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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아비라 원문보기 글쓴이: 자은양
三句 |
三禪 |
三玄三要 |
四料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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四賓主 |
四照用 |
五宗 | ||||||||||
3 구 |
3 선 |
3 현 3요 |
4료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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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빈주 |
4조용 |
5종 | ||||||||||
第三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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義理禪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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奪人不奪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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賓中賓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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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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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리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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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탈인불탈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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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빈중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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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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奪人不奪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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賓中主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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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안 | ||||||||
第二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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如來禪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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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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二.탈인불탈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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二.빈중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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僞仰 | ||||||
제2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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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래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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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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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앙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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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境兩俱奪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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曹洞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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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 |
.인경양구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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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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主中賓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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四照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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雲門 | ||||||||
第一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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祖師禪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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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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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境俱不奪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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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주중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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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조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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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문 | ||||
제 1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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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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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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四.인경구불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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主中主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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臨濟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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四.주중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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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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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은 <선문수경(禪門手鏡)>가운데서 발췌한 것임) |
백파(白坡)는 <선문수경(禪門手鏡)>에서 임제의 삼구. 삼현. 삼요. 사료간. 사빈주를 골자로 하여 세 가지 선[三禪]과 오가종파[五宗]를 차례차례로 배치해서 구성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임제의 본 뜻과 옛조사들의 법문에 크게 어긋나며 법을 개트리는 찬술이므로, 이를 백파(白坡)의 「옛거울을 깨뜨림[破鏡]」이라고 한다.
한 구절에 반드시 삼현문을 갖추고, 일현문에 반드시 삼요를 갖추어서, 방편도 있고 활용도 있다.
임제는 「한 구절 가운데 반드시 삼현문을 갖추어야 하고 일현문에 반드시 삼요를 갖추어야 한다」고 하여, 구절마다 삼현이 구비되어 있으며 또 현현(玄玄)마다 삼요가 구비되어 있다 하였으니, 이는 근기의 활용을 나타낸 것이지 법문의 깊고 얕음을 의미하지 않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백파는 삼구, 삼현, 삼요를 얕음으로부터 깊음으로[從淺至深] 차례차례로 배치하여 법문의 깊고 얕은 척도로 삼았으니, 임제의 본 뜻과는 정면으로 어긋난다. 비록 근기의 날카롭고 둔함에 차이가 있어서 이를 어쩌지 못하여 그렇다고 하지만, 옛조사의 법문을 드러내는 데 있어서 그 본 뜻에 위배된다면, 이는 법을 깨뜨리는 것일 뿐, 종문에서 용인하지 않는 것이다.
삼구의 도식에서 보면 삼현은 제2구에, 삼요는 제1구에 배치하였다. 삼현가운데 퐇마되어 있는 삼요가 어찌하여 삼현보다 심오하며 사위가 될 수 있는가? 이는 너무나 전도된 견해로서, 「일현 가운데 모름지기 삼요를 갖추어야 한다」고 한 임제의 법문에 역행하는 것이다.
삼현 삼요의 일은 나누기 어려우니, 뜻을 얻고 말을 잊으면 도에 친하기 쉽다. 한구절이 밝고 밝아 만상을 껴안음이여! 9월 중양절에 국화꽃이 새롭도다.
이는 유명한 분양선소(汾陽善昭)의 <삼현삼요송(三玄三要頌)>이니, 삼현 삼요를 알려면 먼저 이 게송의 뜻을 잘 이해하여야 한다.
그런데 백파는 사빈주(四賓主) 사조용(四照用) 사료간(四料簡) 등을 얕음에서 깊음으로 차례차례로 배치하였으니, 이는 옛조사의 본 뜻에 위배된다. 특히 삼현 삼요가 구비하여 깊고 얕음이 없는 삼구를 조사선(祖師禪) 여래선(如來禪) 의리선(義理禪)의 세 선에 깊고 얕음이 있게 배치한 것은 백파의 커다란 잘못으로 임제의 본 뜻에도 정면으로 위배된다.
