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
"…그래서. 네 녀석들이 트리엠블을 던졌다 이거냐?"
"그렇다! 너희들의 왕을 죽인 것도 바로 우리다."
이 한 무리의 마계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우두머리라고 앞서나온 클렝슨이 당당하게 말했다.
그의 말에 한참을 아무말 않고 그를 바라보던 은해일행은, 고개를 갸우뚱 할 뿐이었다.
"무슨 의도로 우리 앞에 나타난 건지 잘 모르겠군."
"흥! 너희들의 왕을 우리가 죽였다고 하지 않았느냐! 너희들은 복수심에 불타서 우리와 힘을 겨뤄야 할 것이다!"
은해일행이 취해야할 행동을 클랭슨이 친절하게 외쳐주자, 로웨나가 깔깔깔 웃었다.
에델린 역시 조소가 가득한 얼굴로 마계인을 마주하면서 말했다.
"이봐, 지금 죽여달라고 온거라는 건가?"
"황당하네."
"복수심이라니. 별 말도 안돼는 소리를 하고 있어."
리안과 로웰이 동시에 중얼대자, 당황한 클렝슨은 얼굴을 붉히며 바락바락 외쳤다.
"뭐야!! 왕이 죽었는데, 신하된 자로써 복수심이 일어야하는 거 아닌가?!!
더군다나 로웰 그로나르도는 대지의 왕을 충성시여기며 살아왔던 정령이라고 들었단 말이다!!"
팔짱 낀 은해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있던 로웰이 엘리시아의 주인와 함께 피식피식 웃자,
헤롤드가 대신 무덤덤하게 대답하였다.
"다 좋은데-"
위협적이게 검을 꼽아둔 검집을 땅에 세게 내리치며, 그가 말을 이었다.
"침 튀기니까 한 발자국 물러서시지."
"이..이 자식이..!!"
"호오? 지금 감히 이 분이 누구시라고 생각하고 <이 자식>이래?"
무안함과 분함이 섞여 울그락불그락하는 클렝슨의 얼굴에 자신의 검지 손가락을 내밀며
리안이 득이양양하게 물었다. 훤칠하며 S라인을 자랑하는 이 미남자에 비해 마계인의 특징인 검은 문신을 목에 새긴 클렝슨은
비록 근육질의 몸매에 온몸에 힘이 솟아나는 것만 같은 체격을 과시하고 있었으나, 드래곤의 그 위압감이 느껴지는 손가락에 그는 움찔하고 말았다.
클렝슨이 무리를 이끌고 그들 앞에 나타난 것은, 정령왕들을 봉인당하고 허허벌판을 다니던 일행이 휴식을 취하려 매마른 땅에 주저앉을 때였다.
그 때만 했어도 에델린이 리안에게 <왜 드래곤으로 변신해서 우리를 등에 태워주지 않는거냐> 라고 비판을 하고 있을 적이라 그런대로 분위기가 좋았는데,
클렝슨의 도착으로 일행은 '아주 재미있는 볼거리ㅡ물론 에델린과 리안의 말다툼이지만ㅡ를 놓쳤다' 라는 것으로 심히 분위기가 안 좋았던 것이었다.
깔깔거리며 웃던 로웨나가 웃음을 멈추며 물었다.
"그래서, 우리랑 한판 붙자는 거야?"
"싸움을 해서 우리가 얻는 이득은?"
덧붙혀서 은해가 묻자, 클렝슨이 말했다.
"우리가 마계인인 것은 우리 목에 새겨진 문양을 보면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들은 서쪽 숲에 사는 마계인인데, 이쪽부터 우리들의 영역이라서 이방인은 접근 금지다.
싸워서 우리를 이긴다면, 마계의 수도인 '카켈브스' 에 단숨에 보내주지."
"진다면?"
"진다면 너희들은 이대로 우리들의 노예가 되는거다."
"푸하하하하하!!!!"
에반의 물음에 답해준 클렝슨의 말을 듣고나니, 그들의 입에서 폭소가 터지지 않을 리가 없었다.
잘 웃지도 않던 은해와 헤롤드마저도 킬킬대며 어깨를 들썩였다.
자신의 말이 뭐가 웃겼는지 이유를 모르고 있는 이 근육질의 마계인은 얼굴이 붉어진 채 콧김을 씩씩 내뿜으며
아끼는 무기인 '트윈악스'(Twin Ox)로 땅을 쾅쾅 칠 뿐이었다.
