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암 7: 12 유다 땅으로 도망하여 가서 - 암 7: 15 양 떼를 따를 때에
암 7: 12 유다 땅으로 도망하여 가서 - 아마샤가 또 아모스에게 이르되, 선견자야. 너는 유다 땅으로 도망하여 가서 거기에서나 떡을 먹으며 거기에서나 예언하고 ( 아마샤가 또 아모스에게 이르되, 선견자야. 너는 유다 땅으로 도망하여 가서 거기서나 떡을 먹으며 거기서나 예언하고 )
아마샤는 왕에게 아모스를 고발하고 나서 아모스에게 일련의 지시를 하였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아마샤의 말을 들은 여로보암이 적지않은 분노를 나타냈던 것으로 보인다(T. E. McComiskey).
1] 아마샤가 또 아모스에게 이르되 선견자야
'선견자'(*, 호제)는 '선지자'(*, 나비)의 구식 명칭이다.
* 삼상 9: 9 - (옛적 이스라엘에 사람이 하나님께 가서 물으려 하면 말하기를 선견자에게로 가자. 하였으니 지금 선지자라 하는 자를 옛적에는 선견자라 일컬었더라.)
이런 표현을 통해 아모스의 예언 행위를 비아냥 거리는 의도를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단지 아모스의 품위를 손상시키려고 이런 명칭을 사용했다기보다는 바로 앞에서 아모스가 이상(환상)을 보았다는 사실에 입각하여 이런 용어를 사용했을 것으로 보인다(T. E. McComiskey).
2] 너는 유다 땅으로 도망하여 가서 거기에서나 떡을 먹으며 거기에서나 예언하고
아마샤는 아모스의 예언 활동을 인정하고, 그가 유다 출신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매우 신사적으로 권면한다.
하지만, 그 속에는 매우 모욕적인 의도가 가득하다(E. B. Pusey).
이런 표현에 비추어 보건대, 아마샤가 아모스를 자신과 똑같이 생계를 위해 예언하는, 직업적인 선지자로 간주했던 것이 분명하다(C. L. Feinberg).
아마샤는 사람을 벧엘에서 사마리아로 보냈다. 왕에게 보고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그 자신은 벧엘에서 아모스를 만났다. 아마샤는 아모스에게 말했다.
선견자라는 말은 묵시를 보는 자라는 뜻이다. 사실 아모스는 이미 세 개의 이상(묵시)을 보았다. 아마샤는 아모스에게 유다 땅으로 도망가라고 했다. 그 이유는 곧 박해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공갈 반 회유 반으로 그렇게 말한 줄 압니다. "거기에서나 떡을 먹으며 거기에서나 예언하고." 아마샤는 아모스를 마치 삯꾼처럼, 직업적인 선지자처럼 생각했다.
12절에서는 하라는 것이 적혀 있고, 13절에서는 하지 말라는 것이 기록되어 있다.
암 7: 13 벧엘에서 예언하지 말라 - 다시는 벧엘에서 예언하지 말라. 이는 왕의 성소요, 나라의 궁궐임이니라. ( 다시는 벧엘에서 예언하지 말라. 이는 왕의 성소요, 왕의 궁임이니라. )
본 절에는 아마샤가 아모스에게 유다에 가서 예언하라는 의중이 드러난다.
아마샤의 표현을 보면, 벧엘이 '왕의 성소', '왕의 궁'이라고 하면서 '왕'을 반복하여 강조한다.
아마샤는 이런 표현을 사용하여 벧엘은 왕궁을 위해 봉사하는 자신의 구역이라는 점을 은근히 강조한다.
즉, 그는 함부로 남의 자리를 넘보지 말고 유다에나 가서 예언하는 일로 밥이나 벌어먹으라는 것이다.
1] 다시는 벧엘에서 예언하지 말라. 이는 왕의 성소요, 나라의 궁궐임이니라.
유다 땅에서는 예언하고, 벧엘에서는 하지 말라는 요구였다.
그 이유가 왕의 소유지에서 왕을 반대하지 말라는 위협이었다.
이곳은 왕의 세력 하에 있었다. 목숨이 아깝거든 함부로 입을 놀리지 말라는 뜻이다.
여기에 대해서 아모스가 무엇이라고 말을 했을까요?
"고맙다. 당신은 정말 나를 생각해주는구나." 이렇게 말했을까?
