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산 품에 안기다 ~~~
▲ 남산공원길 (남산북측순환로 입구) |
국립극장 정문을 지나면 남산의 대동맥인 남산공원길이 시작된다. 길은 2갈래로
북쪽 길은 남
산북측순환로 입구에서 남산 북쪽 자락을 거쳐 회현동(會賢洞) 소파로로 이어지며,
예전부터
오로지 뚜벅이 전용 산책로로 이용되어 차들의 바퀴 자국을 철저히 금하고 있다. 크게 오르락
내리락 부분이 없는 느긋한 길로 장충단공원과 필동(筆洞), 남산1호터널로 내려가는 길이
있
으며, 삼국지에 나오는 제갈량(諸葛亮)을 봉안한 와룡묘(臥龍廟)란 오래된 사당이 있다.
그리고 남쪽 길(2차선)은 남산 정상과 남산서울타워로 인도하는 길로 차량 통행이 가능하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왕복 운행이었으나 일방통행으로 변경하면서 '국립극장→남산서울타워→
남산도서관' 방향으로만 바퀴를 굴릴 수 있다.
내가
남산에서 무척 가까운 신당동과 금호동(金湖洞)에 살던 시절, 가족이나 친구와 남산에
물을 뜨러 많이 갔었는데,
가족과 갈 때는 주로 평일 저녁을 이용했다. 그때는 약수터 입구까
지 차를 끌고 가서 약수를 뜬
다음 북측순환로 입구에 있던 차량 매표소까지 후진하여 국립극
장으로 내려갔지. 일방통행로라 그렇게 가는 것은 위법이긴 하나 거리도 그리 길지
않고, 매
표소 아저씨의 쿨한 묵인도
있어서 몇년을 그렇게 했었다.
이후 남쪽 길의 40% 정도를 뚜벅이길로 만들고 남산의 건강을 위해 차량 통행의 크게 제한을
두기 시작했다. 그래서 일반 차량은 절대로 바퀴를 들일 수 없게 되었으며, 오로지 시내버스
(02, 04번)와 시티투어버스, 관광버스, 공원/긴급 차량만 들어올 수 있다. 차를 끌고 온 경우
에는 국립극장 주차장에 차를 두고 걸어서 이동하거나 02, 04번 시내버스를 타야 된다. |
▲ 뚜벅이들의 낙원이 된 남산 남측순환로 |
남산북측순환로입구에서 남쪽 길로 접어들면 숲 사이로 빛바랜 한양도성이 모습을 비춘다. 그
리
멀지 않은 과거(2010년 이후)에 성곽 옆에 탐방로를 내었는데, 남산 정상까지 질러 가고
싶다면 그 길을 이용하면 된다. 다만 경사가 좀 각박하여 조금은 힘들 수 있으나 짧은 거리라
서
다리만 멀쩡하면 누구든 거닐 수 있다. 게다가 숲이 짙어서 대낮에도 그늘이 가득해 한여
름에는
시원하다.
성곽 앞에 난 산길의 일부는 예전부터 있던 길이다. 그 길의 끝에는 남산에서 제법 잘나갔던
남산약수터가 있었다. 남산산악회가 관리하는 곳으로 어린 시절 여러 번 가봤었지. 그곳은 입
구에 철문까지 설치했으며, 오로지 이른 아침에만 문이 열려 아무 때나 접근이 어려웠다. 다
행히 그곳
산길이 개방되어 이제는 자유의 공간이 되었으며, 약수터 주변에는 남산산악회 건
물과 체력
단련시설이 있다.
성곽길(남산산악회 입구)을 지나 5분 정도 가면 오른쪽에 계단길이 나온다. 그 계단을 2~3분
오르면 운동시설을 갖춘 상춘약수터가 나오는데, 예전 신당동, 금호동 시절 우리집 단골 약수
터였다.
약수터 옆에는 약수로 몸을 씻는 노천탕이 있었는데, 약수로 냉수마찰을 하면 겨울에
감기가 안걸린다고 해서 한때 인기가 대단했었다.
예전에는 서울에 노천 목욕터를 가진 약수터가 적지 않았는데, 대중이 이용하는 약수터에 아
저씨와 노공(老公)들이 벌고 벗고 씻는다는 것이 오랫동안 문제로 지적되었다. 하여 차츰 사
라지기 시작했고 이제는 기억 속의 풍물시(風物詩)가 되어버렸다. |
▲ 남산 남측순환로 (4월 풍경) |
상춘약수터입구를 지나 계속 남측순환로를 따라 가면 크게 구부러지는 남쪽에 2개의 조망대가
있다.
이 구간은 남쪽이 확 트여있어 조망이 일품인데, 바로 밑에 용산구 지역을 비롯해 한강
과 동작구, 강남/서초구, 관악산 등이 시야에 잡힌다. 대기만 청정하다면 보이는 범위는 더욱
넓어진다. 그럼 여기서 잠시 남산에 대해 간단하게 살펴보도록 하자.