은해가 웃음을 멈추고는 평소와 다를바 없는 냉소적인 말투로 입을 열었다.
"누구 면상에다가 당당하게 말하는 것도 용기라고 쳐주지. 그래. 승부의 룰은 어떤건가?"
"너희들의 인원이 총 일곱이니, 세 사람만 뽑아라. 우리쪽에서도 세 사람을 뽑지. 일대일 대결이다."
그렇게해서 모인 은해 일행 7명은 오순도순 모여 앉아서 세 사람을 뽑기로 하였다.
로웨나가 말했다.
"난 기권. 이런건 구경하는 맛이 더 좋거든. 누구 나가고 싶은 사람 없어?"
"나 나가고 싶어!"
에반이 벌떡 일어나서 외쳤다.
'아아?' 라며 자세를 낮춘 일행이 그를 쳐다보자, 불의 기사가 엄지 손으로 자신을 가르키며 당당하게 외쳤다.
"천하의 에반 길터베르님께 대항할 자는 아무도 없다니까!"
"찌그러져있어라, 불기사."
가운데 손가락을 펼치며 에반에게 딱딱하게 대답한 에델린은 다시 고개를 돌려 물었다.
"나가고 싶은 사람 없나."
"나 나가고 싶대도!!!"
"오늘 밥 없다."
"누구 나가고 싶은 사람 없어? 빨리 승부내고 수도로 들어가야지!"
물의 기사의 말에 급히 태도를 바꾼 에반이 일행에게 외쳤다.
세명의 정령의 주인들은 '그럼 그렇지' 라는 표정으로 한숨을 푸욱 내쉴 뿐이었다.
관자놀이를 짚고 있던 로웰이 말했다.
"뭐, 굳이 나가겠다는데 말릴 필요는 없잖아? 에반을 내보낸다 치고, 두명 누가 나갈껀데?"
"너가 나가던지."
"절대로 사양. 나 역시 로웨나같은 타입이거든."
대지의 기사인 로웰이 싱글싱글 웃으며 대답하자, 에델린이 질렸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똑같은 녀석들이군."
"뭐, 어쨌든간에 이렇게 되면 은해랑 헤롤드, 에델린, 리안이 남잖아? 어떻게 할래? 이들 중 두 사람이 나갈 경우의 수는 9가지라구."
"멍청아, 10가지다."
"그래 10가지! 10가지라구! 자자, 어떻게 할꺼?"
에반이 방방대며 묻자, 조용히 있던 리안이 이제는 어깨넘어 가슴까지 내려온 자신의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다
역시나 같이 검지손가락으로 정령의 아이들이 있는 곳을 가르켰다.
"당연히 정령의 주인들이 나가셔야지, 이런건."
"저 역시 구경하는 걸 좋아ㅡ"
"이런것도 경험이라구. 안 그래, 은해야?"
반박하려는 은해에게 웃으며 되묻는 리안의 모습은 어떻게 보면 지금 그 누구보다도 사악해보였다.
첫 승부자는 에반이었다.
심히 걱정이 되는지, 불안한 기색은 보이지 않았지만 리안과 로웰, 로웨나는 에반에게 몇번이고 신신당부를 했다.
"무턱대고 달려들지 말고, 상황을 잘보고서 상대를 파악해. 신중히 공격해서 단박에 죽이란 말이야."
"그러니까 로웨나, 네 말은ㅡ"
에반이 단순하게 정리했다.
"싸워서 이겨라. 이거 아니야?"
"그래! 싸워서 이기라는 건데, 그 방법을 알려주는 거잖아!!"
로웨나의 주먹이 불의 기사의 머리를 강타한 것은 당연한 일이고, 로웰은 결국 안절부절 못하며 '내가 대신 나갈까'
라는 말까지 하고 말았다. 그러나 에반은 벌써 상대할 마계인이 있는 곳으로 달려나간 뒤였다.
리안과 에델린이 동시에 말했다.
"천하에서 가장 단순무식한 정령이군."
"그냥 내버려두죠, 뭐. 알아서 하시겠죠."
헤롤드가 눈웃음을 지으며 말하자, 두 사람은 고개를 돌려 에반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경기장에 나간 불의 기사는 예상외로 진지한 모습이었다.
