천일창 군단에 편입시켰다. 실라군은 다시 동진하여 세토나이[뢰호내(瀨戶內)] 해를 따라 길비를 정복하고, 나니와로 진격하였다.
나라조[나량조(奈良朝)]의 제2대 수인왕(垂仁王)은 무인지경으로 통과하여 번마국(幡磨國)까지 도달한 이 정체불명의 군대에 크게 놀라, 왕의 어림군을 직접 파견하여 천일창 군을 막아 보려하였다
♬(말풍선)
“그대들은 어느 나라에서 온 누구십니까? 정체를 밝히시오!” (나라조 수인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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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실라의 왕자 천일창이다!” (천일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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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라의 수인왕이다. 그대가 실라의 왕자인 천일창이라 하였는데, 이곳은 우리가 이미 자리를 잡았다. 만약 그대들에게 영토가 필요하다면 담로도의 출천읍(出淺邑)과 육속읍(六粟邑)을 떼어줄 테니 군대를 물려주기 바란다.” (수인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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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하! 나는 그대의 나라를 빼앗으러 온 것이 아니다. 난 지금 우리 실라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단마(但馬) 지역으로 가고 있는 것뿐이야. 길비와 단마를 연결하는 나의 새 영지를 그대가 인정한다면, 나도 그대의 나라를 승인할 것이다.” (천일창)
☯ 천일창 왜도 혼슈 북부에 실라영지 확보 성공
전 규슈[구주(九州)]와 왜 열도를 휩쓸었던 신군의 위력도 소용없이 마치 농락이라도 당하듯 초전(初戰)에 대패를 당한 수인왕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천일창 군에게 굴욕적인 휴전 협상을 벌이기로 하였다.
광활한 왜국(倭國)의 빈터[공지(空地)]를 두고 굳이 백제의 신국과 충돌할 이유가 없으므로, 천일창은 군사를 이끌고 계속 전진하여 오명읍(五名邑)에 잠시 머물렀다가 약협(若狹)을 지나 단마(但馬)에 도착하였다.
※ 실라 왕자 천일창(天日槍)은 이 때 거울[일경(日鏡)], 옥으로 된 우태[우태옥(羽太玉)], 옥으로 된 족고[족고옥(足高玉)], 붉은 옥으로 만든 제록[제록적석옥(鵜鹿赤石玉)], 출석으로 된 작은 칼[출석소도(出石小刀)], 출석으로 된 방패[우(木+牟)=우(杅)], 곰의 신리[웅신리(熊神籬)] 등 일곱 가지 보물을 가져갔다고 한다.
이리하여 실라는 길비와 단마를 연결하여 혼슈[본주(本主)]의 북부 영지를 확보하는데 성공하였고, 백제는 세토나이[뢰호내(瀨戶內)]해(海)를 끼고 각각 자리를 잡았다. §
《실라의 왜도 혼슈 영지확보 원정 경로》0017
2020.5.11.편집
一鼓 김명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