만약 아모스가 그랬다면 그는 참 선지자가 아니었을 것이다.
신학교 다닐 때 어떤 교수님이 했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주의 종은 늘 준비해야 할 것이 세 가지가 있다고 했다.
첫째는 말씀 준비였다.
어디에 가서든지, 어떤 상황에서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둘째는 이사갈 준비라고 했다.
교회가 목사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목사가 교회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교인들이 목사를 원치 아니할 때는 언제라도 보따리를 싸서 이사갈 준비를 하라는 것이다.
셋째는 죽을 준비였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순교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일사각오의 정신으로 목회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모스에게는 투철한 사명감이 있었다.
암 7: 14 목자요, 뽕나무를 재배하는 자 - 아모스가 아마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선지자가 아니며, 선지자의 아들도 아니라, 나는 목자요, 뽕나무를 재배하는 자로서 ( 아모스가 아마샤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선지자가 아니며, 선지자의 아들도 아니요, 나는 목자요, 뽕나무를 배양하는 자로서 )
아마샤의 요구에 대해 아모스가 대답하는 내용이 계속된다.
1] 아모스가 아마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선지자가 아니며, 선지자의 아들도 아니라,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로-나비 아노키 웰로 벤-나비 아노키'(*)에서 시제를 나타내는 동사가 없기 때문에 현재형으로 해석할 수도 있고(NASB, RSV, NEB), 과거형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KJV, JB).
어떻게 해석하든 아모스가 말하고자 하는 요지는 아모스 자신이 아마샤가 이해했던 것처럼 직업적인 선지자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2] 나는 목자요, 뽕나무를 재배하는 자로서
'목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보케르'(*)는 '큰 소매'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바카르'(*)와 연관이 있으므로, 문자적으로는 '큰 소 떼를 치는 사람'을 가리키지만, 일반적인 목자를 통틀어 가리키는 것 같다.
그래서 70인역(LXX)에는 '염소지기'(*, 아이폴로스)라고 번역되었다.
그러므로 앞에서(1:1) 아모스의 직업에 대해 언급된 '노케드'(*)와 함께 사용할 수 있는 말로 볼 수 있다.
아모스는 자신의 원래 직업이 목자이지 직업적인 선지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명백히 밝혔다.
"나는"이라는 대명사가 강조되고 있다.
그리고 15절에서는 "여호와께서"라는 말이 강조되어 있다. "나는 과거에 이러이러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자로 바뀌었다."
그 변화의 주역이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내 뜻, 내 힘으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다.
여호와께서 나를 택하시고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예언하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내가 그렇게 바뀌었다는 증언이다.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암 7: 15 양 떼를 따를 때에 - 양 떼를 따를 때에 여호와께서 나를 데려다가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기를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예언하라. 하셨나니 ( 양떼를 따를 때에 여호와께서 나를 데려다가 내게 이르시기를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예언하라. 하셨나니 )
본 절에서 아모스는 자신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전적으로 하나님의 소명에 의해 예언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을 주장한다.
게다가 이스라엘을 향해 예언하는 자로 세움을 받았다는 사실을 주지시킨다.
1] 양 떼를 따를 때에 여호와께서 나를 데려다가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기를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예언하라. 하셨나니
하나님은 15절에서 아모스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예언하라"고 하셨다. 그런데 아마샤는 16절에서 "이스라엘에 대하여 예언하지 말며"라고 했다.
따라서 아마샤의 말은 하나님의 뜻과는 전적으로 어긋났다. 그러니 아마샤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마땅할 수밖에 없다.
2] 다림줄을 잡고 서신 하나님 (암 7:7-15) / barnabak
들어가는 이야기
교우들이 대표기도를 할 때 목회자들이 제일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말이 ‘이 빈자리를 채워주옵소서’라는 말이라고 합니다.
교회가 건축을 하게 되면 현재보다는 더 큰 교회당을 짓게 마련인데 그러면 자연스럽게 자리가 빌 수밖에 없습니다.
그 빈자리를 어떻게 채울까? 하는 것이 목회자들의 최고의 관심 사항이고 고민인데 그것이 어디 쉬운 일이며 하루아침에 가능한 일입니까?
그런데 기도할때마다 이 빈자리를 채워달라고 기도하면 꼭 자기를 책망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제일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큰 교회당을 지은 어느 목사님이 공개적으로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앞으로 절대 그 기도를 하지 말고 그런 기도를 하는 대신에 나가서 전도해서 본인이 이 빈자리를 채우라’
우리교회에서도 그런 기도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렇다고 빈자리를 채우지 말자는 것이 아닙니다.
