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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몇 초 동안이었을 것이다. 여자도 나도 꼼짝을 하지 않고 있었다. 갑자기 시간이 멎어버린 듯이 모든 것이 조용했다.
나는 여자의 물컹한 가슴을 움켜쥔 채 그렇게 서 있었고 여자는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분명한 것은 여자가 브래지어를
하지 않아 얇은 블라우스 천조각 사이 하나로 그녀의부드러운 가슴이 내 손바닥 안에 잡혀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뭘하는 거야? 이 나쁜 놈아!”
여자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나는 그때서야 화들짝 놀라서 여자의 가슴에서 손을 떼었다.
“그래. 돈 못 갚는다고 이제는 성추행까지 하냐? 내가 네놈을 그냥 둘 줄 알아? 경찰에 신고해서 콩밥을 먹일 거야.”
“미안합니다. 고의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나는 여자에게 재빨리 사과했다. 저절로 존댓말이 나왔다. 제기랄, 오늘도 돈을 받기는 틀렸구나. 돈을 받기는커녕 당분간은 입도 벙긋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흥! 돈 없고 남편 없다고 별 거지같은 놈이 다 희롱하고…. 내가 서러워서 어떻게 살아…. 차라리 죽어버려야지…. 앙앙….”
여자가 갑자기 방바닥에 주저앉아 울음을 터트렸다. 제기랄, 가슴 한 번 만졌다고 죽으면 이 세상 여자 절반은 죽었겠다. 남들은 바람도 잘 피우는데 무슨 대단한 열녀라고 가슴 한 번 만졌다고 죽어. 공연히 구실 삼을 것이 없으니 돈을 갚지 않겠다는 수작인 것이다. 오죽하면 악독하기로 유명한 사채업자가 두 손 두 발 다 들었겠는가. 그런데 돌아앉아서 울고 있는 여자의 뒷모습이 야릇하게 자극적이었다.
“그런 생각하지 말고 잘 살 생각이나 해요. 좋은 세상에 죽기는 왜 죽어요?”
나는 여자의 뒤에 다가가서 어깨에 손을 얹고 달래는 시늉을 했다.
“죽든 살든 상관하지 말아요.”
그야 물론 상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죽으면 이 탱탱한 몸뚱이가 아깝지 않은가. 여자의 톡 쏘는 화장품 냄새, 풍성한 머리숱, 둥근 어깨… 그리고 허리 아래 탄력 있는 둔부에 눈이 어질어질했다. 집안에 사람도 없는데 확 덮쳐 버릴까. 내 머릿속에서 늑대가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거렸다.
“울지 말아요. 나도 원래부터 나쁜 놈은 아니오.”
“어떻게 해야 돼요? 어떻게 해야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갈 수 있어요?”
여자가 노래를 부르듯이 중얼거렸다. 젠장, 그런 거야 높은 사람에게 물어봐야지 사채업자 심부름이나 하는 사설탐정 주제에 어떻게 알아.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했습니다.”
말이야 좋지. 하늘이 무너져 봐라. 솟아날 구멍이 있겠나.
“오늘까지 월세를 내지 않으면 쫓겨나게 돼요. 쌀도 떨어지고….”
여자가 훌쩍거리기 시작했다.
“집주인이 그렇게 야박할 리가 있겠습니까? 보증금에서 까라고 하세요. 월세가 얼만데요?”
“석 달친데 우선 60만원만 내면 돼요.”
여자가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여자의 커다란 눈에서 닭똥처럼 굵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아아 어찌 이리 슬프게 운다냐. 내 간장이 미어터지는구나. 눈물을 머금은 여자의 얼굴을 본 순간 나는 벌써 주머니에서 자동차 세금 낼 돈 70만원을 꺼내고 있었다.
첫댓글 즐감요!!!!!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감사합니다
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잘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