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식(李植)-효설우음(曉雪偶吟)(눈 내리는 새벽에 우연히 읊다)
凍水鳴何細(동수명하세) 얼음장 밑으로 쫄쫄 물이 흐르는
深宵靜不風(심소정불풍)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고요한 이 밤
忽聞山木響(홀문산목향) 문득 툭툭 가지 꺾이는 소리 들려와
知是雪花濛(지시설화몽) 눈이 내린 것을 알 수 있었네
卷幔窓全白(권만창전백) 휘장을 걷고 보니 창밖이 새하얀데
開爐火失紅(개로화실홍) 화롯불을 쑤석여도 불씨 보이지 않네
會看晴旭動(회간청욱동) 날이 개고 아침 해가 솟아오르면
千嶂玉朧朧(천장옥롱롱) 천 개의 산이 희뿌연 옥빛으로 변해 있으리
*위 시는 “한시 감상 景경, 자연을 노래하다(한국고전번역원 엮음)”(택당집澤堂集)에 실려 있는 것을 옮겨 본 것입니다.
*하승현님은 “조선중기의 대표적 학자이나 한문사대가에 포함될 만큼 문장이 뛰어났던 택당 이식의 작품이다.
모두가 잠든 고요한 밤에 깨어 있는 사람은 아주 작은 자연의 움직임까지도 놓치지 ㅇ낳고 느낄 수 있다. 어둠 속에서 사물이 보이지 않을 때 귀는 오히려 더 밝아져서 보이지 않는 풍경도 들려오는 것들을 통해 그려볼 수 있게 된다.
시인은 깊고 고요한 밤에 홀로 깨어 있다. 바람 소리도 없이 고요한 가운데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소리가 가늘게 쫄쫄거리는 것을 보니, 추운 날씨에 시내가 얼어붙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소리를 들으면서 시냇가 바위에 수정처럼 맑게 얼어붙은 얼음과 그 사이로 가늘게 흐르는 시냇물을 떠올린다. 그러던 차에 먼 데서 툭툭 하고 나뭇가지 꺾이는 소리가 들려온다. 쌓인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나뭇가지가 한순간 부러지며 내는 소리다. 간밤에 눈이 많이 내렸구나 싶다 둘러친 휘장을 열어젖히니 창밖이 훤하다. 새벽 찬 기운에 화롯불을 쑤석거려 보지만 이미 다 재가 되어 불시가 보이지 않는다. 나뭇가지가 꺾일 정조로 눈이 왔으니, 봉우리마다 설산으로 변해 있겠구나 생각한다.
깊은 밤, 눈이 내리는 풍경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혀 주는 힘이 있다. 소복소복 눈이 내리는 모습을 떠올릴 때 들떠 일어나던 생각들도 함께 가라앉아서일까?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한 모습을 그려볼 때 내 마음에 있던 복잡한 생각들도 다 정화되어서일까? 어느 시인의 시에서처럼 포근히 내려오는 눈발 속에서는 ‘괜찮다’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택당 선생은 얼음장 밑으로 가늘게 흐르는 물, 눈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꺾이는 나뭇가지, 화롯불 등 겨울의 정취를 듬뿍 담은 글감으로 작품을 훌륭하게 완성하였다. 덕분에 소나무 가지가 꺾이는 소리를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나 같은 ‘서울 촌사람’도 시를 통해 눈 내린 골짜기의 얼음장 밑으로 흐르는 시냇물 소리를 들으며 정신을 씻을 수 있다. 400년 전 눈 오는 날 새벽에 읊은 시인의 노래가 시간의 흐름을 따라 흘러와 오늘 우리의 마음을 적신다.”라고 감상평을 하셨습니다.
*이식[李植, 1584~1647, 자 여고(汝固), 호 택당(澤堂), 이칭 남궁외사(南宮外史), 호 택구거사(澤癯居士), 시호 문정(文靖), 본관 덕수(德水)]-조선시대 대사헌, 형조판서, 예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좌의정 이행(李荇)의 현손(玄孫)이다. 아버지는 좌찬성에 증직된 이안성(李安性)이고 어머니는 무송 윤씨(茂松尹氏)로 공조참판 윤옥(尹玉)의 딸이다.