몸을 풀고있는지, 스트레칭도 하고 요상한 포즈를 취하기도 하는 저쪽에 있는 마계인은 근육이 불끈불끈한 중년 아저씨 정도 되는 나이인 것 같았다.
턱수염과 콧수염이 더부룩하게 난 사내의 목에 검은색 마계의 문양이 보이자, 에반은 눈살을 찌푸렸다.
"아무래도 저 모양, 마음에 안 든단 말이야."
에반이 허리를 양쪽으로 돌리면서 중얼거리자, 동시에 그의 양 허리에서 뼈가 잘 정리됬다는 뜻의 뿌드득 소리가 나고,
불의 기사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의 검을 들고 나갔다.
마계인은 천천히 걸어나왔다.
쇠고랑이 달린 커다란 검을 들고 나온 그를 본 에반은 다시금 눈살을 찌푸렸다.
"시합 개시!"
심판의 역활을 맡은 로웨나가 외치자, 상대는 단숨에 에반에게 달려들었다.
"흐앗!!"
쾅!쾅!쾅!
기합을 힘있게 내며 에반에게 후려친 공격들은 모두 불의 기사의 방어에 의해 그 통로를 막혔지만,
그것의 힘은 보통이 아니었던지 '챙' 이 아닌 무언가 깨부서지는 소리가 날 뿐이었다.
생각보다 막는 것이 힘들지 않았던 에반이 물었다.
"아저씨, 끝났어?"
에반의 모습은 사라졌다.
마계인이 '앗' 하는 사이에 그의 앞에서 나타난 불의 기사는 가히 놀라운 속도로 그에게 검을 내리쳤다.
챙!!
가까스로 공격을 막아낸 마계인은 힘들게 막은 만큼 발이 뒤로 끌리자, 식은땀을 흘렸다.
젊은데도 대단한 정령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가 말은 안 했지만, 이 중년의 마계인은 이 무리의 부대장이었기 때문에
그의 힘 역시 보통은 아니었으므로 에반에게 놀랐으리라.
마계인은 안돼겠다 싶었는지, 검에서 힘을 뺌과 동시에 에반에게 주먹을 날렸다.
퍼어어억!!!
미처 방어하지 못한 에반의 배를 강타한 마계인의 주먹에, 불의 기사는 뒤로 쭈욱 끌리고 말았다.
배를 움켜쥔 에반이 다시 정신을 차리고 자세를 바로잡자 저쪽에서 구경하고 있던 마계인들은 경악하고 말았다.
"많이 컸군."
로웰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자세를 잡는 에반을 바라볼 뿐이었다.
일행은 그저 '굉장히 쎄다' 라는 생각을 한 채, 저 주먹에 에반이 맞는 순간 눈살을 찌푸렸으나
마계인들은 자신들 무리를 습격한 베어맨을 한방에 잡은 저 무시무시한 주먹에 일어나는 에반이 신기할 뿐이었다.
입가에 흘러내린 피를 주먹으로 스윽 닦으며 에반이 웃었다.
"뭐야, 아저씨! 주먹써도 되는거였어?"
"끝났군."
에델린의 말에 리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상황을 잘 모르는 마계인은 이번엔 절대로 안 놓치리라 라는 심정으로 눈을 부릅뜬채 에반을 바라보았으나,
곧 그의 모습이 두개로 보이더니만 그 자리에는 그가 온데간데 없고, 정신의 차려보니 그의 주먹이 자신의 볼에 막 닿을 때였다.
하지만 피하기에는 너무나도 늦은 시간이었다.
퍼어어억!!!!
뿌드득.
둔탁한 마찰음이 들리고, 단단한 무언가가 부서지는 소리가 중년 남자의 얼굴에서 들려왔다.
마계인은 힘없이 쓰러졌다. 아니, 죽었다고 해야지 옳았다.
리안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대련보다는 주먹에 강한 녀석이니까 말이지. 기억나냐, 에델린?"
"음?"
에델린이 승리의 함성을 지르며 은해에게 안기는 에반을 보고 눈살을 조금 찌푸리다 반문했다.
신탁의 드래곤은 호주머니에서 담배 한 개피를 그에게 건내며 말했다.
"저 녀석이 120년 전에 드래곤 하나 때려눕힌거말이야."
"확실히 기억나는군."
