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짓날을 기다리는 사람
해마다 12월 21 ~ 22일은 일년 중 밤이 가장 길다. 이때를 기점으로 낮의 길이가 노루꼬리만큼씩 길어지기 시작한다는 동지(冬至)이다. 24절기 가운데 가장 기다리는 날이 되었다. 왜 동지를 기다릴까? 붉은 팥죽을 먹는 날이어서 그럴까? 나한테는 팥죽이 별로다. 그 멀건 팥죽을 먹으면 소화가 덜 되는지 목젖에서 신물이 올라오고, 목구멍에서는 꺼억거리는 트림도 나고, 또 공연히 방귀가 나올 것 싶어서 방귀를 뀌지 않으려고 아랫배에 힘을 주면서 애를 써야 했다.
어머니가 혼자서 사시는 집은 충남 보령시 웅천읍 구룡리 화망(花望)마을에 있다. 1957년 대전에서 목수가 와서 여러 달 걸려서 보수, 옛 방식대로 흙벽으로 지은 농가이기에 벽에서 차가운 냉기가 스며들었고, 또 낮은 천장에서는 웃풍이 세게 내려앉았다.
나는 2008년 6월 30일부로 직장에서 벗어났으며, 다음날부터 시골로 내려가 어머니와 함께 살기 시작했다. 내가 집수리 업자를 불러서 1994년에 개보수한 뒤 부엌광에 설치한 유류 보일러 장치를 세게 틀어서 방바닥을 덥혀도 온기는 그저 그랬다. 흙벽에서 스며드는 냉기, 천장에서 내려오는 웃풍으로 이마는 늘 서늘했고, 때로는 두꺼운 털모자를 써야 했다. 이런 때에는 방보다는 부엌방이 온화했다. 부엌방에는 책상도 있고, 책꽂이가 있어서 겨우내 지냈다. 잠을 자려면 안방으로 들어가서, 요를 깔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잠을 청했으나 때로는 갑갑하면 목을 내놓았다. 털모자를 쓰면 이마가 덜 시렸다.
목덜미, 어깨 등이 뜨듯해야만 추위를 덜 타는 나와는 달리 어머니는 방바닥이 조금만 더우면 당신의 몸에서 열이 난다면서 화를 내시며, 미지근하게 온도를 낮추라고 성화를 부리셨다. 그러니 나는 방바닥이 늘 밍그름하게 온도를 낮춰야 했다. 어머니는 아랫목에서, 나는 윗목에서 같이 생활하면서 그렇게 긴긴 겨울밤을 보냈다.
중부 서해안에 위치한 화망마을에서는 한겨울은 12월이 아니고, 1월 초순이다. 12월 21 ~ 22일 동짓날을 지나면 해의 길이가 조금씩 길어진다. 아침해가 일찍 뜨고, 저녁해가 늦게 진다고 해도 맹추위는 아직은 남아 있다. 햇볕이 나는 낮의 길이가 조금씩 늘어난다는 그 이유 하나로도 마음은 덜 춥다. 해의 길이가 조금씩 길어지기에 다가오는 맹추위를 견뎌내기 시작한다.
서해안 바닷가 근처에서는 1월 초순이면 눈이 장설(壯雪)한다. 1월 중순을 지나서 20일쯤이면 봄기운이 얼핏 얼핏 느껴지기 시작한다. 2월 초이면 벌써 나무뿌리는 땅속에서 물기를 빨아올리기 시작하지만 아직은 추운 겨울이 지속된다.
2월 중순부터 부는 봄바람은 차가우면서도 갯냄새가 밴 흙먼지를 날렸다. 봄바람이 불면서 뿌연 황사현상은 더욱 잦았다. 눈가생이가 근질거렸고, 흙냄새가 밴 가래를 자주 뱉어냈다.
2월 중·하순부터 흙에서 물기를 빨아올리던 동백꽃잎은 꽃샘추위와 찬바람에 살짝 얼고, 사철나무 잎새도 얼었다. 성급하게도 물기를 빨아올린 나무속이 냉추위로 툭툭 터지고는 죽기도 했다. 가녀린 나뭇잎은 갑자기 얼고, 꽃봉오리를 살짝 벌리던 이른 봄철의 꽃몽올도 때로는 많이 다쳤다.
