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대표 남자배구팀 오른쪽 공격수 박철우(24·현대캐피탈)가 대표팀 이상렬(34) 코치로부터 폭행당한 사건이 체육계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대한체육회는 박용성 회장이 직접 “진상 조사 후 구타한 코치를 퇴출시키고 형사 고발하라”고 지시할 정도로 초강경 입장이고, 이런 기류를 전해 들은 대한배구협회는 서둘러 이 코치에게 무기한 자격정지 징계를 내렸다. 박철우가 김호철 대표팀 감독의 소속팀 선수이고, 김 감독이 이 코치의 폭행을 묵인한 듯한 정황도 포착되고 있어 사건의 배경을 둘러싼 의혹도 커지고 있다.
◆대한체육회, “폭행 코치는 용서 안 돼”=대한체육회 박용성 회장이 단단히 화가 났다. 박 회장은 지난 주말 사건 보고를 받은 뒤 “구타를 한 코치는 체육계에서 영구 퇴출시켜야 한다”며 “배구협회를 통해 해당 코치를 관할 경찰서에 형사 고발하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박 회장은 올해 3월 취임 후 체육계 폭행 관행을 없애기 위해 엄격한 기준을 마련해서 시행해 왔다. 그런데도 체육회가 운영하는 태릉선수촌 안에서, 대표선수가 코치에게 무차별 구타를 당하는 사건이 일어나자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박 회장은 “배구협회의 처분이 미흡할 경우 내가 직접 나서겠다”고도 말했다.
실제로 선수 폭행과 관련해 올해 펜싱 국가대표 이석 코치가 무기한 자격정지, 한양대 농구부 김춘수 감독이 2년 자격정지 징계를 받고 현직을 떠났다. 최근 펜싱협회에서 이 코치의 사면을 요청한 것과 관련, 박 회장은 “협회도 정신 차려야 한다. 누가 없으면 국제대회에서 성적을 못 낸다는 게 말이 되느냐. 그런 지도자가 만든 메달이라면 안 따도 좋다”며 “징계를 풀어주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못을 박았다.
불똥이 튄 배구협회는 진화에 급급해하고 있다. 협회는 19일 긴급 상무이사회를 열고 이상렬 코치에게 무기한 자격정지 처분을 내렸다. 협회는 “박철우 가족이 형사 처벌을 원치 않는다”며 형사 고발까지는 가지 않으려는 분위기다.
◆그날 저녁에 무슨 일이=박철우는 18일 밤 서울 강남의 한 음식점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17일 오후 6시쯤 태릉선수촌 체육관에서 대표팀 훈련이 끝난 뒤 모든 선수가 지켜보는 가운데 이 코치로부터 구타당했다”고 주장했다. 왼쪽 얼굴이 심하게 긁힌 박철우는 복부의 구타 상처를 보여주고 진단서도 공개했다.
때린 이 코치와 맞은 박철우의 주장은 엇갈린다. 이 코치는 “나는 이전에 선수를 때린 적이 없다. 요즘 젊은 프로선수들이 대표팀 코치를 무시한다. 이번 일도 선수가 대드는 바람에 이성을 잃어 발생했다”고 말했다. 박철우는 “나는 대든 적이 없다. 이 코치가 전에도 선수들에게 모욕적인 말을 많이 했다”며 이전에도 폭행이 있었음을 암시하는 말을 했다.
박철우는 폭행을 당한 뒤 대표팀 김호철 감독을 찾아가 면담을 했다. 하지만 뚜렷한 대책을 찾지 못한 채 이날 밤 태릉선수촌을 나갔고, 다음 날 부모·누나 등이 참석한 가운데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폭행 미스터리=박철우는 김호철 감독 소속팀인 현대캐피탈의 주포다. 그래서 김 감독이 이번 사건을 방조 또는 묵인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우발적이라고 해도 코치가 감독 사인 없이 주축선수를 심하게 폭행할 수 있겠느냐는 지적이다. 이 코치는 “사건이 난 뒤 감독님께 보고를 했다. 그랬더니 감독님이 ‘그래, 걔는 좀 문제가 있어’라고 말씀하셨다”고 기자에게 밝혔다. 또 심하게 폭행당한 박철우가 김 감독을 찾아갔음에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점도 납득하기 힘들다.
이와 관련, 배구계에서는 박철우와 그의 연인이자 전 농구선수였던 신혜인(삼성화재 신치용 감독의 딸)이 얽힌 복잡한 문제가 폭발했다는 견해가 나돈다. 현대캐피탈 측에서는 “박철우가 배구단에 관련된 얘기들을 신혜인에게 전달하고, 그게 곧바로 삼성화재로 흘러 들어간다”며 박철우에게 의혹의 시선을 보내왔다. 하지만 박철우 측은 “만나면 배구 얘기도 하지만 팀의 민감한 상황을 알려준 적은 전혀 없다”고 부인했다. 신치용 감독은 이번 사태에 대해 “배구인으로서 부끄러운 일이다. 딸과 관련된 얘기는 오해의 소지가 많아 언급은 하지 않겠다. 하지만 상식 선에서 판단해 달라”고 말했다. 박철우는 26일 필리핀에서 개막하는 아시아선수권에는 출전하지 않기로 했다. 김 감독은 대표팀 감독 사의를 밝혔다.
배구 대표팀은 19일 밤 태릉선수촌을 나와 경기도 수원으로 훈련장소를 옮겼다. 한편 대한체육회(KOC)는 배구대표팀의 선수촌 퇴촌과 관계없이 21일 긴급 간부회의를 열고 징계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