물의 기사가 담배에 불을 붙히며 말했다.
"그 용가리가 아마 마계로 도망치려했었지 아마?"
"그렇지. 에반이 그때 나한테 한 말이, 드래곤의 모습으로 변신한 녀석의 면상을 주먹으로 한방 때렸는데 픽 쓰러지더라는거야.
자기도 어이가 없었다고 실실거리던 얼굴표정까지도 기억나는군."
"새끼 용이 발버둥치는 격이군. 그 녀석이 날 따라오려면 아직 100년은 일러."
신탁의 드래곤은 피식 웃었다. 은해가 천천히 경기장으로 나가는 모습을 보며, 그는 입을 열었다.
"그런데 은해 말이야."
"또 뭔가."
"성장이 정말 빨라. 마법검 사용할 때는 정말 깜짝놀랐다구. 어디서 저런 기술하고 마법을 배웠는지."
에델린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검은 눈동자로 가만히 마계인이 몸 푸는 모습을 바라보다 로웨나가 손을 흔들자 엄지 손가락을 올리는 은해의 모습이 보였다.
물의 기사가 입을 열었다.
"내가 은해를 따라가려면."
"....."
"1000년은 이르다."
의외의 말에 리안은 내심 놀랐으나, 왠지 모르게 씁쓸해보이는 그의 모습을 보며 드래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편, 은해는 무덤덤하게 저쪽에서 몸을 푸는 마계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저쪽 마계인 역시 이리저리 몸을 돌리는, 요상한 포즈를 취했지만 그것은 한번 봤던 은해에게 그다지 신기하지는 않았다.
마계인이 나왔다.
그는 굉장히 큰 검을 가지고 나왔는데, 그것은 과시하기 위함이었는지 남자는 그것을 들기도 힘들어하는 모양이었다.
양 날에 뾰족한 가시같은 것이 박혀있는, 굉장히 무식하게 생긴 검이라고 은해는 생각했다.
"이봐! 이 검이 무슨 검인 줄 아나?!!"
바락바락 외치는 마계인이 마음에 안 들었던 은해는 '내가 그걸 어떻게 아냐' 라고 중얼거렸다.
기고만장해진 남자는 계속해서 외쳤다.
"마계에서 제일가는 대장인이 특수제작한 물건이다! 이것의 파워는 아주 대단하다고- 너도 놀라 자빠질걸?"
"뭐는 주인닮는다더니, 아주 주인과 똑같이 생겼군."
"뭐가 어째?!!"
눈을 부라리며 빠직마크를 단채 외치는 마계인의 모습에,
푸른 머리의 은해는 한 손으로 검을 뽑으며 눈을 감았다.
"그런 시시한 것에 놀랄 것이면, 처음부터 나오지도 않았다."
"이..이 자식!! 감히 나를 놀렸겠다!!! 나는 동쪽 숲의 베어맨을 관리하는 마계인이라고!! 계집애처럼 생긴 너와는 차원이 틀리단 말이다!!"
시합을 시작하는 로웨나의 외침이 들리고, 은해는 마계인의 말에 전혀 반응하지 않으며 중얼거렸다.
"말이 많군. 용기는 가상하나, 안됐지만 나의 승리다."
"흥!! 계집년처럼 생긴 녀석이 뜷린 입이라고 말은 잘 하는 구나!!"
"…죽기를 자청하는 군."
바락바락 은해에게 외치고있는 마계인을 바라보며 로웰이 중얼거렸다.
중성인 엘리시아의 주인에게 가장 취약한 약점인 동시에, 분노의 발화점인 '여자'를 들이밀다니.
저 마계인들은 틀림없이 은해가 누군지 모를 것이 뻔하다고 기사는 생각했다.
은해는 눈썹하나 까딱하지 않고 마계인을 바라보았다.
"대답할 가치가 없군."
"이 자식이!!!"
순간 마계인의 눈을 번뜩 떠지더니만, 그는 은해에게 달려갔다.
달려가는 도중, 마계인의 모습이 천천히 바뀌기 시작했다. 옷은 망토가 달린 옷으로 변하고, 검은 낫으로 바뀌었으며, 얼굴에 가면을 쓰고 있었다.
심판을 보고있던 로웨나는 인상을 찌푸리고서 리안과 동시에 말했다.
"마계의 사신이군."