3월 초순이면 늦가을철에 싹이 터서 추운 겨울을 이겨낸 풀들이 더욱 빠르게 성장하고, 3월 중순이면 녹기 시작한 흙을 위로 밀어올리고는 식물들이 새싹을 내밀었다. 그래도 아직껏 추워서 3월 말에는 꽃샘추위가 으례껏 있었다.
4월 초를 지나 4월 15일이 지나면 완연한 봄이 이어진다.
보온용 흙벽이 부실한 옛 농가에서 긴긴 겨울을 보내려면 추위를 더 탔다. 재래식 아궁이에 장작을 괴어놓고 군불을 때면 구들장 방바닥이 절절 끓었으나 방과 부엌을 개보수해서 기름보일러를 설치한 뒤로는 방바닥만 뜨거울 뿐 방고래를 후끈하게 데우던 그런 열기는 전혀 느끼지 못했다. 유류가격이 무척이나 비싸서 기름이 많이 소요되는 보일러를 장기간 가동할 수가 없었다. 봄추위 정도는 견디며 참아야 했다. 기름보일러를 설치해도 나한테는 별로였다.
안방, 건넌방, 안사랑방은 보일러 장치를 설치했다. 바깥사랑에만 옛 방식인 구들장으로 남겨놨지만 군불을 전혀 때지 않은 탓으로 쥐가 구멍을 뚫어서 이제는 아예 사용할 수가 없었다. 이십 년 전, 완전히 뜯어서 새 구들장을 설치했어도 설치할 때만 실험 삼아 군불 땐 뒤로는 방치한 탓으로 또다시 고장이 났다. 안사랑방의 보일러도 두 번이나 새 것으로 교체하였지만 사람이 자지 않았기에 이내 동파(凍破)되었다.
서해안 바닷가에는 해류 온기로 덜 춥다지만 산능선 너머인 내륙 쪽에는 매서운 바람이 넘어왔고, 추위로 지하수 배수관이 얼고, 보일러 쇠붙이도 얼어서 터져버린다. 사정이 이러하니 나는 어머니와 함께 지내는 안방과 건넌방에만 보일러가 온전하기에 여기에만 작동했다.
나는 양력 1949. 1. 21.에 태어났기에 내 생체 리듬은 겨울철에 더 잘 적응해야 할 것 같은데도 사실은 뜨거운 태양의 계절에 더 적응한다. 강렬한 햇볕이 내리쬐는 여름철이 훨씬 낫다. 해가 밝아서 모든 것이 환하면 나도 덩달아 밝고, 환하고, 강렬하고 싶다. 해가 가장 긴 6월을 좋아한다. 부엌에 군불을 때지 않아도 되고, 보일러를 켜서 방바닥을 덥히지 않아도 된다.
6월 21 ~ 22일 하지(夏至) 무렵에는 해가 새벽같이 일찍 떠서 동쪽 창문을 환하게 밝혔다. 햇살이 저녁 7시 45분까지도 빛났다. 나는 해가 가장 긴 6월이 가장 좋다. 나한테는 계절의 여왕은 5월이 아니라 6월이다. 6월은 춥지도 덥지도 않고, 또 붉은 장미꽃이 활짝 피는 계절이니까.
7월 말부터 8월 초에는 머리통 벗겨질 만큼 무더운 무더위, 뜨거운 태양의 계절이다.
9월 21 ~ 22일은 추분이다. 밤낮의 길이 같았는데도 다음날부터는 낮의 길이가 줄어들면서 어둠이 자꾸 길어지며 짙어만 갔다. 덩달아 바깥 날씨도 서늘하여 몸을 움츠리는 때가 더욱 많아졌으며, 점차로 해는 낮게 떠서 그늘을 길게 드리웠다. 점점 어둑어둑했다.
낮의 길이가 가장 짧은 12월 21 ~ 22일의 동지(冬至) 무렵이 싫다. 촌에서 살려면 동지가 어서 지나기를 학수고대해야 했다. 겨울철에는 해가 늦게 뜨며, 동남쪽으로 아주 낮게 떠서 남서쪽으로 일찍 지는 게 영 마땅하지 않았고, 5월 말까지도 때로는 보일러를 켜고 살아야 한다.