빈자리를 채우는 것은 누가만 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 모두가 다함께 하는 것임을 기억하고 모두가 열심히 전도했으면 좋겠습니다.
이 빈자리가 채워지고 우리 교회가 차고 넘치는 교회가 되게 해 달라는 기도내용을 보면 언 듯 은혜로운 기도 같지만 거기에도 많은 문제점들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대체적으로 성도들은 교회가 크지 못하고 교인들의 숫자가 적거나 양적으로 성장하지 않으면 하나님 앞에서 큰 잘못을 범했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게으르고 부족하고 충성하지 못해서 큰 교회가 되지 못했기에 하나님 앞에 우리는 죄인이라는 생각으로 기도도 하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 같습니다.
반대로 교회가 양적으로 성장하고 자리가 차고 넘치면 정말 하나님이 축복하시고 우리가 신앙생활을 잘 했다는 생각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큰 교회성도들은 자부심과 떳떳함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는 반면 조그만 교회성도들은 죄송하고 부끄러운 마음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저는 이런 신앙의 행태가 솔직한 우리들의 모습이라고 봅니다.
저는 이것이 전적으로 틀렸다고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전적으로 옳다고도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정말 교회가 양적으로 성장하고 성도들이 물질적으로 축복받고 교인들의 숫자와 예산이 많으면 그 신앙이 바른 신앙이고 그 교회가 바른 교회일까? 하는 것은 여전히 의구심을 갖게 하는 내용입니다.
여러분, 모든 면에서 크고 많고 풍성하면 좋기는 하지만 그 모습만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바른 모습이 아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성경 속으로
오늘 본문은 바로 그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아모스가 북 왕국 이스라엘에게 예언하는 내용의 일부인데 아모스가 예언활동을 하던 때는 여로보암 2세 때입니다.
여로보암 2세의 통치 시기는 북 왕국의 역사 속에서 가장 번성하고 풍요롭고 살기 좋은 때였습니다.
주변의 강대국들이 상대적으로 약화되었을 때였기에 북 왕국은 정치적으로 비교적 안정을 유지할 수 있었고 경제적으로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풍요를 누리는 시기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바로 이 시기에 아모스 선지자를 통하여 그 나라를 심판하시겠다고 선언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풍요의 시대에 잘 사는 시대에 이스라엘은 엄청난 책망을 하나님한테 받고 있는 것입니다.
언 듯 생각하면 우리가 어려울 때보다 잘 살 때 예수를 잘 믿을 것 같은데 사실은 그 반대입니다.
이스라엘의 종교생활도 외형적으로는 경건하고 열심 있는 것 같았지만 실제적으로는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과는 거리가 먼 위선적이고 형식적인 것이었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정치 권력자, 부자들과 한통속이 되어 부패를 더욱 조장하고 사회를 퇴폐의 길로 떨어지게 만드는 부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여러분, 모든 것이 풍부하고 잘 살고 번영할 때가 어떻게 보면 신앙적으로 위기의 때임을 잘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국가적으로도 그렇고 사회적으로도 그렇고 개인적으로도 그렇습니다.
자동차가 없던 집에 자동차가 생겼습니다.
그러면 이 자동차로 더 부지런히 교회에 가서 하나님께 예배하고 교인도 실어 나르고 봉사하는 일에 참여하겠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동차가 생겼으니 이번 주일 어디 놀러갈까? 어디 낚시 갈데없는가? 그런 생각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물질의 풍요를 누릴 때 우리의 신앙이 하나님 앞에 바르게 서 있는지를 잘 살펴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잘 살펴서 하나님 앞에 범죄 하지 않도록 힘써야 합니다.
다림줄을 잡고 서신 하나님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다림줄을 잡고 서서 성벽을 측량하시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모스서에는 5가지의 환상이 나오는데 다림줄을 잡고 서신 주님의 모습이 세 번째 환상입니다.
다림줄은 성벽이나 집을 지을 때 벽돌을 반듯하게 잘 쌓기 위하여 수직으로 내리는 줄을 말합니다.