"사신이라. 참 좋군 그래."
사신은 거의 공중을 날아가며 은해에게 다가갔다.
검을 뽑은 채 아무 미동도 않는 은해를 보며, 사신은 틀림없이 자신의 본 모습을 보고 놀랐다싶어 기분이 좋았다.
그는 낫을 들었다.
"끝이다!!"
그리고 마계인은 그대로 동작을 중지하고 말았다.
은해의 검이 그것을 막은 것도 아니었다. 누군가가 마법을 부린 것도 아니었다.
몸이 굳어져서 움직이지 않았다. 손은 두려움으로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왜? 어째서? 은해는 그저 그 푸른 눈으로 자신을 지긋이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무언가가 자신을 누르는 위압감. 그리고 푸른 눈을 본 순간 밀려오는 두려움.
꿈쩍도 안 하는 사신에게 은해는 물었다.
"갖고있던 지병이 도진건가? 왜 공격하지 않지."
말도 안돼!
은해가 자신에게 시선을 떼자, 그제야 몸이 움직이는 것이었다.
가면의 구멍을 통해 사신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곧, 그는 자신이 두려움에 굳어진 것이 아니라는 판단을 내리고는 낫에 기(氣)를 모았다.
마계인들이 소리쳤다.
"저걸 쓰려고?!!"
"정신나갔어?!! 모두 피해!!"
"호오?"
은해와 거리를 저만치 떨어뜨린채, 뭔가를 하려고 검에 기를 모으는 사신을 본 은해는
자신의 검을 어깨에 짊어지며 중얼거렸다.
"녹스 국(國)의 도서관에서 읽은 적있지. 마계의 중위급 간부들이 애용한다는 마용(魔龍)파 로군."
마용파는 말 그대로 마계의 용의 소환하여 불러내는 것이었다.
그것의 수는 사용하는 자의 힘의 세기에 따라 틀린데, 마계에서 사용하는 상황에서는 처음이었던 것이다.
사신은 그대로 그 커다란 검은 기를 은해에게 발사했다.
그것은 다섯개의 용으로 변해 은해에게 재빨리 접근했다.
"귀엽군."
은해는 중얼거렸다.
검을 들지 않은 왼손을 쭈욱 펴서 앞으로 내밀자, 다섯마리의 용은 다가오던 것을 곧바로 중지했다.
정령의 아이라는 것을 느낀 용들은 어쩔 줄 몰라했고 은해는 그대로 내려놓았던 검을 수직으로 올렸다.
파파팟!
은해의 기운은 건조한 지역의 흙을 튀기며 용들을 향해 날아갔고,
잠시 뒤 기운으로 만들어진 용들과 은해의 공격이 충돌하는 폭팔음이 생겼다.
검을 집어넣으며, 은해는 뿌옇게 흙먼지가 날리는 가운데 일행이 있는 곳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하앗!!!!"
아직 포기하지 못한 사신이 언제 뒤에 접근했는지, 은해의 뒤로 다가와 낫을 휘둘렀다.
아무런 내색 않고 비교적 여유롭게 피한 은해가 자세를 바로잡았다.
사신은 고개를 쳐들며 외쳤다.
"정령계의 이방인에게 마계의 수도로 보낼 수는 없다!!!"
"어라, 그래?"
자기들이 먼저 대련하자고 했으면서. 일행의 머리속에는 하나같이 같은 말이 떠올랐지만,
은해는 웃으며 허리띠에서 은색 권총을 하나 꺼냈다.
"그럼 어서 죽어줘."
탕!탕탕!!
총구가 사신의 앞으로 겨눠지고, 총소리가 그들 주위에 울려퍼졌다.
두번째 대련 역시 은해 일행의 승.
탄환을 바닥에 버리며 걸어오는 은해에게 에델린이 물었다.
"레드포드 형 신종상품이잖아? 이걸 어디서 구했나."
"로웨나가 선물로. 가질래요?"
"사양한다. 기계 체질이 아니기 때문에."
권총을 구경하던 에델린은 다시 은해에게 돌려주었다.
은해가 생각하기에, 바벨리아는 저쪽세상의 연도로 2060년 정도의 첨단 과학이 발달된 것 같았고,
레드포드는 저쪽세상의 현재 즉, 2007년 정도의 과학이었다.
