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사(甲寺)는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계룡산(鷄龍山)에 있는 삼국시대에 창건된 사찰로서 대한불교 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麻谷寺)의 말사입니다. 계룡갑사(鷄龍甲寺), 갑사(岬寺), 갑사사(甲士寺), 계룡사(鷄龍寺)라고도 합니다. 갑사의 창건과 관련해서는 신라시대 420년에 아도(阿道) 스님이 창건하였다는 설과 556년(진흥왕 17년)에 혜명(惠明) 스님이 창건하였다는 설, 아도 스님이 창건하고 혜명 스님이 중창했다는 설 등이 있습니다. 또한, 503년(무령왕)에 천불전(千佛殿)을 신축하였다고 합니다. 679년(문무왕 9년)에는 의상(義湘) 스님이 중수하였고 ‘화엄대학지소(華嚴大學之所)’로 삼았으며, 이 때부터 신라 화엄십찰(華嚴十刹)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 갑사(甲寺)로 가는 길 - 이상보
지금은 토요일 오후, 동학사(東鶴寺)엔 함박눈이 소록소록 내리고 있다. 새로 단장(丹粧)한 콘크리트 사찰(寺刹)은 솜이불을 덮은 채 잠들었는데, 관광버스도 끊인 지 오래다. 등산복 차림으로 경내(境內)에 들어선 사람은 모두 우리 넷뿐, 허전함조차 느끼게 하는 것은 어인 일일까? 대충 절 주변을 살펴보고 갑사(甲寺)로 가는 길에 오른다. 산 어귀부터 계단으로 된 오르막길은 산정(山頂)에 이르기까지 변화가 없어 팍팍한 허벅다리만 두들겼다. 그러나 지난 가을에 성장(盛裝)을 벗은 뒤 여윈 몸매로 찬바람에 떨었을 나뭇가지들이, 보드라운 밍크코트를 입은 듯이 탐스러운 자태로 되살아나서 내 마음을 다사롭게 감싼다.
흙이나 돌이 모두 눈에 덮인 산길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오르는 우리들은, 마치 북국의 설산이라도 찾아간 듯이 아취(雅趣)에 흠씬 젖는다. 원근을 분간할 수 없이 흐릿한 설경을 뒤돌아보며, 정상에 거의 이른 곳에 한일자(一字)로 세워 놓은 계명정사(鷄鳴精舍)가 있어 배낭을 풀고 숨을 돌린다. 뜰 좌편가에서는 남매탑이 눈을 맞으며 먼 옛날을 이야기해 준다.
때는 천사백여 년 전, 신라 선덕 여왕 원년인데, 당승(唐僧) 상원(上原) 대사가 이 곳에 와서 움막을 치고 기거하며 수도할 때였다. 비가 쏟아지고 뇌성벽력(雷聲霹靂)이 천지를 요동(搖動)하는 어느 날 밤에, 큰 범 한 마리가 움집 앞에 나타나서 아가리를 벌렸다. 대사는 죽음을 각오하고 눈을 감은 채 염불에만 전심하는데, 범은 가까이 다가오며 신음하는 것이었다. 대사가 눈을 뜨고 목 안을 보니 인골(人骨)이 목에 걸려 있었으므로, 뽑아 주자, 범은 어디론지 사라졌다. 그리고 여러 날이 지난 뒤 백설이 분분하여 사방을 분간할 수조차 없는데, 전날의 범이 한 처녀를 물어다 놓고 가 버렸다. 대사는 정성을 다하여, 기절한 처녀를 회생시키니, 바로 경상도 상주읍에 사는 김 화공(金和公)의 따님이었다. 집으로 되돌려 보내고자 하였으나, 한겨울이라 적설(積雪)을 헤치고 나갈 길이 없어 이듬해 봄까지 기다렸다가, 그 처자의 집으로 데리고 가서 전후사를 갖추어 말하고 스님은 되돌아오려 하였다.
그러나 이미 김 처녀는 대사의 불심에 감화(感化)를 받은 바요, 한없이 청정한 도덕과 온화하고 준수한 풍모에 연모의 정까지 골수(骨髓)에 박혔는지라, 그대로 떠나 보낼 수 없다 하여 부부의 예(禮)를 갖추어 달라고 애원하지 않는가? 김 화공도 또한 호환(虎患)에서 딸을 구원해 준 상원 스님이 생명의 은인이므로, 그 은덕에 보답할 길이 없음을 안타까워 하며, 자꾸 만류(挽留)하는 것이었다. 여러 날과 밤을 의논한 끝에 처녀는 대사와 의남매의 인연을 맺어, 함께 계룡산(鷄龍山)으로 돌아와, 김 화공의 정재(淨財)로 청량사(淸凉寺)를 새로 짓고, 암자(庵子)를 따로 마련하여 평생토록 남매의 정으로 지내며 불도에 힘쓰다가, 함께 서방 정토(西方淨土)로 떠났다. 두 사람이 입적(入寂)한 뒤에 사리탑(舍利塔)으로 세운 것이 이 남매탑이 요, 상주(尙州)에도 이와 똑같은 탑이 세워졌다고 한다. 눈은 그칠 줄 모르고, 탑에 얽힌 남매의 지순한 사랑도 끝이 없어, 탑신(塔身)에 손을 얹으니 천년 뒤에 오히려 뜨거운 열기가 스며드는구나!