이 다림줄이 없으면 비뚤비뚤하게 쌓을 수밖에 없을 텐데 이 다림줄이 있음으로 바르게 쌓을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다림줄을 내리었다는 것은 성벽을 측량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이 바른지, 바르지 않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다림줄을 내리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관심이 어디에 있는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삶이 얼마나 풍성하고 얼마나 능력 있고 얼마나 화려한가에도 관심이 있지만 그러나 그것보다 더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얼마나 하나님 앞에, 말씀 앞에 바로 서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여로보암 통치 당시 이스라엘은 모든 것이 번창했고 풍성했고 잘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림줄로 이스라엘의 신앙이 바른가를 재시겠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이스라엘이 얼마나 바르게 신앙생활을 하느냐에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하나님이 관심 갖고 있는 일에 여러분은 얼마나 관심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의 관심과는 상관없이 무조건 잘 살면 되고 무조건 크고 넓고 화려하고 풍성하면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지는 않습니까?
서두에서도 말씀드렸습니다만 오늘 우리들의 사고방식 속에는 풍요와 풍성이 하나님의 뜻인 양 생각하는 경향이 사실 농후합니다.
모든 기준이 바로 거기에 맞춰져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잘살면 축복이고 못 살면 저주이고, 건강하면 축복이고 병들면 저주이고, 많으면 축복이고 적으면 저주이고, 풍성하면 축복이고 풍성하지 못하면 저주라는 생각이 우리의 사고 속에 깊이 박혀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얼마나 성도들이 바르게 사느냐에 관심을 갖고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기준인 말씀과 뜻에 합당하게 사느냐에 하나님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오늘 다림줄을 잡고 계신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관심사항이 바뀌어야 할 줄 믿습니다.
잘 사는 것보다 바르게 사는 것에 관심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풍요로운 삶보다 말씀대로 사는 삶에 관심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심판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이 다림줄을 잡고 서신 것은 이스라엘 백성의 신앙상태를 조사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조사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조사한 결과에 따라 심판을 하시는 하나님이심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11절 말씀을 보면, 아모스는 여로보암이 칼에 죽겠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반드시 사로잡혀 그 땅에서 떠나게 된다는 심판을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모스가 예언활동을 하던 시대는 연대적으로 주전 767년부터 742년 중 어느 시기에 수개월동안 짧게 활동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아모스가 이렇게 예언을 한 후 이스라엘은 길게는 40년 후에 짧게는 20여년 후인 주전 721년에 앗수르에 의해 망하게 되고 앗수르 지방에 포로로 잡혀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게 됩니다.
성도 여러분, 다림줄을 갖고 서신 하나님은 조사하시는 하나님이시며 또한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관심사항에 관심을 갖고 하나님이 바라시고 원하시는 삶으로 살아가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다림줄에 맞지 않고 바르게 살지 못하고 비뚤비뚤한 인생을 살아가면 그 인생에게는 심판만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풍요를 계속 누리고 싶으십니까?
지금의 행복을 계속 유지하고 싶으십니까?
하나님의 관심사항에 여러분도 관심을 갖고 다림줄을 가지고 측량하시는 하나님 앞에 바르게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들의 미래는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회개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이 이렇게 아모스 선지자를 통하여 심판을 선포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당연히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심판을 좋아하시는 분이 결코 아닙니다.
그러기 때문에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기만 하면 하나님은 심판을 철회하시고 내리시지 않고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 회개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아마샤라고 하는 제사장이 그 중에 하나였습니다.
아마샤는 벧엘의 제사장이었는데 유대로 말하면 대제사장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백성의 신앙을 주관하는 최고의 종교지도자였습니다.
네 땅에 측량하여 나누어지리라는 말씀을 보면 그는 땅을 많이 갖고 있던 부자였던 것 같습니다.
왕에게 직접 보고할 수 있는 권세도 갖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회개하지 못하다가 결국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가 아모스에게 하는 말이 12절에 나오는데 “선견자야 너는 유다 땅으로 도망하여 가서 거기에서나 떡을 먹으며 거기에서나 예언하고” 했습니다.
이 말속에는 네가 유다 땅으로 도망하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너는 떡을 위해 선지자 노릇하는 거짓 선지자라는 비아냥도 들어 있었습니다.
떡을 먹기 위해 예언하는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않을 테니까 여기 있지 말고 유다 땅으로 도망하라 그렇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이 아마샤의 말이었습니다.
여기에서 저는 ‘유다 땅으로 가라’는 말을 주목하고 싶습니다.
