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를 중심으로한 보헤미아 지방은 예로부터 유럽의 길목으로 앞선 문화와 여러 사상들이 모이는 중심지였다.
과학자 케플러와 아인슈타인, 음악가 모차르트와 드보르작, 소설가 카프카 등이 이곳에서 활동했다.
이미 1410년에 만들어진 구시가 광장의 천문시계는 당시 체코 과학의 결정판으로 현재 작동하는 천문 시계 중
가장 오래 되었다. 놀라운 것은 현재 작동하는 부품이 거의 모두가 당시의 것이란다.
정시가 되어 해골이 종을치면 위쪽에 있는 조그마한 창문 2개가 열리면서 인형들(예수의 12제자)이 돌아간다.
베드로와 바오로 성인을 시작으로 12사도가 2사람씩 돌아가며 나온다.
두 개의 원반 옆에는 각각 네 개의 조각이 달려있다.
허무와 탐욕, 죽음과 낭비를 상징하는 인간 세상의 모습이다.
수 분간의 이 광경을 보기위해 세계 각처에서 관광객들이 구름처럼 몰려든다.
천문시계
바츨라프 광장은 1968년 ‘프라하의 봄’의 역사적 현장이다.
그 해 봄, 체코에는 민주화 바람이 일었다.
그러나 8월 20일 소련군은 탱크를 앞세워 이러한 시민들의 열망을 무참히 짓밟았다.
자유를 포기할 수 없었던 두 청년은 자신의 몸을 불사르며 자유와 민주주의를 외치며 죽어갔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뒤,
독일 점령으로 부터 42년 만에 프라하 시민들은 그 험난한 고난을 이기고 민주주의를 이루어냈다.
서거 500주년을 맞은 1915년에 세워진 보혜미아의 독립영웅 얀 후스 동상의 기단에는 체코어로
이런 말이 적혀 있다고 한다.
'서로를 사랑하라.
모든 이들 앞에서 진실(혹은 정의)을 부정하지 마라'.
후스가 감옥에서 보낸 열 번째 편지의 마지막에 적었던 글이다.
붉은 지붕의 시가지,
몰다우강과 까를교, 프라하성과 성비트 대성당 그리고 스테인드 글라스로 장식한 아름다운 성당들,
곳곳에서 마주하는 체코인들의 예술혼과 자유를 향한 프라하 시민들의 저항정신,
전통음식 꼴레노와 흑맥주의 쓴맛....
붉은 지붕을 이고 있는 건축물은 최소 300년은 넘었다.
보헤미아의 독립 영웅인 구시가지 광장(종교개혁 광장)중앙의 얀 후스 동상
몰다우 강 주변의 풍경
강 우측은 구시가지이고 좌측은 프라하 성이 있는 신시가지다
구시가 광장의 얀 후스 동상 뒤로 틴 성당이 조명을 밝혔다.
- 프라하의 밤
레스토랑을 찾아 저녘을 먹고 차 한잔을 마시니 8시가 되어간다.
동유럽의 겨울 해끝은 유난히 짧다.
불빛은 휘황했지만 너무 늦었나 싶어 갑자기 서둘러진다.
급히 계산을 하고 왔던 길을 되짚으며 묵고있는 호텔을 찾는데 뭔가 이상하다.
분명 맞는 길인 것 같은데...
지나가는 관광객에게 호텔 이름을 말하니 모른단다.
같은 유럽이라도 오랜 사회주의국가였던 프라하는 선입견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느낌이 다르다.
겁이난 나는 지나가는 택시를 불렀다.
겨우 호텔과의 5분거리에서 헤메었다.
긴장감 때문이었는지 방에 들어서자 갑자기 피로가 몰려왔다.
베를린에서 숙소를 예약할 때 아주머니께선 한국인이 운영하는 민박집을 권하셨다.
'예까지 와서 한국타령이냐,
고독해야 해 할 여행자가 한국말로 떠들썩한 것도 맞지 않는다'며 중얼중얼..
'고독 좋아하네, 길이라도 잃으면 어쩔려고..,'
아주머니의 쨍쨍한 음성이 귓가에 맴돌았다.
어느 한 날 저녁을 먹은 '우 베이보두'
여행 가이드에 소개된 음식점으로 물어 물어 찾아갔는데 테이블의 절반은 한국에서 온 관광객이었다.
매운 맛이 당겨 헝가리의 전통음식 굴라쉬를 먹었다.
프라하의 밤거리
일몰 후 카를교 조각상과 프라하 성
불 밝힌 프라하성과 까를교의 야경
몰다우강을 따라 늘어선 노천 카페들,
자리비용은 만만치 않지만 프라하 성과 강의 야경을 보려고 사람들로 늘 붐빈다
몰다우 강 카페에서 스메타나의 '나의조국' 을 들었다.
동유럽의 차가운 강바람이 옷 속으로 스몄다.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낮과는 다른 얼굴로 프라하의 밤은 또 다른 세상을 보여준다.
형형색색 불빛을 밝힌 골목을 이리저리 돌아 몰다우 강으로 향했다.
찬란한 불빛의 아름다움에 한숨이 절로 나온다.
갑자기 떠오르는 가족 생각에 이방인의 눈가에 눈물이 맺힌다.
지난 3개월,
시댁인 뉴욕에서 미국 동부를 돌고 유럽으로와 중부와 동유럽을 여행했다.
집생각, 서울생각..
이제는 마무리해야 할 여정과 일상으로 돌아가야 할 일들이 아득하다.
익명의 종이기를... 그래서 시작한 여행이었다.
무언가 불쌍히 여기고 쓸쓸해야 할 대상이 있다면 그것은 오로지 '자기 자신 뿐' 일지도 모른다.
아직도 남아있는 사회주의 상흔과 ‘프라하 봄’ 당시의 아픈 역사가 곳곳에 보이는 '프라하 밤'의
침묵은 자신의 고독만큼이나 아파 보였다.
동트기 전 새벽,
몰다우강의 카를교를 건너면서 올려다 본 '프러시안불루'의 하늘과
레몬색 가로등 불빛아래 고요히 숨을 고르는 프라하는
낮 동안 관광객의 시달림으로 부터 비로소 고독할 수 있었고,
비로소 자신의 향기를 내뿜고 있었다.
새벽 어스름 여명속의 몰다우강과 프라하성 & 프러시안 블루의 하늘
길을 잃고 헤메다 유유히 흐르는 몰다우 강물에 비친 불빛만이 내 존재를 암시할 때,
그 도시가 지닌 오래된 시간을 기억하며,
그 강가에 펼쳐졌을 아름다운 숲과 초원과 굽어보던 언덕을 추억하며
몰다우 강물은 저 혼자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스메타나의 '나의조국'을 들으며
동방의 조그만 내 나라 대한민국을 생각하며 울었다.
격변의 세월을 견디며 꿋꿋이 지켜왔던 민족에 대한 깊은 애정을
스메타나는 때로는 애조로,
때로는 자조적인 격려와 용기로,
그리고 희망을 담은 힘찬 리듬으로 변치않는 몰다우강을 그곳에 흐르게 했다.
뼈속까지 스미던 이방인의 고독과 외로움,
그리고 그 순간 들었던 스메타나의 '나의조국'
그 감동을 기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