만송(萬松)은 <종용록(從容錄)> 76칙(則) 시중(示衆)에서 말하기를,
한 구절은 세 구절을 밝히고 세 구절은 한 구절을 밝혀서, 셋과 하나가 서로 간섭하지 않으니, 향상일로가 분명하다.
라고 하여, 여기에 깊고 얕음이 없음을 말하였으니, 정론(正論)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한 「할」에 손과 주인이 나뉘고, 비춤과 활용을 한꺼번에 행한지라, 그 가운데 뜻을 알면, 한낮에 삼경을 칠 것이다.
임제의 직손(直孫)인 자명(慈明)이 이렇게 「한 할에 손과 주인이 나뉘고 비춤과 활용을 한꺼번에 행한다」고 분명히 하였는데, 어찌하여 깊고 얕음의 차제를 논할 수 있겠는가.
한 구절 가운데 삼현 삼요와 사빈주가 분명하다.
한 구절 가운데 삼현 삼요와 빈주가 분명하다.
한 구절 가운데 삼현 삼요와 사빈주가 분명하며, 사료간, 사조용도 같은 것이다.
한 스님이 오조(법연)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부처님입니까?」오조가 대답하였다. 「가슴 드러내고 발 벗었다.」「어떤 것이 불법입니가?」「대사면에도 놓아주지 않는다.」「어떤 것이 스님입니까?」「낚싯배 위의 사씨집 셋째 아들이다.」라고 하였는데 이 세 번 굴리는 말씀에서 한번의 말씀에 삼현 삼요 사료간 사빈주와 동산의 오위와 운문 삼구가 구비되었다.
한 말씀[一轉語]에 삼현 삼요와 사료간 사빈주가 구비되어 있어서 깊고 얕은 차제를 논할 수 없다 하였으니, 이것이 임제가 말한 「한 구절 속에 삼현문을 구비하였고, 일현문에 삼요를 갖추었다」고 한 본 뜻을 계승한 임제의 정통 사상이다.
양당 수좌가 서로 보고 동시에 「할」을 하자, 한 스님이 물었다. 「손과 주인이 도리어 있습니까?」대사가 대답하되, 「손과 주인이 분명하다」하고 다시 말하였다. 「임제의 손과 주인의 구절을 알고자 한다면 승당의 두 수좌에게 묻도록 하여라」
「동시에 할을 하자, 손과 주인이 분명하다」고 하였으니, 이것이 참으로 한할에 손과 주인이 나뉘고[一喝分賓主], 비춤과 활용을 한꺼번에 행하는[照用一時行] 모범이다.
분양(汾陽) 자명(慈明) 부자(父子)와 대혜(大慧)는 임제의 정통법맥을 서로 전한 대조사로서 임제의 본 뜻에 조금도 어긋나지 않는다.
백파는 일개 문자승(文字僧)으로서 옛조사의 법문을 함부로 천착하여 천고(千古)에 독약같은 논리를 날조하여 법을 파괴함을 자행하였을 뿐만 아니라, 후배를 잘못 지도하여 반야를 비방한 그 죄는 참회할 길이 없다. 「독 나무가 뜰안에 났으니, 베어버리지 않을 수 없다[毒樹生於庭中하니 不可不代이라]」고 청량(淸凉) 이 분개한 것도 이를 두고 말한 것이니, 오직 대법을 위하여 최사현정(摧邪顯正)하지 않을 수 없다.
「개도 부처의 성품이 있습니까?」다만 이 「무(無)」자는 삼현 삼요의 무기이며, 사빈 사주의 요점이다.
