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깨알 Letter
영화가 시작되기 전에 우리는
일제히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한다
삼천리 화려 강산의
을숙도에서 일정한 군(群)을 이루며
갈대 숲을 이륙하는 흰 새떼들이
자기들끼리 끼룩거리면서
자기들끼리 낄낄대면서
일렬 이열 삼렬 횡대로 자기들의 세상을
이 세상에서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간다.
우리도 우리들끼리
낄낄대면서
깔쭉대면서
우리의 대열을 이루며
한 세상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
하는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로
각자 자기 자리에 앉는다
주저앉는다.
------------▶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 황지우
거위의 조상, 개리(머리는 고니, 몸통은 기러기를 닮음)를
그린 미쿡 화가 테리 레들린)
1970년대(박모시절) 까지만 해도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기 전에 반드시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애국가를 듣고 정부 홍보물인 '대한늬우스'를 보아야 했다.
그 애국가가 끝날 즈음에 을숙도의 철새 장면이 있었던 모양이다.
시인은 그 철새 장면을 상상하면서 이 詩를 썼을터이다.
민주화를 갈망하던 시절에 저 새들은 누굴 향해 '낄낄대'는 것이며, 왜 '이 세상 밖'으로 날아가는 것일까.
민초들이야 '질서는 아름답다'고 강조하는 권력층에 찬성의 뜻을 표했겠지만 詩人은 그 말에 숨은 뜻을 간파하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가고 싶은 존재로 남고 싶은 것이다.
질서롭지 않게 권력을 잡았는데 질서를 운운하다니 참으로 가소롭다는 이야기겠다.
물론,
이성계의 '조선'처럼 인간 역사이래 그런 일들이 아무렇지도 않았다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그건 병든 역사를 보아온 완강한 인식틀의 소산이다.
조선역사는 한 마디로 저혈압 치료제이다.
역사책을 읽다 보면 숨이 막히고 갑갑하다.
더우기 세종대왕 이후 역사를 보면 울화병이 걸릴지경이다.
읽다가 보면 책을 던지고 싶다.
그 만큼 외세에 억눌리고 안으로 제 나라 백성을 탄압하는데 열심인 답없는 나라 조선.
임진왜란 이후의 역사를 보는 것은 그야말로 고문이다.
일본의 침공에 형편없이 무너지는 조선군,
백성들을 버리고 의주로 달아나는 왕과 귀족들...
전쟁이 끝나자 벌이는 일이 전쟁영웅들을 탄압하는 짓이다.
조선이 성리학을 숭상해서 군사력이 약하고 망했다는 건 다 뻥이다.
세종 때 토지조사 했는데, 농사짓는 땅은 170만결이었다.
(1결은 요즘 평수로 환산하면 대략 3,000여평이다.)
매년 흉년으로 30만결, 공신이나 종친용 30만결을 빼면 100만여결에서 나오는 곡식에 세금을 거둘 뿐이었다.
일년에 들어오는 세금이 25만석, 관료들에게 지급돠는 녹봉이 14만석, 이것도 문관과 고위 무관에게 지급되고 하위 무관이나 아전은 아예 녹봉도 없다.
30여년전 대한민국이 공무원 월급이 그랬듯이 그 녹봉이 엄청 소금이다.
고로,
양반들과 사또 똘마니들은 일반 민초들을 등칠 수밖에 없다.
이른바, 헬 조선이다.
군대운영 및 관아 운영비와 외국사신 접대와 흉년이 터졌을 때 백성을 구제한다고 지출하고 나면 남는게 없다.
재정이 빈약한 상태니 군사력이 약할 수 밖에 없다.
태조를 제외하고 '조'로 불리우는 멍청이 왕들이 있다.
세조, 선조, 인조가 대표적이다.
세조를 왕으로 만든 놈들과 어벙한 중종을 임금으로 추대한 100여명의 떨거지들에게 하사한 공신전,
특히,
세조 때 국가재정에서 왕실재정을 분리시켜 내수사란 걸 만들어 조선국왕은 딴 주머니를 차고서 왕족들만 부귀영화를 누리며 호의호식한다.