중세시대를 지나고 있는 엘리시아에 비해 은해가 다루기에는 저쪽세상과 같은 연대로 달리고 있는 레드포드의 무기가
가장 다루기 쉬웠다. 그중에 하나가 총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제 차례군요."
편히 앉아서 구경하고 있던 헤롤드가 자리를 털고 일어나자, 리안이 고개를 돌렸다.
"단숨에 끝내라고. 시간이 없어."
"생각보다 시간은 많습니다."
헬르제라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내기걸까?"
"그럼 당신은 오래걸린다, 나는 빨리 걸린다 로 하죠. 내기 걸 대상은?"
"마계의 수도로 가서 밥을 사주는 거지, 뭐."
"좋습니다. 재미있군요."
바벨리아의 주인은 마계인이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자신만만한 표정이 그의 얼굴에 깃들어있었다.
"당연히 저의 승리입니다."
"정령의 아이라면 항상 하는 말이지. 어서 갔다오기나 하셔."
쫒아내듯 손을 내젓는 신탁의 드래곤의 모습을 바라보던 헤롤드는 고개를 돌려 발걸음을 옮기며 검을 뽑았다.
로웨나는 헤롤드가 오는 것을 보자마자 시작을 외쳤고, 다가오는 그를 힐끔 바라본 마계인은 두 손을 모으며 외쳤다.
"거대화!"
"거대화?"
에델린이 중얼거렸다.
말 그대로 마계인은 헤롤드의 3배 정도 되는 몸으로 부풀기 시작했다.
그것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바벨리아의 주인은 검을 뽑아든채 계속해서 걸어갔다.
"죽어라!"
마계인이 우렁차게 외치며 주먹을 내밀었다.
그것은 헤롤드가 방금까지 있던 자리를 쳤으며, 그 바닥은 주먹모양 그대로 내려앉고 말았다.
정령의 주인은 계속해서 다가갔다.
그리고 잠시뒤, 그의 모습이 사라졌다.
"응?"
한바퀴 돌며 주위를 바라본 거인은 아무것도 없자, 두리번 거리기 시작했다.
헤롤드가 나타난 것은 10초 정도 후였다.
저만치 떨어져서 모습을 나타낸 헤롤드를 보며, 마계인은 비웃었다.
"내가 어지간히 무서웠나보군. 도망치는 건가, 비겁자!"
"잔말 말고 죽으시지."
헤롤드가 대답하며 칼을 휘둘렀다.
그리고 아주 미약한 빛이 마계인을 향해 날아갔고, 거인은 웃었다.
"으하하하하!!! 뭐야, 그것도 공격인가?"
"나의 승리다."
헤롤드는 검을 집어넣고 돌아섰다.
동시에 빛은 거인의 발 밑에 떨어졌고, 그 10초. 10초동안 헤롤드가 거인의 주위에 그려놓은
커다란 원은 그것이 떨어지자마자 발동했다.
원을 그은 금에서 빛이 나왔고, 발밑에 떨어진 빛은 대지에 흡수되어 원을 향해 스믈스믈 흘러갔다.
아까 트리엠플의 폭팔음보다 더 커다란 굉음이 귀를 자극했다.
대지는 흔들렸고, 헤롤드는 웃었다.
그리고 리안은 힘없는 웃음소리를 내며 고개를 숙였다.
"…내 돈이 날아가는 군."
***
이번 편을 길게쓰려고 몇일 잡고 썼어요.;
죄송합니다, 늦게나왔죠?
ㅜ도서관을 다니느라 하루에 쓰는 시간이 30분 정도도 안돼네요.
오늘 끝났습니다; 늦게 나온점 죄송합니다!;;;;
첫댓글 은해가 총을쓰다니+ ㅅ+다들 싸움도 잘하고..정령왕들은어떻게될까요..ㅠ
정령왕들과 실베스터는 과연...?? 히히 읽어주세서 감사드려요!
재밌어요 ㅎㅎㅎㅎ 건방진 마계인들!!!!!ㅋㅋㅋ
ㅋㅋ 건방진 마계인들이죠;;ㅋㅋ
>.< 담편원츄!!!!!
땡큐!!
잼써여.,.
감사합니다!
길어서 좋아여^^
감사합니다!!
담편을 기다리며 ~ 히힛~
감사합니다!>.<
승산없는 내기는 하면안되죠~~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