이처럼 삼현 삼요의 참 뜻은 바로 깨쳐야만 아는 것이니, 「조주무자(趙州 無字)」있어서 그 참 뜻을 바로 알기 우해서는 조주무자를 바로 깨쳐야 하며 문자로는 아무리 분석하여도 더욱더 모를 뿐이다. 그러므로 공부하는 이들은 분발하여 옛조사스님의 공안(公案)을 애써 참구할 것이요, 문자승의 잘못된 이론에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
또 여래선과 조사선에 대하여 백파는 여래선을 제2구에, 조사선을 제1구에 배정하여 그 깊고 얕음의 우열을 함부로 논하였다.
여래선과 조사선이 어찌 두 가지이겠는가. 우둔함을 면치 못하여 각기 검고 흰 것을 나누어서, 특별히 어긋남이로다.
남달이 바른 안목을 갖춘 임제의 바른 법맥인 원오고불(圓悟古佛)은 여래선과 조사선이두 가지가 아니며, 그 우열이 없음을 이렇게 단언하였으니, 이는 종문의 철칙이다. 백파가 어찌 원오의 법문에 역행할 수 있겠는가. 만약 역행을 시도한다면 이는 이론의 자살을 면치 못할 것이다.
「스님께서 말씀하신 법은 어떤 것입니까」대사가 말하였다.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는 것이 여래의 청정선이니라」
당(唐) 중종(中宗)의 칙사(勅使)인 설간(薛簡)이 육조스님께 법을 물으니, 자기의 법은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는[無生無滅]여래청정선」이라고 말씀하셨다. 만약 여래선보다 더 수승하고 심오한 조사선이 따로 있다면, 조사선을 <증도가(證道歌)>에서도 「여래선을 단박 깨닫고 나니, 육도만행이 본체 가운데 원만하도다[頓覺了如來禪하니 六度萬行이 體中圓이라]」고 노래하여 33조사의 정통선은 여래선임을 명백히 하였다.
본래 있는 것이 지금 있음이라, 닦지도 않고 나지도 않음이 곧 여래청정선이니라.
한 스님이 물었다. 「지금 말씀하시기를 이땅에 선이 있다고 하였는데, 어떤 것입니까?」대사가 대답하였다. 「움직이지도 않고 참선하지도 않음이 여래선이니라.」
무릇 도를 배우는 이는 반드시 먼저 갖가지 배움을 물리쳐버리고, 결코 구하지 않고 결코 집착하지 않아서 마치 맑은 바람이 귓가를 스치듯 잠깐 사이 지나쳐서, 다시 쫓아가 찾지 않으니, 이것이 여래선에 매우 깊이 드는 것이다.
조사 가운데서도 조사인 마조 백장 황벽 3대의 대조사들이 선을 표현할 때, 여래선만 말하고 조사선은 언급치 않은 것을 보면, 여래선 밖에 보다 더 우월한 조사선이 따로 없다는 확증이다. 다만 선은 당초에 여래께서 전하였는바, 여래선을 그 후에 조사들이 서로 전하였으므로 조사선으로 부른 것이지만, 그 내용에 있어서는 깊고 얕음이나 우열(優劣)이 없는 것이다. 만약 깊고 얕음이나 우열이 있다면, 육조 영가 부자(父子)와 마조 3대와 원오(圓悟)등은 조사선을 모르는 것이 되므로 여래선과 조사선에 우열과 깊고 얕음의 구분이 없음이 명백하다.
대개 여래선 조사선의 우열을 논하는 사람들은 앙산(仰山)의 법문을 인증9引證)하고 있다. 곧, 앙산이 향엄(香嚴)에게 말하기를 「여래선은 곧 사형께서 알았음을 인정하나, 조사선을 꿈에도 못보았습니다.[如來禪은 卽許師兄會어니와 祖師禪은 未夢見在로다]」고 한 것인데, 이것으로 보아, 조사선이 여래선보다 우월하다는 것이다. 피상적으로 보면 그런 것 같지만, 이는 법문의 거량(擧량)으로서 납승의 안목을 보는 극히 중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현사(玄沙)가 영운(靈雲)에게 말하기를, 「옳기는 아주 옳으나 감히 말하노니, 노형께서는 아직 사무치치 못했습니다.[諦當甚諦當하나 敢保老兄未徹在로다]」고 함과 같은 내용이다.