지난해 2014년에는 나는 동짓날을 기다리지 않았다. 음력 섣달그믐이 생일인 아흔여섯 살 어머니는 보령아산병원 중환자실에 장기간 입원하셨다. 극도로 쇠진한 어머니 곁을 잠시라도 떠날 수가 없어서 나도 병원에서 살다시피 했다. 병원 보호자실에서 머물면서 어머니의 마지막 삶을 지켜봐야 하기에 동짓날 그 자체를 잊고 살았다.
어머니가 2015년 2월 25일 저세상 여행길을 떠나신 뒤 나는 처자식이 있는 서울로 되올라왔다. 시골생활을 접었기에 계절을 잊고 지낸다. 아파트 방 벽마다 설치한 보온장치 버턴을 손가락으로 누르면 방바닥이 금세 뜨뜻하기에 두꺼운 겉옷을 벗고는 얇은 속옷으로도 겨울을 난다. 따뜻한 아파트에서 살기에 어느새 사계절의 절기를 잊었으며, 이런 나한테는 동짓날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오늘은 아내가 팥죽을 쑤었다. 가스레인지 불을 괄하게 켠 탓으로 냄비 밑바닥에 팥알이 눌어붙어서 죽에서 불내가 났다. 불내가 나는 팥죽일 망정 나는 작은 그릇인 공기(空器)의 반쯤을 떠먹었다.
아내는 큰딸의 시어머니와 시동생을 초대해서 팥죽으로 대접했다. 이들은 인도사람이기에 불내 나는 팥죽이라도 맛있다며 더 자셨다. 내가 동짓날의 의미를 A4종이에 한글로 크게 써 주니 사돈총각이 핸드폰으로 찍었다. 그는 한국어학당에서 우리말과 한글을 배우기에 동지의 의미를 짐작할 것 같다. 그들한테는 동짓날에 팥죽 먹는 기억이 오랫동안 자리매김할 것이다.
나도 팥죽을 먹었으니 올해의 끝도 잘 마무리할 것이다. 내일부터는 햇살이 조금씩 길어지며 햇살도 살쪄서 돋아나기를 빌어야겠다. 낮의 길이가 조금씩 길어진다니까 나도 생기가 날 듯싶다. 내년 봄에는 시골로 내려가 또다시 텃밭농사를 짓는 체하는 엉터리 농사꾼, 건달 농사꾼이 되려고 벌써부터 마음다지기 시작한다.
한 해가 저물어 간다는 동지(冬至)의 의미를 재해석하고 싶다. 고향으로 내려가 보온시설이 미비한 옛 농가에서 오돌돌 떨면서 해의 길이가 노루꼬리만큼 길어진다는 동지의 뜻으로도 추위를 이겨내고 싶다. 햇볕이 나면 마음이라도 따뜻하게 온기를 느끼는지, 그 이유를 알 듯싶다.
12월 초에 들어서면 첫눈도 내리고 추위도 자꾸만 매서워진다. 동짓날 다음날부터는 밤의 길이가 짧아지며, 낮의 길이가 조금씩 늘어나며, 해도 보다 높이 뜨고, 햇살도 더 강하다는 느낌이 든다. 사실은 기온이 더 떨어져도 햇볕이 늘어난다는 그 이유로도 마음은 더욱 훈훈해지기 때문이다.
내가 동짓날을 기다리는 이유는 또 있다. 해마다 12월 21 ~ 22일 동지(冬至)를 '작은설'이라고 부른다.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기에 동짓날을 애타게 기다리면서 내년을 미리부터 맞이하고 싶다.
16개월째인 어린 손녀를 맡기고는 외출한 며느리. 친할머니가 된 아내는 어린 손녀를 달래야 했다. 큰아들 내외가 되돌아와서는 어린 것을 데리고 떠났다. 대구 사돈네도 떠났다.
다시 조용한 내 삶이 이어진다.
2015. 12. 22. 화요일.
흐름이 끊긴 뒤, 장시간 쉬었다가 고치려 하니 글이 잘 이어지지 않았다.
자정이 지난 뒤 잠 잤다가 다음날 다시 일어난 지금, 글이 잘 이어지지 않아서 앞뒤 문맥만 서로 바꿔가며 수정한다.
남들은 글을 참 쉽게 쓰지만 나한테는 참으로 어렵다. 그것도 흐름이 딱 끊기면, 잇는 작업이 나한테는 어렵다.
이 글도 그렇다. 고치다 보니 생활글이 아닌 산문(散文)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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