서울의 한복판이자 도심 남쪽에 누운 남산(262m, 270m)은 북악산(백악산), 인왕산, 낙산(낙타
산)과
더불어 한양 내사산(內四山)의 일원이다. 서울의 영원한 남주작(南朱雀)으로 북현무(北
玄武)인 북악산(백악산)을 바라보고 있으며, 도성 남쪽에 있어서 남산이란 아주 평범한 이름
을
지니고 있다.
천하에는 남산이란 산이 참 많은데, 이들의 공통점은 시내와 아주 가깝고 시민들이 많이 안기
는 휴식처이며, 경주(慶州) 남산(468m)을 제외하면 산세가 낮고 완만해 누구든 편히 오를 수
있는 친근한 산이라는 것이다. 서울 남산도 대체로 편히 안길 수 있는 스타일로 그 걷는 것도
싫다면 남산을 오르는 시내버스나 시티투어버스, 케이블카를 이용하면 금세 정상까지 간다.
남산의 원래 이름은 목멱산(木覓山)으로 그 옛말인 '마뫼'는 남산을 뜻한다. 인경산(引慶山),
잠두봉이라 불리기도 했으며, 1395년 태조 이성계가 남산을 높여 목멱대왕(木覓大王)으로 봉
하고 그를 위한 사당인 목멱신사(木覓神祠)를 산꼭대기에 세웠다. 이후 매년 제를 올리면서
국사당(國師堂)으로 이름을 갈았다.
남산 능선을 동서로 가로지르며 한양도성이 걸쳐져 있고, 정상에는 봉수대가 설치되어
전국에
서
날라오는 봉화를 받았다. 조선시대 봉화는 5개 노선이 있었는데, 그 종점이자 중심지가 바
로
남산이다.
임진왜란 때는 한양을 점령한 왜장이 산허리에 왜장대(倭將臺)란 성을 쌓았으며, 병자호란 이
후
어영청(御營廳)과 금위영(禁衛營) 분영이 남산에 설치되어 서울을 지켰다. 왜정 때는
왜군
헌병대가 산자락에 있었고, 1945년 이후에는 중앙정보부가 1호터널 북쪽에 말뚝을
박으며 갖
은 악명을 떨치기도 했다.
남산은 도성 경승지로도 명성이 자자했다. 양반들이 세운 정자와 그들이 새긴 바위글씨가
즐
비했는데, 지금은 바위글씨 극히 일부를 빼면 남아있는 것이 없다. 또한 가난한 선비와
하급
관리들이
산자락에 많이 살았으며, 개화기 이후 왜인들이 남산 북쪽과 남촌(南村)이라 불리는
청계천 이남에 두루 터를 닦고
살았는데, 왜정 때는 남산도서관 자리에 조선신궁(朝鮮神宮)을
,
남산
중턱에는 왜성대공원과 경성신사(京城神社)를 지어 그들의 성지(聖地)로 만들었다.
특히 조선신궁을 짓는 과정에서 남산의 오랜 성역인 국사당이 신궁보다 높은 곳에 있다며 왜
정이 속좁게 징징거려 어쩔 수 없이 인왕산으로 자리를 옮기는 비운을 감당해야 했다. 그렇게
남산의 중심은 토박이 목멱대왕에서 왜열도의 온갖 잡귀들로 바뀌게 된다.
그렇게 왜정이 남긴 자국들은 1945년 이후 대부분 지워졌으나 조선신궁 계단과 일부 소소한
흔적들은 자신의
정체를 꼭꼭 숨기며 1945년 8월 패전 때 연합군에 살려달라고 징징거린 왜왕
(倭王)처럼 구차한 목숨을 연명한다.
1962년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케이블카가 놓여 남산의 이름 두 자를 떨쳤고, 1965년 조선신궁
자리에 남산도서관을, 1969년에는 백범 김구(白凡 金九)의
동상을 세워 주변을 백범광장으로
삼았다. 1973년에는 국립극장이 지어졌으며, 1975년에는 6년의 대공사 끝에 천하 최대의 타워
인 남산서울타워가 완성되어 남산의 높이를 배로 높였다. 이 타워는 1980년에 공개되어 남산
과 서울의 굳건한 상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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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측순환로 아랫 조망대에서 바라본 천하
한남동과 보광동(普光洞), 한강을 비롯하여 강남 일대가 상쾌하게 시야에 들어온다. |
우리 애국가에 보면 '남산 위에 저 소나무'란 구절이 나온다. 그 구절에서 보이듯 남산은 북
악산(백악산)과 더불어 소나무로 유명했는데, 특히 금송(金松)이 많이 자랐다. 소나무 외에도
다양한
꽃과
나무들이 뿌리를 내리며 산을 아름답게 수식하고 있고, 도심 한복판에 솟아있어
학의 등에 올라탄 듯 국보급의 조망은 물론 도심 야경도 풍족하게 누릴 수 있다.