예전이나 오늘이나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면 그 말씀을 듣고 회개하기 보다는 그런 말을 하려면 다른 곳으로 가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듣고 싶지 않은 말을 하려면 다른 곳으로 가시오.’
‘다른 교회나 가서 그런 말을 하시오.’
‘우리교회에서는 그런 말을 하지 마시오.’
‘당신이 안 가면 내가 가겠소.’
그래서 자기 마음에 들고 자기 생각을 충족시켜 주는 교회로 발걸음을 옮기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가 듣고 싶은 말, 내 마음에 드는 말만 들으면 안 됩니다.
내 마음에 들지 않아도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내 생각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다림줄로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절하지 말고 그 말씀에 내가 지금 합당하게 살고 있는가를 생각하면서 회개할 부분을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올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우리가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누구든지 회개하지 않으면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회개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순종하는 신앙생활을 하자
아마샤의 말을 들은 아모스는 자신이 누구인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자신은 선견자도 아니고 선지자의 아들도 아니고 즉 제자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신은 목자요 뽕나무를 배양하는 자인데 양떼를 따를 때에 여호와께서 나를 데려다가 이스라엘에게 예언하라 하셨기에 내가 이렇게 예언하게 되었다고 말을 합니다.
그때 당시에 많은 종교지도자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 중 누구에게 이 예언을 말씀을 전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목자요 뽕나무를 배양하던 농부이자 평신도인 아모스를 통하여 이 예언을 말씀을 하게 했습니다.
그 이유는 분명합니다.
하나는 당시 종교지도자들이 잘못되었기에 그들을 하나님이 쓰실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아모스가 순종하는 종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모스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유다 사람이었지만 북 왕국 이스라엘에서 예언활동을 하였습니다.
변방이 아니라 벧엘이라고 하는 최고위 종교권력자들이 있는 중심에서 선포하였습니다.
아모스는 그곳에서 다른 내용이 아닌 심판을 설교했습니다.
순종하는 내용 하나 하나가 다 위험한 일이었고 위험을 무릎 쓰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모스는 순종하였습니다.
누가 안락을 싫어하겠습니까?
누가 생명을 아끼지 않겠습니까?
누가 가족을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아모스는 하나님께 순종했습니다.
아모스는 자신의 사명을 변경시키지 않았습니다.
아모스는 자신의 생업이라도 떠났습니다.
유다에 가면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환영받고 출세하고 인정받을 수 있었을 수도 있지만, 그런 것은 아모스의 관심 밖이었습니다.
그는 여호와를 믿었고 그 분의 말씀에 순종하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 수 있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아모스처럼 순종하는 것입니다.
잘못된 삶을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와 말씀과 뜻 앞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나가는 말
오스카 탐슨은 “하나님은 주권자이시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는 하나님의 기준만이 통합니다.”는 말을 하였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 앞에서는 우리의 개인적 기준이 통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에 나타난 다림줄을 잡고 우리의 신앙이 바른가를 조사하시고 심판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어떤 모습을 보여야 하겠습니까?
하나님이 진정으로 관심을 갖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알아야 합니다.
절대 내 기준으로 내 좋은대로 살아서는 안 됩니다.
세상이 살아가는 기준을 따라 세상이 흘러가는 모습으로 살아서도 안 됩니다.
우리와 세상은 잘 살면 되고 풍요로우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그것보다는 바르게 사는 것을 원하십니다.
그렇게 살지 못하고 있다면 지금이라도 회개하고 돌아와서 주님의 말씀대로, 주님의 뜻대로 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 속에서 우리의 삶의 모습이 어떠해야 할 것인가를 깨닫고 하나님의 관심에 우리도 관심 갖고 하나님이 바라시고 원하시는 모습으로 주님께 순종하며 살아가는 여러분의 삶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의 삶을 책임져 주시고 인도하여 주실 것입니다.
|
|

첫댓글 설교 감사합니다.
좋은 설교 감사합니다.
💖오늘 하루도 삶이 잔잔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들은 쉽게 성내지 않고 쉽게 흥분하지 않고, 흐르는 물처럼 고요했으면 좋겠고,
괴롭고 슬픈 일이 있어도 표 내지 않고 혼자 간직하다 이내 평온해지는
그러한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즐겁고 좋은 일 많은 하루 되시길 기원합니다.💖
악인이 일어나면 사람이 숨고 그가 멸망하면 의인이 많아지느니라(잠 28:28).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