얼음장같이 차야만 했던 대덕(大德)의 부동심과, 백설인 양 순결한 처자의 발원력, 그리고 비록 금수라 할지라도 결초심(結草心)을 잃지 않은 산중 호걸(山中豪傑)의 기연이 한데 조화를 이루어, 지나는 등산객의 심금을 붙잡으니, 나도 여기 며칠 동안이라도 머무르고 싶다. 하나, 날은 시나브로 어두워지려 하고 땀도 가신 지 오래여서, 다시 산 허리를 타고 갑사로 내려가는 길에, 눈은 한결같이 내리고 있다.
참고 : 『한국현대문학대사전』 ( 권영민, 서울대학교출판부, 2004)
◆두운 조사와 소백산 희방사 전설
신라 시대 두운 조사가 소백산 죽령재에 있는 희방사(喜方寺)를 지를 때 일이에요. 스님이 토굴을 만들고 그 안에서 공부를 하는데 어느 날 범이 와서 아가리를 딱 벌리고 달려드는 거예요. 이 자식이 남 공부하는데 방해를 하네 하고 스님이 먹으려면 먹으라 하고 머리를 범의 아가리에 들이밀었어요. 그런데 이놈이 자꾸 뒤로 물러나면서 아가리를 벌리기만 하는 거예요. 나를 먹으러 온 것이 아니구나 생각하고 목 안에 뭐가 있는가 싶어 손을 넣어 보니 비녀가 걸려 있는 거예요. 비녀를 빼 주었더니 그냥 달아났지요.
다음날 새벽에 뒤란에 쿵 하는 소리가 나서 가보니 호랑이가 웬 처녀를 업어다 놓은 거예요. 이놈도 스님이 자기 생명을 구해줬으니 은혜를 갚는다고 경주까지 가서 어느 대감 집의 무남독녀를 둘러업고 온 거예요. 그 처녀는 호랑이 등에 업히니 놀라 까무러쳤다가 아랫목에 눕혀놓고 이불을 덮어놓으니 깨어났어요.
그런데 눈이 많이 와서 바로 집에 데려다줄 수가 없어 한 달쯤 있다가 어지간히 눈이 녹자 스님이 처녀를 집데 데려다주러 함께 갔어요. 그 집에서도 무남독녀가 호랑이에게 업혀 갔으니 얼마나 놀라고 걱정이 컸겠어요. 마침 그날 무당을 불러다 굿판을 벌이고 있는 거예요. 대감 집에서 굿을 한다 하니 동네 사람들이 모두 모여서 구경하느라 야단이 났는데 딸이 스님하고 떡 들어오니까 모두 놀라 뒤로 자빠졌지요. 스님은 호랑이가 둔갑한 것이고 처녀는 귀신이 온 것으로 안 거예요. 한 달이나 지났으니 벌써 죽었을 거라 생각했는데 딸이 나타났으니 모두 놀란 거지요.
그런데 자세히 보니 귀신도 호랑이도 아니거든. 호랑이가 천 리나 되는 먼 길에 업어다 줬으니 천생연분이라 여기며 대감 집에서는 결혼하라고 했지요. 두운 조사가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라. 출가한 사람은 세상일이 무상한데 그게 무슨 소리냐.” 했지만 대감 집에서는 청춘 남녀가 한 달 이상을 산중에서 살았으니 으레 내외가 된 줄 안는 거예요.
그런데 그게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참으로 감사하다면서 무슨 소원이 없느냐고 물으니 두운 조사가 아무 소원이 없다고 했지요. 그러자 그 집에서 절(喜方寺)을 지어주고 절 아래 높은 무쇠 다리를 놓아주었지요. 그래서 사람들을 많이 구제 했지요. 희방사 역사가 이렇습니다.
▶ 희방사 무쇠다리 : 신라 선덕왕 12년(643) 서라벌 호장(戶長) 유석(兪碩)이 호랑이에게 잃은 딸을 구해 준 두운 조사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희방사를 창건하고 나서 절로 통하는 개울에 무쇠로 다리를 놓은 사실이 희방사지에 전하고 있다.
출처 : 서암 스님 <꿈을 깨면 내가 부처>
첫댓글 마하반야바라밀 ~()()()
향상일로 시인님의 좋은글 "계룡산 남매(오누이)탑 설화"와 아름다운 영상 즐감하고 갑니다.
이번주는 신비로운 마음과 함께 행복하고 즐거운 한주 되세요....
나무 관세음보살, 나무 관세음보살, 나무 관세음보살.
佛法僧 三寶님께 歸依합니다.
거룩하시고 慈悲하신 부처님의 加被와 慈悲光明이 비춰주시길 至極한 마음으로 祈禱드립니다. 感謝합니다.
成佛하십시요.
南無阿彌陀佛 觀世音菩薩()()()
I return to Buddha, Law, and Seung Sambo.
I pray with all my heart that the holy and merciful Buddha's skin and mercy light will be reflected. Thank you.
Holy Father.
Avalokitesvara Bodhisattva ()()()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되시길 기원 합니다.
약사여래불 약사여래불 나무약사여래불-()()()-
함께하여 행복합니다 관세음보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