그러면 「꿈에도 보지 못하였다.」「아직 사무치지 못했다.」고 하였는데, 그 참뜻은 무엇인가?
한 스님이 천동각에게 물었다. 「현사가 무엇 때문에 옳기는 아주 옳으나 노형게서는 아직 사무치지 못했음을 감히 말씀드립니다고 말하였습니까?」천동각이 말하였다. 「그것은 납승기리 서로 돌이키는 시절이니라.」
여기에서 「서로 돌이키는 시절[回互時節]」을 알면 「꿈에도 보지 못함」과 「아직 사무치지 못함」의 참 뜻을 알 것이나, 만약 표현된 언구만 따라다니다가는 흙덩이 쫒는 개[韓**逐塊]의 꼴이 된다.
대 부딪치는 소리를 듣고 도를 깨달았는데도 분명히 조사선을 알지 못한다 하고, 복숭아 꽃을 보고 의심이 없어졌거늘 「노형께서 아직 철저하지 못하였음을 감히 말한다」고 하였으니, 앙산과 현사는 향엄과 영운의 땀냄새를 꿈에도 맡지 못하였다.
치절(痴絶)은 임제정맥인 밀암(密菴)의 직손(直孫)으로서, 중국 3대 명찰인 천동사(天童寺), 영은사(靈隱寺), 경산사(徑山寺)에 천자의 명을 받고 주지한 거장(巨匠)이다. 앙산의 「꿈에도 보지 못한다」함과 현사의 「철저하지 못한다」함에 대하여 치절은 반대로, 앙산과 현사가 향엄과 영운을 꿈에도 못보았다고 비판한 것이니,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이 또한 「납승의 회호시절」이다. 흙덩이 쫒는 개가 되어 언구의 표현에 죽지 말고, 사람 무는 사자[獅子咬仁]가 되어 언구의 참 뜻을 파악하여야 하는 바, 이는 정수리 위에 마혜수라의 눈을 갖춘[頂門具眼] 격식을 벗어난 대장부가 아니면 몹시 어려운 것이다.
육조, 영가 부자(父子)와 마조, 백장, 황벽의 3대가 한결같이 여래선만을 말하고 조사선의 우월능 말하지 않았으며, 앙산같은 이가 그것을 모를 까닭이 없는데 무슨 연유로 「조사선을 꿈에도 보지 못하였다」고 하였는지 필연코 매우 깊은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파와 같이 피상적인 언구만을 분석하여 망론을 편다면, 이는 분명히 눈먼 장님이니, 선문의 깊은 뜻을 논의 할 자격이 없다.
또 어떤 사람은 조사선의 근원을 진귀조사(眞歸祖師)에게 두지만, 진귀조사설 자체가 허구이다.
앞서 말한 바와같이 진귀조사설의 전거(典據)는 <선문보장록(禪門寶藏錄)>인 바, 제1절 제24칙에서는 「궁성을 넘어 설산 속으로 들어가서 별을 보고 도를 개치시고 이 법이 아직 현묘한 극치에 이르지 못함을 알고 조사인 진귀대사를 찾아 뵙고 비로소 현묘한 극치의 뜻을 얻었다」고 하고 있다. 그리하여 「별을 보고 도를 깨침[因星悟道]」은 여래선이며, 진귀조사에게서 조사선을 전수하였으므로 조사선이 우월하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러나 같은 책의 제3절 제2칙에서는 「조사 가르침의 뜻에 계합하지 못하여 멀리 설산으로 가서 조사의 집을 찾아가서 심인의 법을 전해 얻으시고 이후에 설산에서 성도하였다」고 하였으니, 이는 먼저 심인(心印)을 전해 받고 그 다음에 설산에서 성도하였다고 한다. 즉, 조사선을 전수한 다음에 여래선을 성취하였다고 한 것인데, 동일한 책자 가운데서 앞뒤의 글이 너무나 상반되어 신빙성이 없다.