내수사는 전국에 농장 300여개가 넘고 그 아래 공노비 숫자만 해도 수만 명에 이르렀다.
멍충이 왕 선조 때 조선 인구가 500여만 명이었으니 전 국민의 1%가 왕족들의 노예였던 셈이다.
더욱 가관인 것은 내수사에 쌓인 쌀로 가난한 백성들을 상대로 고리대금업을 했다는 것이다.
이자율은 물경 50%. ㅠㅠ
유성룡이 임진왜란이 끝난 뒤 군사양성에 대한 기록이 전한다. "군사 1만을 유지하는데 먹는 군량만 4만 5천석이 필요하다"
그런데 호조에서 걷힌 세금, 25만석을 마카 가용한다고 햐도 6만여명 수준이다.
조금 다행인 점은 평안도. 함경도 세금은 그 지역 자체 국방비로 쓰이고 있어 그나마 군비가 충실했다는 점이다.
세월이 흘러,
임란 후 정신 못차리고 있다가 청나라에게 또 개박살난다.
능력도 없고 도덕성도 없는 이 조선이라는 왕조가 교체되지도 않고 게속 이어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 강력하게 이어지는 노답화....
16세기 중반에 시작된 지구적 소빙기로 말미암아 벼 작황이 나빠져 17세기 중반인 경술년, 신해년의 경신대기근으로 수십만 명의 백성들이 굶어죽는다.
18세기 영조 때 조금은 번영을 누린다.
영조가 똑똑해서가 아니라 그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중국은 1년에 3번 조공무역을 할 권리를 조선에게 주었다.
그런데,
중국은 일본을 싫어해서 3년에 한 번 조공을 할 권리가 주어졌다. 그 외 일체의 사무역은 금지이다.
중국과 일본사이에 낀 조선은 그 덕에 톡톡히 재미를 본다.
삼각무역을 해서 영조 때 국고에 은 백만냥에 쌓인다.
좋은 시절도 한 때,
19세기부터 청왕조는 일본과의 교역을 정상적으로 재개하기 때문에 호시절에 비상대책을 세워두지 못한 조선은 정조 때 43만냥으로 급감한다.
더욱이 어린 나이에 임금에 등극한 순조 때부터 세도정치로 인해 재정이 흔들려 서서히 조선은 나락의 길로 들어선다.
설상가상, 대원이 대감 땜시 나라 경제는 파탄나고 종국에 가서는 마지막 남은 밥솥의 누룽지마저도 민씨와 그 일족들이 맛나게 드신다. ㅠㅠ
이로써 이 글을 읽은 분들은 저혈압이 학실히 치료되었다.
그럼,
요즘 정치하는 분들은 어떨까?
님들의 상상에 맡기려 한다.
사마천의 '사기'는 중국 최고의 역사서로 알려져 있다.
'사기'의 30세가 70열전에는 약 150여 명의 인물들이 등장한단다.
그런데 그중의 약 130여 명이 사마천과 같은 비극의 인물들로 채워져 있다고 한다.
그렇기에 '사기'를 읽는 것은 중국 고대사를 읽는 것이 아니라 사마천을 읽는 것이란다.
하여,
과거의 역사를 온당하게 재현하기란 불가능하다.
우리의 70년대는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던, 혹은 소수만 아파했던 시대였는지도 모릅니다.
당시 도처에 깔린 기만적 국가주의와 그것에 무기력했던 그네들, 그것은 그 시대에만 있지 않고 지금에 우리네 시대에도 변형되어 우리를 옥죄는지도 모르며,
우리는 아직도 '대한 뉘우스'라는 박모씨의 영상서사적 정치철학의 인식틀에 갇혀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삐딱 구두를 신껴 볼까 싶네요. ㅎㅎ
https://youtu.be/y8xGiX9utcE
우리나라가 무사히 굴려가길 바라며
멘델스존의 '고요한 바다와 행복한 항해'를 가져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