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미수공파"라고 들어보셨는지요?
글쓴이: 빠삐용 08.09.06
저는 목경-양(3남)-한수-완-효문(효기-후손없음)-진모-미수
이렇게 이어지는 휘미수공파의 종가 3남입니다.
최근에 들어서야 조상님과 족보에 대한 관심이 많아져 여기저기
자료를 훑어보다가 이 카페에서 아주 소중한 정보들을 얻었습니다.
정리해서 자료를 올리느랴 많은 수고를 하신 분들께 후학으로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앞서 말씀드린대로 휘미수공파에 자료가 전혀 나오지 않아서 참 의아했습니다.
저희 소종중에서 노력을 하지 않은 탓일까요?
앞으로 족보 공부를 좀더 해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희 소종중에 대해 아시는 바가 있으면 간략한 언급 부탁드립니다.
목경파 24세, 휘미수공 17세손 김영명
[답 변]
안녕하세요 김영명님! 김해김씨족보 사이트를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현재 금녕군 휘목경파의 지파(支派) 문중은
①참의공(參議公) 효원(孝源)-참의공파,
②참판공(參判公) 영견(永堅)-참판공파,
③횡성현감(橫城縣監) 영서(永瑞)-횡성현감공파,
④안경공(安敬公) 영정(永貞)-안경공파,
⑤석성현감(石城縣監) 영순(永純)-석성현감공파.
⑥밀직부사(密直副使公) 달문(達門)-밀직부사공파,
⑦봉상공(奉常公) 현문(顯門)-봉상공파,
⑧밀직사(密直使) 창문(昌門)-밀직사공파,
⑨문간공(文簡公) 저(著)-문간공파,
⑩시중공(侍中公) 양(暘)-시중공파,
⑪밀직공(密直公) 수(秀)-밀직공파,
⑫평장사(平章事) 란(蘭)-평장사공파 등 12 대문중으로 결성되어 있습니다.
이중 목경-양-한수-완-효문(효기-후손없음)-진모-미수 계통의 문중은
위 ⑩의 시중공(侍中公) 휘양파(諱暘派) 문중에 속하며,
시중공 휘양파(諱暘派)는 세거지 경남 울산의 목경-양-한수-완-효기-진행(震行=致行)의 목사공 휘치행파(牧使公 諱 致行派)가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시중공 휘양파(諱暘派)의 다른 지파 문중은
님의 목경-양-한수-완-효문-진모-미수 문중에 대해서는 -효문-진모에서 미단(未單) 처리 되어 있음이 확인되고 있습니다.
경남 고성 문중의 세계는 양(暘)-①한수(漢守)-①완(玩)-②효문(孝文)-②진기(震棋)-영기(永基;初名基玉, 字壽一, 通德郞忌六月二十一日, 墓固城邑 南浦部落蘆正面山子坐,配恭人遂安金氏)로 확인됩니다.
또 다른 울산 마편촌(馬鞭村) 문중 세계는 양(暘)-한수(漢守)-②준(樽-한번(漢藩)-진미(震美;初名悟美,生卒未詳,官別侍尉,墓馬鞭村先塋下) 이며,
시중공파공파 중 결성(홍성군에 속해있는 지명)문중 세계는 양(暘)-②한관(漢寬)-령(令)-철(鐵)-구산(龜霰)-범산(泛山)-기춘(起春;以壽通政大夫,崇禎己亥1659년8월30일卒,墓結城合西面墨洞癸坐丁向)와 같이 확인되는바, 동 문중의 김종욱(金鍾昱) 족장(011-734-1002)이 주관하여 2005년 1월 10일 김해김씨금녕군후시중공(휘양)파 세보를 간행한 바가 있습니다.
양(暘)-한수(漢守)-완(玩)-효문(孝文)-진모(震模)의 후손으로 가첩(家牒)에 기록되어 있다고 하시는 부산 해운대구 반송동에 거주하시는 김대영씨가 효문(孝文)-진모(震模) 문중 일가들을 찾는다는 취지로 본 운영자와 휴대폰통화를 한 사실이 있고(휴대폰 번호 기억 못함),
김해김씨족보 사이트 http://www.kimheakim.com.ne.kr/
문답 게시판에 2008-08-16(김대영), 을태님 보세요, 2008-08-19(김대영) 을태 족장님 감사합니다. 라는 제목으로 글을 쓴 사실이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시고 차후 기회가 있으면 김대영씨라는 분과 교류를 하여 보시는 것도 좋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참고로 중조(中祖) 휘목경(諱牧卿)조의 자(子)에 대한 보첩기록들을 살펴보면,
1754년 갑술보와 1799년 기미보에 중조(中祖) 휘목경(諱牧卿)조의 자(子)로 죽강공(竹岡公) 휘보(諱普) 한 분만 기록되었고,.
1802년 임술보와 1824년 갑신보에 죽강공(竹岡公) 휘보(諱普)와 문간공(文簡公) 휘저(諱著) 등 두 분이 기록되었고,
1881년 신사보에 죽강공(竹岡公) 휘보(諱普)와 문간공(文簡公) 휘저(諱著)와 좌시중(左侍中) 휘양(諱暘)으로 세분이 기록되었으며,
1910년간 상장엄무(上章엄茂)보에 죽강공(竹岡公) 휘보(諱普)와 평장사공(平章事公) 휘란(諱蘭)과 ,좌시중(左侍中) 휘양(諱暘)으로 세분이 기록되었고,
1920년경 간행된 보첩에서 밀직공(密直公) 휘수(諱秀)가 기록되었으며,
1974년 갑인보에서 죽강공(竹岡公) 휘보(諱普)와 문간공(文簡公) 휘저(諱著), 밀직공(密直公) 휘수(諱秀), 평장사공(平章事公) 휘란(諱蘭)으로 네 분이 기록되었고,
그리고 1991년 대구에서 간행한 금녕군파(경파)통합보에서
죽강공(竹岡公) 휘보(諱普)와 문간공(文簡公) 휘저(諱著), 좌시중(左侍中) 휘양(諱暘), 밀직공(密直公) 휘수(諱秀), 평장사공(平章事公) 휘란(諱蘭)으로 최종 다섯분으로 정립(定立)되었음이 확인되는데,
보(譜)에서의 자(子)는 생물학상(生物學上)의 자(子)와는 다르다고 이해하여야 할 것으로 사료됩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오.
첫댓글 양(暘)-한수(漢守)-완(玩)-효문(孝文)-진모(震模)-미수 공 후손이신 김대영씨가 연락 휴대폰 번호가 010-5530-4469 이라고 알려 왔으니 두분이 통화를 하여 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