이식은 1610년(광해군 2) 별시문과에 급제했다. 1613년 세자에게 경사(經史)와 도의(道義)를 가르친 정7품에 해당하는 설서(說書)를 거쳐 1616년 북평사(北評事)가 되었다. 이듬해에 선전관을 지냈다.
1618년 폐모론이 일어나자 정계에서 은퇴하여 경기도 지평(砥平)으로 낙향했다. 그 후에 남한강변에 택풍당(澤風堂)을 짓고 오직 학문에만 전념했다. 호를 택당이라 한 것은 여기에 연유한다. 1621년 관직에 나오라는 명을 계속 받았으나 이를 거부했다. 그래서 왕의 명령을 어겼다는 죄로 구속되기도 했다.
1623년 인조반정이 일어나 교분이 있었던 친구들이 조정의 주요직에 진출하게 되자 발탁되어 이조좌랑에 등용됐다. 이듬해에 부수찬 · 응교 · 사간 · 집의 등을 역임했다.
1625년(인조 3) 예조참의 · 동부승지 · 우참찬 등을 역임했고 다음해에 대사간 · 대사성(大司成) · 좌부승지 등을 지냈고 1632년까지 대사간을 세 차례 역임했다. 임금의 종실을 사사로이 기리고 관직을 이유 없이 높이는 일이 법도에 어긋남을 논하다가 인조의 노여움을 사 간성현감으로 좌천되기도 했다. 1633년에 부제학을 거쳐 1636년에 대제학이 되었고, 1640년에 이조참판을 역임하였다.
이식은 1642년에 김상헌(金尙憲)과 함께 청나라를 배척할 것을 주장한다고 하여 중국의 심양(瀋陽)으로 잡혀갔다. 돌아올 때에 다시 의주(義州)에서 청나라 관리에게 붙잡혔으나 탈출하여 돌아왔다. 1643년 대사헌과 형조판서를, 1644년 예조 · 이조의 판서 등 조정의 주요직을 두루 역임했다.
1646년 별시관(別試官)으로 과거 시험의 문제를 출제하였는데 그가 출제한 문제에 역모의 뜻이 있다고 하여 관직이 삭탈되기도 했다.
이식은 문장이 뛰어나 신흠(申欽) · 이정구(李廷龜) · 장유(張維)와 함께 한문사대가로 꼽혔으며 그의 문하에서 많은 문인과 학자가 배출됐다.
문집으로는 『택당집』이 전하는데 한시의 모든 갈래에 두루 능숙했고 많은 작품을 남겼다. 대체로 정경의 묘사가 뛰어나고 감상에 치우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풍광을 읊은 시가 많다. 고체에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고 오언율시에 특색을 발휘했다. 『초학자훈증집(初學字訓增輯)』 · 『두시비해(杜詩批解)』 등을 저술했으며 『수성지(水城志)』 · 『야사초본(野史初本)』 등을 편찬했다.
김택영(金澤榮)에 의하여 여한구대가(麗韓九大家)의 한 사람으로 꼽히는 그의 문장은 우리나라의 정통적인 고문으로 높이 평가받는다. 『여한십가문초(麗韓十家文鈔)』에는 「사간원차자(司諫院箚子)」 등의 6편의 글이 수록되어 있다.
여주의 기천서원(沂川書院)에 제향됐으며 시호는 문정(文靖)이다. 1686년 영의정에 추증됐다.
*濛(몽) : 가랑비 올 몽 1.가랑비가 오다 2. 흐릿하다 3. 큰물(비가 많이 와서 강이나 개천에 갑자기 크게 불은 물), 溕(동자), 靀(동자)
*幔(만) : 막 만, 1.막 2.장막(帳幕) 3.천막(天幕), 㡢(속자), 㡢(속자)
*旭(욱) : 아침 해 욱 1.아침 해, 돋은 해 2.해 돋는 모양 3.득의(得意)한 모양, 만족(滿足)한 모양, 旮(속자)
*嶂(장) : 산봉우리 장 1.산봉우리 2.높고 험(險)한 산(山) 3.산봉우리를 둘리다(둘레에 선을 치거나 벽 따위를 쌓다)
*朧(롱) : 흐릿할 롱(농) 1.흐릿하다, 흐리다 2.분명(分明)하지 아니하다 3.(달빛)희미하다(稀微--), 胧(간체자), 矓(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