그리고 학문연구가 극도로 발달한 현대에 있어서 동서고금을 통하여 진귀조사설은 오직 한국에만 전한 것이며, 또한 확실한 근거도 없으므로 학계에서는 이를 누구도 인정치 않을 뿐 아니라, 여기에 조소를 금치 못하고 있다. 유일한 전거라고 하는 <선문보장록>에서도 사실의 기술에 앞뒤가 맞지 않아 학문적 가치를 상실하고 있으므로, 진귀조사설은 선문의 우월성을 표시하려는 일종의 허구일 뿐, 다시 거론할 필요가 없다.
백파는 또한 5종에 대하여, 임제종 운문종은 제1구 조사선에, 위앙동, 조동종, 법안종은 제2구의 여래선에 배정하여 그 우열을 논하였으나, 이는 대법(大法)을 알지 못함에서 연유한 것이니, 옛 조사들은 이러한 것을 허락지 않았다.
한 스님이 오조법연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임제문하의 일입니까?」 오조가 대답하였다. 「오역죄인이 우뢰 소리를 듣는다」 「어떤 것이 운문문하의 일입니까?」 「붉은 깃발이 번쩍거린다.」 「어떤 것이 조동문하의 일입니까?」「글을 보내나 집에 닿지 않는다.」「어떤 것이 위앙문하의 일입니까?」 「부러진 비가 옛 길에 누워 있다.」 그 스님이 예배하자, 오조가 말하였다. 「법안문하의 일은 왜 묻지 않는가?」 스님이 대답했다. 「그것은 화상께 맡겨둡니다.」 오조가 말하였다. 「순라꾼이 밤에 도적질하였다.」 하고 이어 말하였다. 「알면 일이 같은 한 집안이요, 모르면 만별천차이니라.」
운문문하, 임제문하, 조동문하, 법안문하, 위앙문하를 물을 것 없이 대법을 밝히지 못하면, 각각 그 종만을 숭상하고 각각 그 스승만을 섬긴다.
깨치면 일이 같은 한 집안이요, 깨치지 못하면 만별천차로다.
앞의 글과 같이 법연과 대혜는 「알면 일이 같은 한 집안이요, 알지 못하면 만별천차」라고 하여, 5종(五宗)에 우열이나 깊고 얕음이 없으며, 그 우열을 헛되이 논하는 것은 대법(大法)을 밝히지 못하고 깨치지 못한 탓이라고 하였으나, 백파는 과연 대법을 밝히지 못하고 깨치지도 못한 눈만 늙은 중이다.
5가라고 한 것은 그 사람이 5가요 그 도가 5가가 아니다. 오늘날 참선하는 무리가 종지에 막힌 나머지 허공을 끊을 수 있다는 허망한 견해를 일으켜서 서로의 길고 짧음을 말하지만, 5가의 종사들이 대적정 속에서 코를 틀어막지 않을 수 없음을 나는 안다.
5가의 우열과 깊고 얕음을 함부로 말하는 것은 그릇됨 가운데서도 그릇된 것이다.
5가의 우열이나 깊고 얕음을 함부로 말하는 것은 대법을 깨닫지 못한데
있으며, 이러한 잘못된 견해는 허공을 자르는 격이요 그릇됨 가운데서 그릇
된 것이라고 엄하게 말씀하였으니, 참선하는 뜻 높은 이들은 오직 옛조사들
의 바른 견해만을 받들 뿐이요, 백파같은 잘못된 의견은 절대로 추종하지 말
아야 한다.
