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와 차의 오글오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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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의 종류가 구별되어지는 가장 큰 요인은 발효의 정도입니다. 녹차든, 홍차든, 흑차든, 차나무에서 채취한 똑같은 찻잎 인데 발효되는 정도에 따라 차의 맛과 성질과 이름이 바뀌는 것이지요.
녹차에 대해서 이야기했으니 다도에 대해 잠시 이야기 해볼까요?
영국의 티타임은 유명한데, 따지고 보면 달콤한 과자나 케잌을 즐기기 위한 하나의 속임수랄까?... ㅎㅎㅎ 내 생각이니, 티타임을 즐기는 럭셔리한 분들. 화내지 마세요. 다도는 확실히 티타임과는 다른 뭔가가 있습니다. 동양 삼국의 차 마시는 법, 즉 다도의 모양새가 얼마나 극명하게 다른지 놀랄 지경입니다.
내가 다도의 전문가가 아니니, 그 오묘한 세계의 깊이를 논할 수는 없습니다.
일반인이 알기 쉽게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할 뿐입니다. 순전히 이 글을 쓰는 작가인 내 생각 말입니다.
차의 세계는 의외로 많은 이야기를 가지고 있답니다. 참 매혹적인 세계입니다.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다도라기보다 차의 시작이랄까... 그런 것이지 싶습니다. 그러나 그렇더래도 다도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이 한강토에서 언제부터 차를 마셨을까요?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여러가지 설이 많습니다. 이능화의 "조선불교통사 "에 의하면 백두산의 백산차가 한강토의 첫 자생차로 언급되어 있습니다. 아득한 고조선 시대부터, 어린 잎을 따뜻한 물에 우려 제사에 귀하게 올렸다고 하는데 이 잎이 실제 차나무의 잎인지는 불분명합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 조상들은 온수에 무언가를 우려내어 마시는 풍습이 있었다는 것이지요. 차인들은 차의 전조쯤으로 이해하는 맥락이고, 진정한 음다는 중국에서 전래 되었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그러나 또 다른 설도 있는데 삼국시대 이전부터 한강토는 인도나 그 주변 국가 들과의 왕래가 있었고, 4세기 경에 불교가 도입되면서 그들의 음다 풍속도 함께 들어왔다는 설입니다. 정사의 기록은 인종 23년에 김부식이 편찬한 삼국사기에 거론되어 있는데, 7세기 초 선덕여왕 이 차를 즐겨 마셨다고 기록되어 있습 니다.
그러나 그 이전부터의 기록들이 전해 오는 바는 김해 가락국의 이야기들이지요. 허황옥의 혼수품 중에 차씨가 있어 그것을 심어 차를 마시게 되었다는 설, 말입니다. 암튼 차나무의 잎이건, 아니 건 간에 우리 조상들이 무언가를 우려 마시는 풍습은 아주 오래된 것임을 알수 있습니다. 많은 차인들은 초의선사의 동다송에 언급되어 있는 백산차가 그 기원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식물의 어린 잎인데, 말했다시피 차나무인지 아닌지는 불분명합니다. 다도를 말하면서 우리는 초의선사를 만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법명은 의순이지만 법호인 초의가 더 유명하기에, 우리는 초의선사로 알고 있습니다. 조선의 차 문화를 다시 일으킨 주역으로 다신전, 동다송, 등 차에 관한 많은 저서를 남겼습니다. 특히 1828년 지리산 칠불암에서 지은 다신전은 지금 차인들의 입문서나 다름 없습니다.
찻잎을 따는 법부터 마시는 법까지, 상세히 기록되어 있어서 초의가 얼마나 깊은, 차의 세계를 알아갔는지를 느낄 수 있습니다. 초의 선사와 추사 김정희의 차에 얽킨 우정은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초의선사의 차는 정말 특별한 맛이었는지, 추사는 유배를 갔으면서도 초의에게 차를 보내달라는 편지를 여러번 보냅니 다. 그 편지 내용들을 일일이 소개하기는 어려우나 마치 맛있는 음식을 독촉하 듯, 초의의 햇차를 보내 달라는 추사의 편지를 읽노라면 웬지 눈시울이 뜨거워 집니다. 진정한 마음의 교유가 아니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요.
차로 인해 변하지 않은 우정을 나눌 수있는 모습은 우리에게 깊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초의선사는 조선시대에 차의 중흥기를 일으킨 위대한 차인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습니다.
헌종 3년에 지은 동다송은 그 정점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초의선사의 열 일곱 수의 시와, 백파거사가 한 수를 지어 붙인 이 연작시는 차의 오묘한 세계를 펼친 백미라고 말합니다. 18수, 31송으 로 되어있는 동다송은, 선인들의 차에 관한 이야기나 시를 인용하고 거기에 주를 붙여 다도의 모든 과정을 심오한 세계로 이끌어 줍니다. 우리나라 전래의 차에 관한 것은 6송에 불과하지만, 중국 차에 못지않은 우리 차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조선의 후반기는 다도가 거의 사라진 시기라고 볼수있습니다. 초의가 없었다면 어쩌면 그리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초의는 동다송에서, 차를 함부로 다루어 품격을 잃게 만든 지리산 칠불암의 승들을 질타하며 새로운 다풍을 일으켰습니다. 초의의 다도 사상은 피차를 분별하지 말라는 일미법으로, 자연합일의 사상이었습니다.
첫댓글 그렇군요~
모든 차 맛은 발효가 중요하다는것 잘 알겠습니다
7세기초 선덕여황 이
차를 즐겨 마셨다는
이야기 어디선가 본거
같아요 감사합니당
차를 마시나 마음을 마시나 맛 또한 함께하는 공간 사람 시간에
여울려서 시공을 넘나드는 분별 또한 멋뜨러진 풍광