그리고 산 곳곳에 약수터가 뿌리를 내려 나그네의 목을 아낌없이 축여주었는데, 그중에서 부
엉바위 약수터가 제일 유명했다. 허나 이 약수는 남산3호터널이 뚫리면서 그 혈이 막혀 사라
진 상태이며, 다른 약수터도 상당수 문을 닫거나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그 흔한 계곡도 거의 남아있지 않으며, 겨우 실처럼 흐르는 가느다란 물줄기가 여럿 있을 뿐
이다.
남산은 남산공원길 남측순환로와 북측순환로, 여러 갈래의 계단길이 있는데, 계단길은 장충단
공원에서 정상까지, 백범광장에서 정상까지 이어지는 계단길이 대표적이며, 남산1호터널과 남
산동, 후암동(厚岩洞)에서 오르는 계단길이 있다. 길 외에는 싹 철조망을 쳐놓아 산으로에 접
근을
막았으나 근래에 모두 풀어버렸다. 허나 철조망을 없앴다고 해서 산자락 곳곳을 쑤시고
다니면 안된다. 무조건 지정된 길로 가야 남산도 좋고, 사람도 좋은 것이다.
남산에는 한양도성과 장충단공원, 와룡묘, 남산봉수대, 한양공원 표석, 남산골한옥마을 등의
문화유산과 백범광장, 안중근의사기념관, 남산야외식물원, 남산서울타워 등의 명소가 있으며,
산 전체가
남산공원(남산도시자연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도심 속 나들이 명소이자 조촐한
등산 명소로 그 인기가 식을 줄을
모르며, 예로부터 서울에 오면 꼭 가봐야
되는
서울의 상징
적인 명소로 지방 사람은 물론 외국인 관광객까지 평일, 주말을 가리지 않고 수십만 씩 몰려
드는 서울 관광의 성지이다. 하여 한적한 분위기는 좀 누리기가 어렵다. (서울을 찾은 외래
관광객의 1/3 이상이 남산을 찾는다고 함)
남산이 없는 서울은 감히 상상할 수도 없다. 아니 상상하기도 싫다. 도심 속의 허파이자 꿀단
지로 남산이 있으니 인근 북악산(백악산)과 인왕산, 조선 왕궁이 합세해 도심의 녹지 비율이
좀 되는 편이지 그가 없었다면 서울은 더 지옥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또한 개인적으로 내 옛
추억이
몇 권씩 녹아있는 현장으로 나에게도 꽤 의미심장한 곳이라 할 수 있는데, 내가
제일
많이 오른
산이 바로 남산으로 어림잡아도 500번 이상은 올랐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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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산 포토아일랜드 남측 지점 조망대에서 바라본 천하 ①
한남동과 보광동, 강남, 관악산과 우면산 산줄기
▲ 남산 포토아일랜드 남측 지점 조망대에서 바라본 천하 ②
해방촌과 이태원, 용산구 지역
▲ 남산 포토아일랜드 남측 지점 조망대에서 바라본 남산서울타워
서울타워는 동양에서 제일 높은 타워로 높이가 236.7m에 달한다.
하늘을
찌를 듯 늘씬하게 솟은 저 타워를 어떻게 만들었을까? 보면 볼수록
신기할 따름이다.
▲ 다시 만난 한양도성 - 성곽 밑에도 탐방로가 닦여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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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 정상을 코앞에 둔 남산서울타워 종점(02, 04번 종점)에 이르니 온갖 관광객들로 뒤엉켜
그야말로 북새통을 이룬다. 여기서는 오로지 시내버스만 길게 바퀴를 접을 수 있으며 나머지
버스는 승하차가 끝나자마자 바로 자리를
떠야 된다. (주차 공간이 별로 없음)
무수한 인파 속으로 몸을 던져 하나의 점이 되어 서쪽 오르막길을 3분 정도 오르면 남산
정상
과 남산서울타워 밑에 이르며, 오르막길 대신 서남쪽 남측순환로를 내려가면 남산도서관으로
이어진다.
* 남산 소재지 : 서울특별시 중구 장충동, 남산동, 회현동 / 용산구 용산동2가, 후암동
* 남산공원 홈페이지는 아래 사진을 클릭한다. (☎ 02-3783-5900) |
▲ 남산서울타워 종점에서 바라본 서울타워
남산 어디서든 구석진 곳을 빼고는 거의 대부분 서울타워가 바라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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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글 많이 올려 주어서 감사합니다! 자주 찾아주시고 2021년에도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