이로써 <선문수경(禪門手鏡)>의 근본적 과오를 약술했고, 그 나머지 자세
한 지엽들을 다시 논할 가치가 없다. 대체로 종문(宗門)의 일에 관하여 큰
과오를 범하게 되는 것은 흔히 그 이유가 실제로 참구하여 실제로 깨닫지
못하고 문자만을 따라가는데 있는 것이니, 오직 오매열여(寤寐一如)하고 내
외명철(內外明澈)한 정수리의 바른 안목[頂門正眼]을 갖추어서, 누구에게도
현혹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바이다.
삼현, 삼요의 사료간, 사빈주와 금강왕의 보배 칼과, 땅에 웅크린 사자와 한 「할」이 한 「할」의 자용을 하지 못함과, 고기 찾는 장대와 그림자 풀과, 한 「할」에 손과 주인이 나뉨과 비춤과 작용이 한꺼번에 행하여짐 등의 허다하게 얽힌 실오라기들을, 많은 학자들이 알음알이[情量]를 따라 주석을 내리는데, 「나의 왕궁 창고 속에는 이러한 칼이 없다」는 말을 결코 몰랐다 하리라. 막상 만지작거리며 가져와 보면, 보는 자들은 눈만 껌벅거릴 뿐이다. 반드시 저 으뜸가는 근기라면 계합하여 증득하고 시험하여 인정함에 있어서 정면으로 제접하고 측면으로 끌어서 본분 작가의 수단에 돌려야 하거늘, 어찌 방편 점차를 빌리겠는가.
이는 원오가 대혜에게 수시(垂示)한 유명한 <임제정종기(臨濟正宗記)>의 한 구절로서, 종문 만세의 궤범(軌範)이다. 삼현, 삼요와 내지 조용일시(照用一時) 등의 전체 기틀의 큰 활용[全機大用]도 눈 속에 모래를 뿌림이요 평지에서 넘어져 다치는 것인데 이것을 교가(敎家)에서 주석(注釋) 붙이듯 알음알이로 따라 주석을 내리면 더욱 우스울 뿐만 아니라, 본분종사들이 절대로 금기하는 것이다. 정당한 해설도 금기인데, 백파와 같이 오해하여 잘못 인정한 저술은 종문을 파괴하는 마군의 저작이니, 천불(千佛)이 출세하여도 참회할 길이 없다.
옛 사람은 「백수자송(栢樹子頌)」에서 말했다.
흰 토끼가 옛 길 위에 누워 있으니
날쌘 매는 한번 보고 곧 사로잡아 간다.
뒤따라 온 사냥개는 영특한 성품이 없어서
공연히 마른 나무 등걸의 옛 자리만을 맴도는 구나
「뜰 앞의 잣나무」라는 화두[栢樹子話]는 격식 밖의 현묘한 기틀이어서, 언구를 따라가면 고인의 의지를 영원히 매몰하고 만다. 눈 밝은 사람은 날쌘 매와 같아서 언구에 따라가지 않고 흰 토끼를 사로잡는데, 사냥개와 같이 영악스런 성품이 없이 공연히 나무 들걸 아래 토끼 누웠던 자리만 맴돌며 찾는다면, 이 것을 「눈 어두운 어리석은 납자」라고 하는 것이다. 매와 같은 눈밝은 사람이 되어야지, 사냥개처럼 눈 어두운 납자가 되어서는 안된다. 백수(栢樹) 즉 잣나무라 하니 마른 나무만 감고 돌지 말고, 말 밖의 깊은 뜻[言外玄旨]인 흰 토끼를 사로잡는 납승이 될지어다, 삼현, 삼요의 언구만을 따라가 분석을 일삼으면 임제의 깊은 뜻과는 영원히 어긋나므로 원오는 「나의 왕궁 곳간 속에는 이러한 칼이 없다[我王庫內如是刀]」라고 질책하였으니, 필경에 어떠한가?
홍류동 하늘에 누런 꾀꼬리 지저귀는도다. 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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